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갈수록 끔찍하게 좋지 않은 기억만을 불러오는 바다로 향했을 적에,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보고서 연은 그대로 못 박힌 듯 멈춰 선다. 개인지 여우인지 모를 것이 자신에게 인사하는 것이 심히 불쾌한 듯 눈살을 찌푸린다. 방금 전에 보았던 둘. 그중 한 명은 귀에서 피를 흘리고 있을까. 정체 모를 네 발 짐승과, 그와 같이 서 있을 두 아이까지 보고서 연은 빠르게 상황을 인지한다. 부적을 두 장 손가락 사이에 끼워 들고서 연은 노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말한다.
"누가 우리사람들 다치게 한 거야? 저 짐승이야?"
마치 으르렁거리는 듯한 음성으로. 연은 답을 듣는 순간 바로 부적을 내던질 듯 개여시를 노려본다.
얼굴 주인이 아니라는 말에 가현은 아 하고 머쓱한 듯 웃었다. 당연스럽게 여인인줄만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개의 이름. 그 개는 또 어디서 찾아야 할까? 가현은 제 기억을 되짚어본다. 문득, 비슷한 텀을 두고 들어왔던 다른 사건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동물 잃어버렸다는 그 집. 어떤 동물인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개가 아닐까?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아이들을 온전히 찾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만약 그러지 못하더라도... 분명 더 이상 이런 비극은 이어지지 않을거예요."
감 잡았다. 이제 남은건 제 추측과 정보들을 직접 행동으로 옮기며 하나하나 대조하는것 뿐일지어니. 최씨 할아버지의 혼잣말이 조금 궁금했으나 소소한 사담은 훗날의 해후로 놔두기로 했다. 자. 이제 그 박씨 가문이 키우다 잃어버린 동물이 무언지 알아보기 위해 마을 밖으로 나설 차례이다.
"꼭, 모든걸 끝내고 돌아올게요~ 맞다. 제가 특별히 주의해야 하는건 없는거죠?"
개의 이름을 끊기지 않고 3번 연속으로 불러야 하는 것. 그 정보를 머릿속 깊이 우겨넣은 채 질문을 하나 더 건네고, 답이 들려온다면 가현은 마을 밖으로 나선다. 더 망설이고 있을 시간이 없었으니.
이름을 걸고 맹세하라는 듯하다가도, 그는 불현듯 개가 냄새를 잡아채듯 고개를 들어 코를 높이하더니 온화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짙은 피비린내가 난다 싶더니만 이게 무슨 일인가. 격해도 너무 격하지 않나 싶어 뭔가 얘기하려다 입 다문다. 저 정도면 이미 들릴 것도 들리지 않을 터이다. 요괴가 발을 내디디면 그는 그 상황 지켜보다 제 싸움 말려주던 아이 도착하자 상황 꼬이겠거니 생각했다.
제정신이 아닌 상황이라 해서 화유현을 이루는 근간이 뒤바뀌는 것은 아니다. 속 빈 살의에 휘말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한편으로도 그는 화가 난 듯한 상대의 반응에 필연적인 이끌림을 느낀다. 그렇기에 쉴새없이 이어지던 공세에도 틈이 생기고 만다. 곧장 다음 공격을 이어가려던 그는 잠시 멈춘 채 움직임을 멈추었다.
흥미라고?
그랬었지. 흥미와 심구는 그의 본질이나 다름없다. 이 목소리 때문이 아니더라도, 피는 좋다. 肉은 따스하기 그지없는 안온을 닮았다. 그것들을 뒤집어쓰고 있자면 내가 결코 닿지 못할 충족감을 얻은 것만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 나는 그것들에 지극한 흥미를 느낀다. 그러므로 당신은 지금 죽어야 한다. 바로 지금이 아니면 이 기회가 다시 돌아오지는 않으리라…….
"아니, 난 항상 이게 좋았어."
낮게 중얼거리는 인물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 움직이는 땅을 피해 유현이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간다. 조금 전 도술을 사용하느라 지면에 마구잡이로 흩어져 있던 파편 중 하나를 집어들고, 휘둘렀다. 몸 안으로 찔러넣을 것만 같은 기세로.
마을 사람들의 당부 역시 확실하게 잘 들어두었다. 뒤를 슬쩍 돌아보며 대답 대신 가벼운 눈웃음과 목례로 감사의 뜻을 대신했다. 뭔가 대단한 걸 행하러 가는 기분이라 기분이 꽤나 신선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정말 별것 아닌 일인데. 수업의 연장선일 뿐인데도 묘한 고양감이 깃들게 된다.
"보자. 그 집으로 가는 길이 여기가 맞던가~?"
