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식인지 뭔지가 볼을 핥은지도 시간이 오래 지났다. 돌아가서 머트랩 용액을 때려붓기가 무섭게 다섯 번은 더 넘게 씻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제 형님께 그날 있었던 일은 철저히 함구하고, 대신 밤새 술잔이나 기울이는 것으로 끓는 속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다음번에 만나면 혀를 잘라버릴 것이다. 개처럼 구르며 일하는 내 인권도 없는 마당에 범죄자 인권 따위 알게 무언가. 자본에 굴복해 인권 없이 터벅터벅 호출에 응하니 모교 소식이다. 간도 크지, 동화학원 출신 오러가 얼마나 많은데 무슨 테러란 말인가!
"유념하겠습니다."
오, 퀴디치 우승컵. 오랜만에 본다. 그 또한 우승컵을 손에 쥐어본 적이 어찌나 많았는지! 요즘 퀴디치 팀은 잘 하고 있나 몰라. 우승컵을 쥐기 전, 그는 자신의 유념하겠습니다의 정의를 다시금 되새겼다. 최우선으로 하라지만 학생은 모두 중요하다. 다만 장관님의 아이라 하니 가장 먼저 지켜줘야 옳을 것 같기도 하고... 뭐, 남들이 지켜주겠지. 장관님에게 잘 보이겠다며 목숨 거는 애들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음.
"뭐, 후배긴 한데."
정말 남들이 알아서 하겠지. 주변을 쭉 둘러보던 그는 대충 색안경을 까딱이듯 고쳐 쓰고는 저벅저벅 걸었다. 어디, 청궁은 여전할까?
일하던 도중 만나는 것은 또 오랜만이라 안기는 것에 제지 없었다. 귀엽기도 하지, 이런 동생 세상에 어디 없다. 부비는 모습에 그리도 좋으냐며 끌끌 웃다가 머리 헝클어지게끔 쓰다듬었다. 뽀득뽀득 소리 날 때까지 쓰다듬고는 짓궂게 미소 짓는 모습이 얄밉다. 녀석, 이건 감내하고 안겼겠지.
"내 오랜만에 졸업한 곳 가야지. 청궁에 갈 생각이니 너도 조심하거라, 알겠지?"
짜증 나게 구는 녀석이 있으면 발등을 으깨질 때까지 콱 짓밟고. 살벌한 듯 애정 어린 경고 해주고는 가벼운 발걸음 옮겼다. 건 사감님은 요즘 무얼 하고 계실까.
이곳은 꽤 오랜만이다. 졸업하고 나서 거의 7년만이던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게 없는듯 한 느낌이니 감회가 꽤나 새롭다. 다른게 하나 있다면 지금은 실시간으로 테러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 정도일까. 그래도 지금 당장은 안심해도 좋지 싶었다. 어차피 사감들이 지키고 있을 터였으니.
"간만에 현궁이나 가 볼까."
다른거 신경쓸 겨를도 없이 숨 가쁘게 지금껏 살아왔다. 가끔은 간만에 사감님도 좀 뵙고, 약간의 여유를 즐겨도 괜찮겠지. 가현은 현궁으로 향했다.
아끼는 동생 머리 박박 쓰다듬고 나니 기분이 한결 낫다. 비슷한 살가움이었던 것 같은데 어째 폭식의 텐션은 감당할 수 없다. 어쩌면 본능에 각인된 불쾌함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조금은…… 그래, 내게 이렇게 대할 수 있는 건 우리 형님밖에 없는데 그 경박한 녀석이 감히와 같은…….
이게 뭔 생각이야? 모르겠다. 간만에 건 사감님이나 뵈러 갈까! 그래, 청궁은 여전할까, 퀴디치 팀은 어떨까…… 아, 사감님께선 졸업 이후 내게 벌어졌던 일을 알고 계실까, 걱정하지 않으셨음 하는데. 내가 죽였으니까.
흥얼거리는 소리와 함께 족적 남는다. 졸업 이후 다 죽여버렸던 때와 달리 핏자국은 남지 않았다.
