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게 대체 무언지. 개의 몸통에 인간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으나 신수는 아니다. 느껴지는 것 자체가 그랬다. 피비린내가 코를 찌르고, 불쾌함이 등골을 훑고 지나간다. 속도를 보아 하니 쉬이 잡긴 어려울 것 같고……. 그의 생각은 오래 가지 못했다.
"……."
화를 내야 하나? 아이가 다가가자 추잡한 아가리 쩍 벌려 집어 삼키는 모습을 보았으니 화를 내야 정상일 것이다. 아마 저 다음에도 여러 아이를 집어삼키겠지. 불현듯 드는 생각이 있었다. 그가 거절했던, 아이를 찾아달란 의뢰. 저것이 홀려 잡아먹은 건 아닐까? 분노와 같은 감정보다는 다행스러움이 앞섰다. 적어도 아이 찾아달란 의뢰를 선택하지 않아 원성을 듣지 않을 수 있구나. 참으로 다행이다.
아. 어른들이다. 가현의 눈이 반짝 빛난다. 부디 저들이 해답을 쥐고 있기를. 누구라도 이 존재에 대해 알고 있기를. 침울한 분위기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지만 이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는 분위기를 짓밟고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었으니.
"아직 별다른 소득이 없는거죠? 마을 주변에서 이런 걸 찾았는데. 혹시 짚히는게 있으신가요? 최근 이 주변에서 이런 모습을 한 짐승을 본 적 있다던가, 아니면 마을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라던가 하는 거. 혹시 있나요?"
마을에서 찾아냈던 그림과 낡은 페이지를 어른들에게 보여주며 가현은 고개를 갸웃였다. 최대한 알아내겠다. 어느샌가 이 조사에 진심으로 임하고 있게 되었으니, 자신이 가능한 선에서는 모든 걸 알아내어 이들의 서러움을 조금이나마 덜어내겠다. 자신은 모두를 포용하며- 모두를 어여삐 여기는 사람이었으니까.
기어이 피가 흐른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그것도 역시 부족한 것 같아. 더 많이 흘려야 한다. 소리가 멎지 않는다. 아직 만족하지 못했다는 듯이. …아니, 만족을 따질 계제는 아니지. 나는 단지 그렇게 해야 할 뿐이다. 피는 흐르다 못해 죽어 버릴 정도가 좋다. 사람은 어떻게 해야 죽던가?
아, 이렇게?
숲길엔 널린 것이 암석이고 바위다. 근처에 자리하고 있던 커다란 바윗덩이 하나가 들썩이며 박힌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찰나간 의미 없이 부양하던 그것은 이내 목적을 찾아 한 곳으로 날려진다. 묵직한 질량이 돌연히 상대에게 들이닥친다.
연초 태우니 복잡하던 머릿속 좀 가라앉는다. 이런 것에 의존하지 않으면 진정도 못 한다니. 문득 제 신세 한탄스러워 피식 실소 흘렸다. 그래서인가. 가증스런 짐승의 도발은 개 짖는 소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죽이진 못 해도 잡을 수는 있겠지. 어. 잡기만 해도 돼. 차라리 죽고 싶을 만큼 도륙내어진 다음에도 똑같이 지껄일 수 있는지 궁금한데?"
낄낄. 웃었다. 어디 더 지껄여보란 듯이. 웃고 담배 물고서 그 손 뒤집어 바닥 향해 털었다. 후두둑. 굳고 덩어리 지고 갓 흐른 피가 쏟아졌다. 아픈 내색 없이 손 탈탈 털고 담배 집으니 벌겋게 물든다. 그것 그대로 피우며 짐승 향해 흰 연기 길게 내뱉었다.
"그래서 안 꺼지고 거기 계속 어슬렁대는 이유가 뭐야. 우리도 다 잡아먹게? 그렇게 처먹고 또 먹냐? 아무리 짐승 새X라지만 상대는 가릴 줄 알아야지. 어? 저 마을 인간들이 만만히 당해주니까 죄다 호구로 보이지. 반푼이 개XX야. 자신 있으면 덤벼보던가. 설설 기지 말고. 어? 야. 덤비지도 못 하는게 주둥이만 살아가지고."
