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말고도 선객들이 더 있었던 모양이다. 저 쪽이라면 분명 바다 방향일테다. 분명 자신은 마을에 들렀다가 이 곳으로 왔으니 지금쯤이면 이곳도 한둘 정도는 돌아왔어야 맞는 것인데, 무언가 일이 있어도 단단히 있는게 틀림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진전이 없어 다른 방향으로 향했거나.
"네~ 걱정 마세요. 주인분께서 아끼시는 애완동물이니까 최대한 찾아볼게요."
집 안을 슬쩍 곁눈질으로 바라보던 가현은 이윽고 남자가 가리켰던 방향으로 나아갔다. 자. 한번 가보자.
공격에 대비를 할 새도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던 것이, 함께 싸워 온 동료가 자신을 공격할 것이라고 생각조차 못 했으니까. 바닥에 처박히면 통증에 신음 소리조차 내뱉지 못한다. 손톱에 베인 자리에서 솟구치는 피가 따뜻하게 목덜미에서, 어깨로 번지는 것을 느끼며 왜 그러냐며 당혹스러운 눈으로 당신을 바라본다. 지금 당장 견디기 어려운 것은 이 고통이 아니라, 자신을 공격한 것이 당신이라는 사실이었다. 입술을 달싹이며 당신에게 무언가 말하려던 연은 아랫입술을 피가 나게 깨물며 다문다. 제 목을 조르는 당신의 팔을 힘껏 밀어내려 하며, 쓰러지면서도 놓지 않았던 부적 두 장을 번개로 하여금, 이대로 당신과 함께 맞아버릴 생각으로 천둥번개를 부른다.
가현은 시선을 슥 옮기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둘은 구면이요 하나는 초면이며 하나는 사람이 아니었으니. 제가 마을에서 보고 들었던 그 요괴일 것이다. 너도 범처럼 어중간하게 사람을 닮아있니. 홀리지 말라고 애써 당부하던 마을 어른들은 저런 상황이 되는걸 피하라는 경고였구나. 여간 험하게 싸우는게 아닌것 같으니, 수를 써 두는게 낫겠지 싶다.
"또 왔지, 또 왔어~ 그보다~ 네가 혹시 달이니~?"
이윽고 가현은 요괴에게 시선을 돌리며 히죽 웃었다. 남자가 잃어버린 것도 개였고 개여시 또한 개가 사람의 피를 취해 변한 요괴라 했으니. 심증은 있었으나 물증은 없었기에 반응을 떠보려는 듯 가현은 주인에게 들었던 그 이름을 입에 담아본다.
피가 튀었을 적, 그의 몸이 움찔 떨렸다. 자신이 공격해서 타인이 다쳤다는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과는 조금 거리가 먼 움직임이었다. 손가락 끝이 바르르 떨리더니 낮은 목소리가 목울대를 타고 흘러 나왔다. "얘, 내가 왜 잊었을까……." 누구에게도 닿지 않을 희열 가득한 중얼거림이 허공을 타고 흐르더니, 사근사근 속삭였다.
"안 돼, 입술에 상처가 남잖느냐. 얌전히 있어야지… 앞으로 터질 일 많을 터인데……."
그리고 손에 이대로 힘 주어 목 뜯어버릴까 생각할 적, 그느 순식간에 손을 떼며 물러났다. 발목을 휘감으려던 금줄 탓이다. 걷어차듯 움직이며 뒤로 빠지는 모습이 평상시와 달리 날랬다. 다만 머리카락이 잠시 줄에 채였던 탓인지 머리 대충 쪽지던 것이 툭 떨어진다. 점차 판단력이 흐려진다. 흐려지다 못해 세상이 빙 돈다. 앞에 있는 모든 것에 대한 분별을 할 수가 없다. 봉두난발 사이로 시선이 정확히 온화 있을 곳을 향했다.
"우리 아까 하던 거 마저 할까? 너도 나도 만족하지 못했잖니."
나긋나긋 묻던 도중 새로운 인물 나타나 고개를 돌려 본다. 인간 하나가 더 늘었구나, 흐려지는 이성 사이로 무언가 외치는 것 같지만 심상 속 외침은 들리지 않는다. 개여시를 지키듯 몸을 막아선다.
"아, 흑룡이네."
아, 그 빌어먹을 사랑을 설파하는 어리석은 것이구나. 저것도 잡아야지, 그러면 모든 것이 순리대로 돌아올 것만 같지 않던가? 그래, 그랬다! 감히 자신에게 명령 내리는 것은 달갑지 않으나 이번엔 뜻이 통하였으니 따를 뿐이다. 아니, 따르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온전히 나의 뜻이다!
"그 빌어먹을 흑룡 때문에… 아암, 안 되지, 안 돼. 살려두면 안 돼…."
형님과 멀어지게 된 계기도 그 흑룡 때문이 아닌가… 형님, 내 형님. 안 그래도 곁에 붙어있는 것들이 달갑지가 않은데……. 통제를 벗어나듯 중얼대며 한 걸음, 두 걸음 앞장 선다. 점차 발걸음이 빨라지더니 일순 검붉은 부적이 불탔다. 죽이라고 했던 외침과 동시에 마치 혼불 보듯 기이한 불길 치솟더니 그 사이로 집채만한 흰 호랑이가 튀어 나온다. 줄무늬는 청회색이요, 풍성한 꼬리 끝은 마치 일렁이는 안개와도 같다. 신수와도 같은 모양새로 달려든 것은 당연히 흑룡인 학우를 향함이요, 만일 피하지 못했더라면 그대로 입으로 잡아채어 뒹굴려 들었다. 어깨부터 시작해 뼈 하나라도 부러뜨리고 말겠다는 듯.
금줄 솟구치나 아회에게 미치지 못 하는 것 보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에휴 한숨 내쉬었다. 명색이 도술 배우는 입장인데 어째 하나도 쓰질 못 해. 망가져도 제대로 망가졌구나. 엉망인 손바닥 보다가 또 누가 왔다는 짐승의 말 듣고 고개 돌렸다. 칙칙하던 눈에 저어기 흑룡 아씨 알아본 기색 감돌았다. 그리고 곧장 그리로 움직였다.
"그래서?"
짐승 지나칠 적 그렇게 말 흘렸다. 네가 누굴 홀렸건 저만 아니면 되었던 것을. 어쩌라는 걸까. 다시금 비웃음 가늘게 흘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대로 훌쩍 날듯이 뛰어 아회보다 먼저 흑룡 아씨- 가현의 앞 막아서고자 한다. 제 몸으로. 문득 아회 홀린 얼굴 어떨까 싶어 마주 보는 방향으로 섰다. 좀 그럴싸 하게 두 팔 벌려 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