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냄새. 코끝을 맴도는 비릿한 향을 느끼자 자연스레 곤두선 긴장감이 따라든다. 안에서 들리던 소리의 정체는 저 사람인가? 그는 눈앞의 여자 외에 다른 기척이 느껴지는지를 확인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물러나는 상대를 굳이 쫓으려 하지는 않는다. 함부로 접근했다간 경계하는 상대를 더 자극하는 결과가 될 수 있어서이기도 하며, 아직 저 여자의 신원을 무엇으로 특정할지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연 저 여자는 이 사태에 운 나쁘게 휘말린 피해자가 맞을까? 그러나 우선은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다해야 하니 친절한 공무원의 자세로 다가가기로 했다.
"아, 진정하세요.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러 왔습니다. 접근해도 되겠습니까?"
유현은 거리를 둔 채 상대를 향해 그 멀끔한 얼굴로 싱긋 웃어 보였다. ……참, 멀끔하진 않지. 흉터에 불만은 없는데 이럴 때엔 조금 거슬린다. 인상 나빠 보이잖는가.
"어머. 그런 소리 하면 손끝도 못 대게 한다-? 나도 모르는 새에 슥삭 하는 건 취향 아니야-"
아까 팔을 달라더니 오늘은 아예 이 쪽에 꽂혔나보다. 해체하기 전 상태 살피듯 꼼꼼히 손을 만지는 그를 잠시 하고픈 대로 두다가 돌연 손가락을 툭 튕겨 그의 손길 떨쳐낸다. 자유가 된 손을 약올리듯 살래살래 흔들며 거두곤 다시 안 줄 듯 뒷짐 지고 싱긋 웃었다.
"오러 몇몇이라니- 내가 무슨 수로 그래- 사냥은 나보다 자기가 더 잘 하면서."
오러를 달라는 둥 할 땐 제가 어떻게 그러겠냐며 태연히 아무 것도 못 하는 일반인인 척 굴었다. 그에게 제가 오러인 걸 말한 적이 있었나? 기억으론 없지만 혹시나가 사람 잡는 법이다. 아무 것도 모른다는 양 웃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다가 강제로 끌고 갈까- 하는 말에 괜히 호들갑스럽게 몸서리 쳤다.
"자기도 참- 자꾸 그런 말 하면 나 무서워서 살 더 빠져버릴 지도 몰라-? 나야 더 날씬해지면 좋지만 자기는 싫잖아- 그치?"
더 마른다고 하면 그가 덜 할까 싶지만. 혹시 모르니 이쯤에서 빠질까. 그가 정말로 저를 강제로 끌고 가기 전에 가려는 듯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다음을 기약하는 인사와 함께.
온화 정도의 위치에 있다면 그런 상대의 정보 정도는 어떻게든 자신에게 흘러들어오게 되어있었다. 온화가 철저히 숨긴다면 모를까 그렇게 할 것 같지도 않았고 말이다. 평소에는 한없이 가벼운 분위기를 보여주다가도 중요한 순간의 주도권은 항상 그녀가 쥐고 있다는게 윤하의 평가였기에 자기 생각대로 잘 되지 않을지도 몰랐지만 말이다. 귀여운 소리를 내며 자신의 무릎으로 올라온 온화가 자신처럼 어깨에 고개를 파묻자 살짝 미소 지었다.
" 먹고 싶은게 있으면 뭐든 말씀만 하시지요. "
빙긋 웃으며 답한 그는 그것뿐이냐는 물음에 답하지는 않고서 조금은 자극적인 장난을 즐겼다. 누가 들어오기라도하면 어쩌려고 그러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런걸 신경쓸 윤하가 아니었다. 아니 이 정도면 자신의 평소 평판에 별로 어긋나지 않는 행동이니 더더욱 신경이 쓰일리가 없었다. 허리를 끌어안은 손으로 이곳저곳에 장난을 치던 윤하는 온화의 손에 잡힌 초콜릿을 보고선 답하려다 그녀의 행동을 보고 결국 웃어버린다.
" 항상 사무실에 두는데 오늘은 마침 다 떨어졌더라구요. 그것 때문에라도 화가 두배는 더 났던게 아닐런지. "
담배를 피는 대신 사탕을 입에 물고 있으면서 흡연 욕구를 최대한 억제하는 편인데 오늘은 안그래도 화가 나는데 사탕까지 없으니 흡연 욕구가 머리 끝까지 올라왔었다. 그래서 입에 뭐라도 물기 위해서 휴게실을 찾아왔던 것이고 거기서 온화를 만나 지금 상황이 이러한 것이었다. 온화를 만나서 그 잠시 머릿속에서 지워졌던 흡연 욕구가 다시금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낀 그는 도발적인 행동에 고개를 서서히 가까이 가져가며 말했다.
