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사람이다. 이 남자도 충분히 공포의 대상이나 그런 남자마저도 두려워할 사람이라면 그 깊이가 어느 정도일지 가히 재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그 사람이 아무리 무서운 존재라고 한들, MA의 존엄성 앞에 감히 비견될 수 있을까 싶었다. 어렸을 적. 신을 알현할 때 느꼈던 형용할 수 없는 불쾌감과 본능이고 이성이고 다 무시한 채 원초적으로 제 뼛속 깊은 곳부터 사무치던 공포. 그리고 아찔함. 그 모든 것을 감히 덧없는 인간 따위가 따라오지는 못 할 것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흥미가 동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으응, 그래요~? 그럼 그 사람은 누구한테 관심이 있어요?"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는 관심이 있다는 뜻일 터였다. 허나 그게 누구인지는 알지 못했다. 설마 농질 언니? 경쟁자가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가현은 다시 눈빛을 매섭게 빛낸다. 오호라. 어쩌면 같이 술을 나눌 대상은 그 사람일지도 모르겠네. 혼자 그렇게 북치고 장구치며 호승심을 불태우고 있자니 다음 이야기가 들려와 가현은 저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자신보다 궁기를 더 무서워한다. 그것 외에는 더 들려줄 것이 없는걸까. 어쩌면 모두가 다 사이좋게 지내는 것은 아니지 싶다. 당장 이 남자와 그 사람만 해도 궁기라는 사람을 무서워하고 있고, 농질은 잘 모르겠지만 뭔가 지금껏 바라본 모습으로는 궁기에게도 사랑 타령하지 않을까 싶었다.
"어라~ 그러다가 저도 오빠의 노래에 현혹되어버리면 어떻게 해요~? 안돼요. 만약 창문 열고서 노래 부르고 싶으면 저 없을때 하는게 어때요?"
단호하게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결국 말 끝에 음- 하고 다시 운을 띄우며 약간 고민하는 시늉을 해 보았다. 이 남자가 원하는 것이 농질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라면 자신도 크게 막을 이유는 없었다. 결국 농질이 부탁했던 일이 잘 이루어진다면 자신 역시 기뻐할 것이며, 그것은 자신에게 있어 소실된 인간성의 공백을 조금이나마 채워준 사람에게 주는 사랑이자 애정이며 호감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듣지 않아도, 자신이 바라는 것을 이루어주지 않아도 그저 함께 있는것만으로 행복하고 즐거우며 기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던가.
".... 아니다. 그냥 허락할게요~ 어차피 오빠라면 대상도 마음대로 정할 수 있을거 아니예요? 조금 불안하기는 한데."
가현은 눈동자를 도륵 굴렸다. 할 일이 남아있는 시점에서 강제적으로 물로 뛰어들게 되는 것은 원하지 않으니까. 그것 외에는 전부 어찌되든 좋았다. 갑작스럽게 방 앞에 이런저런 물건이 한가득 쌓인다면 의심을 살 테지만, 일단 지금은 동 사감이 없기도 했으며 그렇게 의심할만한 사람도 흑룡 기숙사에는 없었다. 결정적으로 정말 100만분의 1 확률로 그것을 의심하고 자신을 캐려 하는 사람이 나온다고 한들, 이 남자가 그냥 맥 없이 당하지 않을 사람이기도 했으니까. 그런 것들을 전부 배제하고 본다면 장점만이 가득했다. 자신이 따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먹을게 쌓이고 자신을 치장할만한 간단한 물건이 늘어나는 것은 기뻤으며 그 과정 중에서 이 남자의 바램이 이루어진다면 그것만큼 기쁜 게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까 나랑 약속 두개만 해요~ 나도 오빠를 방해하지 않았고 언니의 바램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주는 입장이니까 나한테는 영향이 안 가게 할 것. 그리고 오빠의 목적이 단순히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가급적이면 언니의 부탁을 이루어주는 쪽으로 향하게 할 것."
이 정도면 나도 흔쾌히 허락할 수 있답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가현은 남자의 머리를 다시 쓰다듬어 주며 눈을 맞추었다. 무해한 듯 하면서도 위험하고 짜릿한 사람. 그런 사람을 내 어찌 예뻐해주지 않을 수 있겠니.
