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자신감이다. 제 후배가 뭘 하든 그저 제 3자와도 같이 지켜보겠다는 듯 그는 가만히 두 존재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진명을 알아야만 죽일 수 있는 존재, 그리고 위협하는 모습과 함께 제 후배는 도발하듯 각종 단어를 조합하여 속을 긁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늘어놓는다. 밀어떨어뜨린다니, 잔악하기도 하지. 지팡이를 손가락으로 두들기게 된다. 그리고 그는 그대로 손가락을 멈췄다.
"북부 요괴보단 도발의 수위가 약하네."
태연자약한 감상이었다. 저 개를 그냥 박 씨에게 데려가면 알아서 교화되지 않을까 싶은 실없는 생각과 함께.
그런 똑똑한 강아지가 왜 도망쳤을까 생각하다 보면, 같이 강아지를 찾아 여기로 왔을 둘이 어쩌다가 그렇게 싸우게 된 건지 더더욱 의문스러워 지는 것이다. 바다라는 단어에는 연의 눈가가 움찔거린다. 한숨을 내쉬며 연은 바다 쪽을 바라본다. 다른 둘이 제대로 찾아갔으니 다행이지만. 시무룩한 표정인 박가를 보고서 연은 위로하려는 듯 등을 두드린다.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옴에도 그는 묵묵히 부적을 다시 꺼내들기만 한다. 왜 그러냐니, 이유는 중요치 않다. 나는 그저 당신을 죽여야 한다는 절대적인 직감에 사로잡혀 있을 뿐이다. 그는 제자리에 붙었던 발 떼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반격이 돌아오더라도 상관하지 않는다. 나는 저 자를 죽여야 한다. 죽여서……. 죽여서 무얼 하지?
멀었던 거리가 좁혀들어 서로의 간격은 어느덧 지척에 가깝다. 또다시 부적이 사그라진다. 조금 전 내다꽂은 바위의 일부가 겹겹이 쪼개지며 날카로운 형상으로 깎여나간다. 파편들은 어김없이 눈앞의 상대를 노리고 쇄도한다.
짐승이 저를 가지고 놀았던 것 입에 담자 검붉은 눈에 화륵 분노 타오른다. 지금 당장 갈아마셔도 시원찮을 짐승이나 애석하게도 지금으로서는 할 수 있는 것 없어보인다. 게다가 말 하는 꼬라지 보니 제게 다시 또 무슨 짓인가 할 것 같다. 또 걸리면 귀찮으니 어떻게든 해야겠지.
하여 담배 다시 입에 물고. 품에서 부러진 곰방대 꺼냈다. 어차피 필요한 건 연통과 물부리 뿐이다. 반으로 뚝 갈라진 곰방대에서 연통과 물부리 떼어내고 대통 살펴보니 충분히 뾰족하고 날카롭다. 마침 새로 갈은지 얼마 안 되서 담뱃진도 없다. 반토막 한 손에 쥐고 길이 대충 잰 다음에 그대로 귀에 꽂았다. 왼쪽에 한 번. 오른쪽에 한 번. 번갈아 꽂고 나니 부러진 대통 끝이 벌겋고 질척하다. 곧장 들리는 소리마저 웅웅대며 제대로 울리지 않게 되었다. 이제 머리 만이 아니라 귓속까지 화끈하고 아릿해짐 느끼며 바닥에 다 쓴 대통 내동댕이 쳤다. 남은 담배도 마저 태워 바닥에 밞아 끄며 말한다.
"또 해보던가."
귀에서 무언가 흐르는 것 같으나 손 대어보지도 않는다. 저 짐승이 아이 둘을 불러다 무슨 개소리를 해도 손 휘휘 내저으며 그리 말했다.
"그냥 다 처먹어. 어차피 그럴 거 잖냐?"
먹던가 말던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손 내젓곤 주변 스윽 돌아본다. 뭐 없나. 누구 안 오나.
아, 저것의 짓이로구나. 아마 이번에도 똑같은 일을 벌일 심산인 듯싶으니 미리 대비해두는 것이 좋을 터다. 그렇다면 어떻게? 듣지 않아야 하나? 아니면 시선을 마주치지 않아야 하는 것인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그는 아이들을 두고 협박하는 모습에 태연히 부적을 꺼냈다. 검붉은색 흉흉한 부적이었다. 그리고 황당하단 시선을 내비쳤다.
