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괴의 반응을 본 가현의 눈이 희번득해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드디어 찾았어. 찾았으니까 이제 편안하게 만들어줄게. 인간을 어설프게 흉내내는 것들은 이미 이전에도 힘들이지 않고 순식간에 보내버린 적 있었는데, 너라고 다를 것 있겠니.
"아하하~ 어찌 네가 인간의 속내를 헤아릴 수 있을까. 어중간하게 알았다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걸."
자신이 마을에서 시간을 오래 허비한 것은 다 그만큼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무얼 하더라도 확실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떠보기에 그 어떤 동요도 없이 흘려 넘기지는 못할 망정 이렇게 여실없이 드러내주었으니 이제는 집행의 시간이다. 허나 말을 잇기 전, 요괴의 외침을 들은 가현은 남학생 쪽으로 시선을 옮긴다. 맞다. 변수가 하나 있었, 지.
"아아.... 이런 거. 조금, 버거운... 데..?"
지난번 범을 사냥할때와는 정반대의 모양새가 되었다. 새하얀 호랑이의 모습을 보며 가현은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어내고는, 이윽고 씨익 읏었다. 애정이다. 애정이야. 네 애정. 확실히 받았어. 그렇지? 피를 울컥 토해내면서도 그 미소 변하지 않고, 그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고 똑바로 집채만한 흰 호랑이를 올려다보며 한껏 황홀경에 젖어든 미소를 유지했다. 그보다. 이런 상태라면 자신이 할수 있는게 없지 않은가.
"그때, 나 데리고 맛있는거 많이 사줬던 사람. 맞지....? 달이. 저 아이의 이름이야. 세번, 끊지 말고 연속으로 불러줘. 저 빌어먹을 요괴. 없애버릴수 있으니까..."
제 앞을 막아주려고 했던 것 같은 적룡의 여학생을 바라보며 그리 이야기했다. 이윽고 가현은 부적을 두장 꺼냈다.
"너. 너는 나랑 놀자. 내게 애정을 주었으니... 나도 너한테. 내 무한한 애정을 담아 행해줄게. 좀 더. 좀 더 가까이... 우후훗...!"
밧줄로 이 호랑이를 묶어 움직임을 봉하는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려내며, 가현은 부적을 두 장 날린다.
제 반항은 헛된 몸부림으로 끝나고. 더 이상 아프게 하지 말아달라며 호소하는 눈으로 연은 당신을 바라보나, 손톱이 살 속으로 파고드는 통증과 함께 들려오는 당신의 말에 연은 눈을 꾹 감는다. 바다에 오는 게 아니었어. 숨 쉬는 것도 고통으로 몰아넣는 통증이 온몸을 타고 흐르고, 고동치는 심장의 맥박 소리만을 들으며 다가올 결과에 떨고 있을 때, 상황이 변하면 연은 눈을 천천히 떠낸다. 가현에게 달려드는 모습에 비척거리며 일어난 연은 가쁜 숨을 몰아쉰다. 충격에 빠진 표정으로 피를 토해내는 가현을 보자, 연은 악을 쓰고서 이를 꽉 깨문다. 차라리 내가 다치면 더 다쳤지, 다른 사람들이 다치는 모습을 볼 수가 없어서. 피에 젖은 부적을 두 장 꺼내어 아회에게 내던진다. 강한 바람으로 하여금 멀리 날려버릴 생각이다.
의뢰를 받아 이곳에 왔지만 실패한다 해도 큰 불이익은 없을 테다. 죽을 걱정을 하면서도 가야겠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언지. 의문하면서도 그는 순순히 보리를 달고 앞으로 나아간다. 보리를 위해 속도를 늦춰주지는 않았으나 서두르지도 않고 꾸준하고 착실하게 걸음을 옮겨갈 뿐이다.
아, 그래도 이렇게 달라붙으면 불편한데.
가뜩이나 저를 홀린 괴이한 것이 이곳에 있을지도 모르는 와중에 이렇게 나오면 동작에 문제가 생긴다. 그는 보리에게서 슬쩍 몸을 뺀 다음 소리가 난 곳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그러고도 잠시,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자 정면을 응시한 채로 넌지시 물었다.
"한 번 살펴보기나 하죠. 제가 먼저 갈까요?"
갈까요, 하고 물었지만 동의를 구할 생각은 없었나 보다. 그는 침착하게 수풀 방향으로 걸어가 그 너머를 살피려 했다.
거센 바람과 함께 제 몸을 짓누르던 중압감이 사라진 기분이었다. 아쉬워라- 조금 더. 재미를 볼 수 있었는데. 그래도 저를 향한 도움 또한 자신을 향한 애정일 터. 가현은 구면인 청룡 여학생을 향해 방긋 웃었다. 그보다, 이렇게 더 질질 끌수는 없었다. 저를 공격한 저 학생 역시 결국에는 같은 학당 사람일 터. 사람을 어중간하게 닮은 저것의 뜻대로 서로 물고뜯는 구경거리를 제공해줄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적룡 여학생에게도 부탁하긴 했으나 저 역시 위험을 피했기 때문에 멀뚱히 바라보고 있지만은 않을 생각이었다.
"달아, 달아, 달아. 네 발로 도망치지 않은 걸 후회하게 해 줄게. 이제 그만, 그 덧없는 목숨- 내게 내어놓지 않으련."
