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호. 이것 봐라. 턱에 손 대었을 뿐인데 얼굴 벌개지는 것이 누가 보면 옷고름 푸른 줄 알겠다. 돌이켜보니 저번에도 그랬지 아마? 그 땐 빼액 하니 성 냈던 것 같은데. 이번에도 그럴까. 잠깐 놀리려던 마음이 슬금 크기 부풀린다. 그래. 잠깐이란 것도 기준 다 다르니. 조금 긴 잠깐 놀아볼까. 히죽 웃는 얼굴에 조용히 짖궂음 드리웠다.
"흐음. 이제사 미안하다니 너무 늦었지 않나. 으이? 이리 마주치지 않았으면 도령 졸업할 적까지 사과고 뭐고 안 했겠구먼. 그치?"
보이는 것처럼 심성도 심약한지는 모르겠으나 한 번 슬금슬금 건드려 보기나 한다. 나약한 부분 골라 건드리는 악취미는 없다만. 지금은 조금 예외랄지. 일단 살과 살이 닿는 접촉은 확실히 약해보이니 그 부분도 활용하자. 도령이 손 대는 것은 조금이라며 떨어도 온화 싱글싱글 웃으며 되려 더 가까이 다가간다. 목덜미 쓸던 손 그대로 등 훑어내리며 허리에 둘러지고 자연스레 옆에 섰다. 착 붙어 서서 담배 한 모금 피우니 싸한 흰 연기 거리에 스윽 흘러 사라진다. 힐끔. 곰방대 끝에 담배 얼마나 남았나 보곤 고개 돌려 도령 바라보았다.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그래도. 음. 지금이라도 알았으면 되었지. 도령도 사람이라면 어련히 해야 할 도리 알 것이라 내 믿어 의심치 않어."
말 안 해도 알지? 하듯 허리 두른 손 툭툭 두드린다. 김에 몇 번 조물거린 건 덤이다. 어찌 반응하려나 지켜보다 턱짓으로 도령 품에 안긴 것 가리키며 물었다.
"헌데 그건 무어요? 뭘 그리 꽁꽁 안고 오나. 뭐 귀한 재보라도 들었소? 흠. 그런 것 치곤 단내 나는 것도 같은데."
쇠가 간식이라,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엉뚱한 사람이라도 쇠를 먹는단 생각을 할 리가 없다. 음, 어린 시절의 공상이라면 모를까. 그 공상이 성인이 될 무렵 현실로 다가오니 더욱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놀라움은 순식간에 식어버린다. 당신의 스쳐가는 말 때문이다. 그는 잠시 자신의 형님을 떠올린다. 궁기라고 불리기 이전부터 지금까지 떠올리는 일은 빨랐다. 그리고, 그 어떤 순간을 떠올려도 지금 당장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도.
"어쭙잖은 감정을 설파하려 드는 어리석은 흑룡이라면 모를까, 시생은 적룡인지라."
찰나의 감정을 잘 보았지마는 달리 숨기거나 얼버무릴 생각은 없었다. 대신 가느다란 미소를 지었다. 케이크 시트를 잘라 입에 넣을 적에, 부드럽게 녹는 빵과 달리 당신의 주변에선 쇠 씹는 소리가 울린다. 제법 소름 끼치는 소리지만 그는 이 소리가 익숙한 듯싶다.
"……그렇군요. 간식거리가 될 정도면 익숙해질 만도 하겠으니… 아, 감사해 할 필요는 없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으니."
과연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인가? 범죄자의 소중한 것을 지키는 일이 마땅하다면 세상이 말세 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세상은 말세였다. 앞으로도 말세일 테니, 무슨 일이 벌어져도 마땅한 일이 되겠지.
"무엇을 꾸미는지라."
그는 눈을 반쯤 뜨더니, 시선을 느릿하게 들어 올렸다. 두 눈동자는 어떠한 감정을 담기에는 지나치게 흐렸고, 저것이 정녕 인간의 눈이 맞나 싶을 정도로 섬뜩했다. 궁기 때문이다. 궁기가 그를 이런 존재로 만들었다. 난세의 귀신이라 불릴 존재로.
"흥미가 동하는군요. 예, 알려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터입니다……. 저희가 진정 친우가 되는 것 같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지요…."