"……아이가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 무슨 상관이라고...?"
진심으로 묻는 것이었다. 제 후배는 잘 모르겠지만 그는 늘 한결같은 뜻을 고수했다. 물에 사람이 둘 빠지면 둘 다 죽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북부의 삶이었다. 살아서 나온 놈이 사는 거지 왜 구하냔 말이다. 하여 령도의 아이들이 무슨 상관이지? 내가 맡은 것은 개 찾는 것이지 애 찾는 것이 아니거늘. 아니, 애초에 그게 이득이 되나? 저 요괴도 안타깝다. 다른 인간적인 기숙사 학생들도 많은데 하필 인생사 배배 꼬인데다 사람 싫어하는 것으로 둘째가라면 목 매달고 죽어버릴 적룡 학생 둘을 마주하다니.
있어선 안 된다. 그럴만도 하지. 사람을 해하는 천것이 이승을 떠돌아다녀서야, 신에게 갈 제물이 줄어드는 것 아닌가? 오로지 그 분만이 즐겨야 한다. 씹어 삼키고, 피를 마시고, 그 존엄을 오롯이 그 분만이 취해야 한다. 최씨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던 가현은 손으로 제가 걸어나왔던 구멍가게를 가리켰다.
"저기. 저 쪽에 있는 구멍가게 뒤에서 찾았어요. 그리고... 이런 털도 찾았는데, 이건 가정집 안에도 몇개 있더라고요?"
이윽고 가현은 제가 챙겼던 짐승의 털도 꺼내 최씨 할아버지의 앞에 내밀었다. 반응을 보아 하니, 이 마을 주민들은 개여시가 제 집을 드나들었다는것조차 모르는 듯 했다. 그게 아니라면 다들 아이를 찾느라 정신이 팔려있을 때 쥐도새도 모르게 다녀왔다거나. 어쩌면 박씨 할머니 댁에 있던 강아지는 이 개여시를 보고 겁먹어서 집 안에만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제가 찾으러 갔던 건 박씨 할머니 댁 뿐이지만요~ 거기 집 강아지도 엄청 겁먹었더라고요. 그보다, 마지막 구절에 대해서는 짐작가시는거 없나요?"
어쩌면 이 요괴를 제거하는 것이 이번 사건의 해결점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가현은 그런 확신을 품은 채 재차 질문한다.
제 행동이 과연 홀리는 것 막아줄 지는 모른다. 그저 들은 것에 홀렸으니 아는 대로 막아볼 뿐이다.
처음엔 그저 웅웅대던 귓속이 무슨 소리 들릴 적 마다 점점 더 알아들을 수 없게 되어간다. 이러다 듣는 귀 아예 먹히는 것 아닌가 싶지만. 아무렴 어떠랴. 아쉬운 마음 들지 않으니 되려 기분 홀가분하다. 저 짐승이 뭐라 지껄이며 가까이 다가와도 태연히 그 낯짝 응시하기만 했다.
"뭐래."
제대로 들리지 않는 건 제 탓이지만 저 짐승이 말 제대로 못 한다는 양 피식 비웃음 흘려주었다. 가까이 오거든 뭘 해줄까. 턱이나 한 대 걷어차버릴까? 아회가 부적인가 꺼내든 듯 하지만 뭐라 말은 하지 않았다. 슬슬 안 들리는 만큼 말도 어눌해질 거다. 차차 말 아끼기로 하고 어떡할까 싶은 차에 저 멀리 아까 보았던 청룡 아씨 오는 것 보였다. 아이고. 그 집에나 있지 뭐하러 온대. 그래도 이미 와버린 것 어쩌나. 태연자약하게 웃으며 그 쪽 향해 손 흔들어주었다. 그리고 다시 짐승 보았다.
다가갈수록 끔찍하게 좋지 않은 기억만을 불러오는 바다로 향했을 적에,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보고서 연은 그대로 못 박힌 듯 멈춰 선다. 개인지 여우인지 모를 것이 자신에게 인사하는 것이 심히 불쾌한 듯 눈살을 찌푸린다. 방금 전에 보았던 둘. 그중 한 명은 귀에서 피를 흘리고 있을까. 정체 모를 네 발 짐승과, 그와 같이 서 있을 두 아이까지 보고서 연은 빠르게 상황을 인지한다. 부적을 두 장 손가락 사이에 끼워 들고서 연은 노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말한다.