" 초콜릿 하나로는 부족할 것 같은데요? "
온화의 입에 물려있던 초콜릿에 자신도 마찬가지로 입을 살짝 가져다댄다. 입술이 닿을락말락한 상황에서 그는 잠깐 멈칫했다가 능숙하게 초콜릿을 입에 물었다. 고개를 살짝 돌리고 있어 뒤에서 보면 마치 키스를 하는듯한 구도였지만 금방 초콜릿을 입에 넣은 그는 능글맞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526 연은 한숨을 내쉰다. 당신의 그런 반응은 이미 예상하고 있던 것이라고. 그렇지만 혹시 모를 속죄를 할 수 있을 일말의 기회를. 다른 범죄자들이었으면 절대로 주지 않았을 기회를 당신에게 내밀어 보이던 것은, 예전 가문의 만남에서 만났을 때의 당신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것이었는데. 당신의 주문에 지팡이가 멀리 날아가면 연은 지극히 무표정한 얼굴로 지끈거리는 제 손목을 매만진다.
"이제 대화할 마음이 생기셨습니까?"
이대로 무방비한 상태로 당신에게 공격을 당할지도 모르는 것이었지만. 교만스러운 당신이라면 그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태연히 당신을 바라보던 연은 평이한 목소리로 당신에게 묻는다.
온화의 말과 행동에 흥미는 보이지만 깊게 파고들지 않는 사람이었다. 모 씨 가문의 가주 모윤하는. 가끔 이 사람이 그런 딱딱하고 고리타분한 가문이 맞나 싶으면서도 은근히 선 지키는 모습 보면 역시 성씨는 못 속이는 걸까 싶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긴 했지만.
먹고 싶은게 있으면 뭐든 말만 하라는 대답은 했으면서 다른 물음은 조용히 흘려넘기는 뻔한 태도에 온화 그저 쿡쿡 웃기만 했다. 저도 저지만 윤하 역시 노련해서 마냥 휘두를 수도 휘둘리지도 않았다. 아마 이 줄 타는 듯한 관계가 좋은 것이겠지. 제가 장난을 치는 동안 윤하도 가만히 있던 건 아니라 건드려질 때마다 반응을 아예 안 할 수는 없었다. 안달나게 만들려던 것이 되려 제가 부추겨지는 꼴이라니. 그러니 초콜릿 들고 윤하 볼 적 뺨 불그스름하게 물든 것 당연했겠지.
아니나다를까 사무실에 사탕 떨어졌었다는 윤하 보고 그럼 그렇지 하듯 눈 깜빡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런 차림으로 이 휴게실까지 오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오늘 사탕이 떨어져서 제게는 좋은 일이었을까. 뜻밖의 약속 생기고 지금도 이렇게 재밌게 놀고 있으니. 초콜릿 물고 윤하 바라보고만 있다가 그가 가까이 다가오자 눈커풀 살며시 내리감았다. 초콜릿 하나로 아쉬우면 안 아쉽게 먹으면 되는데. 아. 그럼 그렇지. 초콜릿만 입술 사이에서 쏙 빠져나가자 반짝 뜨인 붉은 눈동자에 약간의 아쉬움이 맴돌았다.
"보고 노발대발 하라고 그러는 거면서-? 흥이다."
얄밉게 초콜릿만 빼간 윤하에게 메롱 혀 내밀곤 뒤로 슥 물러났다. 단순히 고개만 무른게 아니라 몸도 움직여 윤하의 무릎에서 벗어난다. 움직일 적 굳이 그럴 필요 없는데도 손으로 허벅지 짚고 자근자근 누르는 장난도 좀 치고. 다시 붙잡힐 새라 얼른 옆으로 빠져나가 구두 꿰어 신었다. 무릎에 덮였던 가디건 떨어질새라 한 손으로 낚아채 들고 일어서니 새빨간 머리카락 일제히 감겼다 풀리며 등 위 내려앉는다. 손에 든 그의 가디건 살랑살랑 흔들며 온화 말했다.
"오빠 나오려면 아직 멀었지? 나도 잠깐 내 자리 들러볼 테니까- 귀찮은 거 처리하면 데리러 와- 알았지?"
에스코트는 신사의 기본이잖아? 싱긋 웃으며 말하고 어느새 꺼낸 지팡이 휙 휘두르자 제가 어질렀던 테이블 위 깨끗이 정리되었다. 있었던 흔적은 치웠으니 이제 가볼까. 하듯 윤하 두고 또각또각 나가려나 싶더니- 소파 뒤로 돌아서 윤하 머리 위로 가디건 펼쳐 툭 덮어버린다. 키득키득. 웃는 소리 가깝게 들린다 싶은 순간 가디건 위로 뭔가 톡 닿고 떨어지는 감각 지나갔을 것이다. 그 뒤로 다시 구두 소리 나고 휴게실 문 열리며 그런 말 들렸겠지.
"너무 늦으면 나 혼자 가버릴 거야- 그럼 이따 봐. 윤하 오 빠♥"
말끝을 간드러지게 흘려주는 건 다분히 의도적이지만 그게 제 아이덴티티 아니겠는가. 휴게실 문 열리고 닫힐 때 웃음 소리 가늘게 흘렸다.
//더 놀고 싶지만 AU 기간 생각해서 이쯤 마무리하자~ 이걸로 막레 해도 되구 따로 달아줘도 좋구~? 암튼 수고했어 윤하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