제 한 몸뚱이만으로는 감당하기 버거운 고통이 들이닥친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고통을 단 한순간에 모두 담아낸다면 이러할까? 차마 버텨내지 못하고 그는 주저앉고 만다. 속절없이 무너져내리려 하는 몸 간신히 세워 곧장 일어서고자 하는 것만이 할 수 있는 그나마의 저항이었다. 아래로 꺾이려는 고개 간신히 들어올리자, 흘러내린 머리카락 사이로 히죽거리는 웃음 새는 얼굴이 드러난다. 이대로 무력하게 몸 가누지 못해서야 제 목숨 어떻게 될지 모른단 위기감 때문이다. 극도의 스트레스가 그만큼의 격양을 불러 온다.
"난, 얼굴은 안 봐서."
하, 하하. 웃음소리는 고통에 떨려 언뜻 흐느끼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도발인지 무엇인지, 여자의 얼굴이 가까워지자 그는 남은 온 힘을 다해 그 면상 후려치려 들었다. 이 **. 살인마를 상대하는 건 좋지만 저라고 해서 고통 자체를 즐기는 건 아니라. 귀가 좋다면 속삭이듯 중얼거리는 욕도 들렸을 테다.
매일 매일 즐기는 마음으로 일을 한다고는 하지만 가끔 한계치가 찾아올 때가 있다. 연달은 출동으로 피로가 누적되었거나 하루 종일 사무실에만 앉아있거나- 그러면 누구라도 몸과 정신 모두 지치겠지만. 아무튼 근무 중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탈주 욕구는 참기 힘든 것이다. 그래서 온화 생각했다.
휴게실에 가자! 가서 뒹굴자! 간식도!
생각하자마자 자리에서 우당탕! 은 아니고 조용히 의자 끄는 소리도 안 내고 일어난다. 그리고 살금살금 소속된 사무실을 벗어나서 마치 순찰이라도 나가는 양 복도를 걸어간다. 그대로 쭉- 출입구가 있는 곳까지 가지만 나가지는 않고 근처에서 적당히 서성거렸다. 마치 누군가의 복귀 기다리는 것처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때마침 순찰을 마치고 들어오는 사람 중에 엷은 잿빛 단발머리 보이자마자 활짝 웃으면서 호다닥 다가가 안으려고 했으니까. 다가간다는게 무슨 몸통 박치기 하듯 격해서 주변 눈에 띄었겠지만.
알 바야?
"유우 오빠! 순찰 수고했어- 지금 피곤하지? 응? 조금 쉬고 싶지 않아? 응?"
주변 눈치 따윈 전혀 보지 않고 유현을 붙잡고 초롱초롱한 눈빛 보낸다.
휴게실 가고 싶지! 가고 싶다고 말 해! 가자고!
이 때 온화 생각은 언제나처럼 유현이 그러자고 하며 같이 가 줄 것이라 대답 들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늘 그랬으니까.
제아무리 사회가 불안하다 한들 겉으로나마 멀쩡한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한, 매일매일이 전쟁 같은 참황으로 가득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때때로 불운하고 흉악한 참사가 벌어지기도 하지만 이 인근의 가까운 거리는 대체로 평화로운 일상의 선을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아무 일 없는 평화로운 일상을 수행하고 있자면, 직업 만족도가 최상에 가까운 유현이라 해도 이 순간에만큼은 그도 여느 직장인과 같이 다름없는 평균치의 인간이 되곤 한다. 일하기 싫은 마음에 찌들어 버린다는 뜻이다. 하지만 어쩌겠나. 잘리기 싫으면 성실 근무 해야지. 그렇게 따분한 현실에 충실하게 임하고 돌아오자니 몸은 멀쩡해도 머리가 영 개운하지가 않다. 아, 심심한데 누가 사무국에 용이라도 풀어줬으면 좋겠다. 그럴 만한 밀수업자 어디 없나? 터벅터벅 오러의 일상. 그는 급기야 회사가 터졌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빌기에 이른다. 다행히도 허황한 생각은 문을 열고 사무국 건물로 들어서자 곧 끊어지게 됐다. 안으로 들자마자 동물처럼 갑자기 휙 튀어나온―뛰어들다시피 한― 인물의 덕택이었다.
딴생각에 열심히 골몰하던 중이라 그런가, 생각보다도 행동이 앞선 나머지 그는 제게 뛰어드는 온화를 휙 피하고 말았다. 지극히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아. 이게 아닌데? 정적이 짧게 뒤따르다, 그가 반 박자 늦게서야 활짝 웃으며 상황을 수습하려 했다. "날 반기는 거야, 용건이 반가운 거야?" 온화의 어깨에 팔 걸치고 그 손으로 머리 쓰다듬으려 한 것이다. 그나마 빠릿빠릿하게 상황 파악해서 한 박자가 아니라 반 박자에서 그쳤는데 이걸로 용서가 될지 모르겠다.
"아- 그러게. 시민을 위해 일해서 그런가 엄청 피곤한데. 휴게실 가면 싹 나을 것 같고. 그렇지?"
말하는 투 누가 들으라는 것처럼 일부러 과장스럽고 어색하게 하니 오늘도 신호 잘 받았다는 뜻이다. 그는 잘 알겠다는 눈빛으로 온화의 얼굴 마주보며 씩 웃더니, 어깨동무하고 그대로 발걸음 가볍게 휴게실로 후다닥 도망가려 했을 테다.
