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눈에 동요가 스치는 것을 연은 느끼지 못한 모양이다. 제 질문에 대한 당신의 답에 고개를 모로 기울이니, 길게 내려온 앞머리 사이로 연의 호기심 어린 표정이 드러난다. 목소리로 상대를 알아보았다는 것. 그렇다는 건 당신과 농질은 이전부터 서로 아는 사이거나, 만난 적이 있었다는 걸까. 호기심과 의문이 섞인 눈으로 당신의 얼굴을 곰곰이 살핀다. 그것이 어떤 관계인지 모르며, 당신에게 어떤 의미일지 모르는 것이었지만.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연은 당신의 경계 너머를 훔쳐보는 양, 질문을 반복한다.
"그 사람이랑은 아는 사이야?"
이상한 차림이나, 친절한 선배라는 당신의 말에 당신에게 거짓말을 하며 숨기고 있다는 것에 마음이 질리는 것이니. 당신이 자신을 바라볼 적에 연은 죄책감을 버틸 수 없어, 당신의 시선을 피하려는 듯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그러는 모습은 분명히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는 것일까. 당신의 제안에 연은 고개를 끄덕이고 발걸음을 맞추며 카페로 향한다. 인파 속의 얼굴을 하나하나 유심히 살피니, 뒷모습에 궁기를 찾은 듯 착각하며 오해할 땐 기뻐하다가도, 금방 실망하는 표정이 되기를 몇 번 반복한다. 아무런 소득도 없이 카페에 도착하면, 내부까지 살펴보고서 연은 실망한 표정으로 힘 없이 고개를 젓는다.
자신을 한참 살피다가도 시선을 돌리는 모습에 가현은 영문을 모르겠는 듯 고개를 갸웃인다. 눈. 조금 더 마주하고 이야기 나누면 좋을 것 같은데. 좀 더 진솔하게- 좀 더 심도있게. 우리 둘만의 비밀을 서로 속삭여보지 않으련. 이번에도 마음이 앞섰으나 그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는 않았다. 왜 갑자기 시선을 피하느냐며 장난스러운 말투로 당신의 앞에 제 얼굴을 슥 내밀어보고는 방긋 웃을 뿐이다.
"응.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고, 누구보다도 더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해. 꽤 어렸을때부터 봐왔던 사람이니까~"
간단한 사이 정도는 숨길게 없겠다 싶었는지 이야기함에 있어 막힘이 없었다. 자신에게 있어서는 소중한 사람이었으니까. 제 소실된 인간성의 공백을 조금이나마 메꾸어주던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굳이 숨기고 덮어가며 이야기할것은 없다는 판단이었다. 이야기하는 내내 표정으로 드러나는 묘한 희열감을 감추지 못했다. 다시 한번 더 만나고 싶은데, 어째 잘 보이지를 않아서 그게 아쉬울 뿐이다. 단 둘이서 오붓하게 사랑을 속삭일수 있게 된다면 좋으련만.
중간중간 여학생이 기뻐했다가, 금방 실망하고 마는 것이 보인다. 도대체 얼마나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면 그렇게까지 찾고 싶어하는것일까? 어쩌면 이 여학생이 그 선배에게 품고 있는 생각은 그저 단순 호기심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크나큰 오해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며, 가현은 그저 빙긋 웃을 뿐이다. 이 여학생 또한 소득은 없는 모양이었지만.
"아쉬워라.... 그래도 인연이 닿는다면 분명 또 만날수 있을테니까 너무 낙심하지는 마~ 그보다, 그 선배. 엄청 친절했나봐? 그렇게까지 찾고 싶어하는걸 보면 보통 친절한게 아닌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면 둘이서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눌 내용이라도 있는걸까. 가현은 다시 여학생을 바라보며 순진무구한 낯짝을 유지했다. 이쯤 되니 자신도 슬슬 호기심에 불이 붙기 시작한다. 얼마나 중요하기에. 그리고 얼마나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었기에 이렇게까지 찾는 것일까. 그 깊은 궁금증이 결국 허물조차 뚫고 드러나려는 차에, 케이크랑 커피 좋아하느냐는 말에 다시 감추어진다.
"으응, 달콤한거 좋아하니까~ .... 어라. 같이 먹는거야 좋지만 고작 이 정도로? 내가 조금 양심이 찔리는데."
얼굴에 화색을 띄다가도 난처한 듯 눈동자를 굴린다. 자신도 어차피 천부로 올 생각이었고, 댓가가 없더라도 자신 혼자 떠도는것보단 누군가와 함께하는것 자체가 좋았으며, 결정적으로 자신은 사주는 입장이 훨씬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동안 맨날 뭔가를 받아먹기만 했다. 그렇다고 이미 상대의 입 밖으로 나온 이야기에 한사코 거절하며 그 애정을 받아들이지 않을 사람은 또 아니었다. 다음에는 무조건 자신이 먼저 사주는 쪽으로 하겠노라고 미리 선수를 쳐 두는것이 나을것 같다고 여기며, 가현은 다시 웃는다.
"그래도 네가 사주는거라면 좋아~ 그 대신 다음에는 꼭 내가 사게 해줘? 빚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서~"
내부에도 찾는 사람이 없다는것을 깨달았으니 이제는 지금을 그저 즐길 뿐이다. 적당한 자리 하나를 골라잡아 앉으며 가현은 팔짱을 낀 채 여학생을 바라본다.
"그래서, 너랑 그 선배는 무슨 사이인거야~? 그렇게까지 찾아다닐 정도면 그냥 우연히 본 사이는 아무래도 아닐 것 같고. 농질 언니랑 나처럼 가까운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