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게도 여기서 눈에 띄일만한 것은 이게 전부이지 싶다. 그렇다면 이 그림을 가지고 마을 어르신들에게 가볼까? 최근 이 마을 주변에서 이렇게 생긴 짐승을 본 적 있는지 물어본다면 뭔가 나오는게 있을 테니까. 단서를 쥔 채 떠나려던 가현은 여전히 뭔가 캥기는지 흘긋 뒤를 돌았다. 뭐든 세번 정도는 시도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럼에도 남자는 깨어나지 않는다. 도술이 실패인 것일까. 남자를 발로 툭툭 발로 차고서 연은 한숨을 내쉰다. 이렇게 부적을 낭비해도 괜찮을지 모르겠다. 이대로 버리고 갈지 고민을 하던 연은 두 사람이 떠나간 곳을 물끄레 바라보다 고개를 휘휘 젓는다. 저 방향은 바다 쪽이니. 부적 두 장을 손가락에 끼워 들고서, 다시 한번 더 비구름에서 비를 내려 남자를 깨우려 시도한다.
역시 자신이 놓쳤던 무언가가 있을 줄 알았다. 굉장히 과거에 쓰인 종이로 보이는데, 여기에 서술되어 있는 무언가는 분명히 누군가가 크레파스로 그렸던 그림에 있는것과 동일할 것이다. 챙겨 두었던 그림과 페이지에 적힌 글귀를 번갈아보던 가현은 이윽고 확신을 가졌다. 그래. 이 놈이렸다. 아이들이 실종된것 역시 이 무언가와 연관이 있을 것이다.
"으응, 이럴때 수지 도사님이 계셨다면 참 좋았을텐데..."
문제는 정체가 무엇인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읽어볼수 없었다는 것이다. 수업을 조금 더 열심히 들었어야 했나? 싶지만 그것 외에도 당장 이 괴상하게 생긴 것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른다는 큰 문제가 있었으니. 일단 가현은 제가 생각한 순서대로 돌아다니기로 한다. 마을 어른들이라면, 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짜증만이 가득한 제 감정에 먹구름만 만들어지는 것일까. 연은 남은 부적을 세어보다, 깨어나지 않는 남자를 바라보며 앓는 소리를 낸다. 여기서 더 부적을 소모했다가는 이후에 무슨 사건이 생긴다면 대처하기 어려워질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마지막으로 딱 한 번 더 남자를 깨워보려 시도해 보고 안 되면 그땐 포기하자 마음먹고서 연은 부적 두 장을 집어 들어 다시 비를 부르려 한다.
저게 대체 무언지. 개의 몸통에 인간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으나 신수는 아니다. 느껴지는 것 자체가 그랬다. 피비린내가 코를 찌르고, 불쾌함이 등골을 훑고 지나간다. 속도를 보아 하니 쉬이 잡긴 어려울 것 같고……. 그의 생각은 오래 가지 못했다.
"……."
화를 내야 하나? 아이가 다가가자 추잡한 아가리 쩍 벌려 집어 삼키는 모습을 보았으니 화를 내야 정상일 것이다. 아마 저 다음에도 여러 아이를 집어삼키겠지. 불현듯 드는 생각이 있었다. 그가 거절했던, 아이를 찾아달란 의뢰. 저것이 홀려 잡아먹은 건 아닐까? 분노와 같은 감정보다는 다행스러움이 앞섰다. 적어도 아이 찾아달란 의뢰를 선택하지 않아 원성을 듣지 않을 수 있구나. 참으로 다행이다.
아. 어른들이다. 가현의 눈이 반짝 빛난다. 부디 저들이 해답을 쥐고 있기를. 누구라도 이 존재에 대해 알고 있기를. 침울한 분위기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지만 이 사건의 해결을 위해서는 분위기를 짓밟고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었으니.
"아직 별다른 소득이 없는거죠? 마을 주변에서 이런 걸 찾았는데. 혹시 짚히는게 있으신가요? 최근 이 주변에서 이런 모습을 한 짐승을 본 적 있다던가, 아니면 마을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라던가 하는 거. 혹시 있나요?"
마을에서 찾아냈던 그림과 낡은 페이지를 어른들에게 보여주며 가현은 고개를 갸웃였다. 최대한 알아내겠다. 어느샌가 이 조사에 진심으로 임하고 있게 되었으니, 자신이 가능한 선에서는 모든 걸 알아내어 이들의 서러움을 조금이나마 덜어내겠다. 자신은 모두를 포용하며- 모두를 어여삐 여기는 사람이었으니까.
기어이 피가 흐른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그것도 역시 부족한 것 같아. 더 많이 흘려야 한다. 소리가 멎지 않는다. 아직 만족하지 못했다는 듯이. …아니, 만족을 따질 계제는 아니지. 나는 단지 그렇게 해야 할 뿐이다. 피는 흐르다 못해 죽어 버릴 정도가 좋다. 사람은 어떻게 해야 죽던가?
아, 이렇게?
숲길엔 널린 것이 암석이고 바위다. 근처에 자리하고 있던 커다란 바윗덩이 하나가 들썩이며 박힌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찰나간 의미 없이 부양하던 그것은 이내 목적을 찾아 한 곳으로 날려진다. 묵직한 질량이 돌연히 상대에게 들이닥친다.
연초 태우니 복잡하던 머릿속 좀 가라앉는다. 이런 것에 의존하지 않으면 진정도 못 한다니. 문득 제 신세 한탄스러워 피식 실소 흘렸다. 그래서인가. 가증스런 짐승의 도발은 개 짖는 소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죽이진 못 해도 잡을 수는 있겠지. 어. 잡기만 해도 돼. 차라리 죽고 싶을 만큼 도륙내어진 다음에도 똑같이 지껄일 수 있는지 궁금한데?"
낄낄. 웃었다. 어디 더 지껄여보란 듯이. 웃고 담배 물고서 그 손 뒤집어 바닥 향해 털었다. 후두둑. 굳고 덩어리 지고 갓 흐른 피가 쏟아졌다. 아픈 내색 없이 손 탈탈 털고 담배 집으니 벌겋게 물든다. 그것 그대로 피우며 짐승 향해 흰 연기 길게 내뱉었다.
"그래서 안 꺼지고 거기 계속 어슬렁대는 이유가 뭐야. 우리도 다 잡아먹게? 그렇게 처먹고 또 먹냐? 아무리 짐승 새X라지만 상대는 가릴 줄 알아야지. 어? 저 마을 인간들이 만만히 당해주니까 죄다 호구로 보이지. 반푼이 개XX야. 자신 있으면 덤벼보던가. 설설 기지 말고. 어? 야. 덤비지도 못 하는게 주둥이만 살아가지고."
하하! 이젠 아주 배를 잡고 웃으며 있는 말 없는 말 죄다 천박하게 늘어놓는다. 웃는 건지 일그러진 건지 모를 붉은 눈은 언뜻 아무 생각도 없어보였다. 그저 탁하게 흐려 보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