늘 그랬다. 이곳에서 보낸 6년 내내 이곳은 겨울이었으며, 주번은 항상 눈으로 덮여 새하얀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늘 시렵도록 차갑기만 한 곳이냐고 묻는다면, 그것과는 정반대의 분위기라고 할 수 있었다. 부드럽게 쌓여있는 눈과 정겨운 풍경은 되려 포근하게까지 느껴지게 만드는 부류의 것이었다.
"네. 철 없던 꼬마는 이렇게 오러가 되어 다시 찾아왔답니다. 설녀님.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더불어, 이곳 사람들의 성향마저도 그런 느낌을 물씬 자아내게 만드니 통상 알고 있었던 겨울의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소리 없이 흰 눈이 소복히 내려앉으며 주변 사물들을 따스하게 덮어주는 느낌을 자아내는 곳이었으니. 여전히 목소리의 높낮이는 변함이 없었으나 표정은 달랐다. 저를 반겨주는 둘을 향해 부드럽게 미소짓는다. 이 따스함. 그리웠어.
어이쿠, 밟기 싫은 것이 툭 떨어지니 슥 발만 치운다. 그래도 다행인 점이라면 아예 몸에 맞지 않았단 점이다. 맞기라도 했다면 청결 마법을 수십 번 썼을 테지! 안도하기가 무섭게 호쾌한 목소리가 주변을 쩌렁쩌렁 울린다. 아! 이 그리운 목소리. 신이 난 듯하기도 하고, 날카로운 것 같기도 하고.
"아! 사감님! 그간 격조하셨습니까?"
기억하고 계시는구나! 기쁘기도 하지, 흠, 그래도 기억 못 하는 것이 조금 이상할지도 모르겠다. 그가 지금껏 해온 일이 어찌나 화려했는지. 복도에서 빗자루를 타고 질주하는 것은 예삿일이요, 가끔은 온갖 맛이 나는 젤리빈을 뿌리고 다녔지 않았나. 그것도 엄선해서 고른 귀지 맛만. 학교에 호감이 있으면 모를까, 악감정이 있을 리가. 그 점을 몰라주니 섭섭한 모양이다. 지팡이를 겨누자 색안경 슥 머리 위로 올리고는 끌끌 웃었다.
"떼잉, 그런 소리 마십시오. 그런 일은 갈레온을 상자에 담아서 줘도 안 합니다."
아니, 궤짝으로 주면 할 의향은 있을지도 모르는데… 중요한 건 이게 아니지. 느긋한 미소가 만면을 감돈다.
"아무튼, 저 오러 됐습니다. 테러범이 있단 소식에 출장차 왔지요. 아, 인권 살살 녹아서 슬프기도 하지……."
아회는 너무 슬퍼잉. 제 양팔 끌어안고 꺅꺅 몸 비트니 느긋하게 얘기하다가도 꼭 저런 경박한 제스처를 취해야 하는가 싶다….
금방이라도 테러의 위협이 닥칠 수도 있을 상황이라기엔 학원 내부는 제법 조용했다. 무참히 파헤쳐지고 난 자리의 을씨년스러운 적막과는 다른, 나름대로의 만반을 갖춘 태세와도 같은 분위기. 저를 내려다보는 석상들을 마주 올려다보고 있자니 그는 무엇인지 모를 은근한 기분을 느꼈다. 잠시간 곰곰이 생각해보고 나서야 그것이 어떤 감각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아, 향수인가? 어느 곳부터 탐색해야 좋을지 생각하던 참에 마침 잘됐다. 그는 주궁으로 향하기로 했다. 졸업할 때까지 오랜 세월 보낸 장소이니 무언가를 숨길 장소나 달라진 점이 있다면 발견하기 쉬우리라. 짧은 이끌림, 내지는 익숙한 곳에 대한 반가움을 느꼈으나 그뿐이다. 그 이상의 감상은 느껴지지 않으니, 내딛는 발걸음에도 달리 즐거운 마음 묻어나지는 않는다. 일이나 해야지. 얼른 아무나 발견해서 두들겨 팰 수 있기만 하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