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것에 욕심이 없다, 라. 퍽 재밌는 얘기다. 인간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지라, 또한 당신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지 못하니 마음에 무엇을 담고 생각하여 대답한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단지 자신처럼 무소유의 삶이겠거니 지레짐작할 뿐. 아, 이제 좀 짐작이 가는 단어가 나오긴 했다. 본가에 돌아간 적은 손에 꼽다. 이제 그의 식견으로는 선택의 폭이 두 갈래로 나뉜다. 당신은 지나친 호화에 질린 것일 수도, 혹은 가진 것이 없을 수도 있다. 그는 후자의 삶을 아주 잘 안다! 당신에게 혹시 핍박받던 삶이었냐며 묻고 공감대를 형성할 무례를 저지를 생각은 없지마는.
"……그만큼 학당 생활이 즐겁나 보오."
대신 말을 돌린다. 당신이 본가로 가지 않는 이유에 대해 묻지 않고, 적당히 싫으면 안 가도 되는 법이지. 정도로 부드럽게 대화를 넘긴 뒤엔 새삼 부럽단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가고 싶지 않더라도 방학만 되면 본가로 돌아가야만 했으니. 간단한 이유다. 어머니를 뵈어야 하고, 가주님은 그를 필요로 한다. 북부는 척박하고 어머니의 신변에 위협이라도 생기면 돌이킬 수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학당에 입학한 이후에서야 여름이란 계절을 알게 되었다오."
어깨를 으쓱이며 냉기 때문에 이슬이 송골송골 맺힌 병을 내려 둔다. 버틸만하다의 기준을 잘 모르겠다. 시선은 자신을 보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그렇지 않았기 때문인지, 그는 여상하게 내리감은 눈과 더불어 평온한 모습 유지할 뿐이다. 어차피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은 들겠지.
"그러길 바랄 뿐이외다. 영 사감님께서 고생이 많으시니 도울 일은 없나 싶기도 하다마는."
어차피 내 일이 아니면서도 뱉는 겉치레의 예. 나가고 싶은 자는 존재할 테니 그 사람에 맞춰주면 된다. 괜히 반목하여 부정한 시선 받을 생각은 없었다. 그러다가도 이 시선 받을 생각 없단 마음을 또 철회하게 되어버리니, 당신의 질문 때문이다.
"……외람된 말이지만 우리가 천공섬에서 너무 마음 편히 살아온 것이라 생각하오."
덤덤하다. 목소리의 높낮이에는 변함이 없고, 마치 날씨가 좋다는 듯 말의 속도에도 변함이 없었다.
역시 둘은 안 친한게 분명하다. 이야기는 다른 사람한테 들어봐야 하려나. 가현은 어쩔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이 남자 말고도 농질에게 물어보면 어쩌면 알려줄지도 모르니 훗날을 기약해야겠다. 꼭 그게 아니더라도 직접 만날 가능성도 있을것 같고. 그러다가 남자가 시무룩한 표정을 짓자 가현은 킥킥 웃으며 다시 남자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학당 학생들을 죽이러 온것 같기도 하니 멋대로 굴어도 좋으련만, 정작 자신에게는 이렇게 구는 게 마냥 귀여웠다. 잘 길들이면 꽤 쓸만할것 같은데.
이윽고 가현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남자의 말을 가만히 듣는다. 거래라는 것은 상호간의 물러남이 있어야 성립되는 법이다. 자신만 손해를 보고 타인에게 더 많은 이득이 가는것은 원하지 않는다. 그렇게 여기며 단호하게 거절하려고 했는데, 이 남자의 말을 들어보니까 또 자신이 그렇게 양보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아, 이거 재밌네. 나는 최대한 양보한거라고 생각했는데.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간다.
"그거야 당연하잖아요? 농질 언니는 내가 챙겨주고 싶지만, 오빠는 내게 그런 사람은 아직 아닌걸. ...그럼 이렇게 할래요? 오빠가 원하는 대로 사람들을 물에 들어가게 하는 것까지 허락할게. 대신 아까 말했던 것처럼, 나한테는 영향이 없게 해줘요."
정말 최후의 최후까지 양보했다는 듯 말하며 가현은 남자를 바라보았다. 생각해보니까 자신을 물로 데려가는 것은 미래의 일로 해달라며 약속까지 했는데 애시당초 지킬 생각조차 없었던 모양이다. 결국 자신도 그 약속보다 MA와의 약속을 우선시하고 있기는 했으나- 내로남불 최대치를 찍은 가현에게는 무의미하지 싶었다.
"그리고 어차피 나중에 내가 직접 찾아가기로. 혹은 오빠가 부르기로 약속까지 했잖아요. 왜 나한테 이렇게 가혹하게 굴어요~?"
조금 불만을 담아 투덜거렸으나 남자를 추궁하는 투는 담지 않았다. 약속은 없던 일로 해버리겠다며 협박해봐야 이 남자가 여기서 노랫소리로 자신을 현혹시키면 자신은 별달리 할수 있는게 없다. 그렇다고 자신의 손에 순순히 끝을 맞이해줄 사람은 더더욱 아니고. 이득을 취하지는 못할 망정 자신에게 손해가 가는 상황은 피하는게 옳지 않겠는가. 가현은 한껏 침착하게 생각을 정리해나갔다.
".... 아하하~ 오빠 진짜 재밌는 사람이네. 그때는 궁기씨가 별로 안 무서웠나봐요? 그리고 궁기씨한테는 오빠의 노랫소리조차 통하지 않았던 거예요?"
