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한번 호승심을 불태우기는 했는데, 이전의 하 사감에 비하면 조금.... 뭐랄까. 같은 흑룡으로써 공감가는것이 많아 갈수록 표출되던 감정이 억눌러진다. 하 사감님에 비하면 훨씬 얌전한 느낌이기도 했으며, 왜 폭주했는지 구구절절 다 설명해주고 있지 않은가. 친절하게도.
"사감님, 사감님~ 이야기하는데 끼어들어서 죄송하지만 저희도 졸업은 해야죠~?"
그동안 많은 졸업생을 떠나보냈을 사감님이 왜 이렇게 집착하실까. 여전히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으나- 만약 보였다면 한껏 안아드렸을 텐데. 감히 자신의 촉각을 잠가버린 것도 그런 이유라면 일단은 받아줄 수 있는데.
"불순물은 안 죽고 저희가 먼저 죽으면 어떻게 해요? 저는 그런 애정도 나쁘지 않지만... 일단 그건 그거고 지금은 지금이니까. 사감님이 애정을 주셨으니~ 저도 그대로 돌려드릴게요."
슥 웃으며 부적을 두장 다시 꺼낸다. 위치를 알 수 없으니 이전처럼 이미지를 그려가며 날리지는 못했고, 대신 부적 두 장으로 사람 모양을 접는다. 각각 머리와 다리에 피가 흐르는 손가락으로 콕콕 점을 찍고, 재차 불태운다. 애정은 받은 만큼 돌려주는게 옳은 일이라고 얼핏 들었던 적이 있기에 자신도 그렇게 할 뿐이었다.
그 지킴을 감히 누가 바란 것인지도, 대체 누가 지켜지는 것에 기뻐했는가에 대해서도 알 도리가 없다. 어찌 되었든 제정신은 아니구나 싶고, 불쾌함이 늘어만 간다. 단순히 자신을 마지막으로 담게 하기 위해 타인의 시각을 앗아…….
"…."
그는 자신의 손을 들어 눈가를 더듬었다. 더듬거리던 손길을 뒤로 손가락에 힘이 들어간다. 통제감에 금이 간다. 사감이든 뭐든 그딴 것이 대체 뭐길래,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라 내 두려워 할 성싶을 것 같은가, 저딴 것들이 대체 뭐길래 영원과 안정을 운운하는가. 감히 내 앞에서, 날 놀리는 것도 아니고─
어떠한 말도 없다. 앞으로, 앞으로 걸어가기만 한다. 저 형체를 향해, 인간도 아닌 사냥해야 할 녀석을 향해서.
"다시 말해봐."
마지막이고 뭐고 다시 말해보라고. 그리 말하며, 사감 목 손으로 부여잡으려 시도했다. 성공했다면 어디서 난 힘인지 모를 것으로 그대로 땅에 처박았으리라.
아하, 죽는 건 상관 없는 거였구나. 지킨다는 말을 인간중심적으로 해석하고 말았다.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라면 상관 없을 일을.
다음 공격을 준비하려 동 사감을 바라본 순간, 눈앞이 끊기었다. 단절이고 차단이다. 암전과는 달랐다. 어둠을 '보는' 것과도 다르다. 저항할 새도, 수단도 없이 순식간에 멀어진 시야를 느끼고 있자면 깜깜한 머릿속에 사감의 목소리가 다시금 울린다. 사감이 장담한 대로 유현이 마지막으로 눈에 담은 광경은 그의 모습 뿐이었다. 유현은 제 눈을 두어 번 더듬어 보았다. 그러고는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정을 유지한다. 괜찮다. 어차피 언젠가는 닥칠 일이었다. 미래의 일을 빠르게 겪는 셈이라 생각하면 편하겠지. 이대로 잠금이 풀리지 않고 영영 남는대도 아쉬움은 없다. 하지만 이 상황이 이런 난장판에서 벌어지는 것만은 달갑지 않았다. 이러면 방향을 알 수가 없는데.