이제는 집행의 시간이다. 감히 여럿 가지고 논 것에 대한 처벌은, 마땅히 받아야 할 터였으니. 가현은 이름을 세번 연달아 부르며 입꼬리를 다시금 끌어올렸다. 내 승리야. 덧 없는 것아. 네가 아무리 발악하더라도- 절대 넘어설수 없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그 기억 마지막 한 켠에 똑똑히 박아두도록 하렴.
막아보려 했으나- 한발 늦은 것 보고 온화 할 수 있는 건 그저 한숨 쉬는 것 뿐이었다. 늘 그렇지. 저는 항상 제때 무언가 해본 적이 없었다. 겨우 숨 쉬는 몸뚱이는 그저 살아만 있을 뿐이다. 가치도 없고. 쓸모도 없다. 아. 지금은 제대로 듣지도 못 하니 더한가. 흑룡 아씨가 무어라 말 하는데도 못 알아들으니.
어느새 사방이 먹먹했다. 분명 아직 난장판 수습된 것 없으면서도.
슥 돌아섰다. 아무 것도 못 한다면 방해나 말자. 그래. 사람이 저만치 모였는데 무언들 못 할까. 저는 늘상 그랬듯이 보고만 있자. 어찌 되건. 무엇이 되건. 하여 물러섰다. 뒤로 두어걸음 떨어져 이제 어찌 되어갈까 그 광경 눈에 담기로 했다.
아. 그거라면 무슨 뜻인지 알겠다. 목숨의 위협과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궁금증이 앞서는 심정이란 어떤 것일까? 죽을 만큼 두려운 상황도, 그리 두려우면서도 궁금증을 느낄 대상을 만나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만약에 저 너머에 무언가가 있다면 거기에 송보리를 밀어넣어 볼까? 어느 쪽이 더 앞설지, 얼마나 두려워할지 확인해 보고 싶다.
다가가는 와중에도 이런저런, 어떤 면에서는 다소 부도덕한 생각들이 끊임없이 밀려든다. 그러다 보리의 말에 가던 걸음을 멈추었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되묻기엔 그의 직감은 지난번에도 맞게 돌아갔었지. 유현은 알겠다며 보리가 가리키는 곳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애정이니 뭐니 그 같잖은 것 죄다 집어치우라지! 그 미친 감정, 모든 것을 잃을 원흉, 그딴 것을 무한히 준다고 한다면 나는 세상을 저주할 것이다. 이젠 존재 빼고는 믿지도 않고 듣기만 해도 치가 떨리는 존재를 다시 믿고야 말 테다. 그렇게 사랑 없는 세상을 달라고 영혼이라도 바치리라! 집어 치우라지! 억센 주둥이로 어깨라도 으스러뜨릴까 싶었건만 이젠 또 후배까지 나타난다. 죄다 방해, 방해다. 모든 것이 방해다. 무덤이다! 구더기가 끓는 무덤이다!* 전부 다 뒈져 버리라지, 오냐, 너도 같이 죽자꾸나. 그리 생각하며 앞발 휘두르려 했을 적, 거센 바람에 몸 붕 뜨며 밀려난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나뒹굴다가도 금세 벌떡 몸 일으켜 안의 본체가 사람이 아니라 진짜 짐승인 것처럼 몸을 파드득 떨었다.
"─!"
왜 그 누구도 모르는 게냐, 죽여야 한다. 차라리 다 죽여버리는 것이 옳다! 너희는 모르겠으나 나는 안다, 이 모든 일이 거사를 위한 발돋움이 될 것이다, 나는 옳다, 옳아야만 한다……. 송곳니 언뜻언뜻 보이듯 입가 움찔대더니 목에서 예사롭지 않은 그르릉 소리 나였다. 이내 살벌하게 송곳니 드러내며 땅이 울려라 포효했다. 절대 자신에게 명령 내리는 존재 죽이게 두지 않겠다는 듯, 그리고 마지막 힘을 쥐어짜듯 두툼한 발 박차며 뛰었다. 몸으로 들이 받기라도 하겠다는 듯. 그 몸짓에서 조종도 조종이지만 적룡 고학년이라는 듯 짙은 증오가 느껴지는 것은 절대 기분탓이 아닐 터이지.
이제 저 여자만 죽이면, 그 요괴는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개여시는 가현을 죽이고 박가도 죽일 생각에 웃었슴니다.
백호로 변한 아회의 공격이 빗나갔를 때, 가현이 자신의 이름을 세 번 부르자, 그것은 연신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습니다. 머리부터 온 몸의 털이 빠져, 무네 개의 발이 달린 짐승 모습이었고 머리가 갈라져, 두개골이 드러났습니다. 그것을 시작으로, 달이는 빠른 속도로 노화되어갔습니다.
그리고 남은 것은, 네 발 달린 짐승의 뼈였습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확실한 건, 그에게 돌려주건 그냥 돌아가건 당신들은 쉬게 됩니다.
[>박가에게로 수습해서 가져간다] [>그냥 두고 간다] [>학당으로 돌아간다]
>>880 유현
' ... 오늘은.. 귀띰은.. 아니고.... ' ' 나, 난 무서워서 못 보지만... 볼래..? '
보리가 고개를 가로젓다가 어느 수풀을 가리켰습니다. 그 너머에 무언가가 있습니다.
' 폐, 폐하를.. .몸에.. 모, 모시면... 산제물을.. 먹으니까... 피, 피.. 피냄새나.. 죽음, 의 냄새가.. 나는 거야 '
보리가 두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수풀 사이로 창백한 뼈가 드러난 인간의 팔이 보입니다. 이미 죽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