그건 조금 의외였다는 듯 가현은 눈을 몇 차례 깜빡거린다. 사실 듣지만 않으면 그만이겠지만 지금껏 귀를 막는다는 방법으로 위기를 벗어났던 사람은 본 적이 없었기에 더더욱 신선하게 다가왔다. 도대체 어느 정도의 사람이길래 그런 걸까. 그리고 이 남자도 그런 사람을 물로 데려가려고 했다고 하니 참 보통 비범함이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그 시점은 아마 이 남자가 궁기라는 자의 두려움에 대해 모르던 시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더 많은 노래. 그러면 진짜 만약에 내가 그 이상으로 노래하게 해준다고 하면 오빠는 나를 따를거예요? 내가 진짜로 오빠를 다루겠다는 게 아니라, 그냥 궁금해서."
만약 이 사람을 제 편으로 끌어당긴다고 해도 지금의 생활보다 더더욱 만족스러운 값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일단 자신이 대화를 나누며 느낀 바로는 궁기라는 자가 마음대로 하게 해주는것도 있지만 그 전에 궁기에 대한 두려움을 품고 따르고 있다. 자신이 궁기보다 더한 공포를 심어줄수 있을 리 만무하다. 게다가 자신에게는 노래를 상쇄시킬 수단이 없다. 어떻게든 타겟을 자신 외의 사람들으로 삼게 한다면 다행이지만- 지금 이렇게 자기주장이 확실한 걸 보자면 통제하기 꽤 까다롭지 싶다. 그러니까, 일종의 충성심 테스트 격의 느낌의 질문이었다.
"물 속에 들어가는거. 산제물이랑 같은 느낌일까요."
산제물은 이 사람도 아마 알고 있겠지. 모르면 별수 없으나, 일단 조금이나마 뭔가를 얻어내기 위해 미끼를 던져보았다.
지금까지 왠만한 것은 다 힘으로 해왔던 니오였기에 안 풀린다는 말을 듣고도 몇 번이나 더 몸을 비틀었다. 이렇게 비틀고 저렇게 비틀어도 꿈쩍도 안 하자 정말로 마지막 남은 힘을 모아 한 번더 몸을 비틀었고 수포로 돌아가자 니오는 '후-' 하고 숨을 고르며 '진짜 안 풀리네..' 하고 중얼거렸다. 이런 별 것 아닌 것들에서 힘의 차이라던가 마력의 차이라던가 하는게 느껴지는 건가 싶었다. 언젠가는 손가락만 튕겨서 마법을 쓰고 엄청난 힘 차이로 찍어누르는 모습을 잠깐이나마 상상했다. 그리고 그 때가 오면, 자신을 괴물이라고 불렀던 그 모든 사람에게 그들이 옳았었다고 보여주리라.
" 하필이라. 네~ 그렇게 됐네요. 그래도 한 때 적룡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슬프다면 슬프달까. 네. "
어디에도 섞이지 못하는 이 기분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적룡에는 적룡 나름, 황룡에는 황룡 나름으의 이유로 섞이지 못하는 이 기분. 원래 성격이 지*맞은 것도 있다보니 더 그런 감도 있었다. 이제 슬슬 이 곳에 마음을 붙이고 있는 것이 맞을텐데 그것이 썩 쉽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최근엔 좀 유해진 감이 없잖아 있다만은, 그래도 필요 이상으로 과잉진압하는 이 꼴은 선천적인 것이라 쉬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 그래도 무시 당하면서 살 수는 없.. 에- "
머플리아토. 이것도 배웠던 것이다. 분명히 소리를 울리게 만들어서 안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게 하는 일종의 방음마법이었지. 니오는 이렇게까지 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건가 싶어 조금 긴장한 기색으로 위를 올려다보았다. 알고있다. 싸움이라던가 주먹질이라던가 해서는 안되는 행동들이다. 구태여 심각한 이유를 붙이지 않더라도 쉬이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다.
" ...그래도 한 때 제 사감이었던 사람입니다. 제가 이래보여도 사람은 제법 좋아하고, 정이 없는 사람은 아니어서. "
그렇게 괴물 보듯이 말하지 않았으면 하는데. 니오는 그렇게 생각하며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올려다보았다. 계속 괴물 취급을 하면 정말로 그렇게 변해버린다. 그것은 니오 본인이 가장 잘 알고있다. 쿠즈노하에 있을 때 그 눈동자를 기억한다. 괴물 보듯이 보던 그 눈동자들. 그리고 들려오던 말들도 기억한다. 저 아이는 괴물이야. 어쩌다 저런 이단아가 나왔는지 따위의 말들. 그리고 니오는 그들이 옳았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오고 있었다.
" 염두하겠습니다.. 만은, 예. 제 잘못임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시비는 그 쪽에서 먼저..! "
그럼에도 뭐가 억울한지 말하려던 니오는 더 말해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입술을 깨물고 말았지만 두 눈은 여전히 밀리는 기색 없이 당당히 노려보고 있었다. 기가 약한 사람은 아니어서 상대가 누가 되었던 자기 생각 하나는 제대로 말하고 눈을 내리깔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 자가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고 말했다. 니오는 그 말을 캐치하곤 고개를 갸웃했다. 동시에 밧줄이 풀리자 어깨를 한 번 돌리고 손목을 풀어주었다. 제법 단단히 묶여있었는지 살짝 간지러워서 묶여있던 부분을 만지작 거리던 니오는 음.. 하고 운을 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