"그리고 오빠 마음대로 창문을 열지 않고, 적어도 나한테 먼저 열겠다고 말한 게 고맙기도 해서 특별히 허락하는 거예요~ 그런데. 노래 부르는 동안은 나랑 말 안할거죠?"
그렇게 되면 조금 큰 문제인데. 아직 이 남자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가득 나누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자연스럽게 창문을 열어주려던 행동이 버퍼링이 걸린 듯 멈춰있다가 몸을 다시 돌려 남자를 바라보았다. 당신들에게 궁금한 것도 있지만, 당신에 대해서도 나는 아직 잘 몰랐으니까.
"그러니까, 이야기 조금만 더 해줘요~ 오빠는 어쩌다가 그 무리에 섞여 들어가게 된 거예요?"
농질이 쫓겨난 일은 분명 불미스러운 짓을 해서 그런 것이었다. 그렇다면 언니와 어울려다니는 사람들에게도 저마다의 사연이 하나씩은 존재하지 않을까?
그리고 밝히는 tmi 하나. 임시스레 세우기 훨씬 전에 있었다가 사장된 설정 중에 하나입니다만.... 원래 제가 모든 가문을 다 짜고 가문 별 가계금술 및 도술을 넣을 계획이었습니다만, 그 때 당시 오러사무국과 이걸 같이 준비하던 중이었기에 캡밀레가 보여^p^ 하고 바로 지웠습니다':3
그의 말에 윤하는 웃으며 답했다. 학당에 오기 전엔 자기 것이라곤 제 몸 하나 간신히 뉘일 정도의 낡은 침대와 이불, 베개 뿐이었으니 욕심이라는걸 느낄 순간조차 없었다. 학당에 들어와서도 자기 것을 챙기기보단 남에게 하나 더 줄 정도였으니 말이다. 어릴땐 그것이 맞는줄 알았고 이용 당한 적도 있었다. 지금도 그가 의도를 알고 있는 것만 다를뿐 그에게 호의적인척 접근하는 사람들도 아직까지 존재했다. 그래서 그를 좋게 보지 않는 사람들은 종종 호구라고 놀리기도 했었다.
" 학당에 온 뒤로 본가에 돌아간 적은 손에 꼽을 정도라 말입니다. "
그들이 왜 자신을 학당에 보내주었는가는 불분명하다. 분명 그 사람의 입김이 있었겠지. 그땐 그 사실을 모르고 저택에서 나갈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너무나도 기뻤고 입학한 이후에는 한동안 저택쪽으로 고개를 돌려 뉘인적도 없을 정도였다. 학당에 오고나니 자신이 살던 환경이 비정상적이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고 그것은 더욱 그를 저택으로 가기 싫어하게 만들었다. 이따금 편지가 왔을때도 다음에 가겠다, 다음에 가겠다 답신만 보내다 결국 그리 되어버렸다.
" 의외로 버틸만 하다고 생각은 들지만 북쪽 출신이시라니 저랑은 느낌이 다르실 것 같아 확언은 못드리겠군요. "
그래서 도화의 사계절을 거의 매년 느끼고 있는 그에겐 여름의 더위는 그렇게까지 못버티겠다!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안더운건 아니었고 그냥 어떻게든 여름을 넘길만하지 않나 싶었다. 바깥만 덥지 기숙사는 시원한 편이었고 도술도 있으니까 말이다. 윤하는 한입 크기의 쿠키를 입 안에 쏙 넣고서 아회를 바라보았다. 아니, 정확히는 그의 어깨 너머의 풍경인듯 했다.
" 그래도 금방 열리지 않겠습니까. 영 사감님께서 동분서주하시는 모양이시니. "
영 사감님이 부리는 마법 ... 이라는 도술 같은 것은 잘 모르지만 어떻게든 열려고 시도 중이신듯 했다. 잠근 것은 동 사감님인데 어째서 영 사감님이 고생을 하시는진 모르겠지만 그는 다 이유가 있겠거니하며 조금 목이 메여 보리차를 한모금 마셨다. 차가운 것이 참 맛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