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해도 빛이 돌아오지 않는다. 니오는 한동안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아 '루모스, 녹스' 하고 지팡이의 빛을 켜고 끄는 마법만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너무 어두운 것인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몇 번이나 마법을 반복한 결과 지금은 '앞이 보이지 않는다'라는 것을 인지했다. 분명히 두 눈을 뜨고 있을테니 이 정도 시간이 지나면 어둠에 익숙해져 뭐라도 조금씩 보여야할 터인데 전혀 보이지 않는다.
뒤이어 따라온 것은 당연하게도 패닉이었다. 니오는 앞이 안보인다고 계속해서 중얼거리다가 루모스! 하고 애꿏은 주문만을 반복해서 말할 뿐이었다. 종국에는 지팡이를 떨어트리고 눈을 문질렀다. 거기에 뭐가 묻어서 보이지 않기라도 한다는듯 눈가를 마구 문지를 뿐이었다. 발걸음이 길을 잃고 이리저리 어지럽게 발자국을 남긴다.
" 아, 안보여. 뭐야. 이상해. 안보여. 앞이 안보여. 앞이 안보인다고!!!!!!! "
눈물이 끝까지 차올랐다. 사실 처음부터 이상했다. 갑자기 문이 잠긴다거나,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거나. 분명 누군가 있어야할텐데 아무도 없다거나. 일단은 지팡이를 찾아야한다. 니오는 눈물이 흐르는 눈가를 계속해서 문지르면서 바닥을 기어다녔다. 지팡이를 찾아야한다. 여기에 부딪히고, 저기에 부딪히고 손끝이 살짝 까지고 무릎이 까지면서 지팡이를 찾아 천천히 침착하게 가터링에 끼웠다. 그리고 나서는, 다시 천천히 일어서서 보이지 않는 벽을 짚기 위해 손을 휘적이면서 천천히 느리게 앞으로 걸어갔다.
눈빛에 싸늘함을 한껏 담아 나아간다.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시선을 유지한 채 끝까지 걸어간다.
".... 감사해? 내가 감사해야할 건, 오직 신 님 뿐이야."
으득- 이 가는 소리가 들리고 거리를 한껏 좁힌다. 바람에 머리칼이 나부꼈으나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나아간다. 그 와중에도 시선은 동 사감님이 있을 곳을 끝까지 바라보았다.
"...... 앗아가지 마? 싫어. 당신은 내게서 모든 걸 앗아갔잖아."
앞이 보이지 않았을 때는 비교적 빠르게 적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짜증나는 무감각함은 전혀 떨쳐낼수 없었다. 신의 존엄성을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과 자괴감이 자신을 덮쳐 무너트린다. 가현은 사감의 모든 말을 자근자근 씹어 반박하며 눈을 형형히 빛낸다. 당신. 거기에. 있었구나.
"자유조차 멋대로 걸어 잠갔으며, 내 신념조차 더는 느끼지 못하게 하는것이 당신이잖아요. 동 사감님. 그런데, 그런 당신이, 감히 누굴 지켜?"
웅크린 채 고개를 숙인 사감님 앞으로 가까이 다가가, 허리를 숙인 채 한껏 사감님을 내려다보았다. 고개 들어. 눈 마주쳐. 당신에게는 그 어떠한 자비도 보여주지 않을테니까. 그렇게 모든 걸 걸어잠그며 자신이 구세주라고 지칭하는 이단은- 조금. 괴롭혀줘도 상관 없잖아?
다시금 걸음이 멈추었다. 아, 잃었던 감각이 돌아온다. 차단되어 있던 모든 것들이 일제히 몰아닥친다. 잃은 것을 되찾은 감각이란, 혼란하면서도 충족감이 느껴지는 기이한 체감이다. 그 감각에 적응하느라 잠시 말문을 잃고 있었는데.
떡하니 제 앞에 나타난 문에 유현은 미심쩍은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경계는 하면서도 의심하지는 않았다. 의심해야 했다면 송보리와 마주쳤을 때부터 했어야 했다. 홀로 떨어져 누구도 보이지 않던 상황에 하필이면 그의 방과 마주칠 이유는 뭔가? 이 상황이 처음부터 누군가의 의도로 꾸며졌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의 계획인지는 몰라도, 따라주어야지. 유현은 사감의 방문을 두드렸다.
동 사감이 자신의 말에 반응했다. 고개를 든 사감은- 평소대로의 모습이 아니었으니. 가현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다가도 이내 씨익 웃는다. 당신이 아무리 기이하다 한들. 제아무리 망가진 형상이라 한들. 그때 내가 보았던 그 공허하고 거대한 그 분의 눈에 조금이나마 다가갈 수 있을까!
"네에, 당신들이 그렇게 부르는 존재이자- 제가 이 덧 없는 목숨의 끝까지 몸바쳐 모셔야 할 존재."
"그 분을 이야기했답니다. 안될 것이라도 있는지요?"
여전히 히죽 웃은 채 태연함을 담았다. 당신이 제게 적대심을 품게 되더라도- 이 세상을 몇 번 씩이고 초기화시켰던 그 분의 존엄성과 위압감에 닿을 수 있을까. 촉각은 돌아왔지만 고조된 감정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감히. 끝까지. 그렇게 나오시겠다는 말씀이시죠."