제 기억에 최대한 의존해가며, 그리고 그 무엇에도 홀리지 않게끔 제 신경을 한껏 곤두세워가며 가현은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육체를갈아타야해살아야만해너는폐하의육체다살아야한다어떡하지어떡하지어쩍하지어떡하지육체를갈아타야해살아야만해너는폐하의육체다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육체를갈아타야해살아야만해너는폐하의육체다살아야한다어떡하지어떡하지어쩍하지어떡하지육체를갈아타야해살아야만해너는폐하의육체다어떡하지어떡하지어떡하지육체를갈아타야해살아야만해너는폐하의육체다살아야한다어떡하지어떡하지어쩍하지어떡하지육체를갈아타야해살아야만해너는폐하의육체다 패닉이 온 듯 보리는 잠시간 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유현의 공격을 피했습니다.
"내 짐승이라 멍청하여 이름 정도는 알려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지능은 높은 편이로구나. 다시 보았어."
그리 얘기하면서도 덤덤히 있던 그의 손은 여전히 유려하게 지팡이를 두들기고 있었다. 아무래도 어떻게 해야만 하는지 골몰하던 것이 잘못된 모양이다. 그래, 언제부터 골몰만 했는지. 차라리 행동으로 옮길 걸 그랬다. 지팡이를 두들기던 손가락이 우뚝 멈춘다. 차라리 행동으로 옮길 걸 그랬다…….
"……공격해야지."
우뚝 멈춘 정적 뒤로 비틀거리다 천천히 허리 낮춘다. 짐승이 달려들 듯이 자세를 설설 낮추며 기묘하게 손가락에 힘을 준다. 삽시간에 발 떼어 짐승 달려들듯 내달렸다. 부적 불타더니 그대로 날서게 돋아난 손톱으로 할퀴듯 목을 부여잡아 바닥에 처박으려 들었을 터다.
당신은 피 흘리며 죽어야 한다. 그러면 맑게 웃어대는 그것과 나 모두 만족하리라. 칼처럼 벼린 조각은 망연하게 빈 허공만 갈랐을 뿐이다. 멈추지 않고 따라붙으려 돌조각을 고쳐쥐었을 찰나, 일순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아니, 쉴새없이 귓가를 울리던 소리가 사라진 자리에 잔음 같은 흔적이 남은 것이다. 별안간 의식이 명징해진다.
따라붙던 걸음을 멈춘 그는 눈길을 아래로 향했다. 흉기나 다름없는 물건을 쥐고 있던 손이 보인다. 아직까지는 귀가 먹은 듯, 잠이 덜 가신 듯 아직은 조금 멍한 정신으로도 일이 이상하게 되었다는 상황만은 빠르게 와닿았다. 유현은 깨달은 즉시 손에 든 무기를 뒤로 휙 던져 버리고 두 손을 가볍게 들어 보였다. 손바닥을 내보이는 항복 자세다.
"잠시만요. 음, 저희 사이에 다소…… 오해가 생길 것만 같은 상황이네요."
방금까지 누구는 생사를 오가던 판이었는데, 양심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화유현은 정말로 양심이 없는 인간이라 전혀 미안하지 않다. 그렇더라도 무어라 해명을 해야 할 필요성만큼은 절절히 느끼고 있었다. 그로서도 조금은 당황스러운 일이라 생각하느라 눈 깜빡거리는 속도가 평소보다 빨랐다.
짐승의 웃는 소리 들리자 귀가 째질 것 같다. 역시 사람 아닌 것이 사람 흉내내니 듣기가 영 아닌가보다. 어느 귀인가 뜨거운 것 울컥 하는 느낌 나서 무심코 손 올리려다 참았다. 생각해보니 이만치 조진 걸로도 잔소리 반나절은 들을 텐데. 더 건드렸다간 반나절로 안 끝날 것이다. 근질거리는 손 참고 상황 어찌 굴러가나 지켜보는데.
"에엥?"
말 아끼기로 한 것 무색하게 아회 홀렸다. 본 적 없는 부적 태우드니만 흉흉하게 손 변해가지고 저기 있던 아씨에게 달려들었다. 워메. 잡을라면 저를 잡을 것이지. 그 상황 멀뚱히 바라보다가 일단 부적 꺼내보았다.
귀퉁이에 붉은 문양만 적힌 부적에 제 피로 그림 슥슥 그리고 아회의 발치 향해서 휙 날려본다. 곧장 지면으로 날아간 부적 녹듯이 바닥에 스며들고 그 자리에서 붉은 금줄 여러 가닥 솟구친다. 금줄은 아회의 발목부터 휘어감아 전신 곳곳 특히 목을 강하게 휘어감고 조금씩 죄어들 터였다. 제대로 감긴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