하는 수 없이 소리로 방향을 어림잡고 소리의 진원이 있을 법한 자리, 동 사감의 지근거리에서부터 도술이 발동하도록 하고자 했다. 성공했다면 사감의 근처 바닥에서부터 묵직한 흙기둥이 일어나 그를 후려쳤을 테다.
.dice 1 2. = 2 .dice 1 10. = 5 HP 1000 부적 16/20
560OH, Do you know Key Man?◆ws8gZSkBlA
(w5dtdSJkmg)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이지를 않으니 공격이 맞는지 안 맞는지는 고사하고 자신이 예전부터 저주 수업에서 들었던 것들을 착실히 이행하고 있기는 한건지 의문이 들 지경이다. 이 방향이 아닌가, 싶어 고개를 갸웃이다가도 또 들리는 사감님 목소리는 이쪽이 맞는것 같고. 이래저래 알쏭달쏭한 기분이 되었다.
"맞았어요? 제 사랑. 충분히 받으신 거예요?"
잠가버려서 아무것도 안 보이는걸요. 이대로는 사감님만 바라보고 살지 못하게 될 지도 모르겠어~ 하고 능청스럽게 이야기하며 다시 제 소매에서 부적을 두 장 꺼낸다. 이번에는 어떤 애정을 한껏 안겨드릴까. 아마 예전에 챙겨뒀던 비녀가... 여기 어디 있을텐데. 제 소매를 한참 더듬거리며 비녀를 찾아 손가락을 찔러 제 피를 충분히 묻힌다. 부적을 사람 모양으로 접고, 다시금 흘러나오는 피로 동 사감의 이름을 적은 뒤, 피 묻은 비녀로 가슴 부분을 단숨에 찔렀다.
바닥에 내리꽂기가 무섭게 거친 숨소리가 들린다. 닿았네, 그래, 닿았다. 그래서 무엇을 하려 들까, 무슨 짓을 하려고. 기이한 웃음과 함께 목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을 때, 어떠한 소리도 목에서 나오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 비명도, 포효도, 웃음도, 울음도. 그 어떤 소리도 낼 수 없을 터이지. 다시는, 혹은 잠시간은.
그의 덤덤하던 얼굴에 파문이 인다. 고요하던 감정에 이질적인 감각이 한 방울 번진다. 점차 머리를 채워나가고, 속으로 가득히 퍼져나간다. 지금 그 무엇보다 즐겁다는 듯, 그는 감은 눈 그대로 미소 지었다. 여유롭게, 느긋하게, 그리고 호기롭게.
그럼 우리, 언제까지 막아세울 수 있는지 볼까?
소리 나오지 않는 입 벙긋대더니 아직 안 떨어지려 했다는 듯 주먹 쥔다. 그리고 그대로 얼굴 후려치려 들었을 것이다.
흙과 돌 부스러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마 빚맞았으리라. 아쉽다는 마음은 들지 않고, 눈 먼 상황에 언제고 대처할 수 있도록 대비해 둘걸 그랬다는 생각만 언뜻 들었다. 오늘따라 그는 후회하는 일이 많다. 묵묵히 재차 공격을 준비하려던 때, 사감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유현은 고개를 돌려 사감이 있을 곳으로 눈을 두려 했다. 옳게 향했는지는 모르겠다. 방향 어긋나고 동공 굳은 두 눈이 그를 응시하고자 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모르겠지만, 제게는 그다지 간절한 감각이 아니라서요."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움직임이 크지 않고, 공격이나 반격 역시 적극적이니 않으니 적응만 하면 상대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단지 자칫 실수했다간 누가 맞을지 모르니 적극적인 공세를 취하지는 못한다는 게 문제였다. 부적이 사그라진다. 다시금 목소리 들려오는 방향의 흙을 움직이려 했다. 사감의 발치에서부터 물결처럼 땅이 일어나, 그를 붙잡아두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