1. 저는... 지극히 '가슴이 시키는 대로 이 캐릭터를 내야겠다' 파랍니다... 어느날 갑자기 노래를 듣다가도 어, 여우상에 미소 지으면 쎄하고 경박해서 흑막인가 오해 많이 받는데 알고보면 그냥 머리 꽃밭인 폴짝이면 좋겠다... 하면 대충 노트에 '흑금/백금/은자/백적+여우상 오해받는 쎄한 꽃밭' 이렇게 대충 골조만 적어두는? 그런 느낌. 그렇지만 아회는 그런 골조 보다는 급하게 딱 신내림 받은 캐릭터인지라 초안만 아스라이 남아있지만...😂 그래도 초안 중 하나를 풀어보자면 지금처럼 잿더미에 불 붙으면 타오르는 애가 아니라 처음부터 호기로운 아이에 가까웠답니다. 유쾌하고, 가볍고, 호기로우면서도, 막상 무기력이 심한 아이라서 "그대가 대신 해주리라 믿고 있었지. 봐봐, 해결해줬지? 아, 최고다. 멋지다~" 라며 누워서 박수를 치고 있는 아이요. 그렇지만 자기의 처지에 대해 절대 기죽지 않고 떳떳하게 굴며 품위를 잃지 않는 당당한 모습도 있어서, 가끔 구경하다가 나서더니 뺨 후려치면서 "다시 말해봐." 하는 악녀상에 가까웠답니다. 사실 지금도 저 모습이 드러날듯 말듯 싶지만요 으아악
2. 순수하게 이렇게 해야겠다! 신내림 즉석창조 아회라서 모티브라 할 것은 없지만 들었던 노래는 제법 있답니다. 장마에 관련된 노래, 그리고 사람의 마음에 대한 노래 등등. 그 이후에 아회를 굴릴 적에도 듣고 본 것은 많았던 것 같아요. 특히 티벳 사자의 서를 많이 읽었답니다...🤦♀️ 특히나 초반부에서 "그대여, 진리에 대한 열망과 명상과 실제 수행을 하나로 묶으라. 그리하여 실제 수행을 통해서 진정한 앎을 얻으라. 이 삶과 다음의 삶과 그 둘 사이의 삶을 하나로 여기라. 그리하여 그것들이 하나인 것처럼 그대 자신을 수행하라.", "진리와 진리를 깨달은 자와 그를 따르는 구도자들이여. 사후세계의 불행으로부터 이 자를 보호하소서."라는 문장에서 많은 감명을 받아서, 초반에는 티벳여우스러운 모먼트가 많았던 것 같네요. 또한 적룡 모먼트는 "아미타바(아미타불)는 불. 곧 감정의 집합체를 상징한다. 이것을 상온(想蘊)이라고 한다." 부분에서 조금 차용한 부분도 있네요. 그리고 해당 책에 인용된 "이곳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곳에 있으리라. 그곳에 있는 것이 마찬가지로 이곳에도 있으리라. 이곳에 있는 것과 그곳에 있는 것이 차이가 있다고 보는 자는 영원히 죽음에서 죽음으로 이르는 길을 걸으리라. 참된 마음만이 이것을 깨달을 수 있으니, 그곳은 이곳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곳이 이곳과 차이가 있다고 보는 자는 영원히 죽음에서 죽음으로 이르는 길을 걸으리라."* 라는 문장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던 것 같아요. 다만 제 아둔한 머리로는 이토록 고차원적이고 초월적이며 매력적인 사상을 아직 전공자처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네요...😂 확실히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아직까지는 서너 번 더 읽으며 해석하는 단계에 있답니다. 사실상 저는 아, 이건 이렇게 이어가면 어떨까 싶은 일차원적인 생각으로 모티브를 삼는, 속칭 겉핥기에 가까우니 그저 거기에서 참고와 영향을 받았노라만 알아주시어요...🥲
* 카파 우파니샤드 4장 스와미 쉬라비난다
3. 아회는 단 음식을 좋아하는 캐릭터의 클리셰와 달리 씁쓸한 커피도 참 좋아한답니다. 사실 단 음식이니 쓴 음식이니 조합하면 끝없이 들어갈 수 있고 맛있다는 기적의 맛잘알 논리를 가지고 있어요...🤦♀️ 참고로 매운 음식도 잘 먹는답니다. :3 의외로 잘 먹지만! 본인이 스스로 조절하는 것일 뿐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