하하! 이젠 아주 배를 잡고 웃으며 있는 말 없는 말 죄다 천박하게 늘어놓는다. 웃는 건지 일그러진 건지 모를 붉은 눈은 언뜻 아무 생각도 없어보였다. 그저 탁하게 흐려 보일 뿐.
대단한 자신감이다. 제 후배가 뭘 하든 그저 제 3자와도 같이 지켜보겠다는 듯 그는 가만히 두 존재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진명을 알아야만 죽일 수 있는 존재, 그리고 위협하는 모습과 함께 제 후배는 도발하듯 각종 단어를 조합하여 속을 긁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늘어놓는다. 밀어떨어뜨린다니, 잔악하기도 하지. 지팡이를 손가락으로 두들기게 된다. 그리고 그는 그대로 손가락을 멈췄다.
"북부 요괴보단 도발의 수위가 약하네."
태연자약한 감상이었다. 저 개를 그냥 박 씨에게 데려가면 알아서 교화되지 않을까 싶은 실없는 생각과 함께.
그런 똑똑한 강아지가 왜 도망쳤을까 생각하다 보면, 같이 강아지를 찾아 여기로 왔을 둘이 어쩌다가 그렇게 싸우게 된 건지 더더욱 의문스러워 지는 것이다. 바다라는 단어에는 연의 눈가가 움찔거린다. 한숨을 내쉬며 연은 바다 쪽을 바라본다. 다른 둘이 제대로 찾아갔으니 다행이지만. 시무룩한 표정인 박가를 보고서 연은 위로하려는 듯 등을 두드린다.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옴에도 그는 묵묵히 부적을 다시 꺼내들기만 한다. 왜 그러냐니, 이유는 중요치 않다. 나는 그저 당신을 죽여야 한다는 절대적인 직감에 사로잡혀 있을 뿐이다. 그는 제자리에 붙었던 발 떼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반격이 돌아오더라도 상관하지 않는다. 나는 저 자를 죽여야 한다. 죽여서……. 죽여서 무얼 하지?
멀었던 거리가 좁혀들어 서로의 간격은 어느덧 지척에 가깝다. 또다시 부적이 사그라진다. 조금 전 내다꽂은 바위의 일부가 겹겹이 쪼개지며 날카로운 형상으로 깎여나간다. 파편들은 어김없이 눈앞의 상대를 노리고 쇄도한다.
짐승이 저를 가지고 놀았던 것 입에 담자 검붉은 눈에 화륵 분노 타오른다. 지금 당장 갈아마셔도 시원찮을 짐승이나 애석하게도 지금으로서는 할 수 있는 것 없어보인다. 게다가 말 하는 꼬라지 보니 제게 다시 또 무슨 짓인가 할 것 같다. 또 걸리면 귀찮으니 어떻게든 해야겠지.
하여 담배 다시 입에 물고. 품에서 부러진 곰방대 꺼냈다. 어차피 필요한 건 연통과 물부리 뿐이다. 반으로 뚝 갈라진 곰방대에서 연통과 물부리 떼어내고 대통 살펴보니 충분히 뾰족하고 날카롭다. 마침 새로 갈은지 얼마 안 되서 담뱃진도 없다. 반토막 한 손에 쥐고 길이 대충 잰 다음에 그대로 귀에 꽂았다. 왼쪽에 한 번. 오른쪽에 한 번. 번갈아 꽂고 나니 부러진 대통 끝이 벌겋고 질척하다. 곧장 들리는 소리마저 웅웅대며 제대로 울리지 않게 되었다. 이제 머리 만이 아니라 귓속까지 화끈하고 아릿해짐 느끼며 바닥에 다 쓴 대통 내동댕이 쳤다. 남은 담배도 마저 태워 바닥에 밞아 끄며 말한다.
"또 해보던가."
귀에서 무언가 흐르는 것 같으나 손 대어보지도 않는다. 저 짐승이 아이 둘을 불러다 무슨 개소리를 해도 손 휘휘 내저으며 그리 말했다.
"그냥 다 처먹어. 어차피 그럴 거 잖냐?"
먹던가 말던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손 내젓곤 주변 스윽 돌아본다. 뭐 없나. 누구 안 오나.