시야가 재차 가려지고 가현은 미친 듯 웃어재낀다. 촉각만큼은 잠기지 않았으니 아무래도 좋다는 양. 그보다 이렇게 되면- 당신이 원하는 대로 오직 당신만 바라보지 못하게 되어버리잖아. 아무것도 안 보이니까. 강한 바람이 불고, 가현은 사감이 있을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갔으나 그 무엇도 닿지 않았다.
"..... 어라. 언제 오셨어요~?"
오신 줄도 몰랐네. 가현은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돌아서며 어깨를 으쓱인다. 목소리 들어보니까 아무래도 하사감님 같은데.
아무래도 여기저기서 사달이 벌어진 듯싶다. 아니면 사감이 자신을 인솔할 리가 없지. 옷깃을 잡아도 짜증 내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사안인 건가, 어느 쪽이든 됐다. 누구 손에 놀아나는 건진 몰라도 학생 전체에게 피해가 갔더라면 그만한 각오는 됐겠지. 등에 느껴지는 촉감에 아회 굳이 고개 돌리지 않고 천천히 고개 끄덕이고는 걸음 재촉했다.
"……."
진동이 느껴진다. 옷깃을 타고 느껴지는 떨림이 사람에게서 느껴지니 이는 소리다. 격양된 것인가? 잘 모르겠다. 일단 주체가 하사감인 것을 보니 격양된 감정이겠지, 들리지 않으니 그리 만든 사람이, 혹은 존재가 거슬릴 뿐이다. 한도, 끝도 없이 거슬린다. 인내심은 깊다지만 이런 부분에서는 영 달갑지 못하다. 안경이 깨져버려 가뜩이나 시야가 거슬리니. 인간이란 본디 이런 존재다.
"네에. 안 그래도 아까전에 똑같은 증상을 겪었어서 익숙해요~ 이 정도는 괜찮기도 하고요."
가현은 별것 아니라는 양 방긋 웃었다. 이게 언제 사라질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그 어떤 느낌도 느끼지 못하는 것에 비하면 아무렇지도 않았기 때문에. 하 사감님의 말에 가현은 다시금 고개를 갸웃였다.
"어라~ 사감님들도 방에 갇혀 계셨던 거예요? 동 사감님이 다른 사감님들까지 전부 가뒀어요? 대단하시네."
바람 새어나가는 웃음소리를 흘린다. 점점 주위에 소리가 가득차는것을 보아서는, 아무래도 흩어진 사람들이 점점 모이기 시작한 듯 싶었다. 가현은 천천히 소리를 따라 걷는다. 최대한 집중하며 애매한 곳에서는 한 손으로 벽을 훑어가며 나아간다. 지금 여기에는 하 사감님과 추 사감님이 계시고, 춘 사감님과 영 사감님은... 같이 가지 못하는 상황이지 싶다.
"아하하~ 역시 하 사감님이시네요. 전에 분명 엄청 싫어한다고 하셨었죠~?"
어차피 영 사감은 듣지 못하는듯 싶으니. 그리 이야기하고서는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망설임 없이 걸어들어간다. 앞은 보이지 않았지만, 느낌은 확실했다. 애정 주려 했는데 도망쳐버린 나쁜 사감님에게는- 애정을 두 배로 쏟아줘야지?
암막 커튼이 걷어지는 것 처럼 천천히 시야가 돌아왔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천천히 보이기 시작했다. 눈 앞에 있는 것은 세 명의 사감. 분명히 정상으로 보이는 세 명의 사감이 보였다. 아래로 시선을 내리자 두 다리와 두 팔이 보였다. 여기저기 찰과상이 생겨 생채기가 생긴 무릎과 손바닥이 보였다.
" 아. 보여요. "
그 말을 끝으로 니오는 눈을 꼭 감았다가 떴다. 혹시 다시 안 보이는 것은 아닐까, 하고 긴장감에 눈을 꼭 감았다 떴다. 안 보인다고 눈을 마구 문질러댄 탓에 살짝 빨개져서 아파오기 시작해 실눈을 뜬 니오는 욱.. 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살짝 숙였다.
학당의 잠긴 문과 잠긴 공간, 그리고 감겨 버렸던 감각. 사감들의 대화를 듣고 상황을 끼워맞춰 본다. 그때의 감각은 어쩐지 '상실'과는 다르다는 직감이 들었었다. 아마도 그것은 '잠금'이었던 걸까. 이 상황에 휘말린 것은 당연히 자신만은 아니었던지, 곳곳에서 종종 마주쳤던 학생들이 여럿 모여 있었다. 상황과 함께 그들의 면면을 가만히 살피던 유현이 불현듯 흠칫 몸을 떨었다.
이리저리 살펴 보던 시야에 온화의 모습이 잡혔던 것이다. 아, 아까는 촉감을 잠그더니 이번에는 눈에 문제가 생겼나 보다. 아니다, 멀미 때문인가? 헛 게 조금…… 그는 단 한 치의 의심 없이 제 눈을 의심했다. 그러다가 제 눈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자 눈 꾹 감은 채 슬며시 미간을 짚었다. 인간은 역시 흥미롭다……. 마구 치솟아 오르는 탐구심은 일단 접어두어야 했다. 그는 태연한 목소리로 말하는 두 사감들을 일별하고는 열린 문의 저편을 응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