>>903 (납득의 끄-덕) ㅋㅋㅋㅋㅋㅋ 얀 하나만 있으면 섭하징~ 기왕 하는 AU니까 혀끝 짜릿해지는 요소는 우다다다 때려넣었음~ 엣 잠깐 옆구리는 급소 (돌 연 사)(사인 : 유현주의 옆구리 콕콕)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속성 하나만 풀어보자면~ 크루시오 2연속 맞고도 샐샐 웃는 도M이지만 동시에 잡은 범죄자 바닥에 깔아놓고 힐굽으로 척추 짓누르면서 원하는 얘기 다 들을 때까지 구속시켜놓는 도S라던가~ 목의 초커는 사실 줄을 연결할 수 있다던가~ 이 정도~? (찡긋)
유현이가 짜란다짜란다 해주는 동안은 나올 일 없는 속성이지~ 호호~ 그럼그럼 도망쳐서 좋을 건 없단다...^^
유현이 평소 잘 받아주는 것은 비단 휴게실 가자는 요구 만은 아니었다. 사무국 사람들 중에서 제 장난과 스킨십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예고도 하지 않고 대뜸 달려들었다. 이래도 항상 받아주었으니까. 오늘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피했어? 나를?
반 박자 정적 동안 온화 표정 참 볼 만 했을 것이다. 방금 전까지 휴게실 가자!를 외치던 초롱초롱한 눈빛 온데간데 없고 저를 피한 유현의 행동 이해할 수 없다는 생기 사라진 눈빛에 탁 풀려 벌어진 입술은 고사하고 조금 있으면 아래턱이 떨어질 듯 했다. 아마 반 박자가 아니라 한 박자 늦었다면 당장에 따끔한 상황 펼쳐졌을 지도 모르지만. 다행히 그렇게 되기 전에 유현의 행동이 사태 수습하는 것 성공했다. 정확하게는 어영부영 얼버무려진 것이었다. 안 그랬으면 마주 보았을 때 입술 삐죽 내밀면서도 몸이 따라가는 일은 없었을 테니.
"흥! 하여간 능청만 좋아선!"
아직은 뚱한 기분이라 작게 투덜거리며 유현 따라 휴게실로 향했다. 어깨에 팔 두른 유현과 달리 그의 허리에 한 팔 걸치고 옆에 착 붙어서 말이다. 가는 내내 온화 입 꾹 다물고 있었지만.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유현과 같이 있게 됐으니 배배 꼬인 기분 슬그머니 풀려가지만. 그래도 아까 그건 조금 싫달까. 적어도 왜 그랬는지는 듣고 싶달까. 그런 생각 했으니 바로 실천해야 하지 않겠나. 하여 휴게실 들어가자마자 유현을 벽으로 밀려 하며 생긋- 웃는 온화 드디어 말했다.
"그- 래- 서- 아깐 왜 그런 걸까나-? 응? 일부러? 아님 실수? 실수면 왜-? 무슨 생각을 그렇게 했길래 나를 그렇게 쏙 피해-?"
분명 아주 밝게 웃고 있었지만. 대답에 따라 뭔가 하거나 안 하거나 할 것 같다면 절대 기분 탓이 아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대답은 듣고 판단할 듯 기다려주고 있다는 것이겠지만.
온화가 아니었다면 볼만하다고 해도 될 정도의 표정이었다. 그래. 상대가 온화만 아니고, 그 표정이 향한 상대가 자신만 아니었다면. 저 얼굴에 서린 감정을 무엇이라고 해야 옳을까? 그저 짧은 경악이나 충격이라기엔 인간관계의 경종이 맹렬하게 울리려 한다. 어찌되었든 그는 본능 예민한 작자였으니, 태연한 척 능청 떨면서도 그 감정 터질 새 없도록 서두른 건 최선을 다한 판단이었다.
"우리 온화, 기분 상했어? 어떻게 하면 봐줄래?"
그간 튕긴 적 없이 죄 받아주며 지냈다 보니 이런 불상사가 벌어지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그는 가는 동안 눈 최대한 반짝거리게 뜨고, 슬며시 머리 기울여 기대고, 그러다 온화 어깨에 한쪽만 걸쳤던 팔 반대쪽 팔로도 둘러 끌어안듯 한 자세가 된다. 나름대로는 안 하던 아양이며 하여간 나 잘못했다는 어필을 열심히 해대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추궁 당하는 미래까지 막아주지는 못하더라. 별다른 저항 없이 얌전히 구석에 밀린 그가 눈 느린 간격으로 깜빡거린다. 이게 그 정도로 중요한 일인가 하고, 조금은 어리둥절한 듯도 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은근한 위기감이 들어 오려는 느낌을 봐선 대답을 잘 해야 할 듯싶─ 위험이라고? ……이 와중에도 눈치 없이 기분 들뜨려던 것 억누른다. 참아, 내 안의 부신. 지금은 눈치 챙겨야 할 타이밍이다. 그는 절로 공손해진 자세로 실토했다.
"잠깐 딴생각 하느라 너인줄 몰랐어. 그, 무슨 생각 했는지까지도 진짜 말해?"
제법 담담하게 말하던 유현이 넌지시 조심스러운 시선으로 온화를 보았다. 말 못할 것까진 아닌데, 변론에 쓰기엔 다소 한심한 소리라는 걸 본인도 알아서다. 괜히 제 한쪽 뺨 쓸어내리다 직고한다.
"심심한데 사무국 터졌으면 좋겠다고……."
근데 지금은 내가 터지게 생겼네. 적어도 지금은 더는 무료하지 않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소원이 이루어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