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로 튕겨나갈 상황까지 염두에 뒀는데, 그 가정 무색하게도 문은 쉽게 열리고 만다. 꿈쩍도 안 할 것처럼 보이더니만. 열린 문의 너머는 고요하고 어둡다. 지나친 적막이 스산하게까지 느껴진다. 나아가야 했다. 평범한 사건사고였다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방 안에서 기다리는 수도 나쁘지 않았겠지만, 누구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 이 상황은 가만히 있어서 풀릴 문제가 아니라는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둠 속으로 발 디뎠다. 한 치 앞도 간신히 헤아릴 어둠을 헤치면서, 늘 눈이 어두웠으니 지금 같은 어둠이 불안하지 않아 다행이라는 태연한 생각을 했다.
어둡고 음산한 복도. 그리고 그런 복도를 마치 산책이라도 하는 양 느릿하고 여유로운 걸음을 유지하며 가현은 차근차근 나아갔다. 신의 원초적인 공포에 비하면. 그리고 그 범접하지 못할 아릿한 분위기에 비하면 이 정도는 새발의 피 축에도 끼지 못한다고 여기며.
"... 어라."
허나 이런 상황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다른 학생들도 보이는 상황에서 마주쳤다면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고 넘어갈 것이었으나- 그 누구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마주했다는 비현실적인 상황은 가현조차도 잠깐 주춤하게 만드는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 자신의 몸 상태는 일단 믿어보겠노라는 평소의 모습으로 나갔다가는 정말 아무런 저항 못하고 이 어둠에 먹혀버릴 상태였으니.
"너, 윤하 맞아? 맞는. 거지...?"
아는 사람을 만났으니 반가운데 마냥 반가워할 상황은 아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일단 이야기를 꺼낸다.
쩌엉! 문고리를 내리치자 귀를 찢을듯한 소리가 울린다. 내리친 힘 때문에 지팡이가 크게 위로 올라가며 그는 뒤로 튕겨져 나가고, 털썩 주저앉는다. 미친. 입에서 욕을 씹어 삼킨다. ……이쯤되면 삑! 하는 소리가 들려야 정상이거늘 벽난로에서 털 쬐며 굴러다니는 목화는 아무런 반응도 없다.
"……."
문이 열리는 것을 노려보다, 아회 손 뻗는다. 목화를 혼자 둘 수는 없어 부적을 문 앞에 둔다. 보호 주술을 걸어둔 부적을 툭 떨어뜨리고─ 움직인다.
밖으로 움직인다. 지팡이를 느릿하게 짚으며 한 걸음씩 나아갈 때, 아회 어느 순간 몸을 멈춘다. 불쾌한 소리가 귀를 메운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정적만이 가득한 곳이 아니다, 듣지 못했던 것이다. 지팡이 위를 두들기려는 손가락을 멈추고, 그대로 가만히 멈춰있다 눈을 가늘게 떴다. 청각이라. 하필이면 청각이라. 감히 어떤 새끼가 내 감각을 뺏어.
"……."
살릴 생각은 말아야지. 아니면 죽기 전까지 패야하나. 그게 낫겠지. 어차피 인간은 다 그런 법이지, 나는 북부 사람이고, 달라질 일은 없으리라. 속으로 생각하며 멀리, 더 멀리 걸어간다.
처음으로 무언가가 나타났다. 자박자박 걷던 걸음이 멈추어졌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글자를 간신히 식별하니 송보리라는 이름이 읽혔다. 같은 기숙사의 선배이자,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잊혔다 다시 나타난 사람. 다른 공간에 떼어진 듯 자신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 이 상황과, 언젠가 사라진 전적이 있는 자의 방이 나타난 것에 무언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는 불안요소를 앎에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혹시나의 상황에 대비해 안경을 챙겨 쓰고, 무언가가 튀어나오더라도 정면으로 부딪치지 않도록 문 앞에서 비켜섰다. 문으로부터 거리를 둔 그가 나직하게 말했다. 사방이 고요하니 소리 높여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리라 생각했다.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다. 가현은 잔뜩 의심을 품는다. 어째서. 목소리조차 들려주지 않는다면, 나는 너를 믿을 이유가 없어. 가현은 주춤주춤 물러나기 시작한다. 이전에 범을 사냥할때와 같은 생각이었다. 인간 비스무리한 탈을 쓴 것에게 개죽음을 당하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결말이 아니었다. 그리 생각하며 물러서자니 이젠 제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한다. 어째서, 왜? 잠깐만. 안돼. 이것 만큼은 안돼. 그만, 잠가버리지, 마....!
"... 이럴 줄 알았다면, 오빠라도 데려오는 거였는데..."
이젠 눈 앞이 보이지도 않는다. 가뜩이나 저항할 힘도 없다. 그저 자신은 이렇게 이 곳에서 덧 없는 개죽음을 맞이해야만 하는가. 분한듯 이를 질끈 물었으나 달라지는것은 없었다. 동 사감님. 지금 이 모든 해프닝은 당신이 꾸민 일이었구나. 무엇이 다가오는지. 무엇이 일어나는지 느끼지도 못하는 채로, 홀로 이 세상에 덩그러니 놓여진 느낌을 받으며-
"...!"
그러던 찰나 제 팔이 잡히자 가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러난다. 떨쳐내려 해도 힘이 들어가지를 않으니 소용 없는 일이다. 싫어. 이런거. 원하지 않아. 곧 죽겠구나 싶은 생각으로 가만히 서 있자니 생각외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아 가현은 고개를 갸웃인다. 이거. 환상이 아니라, 진짜야?
"너. 진짜 맞아....? 믿기지 않겠지만 내가 지금 앞이 안 보이게 되어버려서. 진짜 너지?"
몇 번이나 다시 확인하고 나서야 가현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쉰다. 일단 조금이나마 믿어볼까. 적어도, 온기 만큼은 느껴지니까.
문도, 창문도, 아무튼 '문'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것들은 전부 잠겼다. 아무리 열려고 해도 철컥거리며 열리지 않을 뿐이었고 심지어는 모든 불이 꺼져서 움직이기도 영 힘든 상황이었다. 니오는 자신의 허벅지를 더듬거리며 가터링에 묶인 지팡이를 꺼냈다.
" 배워놓은게 또 있단 말이지. 루모스. "
지팡이 끝이 환하게 빛나기 시작하면 이제서야 앞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역시 앞이 보여야 뭐든 할 의욕이 생긴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몇 배나 크게 다가오는 법이니. 니오는 가만히 침대에 앉아 누군가 와주기를 기다릴 생각이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기에 문 밖의 어떤 소리는 더욱 더 크게 들려왔다. 누군가 있나? 니오는 앞으로 나서서 문을 열려고 시도했다.
마법을 쓸 때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는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알 수 있다. 하나는 직관적인 방법으로 시도한 마법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눈으로 보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조금 다른 것인데 설명하기 힘들지만 그렇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그러니까, '실패'였다. 그럼에도 문이 열리자 기이한 기시감같은 것이 느껴져 머리를 긁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