"누가 우리사람들 다치게 한 거야? 저 짐승이야?"
마치 으르렁거리는 듯한 음성으로. 연은 답을 듣는 순간 바로 부적을 내던질 듯 개여시를 노려본다.
얼굴 주인이 아니라는 말에 가현은 아 하고 머쓱한 듯 웃었다. 당연스럽게 여인인줄만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개의 이름. 그 개는 또 어디서 찾아야 할까? 가현은 제 기억을 되짚어본다. 문득, 비슷한 텀을 두고 들어왔던 다른 사건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동물 잃어버렸다는 그 집. 어떤 동물인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개가 아닐까?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아이들을 온전히 찾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만약 그러지 못하더라도... 분명 더 이상 이런 비극은 이어지지 않을거예요."
감 잡았다. 이제 남은건 제 추측과 정보들을 직접 행동으로 옮기며 하나하나 대조하는것 뿐일지어니. 최씨 할아버지의 혼잣말이 조금 궁금했으나 소소한 사담은 훗날의 해후로 놔두기로 했다. 자. 이제 그 박씨 가문이 키우다 잃어버린 동물이 무언지 알아보기 위해 마을 밖으로 나설 차례이다.
"꼭, 모든걸 끝내고 돌아올게요~ 맞다. 제가 특별히 주의해야 하는건 없는거죠?"
개의 이름을 끊기지 않고 3번 연속으로 불러야 하는 것. 그 정보를 머릿속 깊이 우겨넣은 채 질문을 하나 더 건네고, 답이 들려온다면 가현은 마을 밖으로 나선다. 더 망설이고 있을 시간이 없었으니.
이름을 걸고 맹세하라는 듯하다가도, 그는 불현듯 개가 냄새를 잡아채듯 고개를 들어 코를 높이하더니 온화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짙은 피비린내가 난다 싶더니만 이게 무슨 일인가. 격해도 너무 격하지 않나 싶어 뭔가 얘기하려다 입 다문다. 저 정도면 이미 들릴 것도 들리지 않을 터이다. 요괴가 발을 내디디면 그는 그 상황 지켜보다 제 싸움 말려주던 아이 도착하자 상황 꼬이겠거니 생각했다.
제정신이 아닌 상황이라 해서 화유현을 이루는 근간이 뒤바뀌는 것은 아니다. 속 빈 살의에 휘말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한편으로도 그는 화가 난 듯한 상대의 반응에 필연적인 이끌림을 느낀다. 그렇기에 쉴새없이 이어지던 공세에도 틈이 생기고 만다. 곧장 다음 공격을 이어가려던 그는 잠시 멈춘 채 움직임을 멈추었다.
흥미라고?
그랬었지. 흥미와 심구는 그의 본질이나 다름없다. 이 목소리 때문이 아니더라도, 피는 좋다. 肉은 따스하기 그지없는 안온을 닮았다. 그것들을 뒤집어쓰고 있자면 내가 결코 닿지 못할 충족감을 얻은 것만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 나는 그것들에 지극한 흥미를 느낀다. 그러므로 당신은 지금 죽어야 한다. 바로 지금이 아니면 이 기회가 다시 돌아오지는 않으리라…….
"아니, 난 항상 이게 좋았어."
낮게 중얼거리는 인물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 움직이는 땅을 피해 유현이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간다. 조금 전 도술을 사용하느라 지면에 마구잡이로 흩어져 있던 파편 중 하나를 집어들고, 휘둘렀다. 몸 안으로 찔러넣을 것만 같은 기세로.
마을 사람들의 당부 역시 확실하게 잘 들어두었다. 뒤를 슬쩍 돌아보며 대답 대신 가벼운 눈웃음과 목례로 감사의 뜻을 대신했다. 뭔가 대단한 걸 행하러 가는 기분이라 기분이 꽤나 신선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정말 별것 아닌 일인데. 수업의 연장선일 뿐인데도 묘한 고양감이 깃들게 된다.
"보자. 그 집으로 가는 길이 여기가 맞던가~?"
제 기억에 최대한 의존해가며, 그리고 그 무엇에도 홀리지 않게끔 제 신경을 한껏 곤두세워가며 가현은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