아, 저것의 짓이로구나. 아마 이번에도 똑같은 일을 벌일 심산인 듯싶으니 미리 대비해두는 것이 좋을 터다. 그렇다면 어떻게? 듣지 않아야 하나? 아니면 시선을 마주치지 않아야 하는 것인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그는 아이들을 두고 협박하는 모습에 태연히 부적을 꺼냈다. 검붉은색 흉흉한 부적이었다. 그리고 황당하단 시선을 내비쳤다.
"……아이가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 무슨 상관이라고...?"
진심으로 묻는 것이었다. 제 후배는 잘 모르겠지만 그는 늘 한결같은 뜻을 고수했다. 물에 사람이 둘 빠지면 둘 다 죽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북부의 삶이었다. 살아서 나온 놈이 사는 거지 왜 구하냔 말이다. 하여 령도의 아이들이 무슨 상관이지? 내가 맡은 것은 개 찾는 것이지 애 찾는 것이 아니거늘. 아니, 애초에 그게 이득이 되나? 저 요괴도 안타깝다. 다른 인간적인 기숙사 학생들도 많은데 하필 인생사 배배 꼬인데다 사람 싫어하는 것으로 둘째가라면 목 매달고 죽어버릴 적룡 학생 둘을 마주하다니.
있어선 안 된다. 그럴만도 하지. 사람을 해하는 천것이 이승을 떠돌아다녀서야, 신에게 갈 제물이 줄어드는 것 아닌가? 오로지 그 분만이 즐겨야 한다. 씹어 삼키고, 피를 마시고, 그 존엄을 오롯이 그 분만이 취해야 한다. 최씨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던 가현은 손으로 제가 걸어나왔던 구멍가게를 가리켰다.
"저기. 저 쪽에 있는 구멍가게 뒤에서 찾았어요. 그리고... 이런 털도 찾았는데, 이건 가정집 안에도 몇개 있더라고요?"
이윽고 가현은 제가 챙겼던 짐승의 털도 꺼내 최씨 할아버지의 앞에 내밀었다. 반응을 보아 하니, 이 마을 주민들은 개여시가 제 집을 드나들었다는것조차 모르는 듯 했다. 그게 아니라면 다들 아이를 찾느라 정신이 팔려있을 때 쥐도새도 모르게 다녀왔다거나. 어쩌면 박씨 할머니 댁에 있던 강아지는 이 개여시를 보고 겁먹어서 집 안에만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제가 찾으러 갔던 건 박씨 할머니 댁 뿐이지만요~ 거기 집 강아지도 엄청 겁먹었더라고요. 그보다, 마지막 구절에 대해서는 짐작가시는거 없나요?"
어쩌면 이 요괴를 제거하는 것이 이번 사건의 해결점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가현은 그런 확신을 품은 채 재차 질문한다.
제 행동이 과연 홀리는 것 막아줄 지는 모른다. 그저 들은 것에 홀렸으니 아는 대로 막아볼 뿐이다.
처음엔 그저 웅웅대던 귓속이 무슨 소리 들릴 적 마다 점점 더 알아들을 수 없게 되어간다. 이러다 듣는 귀 아예 먹히는 것 아닌가 싶지만. 아무렴 어떠랴. 아쉬운 마음 들지 않으니 되려 기분 홀가분하다. 저 짐승이 뭐라 지껄이며 가까이 다가와도 태연히 그 낯짝 응시하기만 했다.
"뭐래."
제대로 들리지 않는 건 제 탓이지만 저 짐승이 말 제대로 못 한다는 양 피식 비웃음 흘려주었다. 가까이 오거든 뭘 해줄까. 턱이나 한 대 걷어차버릴까? 아회가 부적인가 꺼내든 듯 하지만 뭐라 말은 하지 않았다. 슬슬 안 들리는 만큼 말도 어눌해질 거다. 차차 말 아끼기로 하고 어떡할까 싶은 차에 저 멀리 아까 보았던 청룡 아씨 오는 것 보였다. 아이고. 그 집에나 있지 뭐하러 온대. 그래도 이미 와버린 것 어쩌나. 태연자약하게 웃으며 그 쪽 향해 손 흔들어주었다. 그리고 다시 짐승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