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이젠 지난 일이고 이런 사람 있고 저런 사람 있다고 얘기하듯 그의 억양은 높낮이의 폭이 좁다 못해 시를 읊듯 나긋하다. 눈앞의 흑룡 기숙사인 당신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나름의 이유가 있고, 자신이 그런 당신을 밀어내지 않고 흔쾌히 수락하듯 사람은 누구나 그런 인생을 살아간다. 누군가는 뭐, 발악하겠다마는 일단 그에게 있어 인생은 참 단조롭고 미적지근한 편이었다. 다행인 점이라면 의자는 시원하고, 그늘도 나쁘지 않다. 이것마저 미적지근했더라면, 이 초연하다 못해 달관한 놈은 분위기에 묻혀 유령처럼 자리를 떠버렸겠지!
"친목의 상징이라…… 확실히, 적대하는 사람만 없다면 나쁘지는 않을 방법이겠소."
다과를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거니와, 학당에서 간식거리 나누는 일이야 흔하니 좋은 방법이긴 하다. 더군다나 수제면 호감도가 배로 오르겠지. 꽤 좋은 방법이지만 교우관계를 거의 쌓지 않는 그에게 있어선 별세계나 다름이 없었다마는.
"……감사히 먹겠소."
한 입 크기의 쿠키를 손으로 느릿하게 집어 들었다. 꽤 좋은 버터를 썼는지 쿠키에서 부드러운 우유 냄새가 난다. 이런 질 좋은 쿠키는 천부에 가서도 찾기 어려운 편인데, 새삼 장인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단 말이 떠오른다. 보리차마저 하나하나 신경을 쓰니 이런 대접을 받아도 괜찮은 건지 잠깐 의문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묻기엔 무례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쿠키를 입에 가져다 대어 한입 베어 물었다. 속이 적당히 촉촉하니 씹을 때 입안에서 마구 부스러지지 않는다. 딱 제 취향이다. 먹던 조각이 입안에서 완전히 녹아 부스러질 때까지 침묵하다, 삼키듯이 목울대를 움직이고 나서야 입을 벌릴 수 있었다.
"…참으로 대단하이. 맛이 없다는 소리를 할 수가 없겠구료."
아마 단맛을 극히 싫어하거나 쿠키 자체에 큰 거부감을 가진 사람이라면 반응이 다르겠지만, 적어도 자신은 단맛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대다수의 디저트도. 남은 반 조각을 입에 넣으며 보리차는 나중에 마시겠다는 듯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자신의 출신 이야기에 다시금 목울대를 움직이기 전까진 침묵했다.
"잘 모를 법도 하지. 북부 사람이외다."
이제 보니 피부가 그늘에 어둑해졌다 한들 새하얗다 못해 창백한 편이었다. 북부. 과거 MA에게 반기를 들었던 사람들의 후손이 모여 사는 저주 받은 곳, 영원한 겨울…… 제사장 가문 아이들은 무 씨 집안 얘기를 들으면 명암이 극명한 평가를 내놓곤 하였다. 호위로는 좋으나, 그래도 죄인의 후손. 그 흉흉한 사실에 개의치 않는다는 듯 덤덤하게 물었다.
왜 사감님을 만나러 오게 되었느냐, 의 이야기는 그리 길지 않다. 언제나와 같은 패턴이었다. 시비가 걸렸고 싸웠을 뿐이다.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는데 원래라면 그냥 지나갈 수 있었던 것이었는데 '있는 줄 몰랐네~' 라는 말에 발끈해서 허리를 접어주겠다며 달려들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개판이 났다. 의자를 집어던지고 올라타서 몇 대인가를 때려주었다. 니오 자신도 적잖이 맞았지만 언제나 말하듯이 싸움에서 이기는 것과 힘이 강한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더 과격하게 더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수 있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그리고 니오는 이겼다. 엄청나게 소란스러워졌고 사감님을 불러오라던가, 말리라던가 하는 소리가 귀를 때렸다. 그리고 니오는 당당하게 말했다.
" 내가 했다. "
고. 자신의 싸움이었다. 누가 뭐라해도 자신의 싸움이었다. 그리고 당당하게 이겼다. 숨길 이유도 없다. 그 댓가로 이렇게 사감님과 독대하게 되었다만 그것에 대해 일말의 후회도 없다. 니오는 대충 붕대를 한 차례 둘러감은 주먹을 몇 번인가 쥐었다 펴볼 뿐이었다. 최근에는 머리가 아픈 일이 많아서 이렇게라도 가끔씩 열을 발산해주지 않으면 누가 먼저 돌아버릴지 모르는 상황이었어서, 제법 괜찮은 싸움이었다고 생각한다. 마법을 쓰지도, 주술을 쓰지도 않았다. 피와 살과 뼈의 싸움이어서 더욱 마음에 들었다. 이왕 이렇게 된거, 사감님을 만난 터이니 마법에 대해서나 더 물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든 이용해먹을 수 있다면 전부 이용하는게 좋을테니까.
아회주 다시 안녕~~ 많이 아팠나보다 고생이 많아... ^-ㅠ 몸건강 잘 챙겨야돼 진짜..
>>738 본격 도화학당 판 다이스의 문단속 6월 3일 재개봉 예정입니다 많은 시청 부탁드려요~~ (?) 끝까지 못 풀것 같을때는 독백이라는 수단도 있으니 부디... 애용해주길 바라며.... 엔딩 전에는 꼭 풀어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는것도 알아주길 바라며.... (지긋)
철컥. 문 닫히고 잠기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시선이 그리 향했다가 다시 돌아온다. 눈 어둡다는 점은 이래서 불리하다. 잘 보였더라면 문 뒤에 무엇이 있었는지 눈에 들어왔을 텐데. 그는 별 특이점 눈치채지 못하고 대화에 다시 집중한다. 먼 것을 놓친 만큼 시야 가까이에 있는 것만은 놓치지 않겠다는 양. 온화의 손짓 하나, 표정의 사소한 변화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눈에 담고자 한다.
"호기심이 앞서서 아무렇게나 건드려 댔다가 피를 본 게 한두 번이 아니라. 너랑은 아직 보기 싫어."
단순한 관용적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피 본 적도 많았으니 반쯤은 직설이다. 그 말을 하며 유현은 슬몃 눈웃음지었다. 이미 묻겠답시고 다짜고짜 찾아온 시점에서부터 꽤 멋대로 군 판이고, '아직'이라는 말은 또 무어냐 하는 타당한 맹점 얼버무리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온화가 이 정도는 지적하지 않겠거니 하여 대놓고 모르는 체다.
"별것 아니란 것치곤 입이 무거운데. 내기까지 걸고 말이야."
그런데 싫은 게 아니었다니 의외다. 보통은 그러면 싫어하기 마련인데. 너는 무언가 다른가? 벌써부터 무언가의 단초를 잡은 것만 같아져 붙잡아 둔 자제심이 위태롭다. 반듯하던 입꼬리가 히죽 오른다. 다음을 기다릴 수 있느냐고? 아니라는 것 알면서 묻기는. 그는 대답 대신 캔을 집어들어 눈앞에 가까이 가져왔다. 맛이 다섯 종류이니 가장 단순하게 계산하면 5분의 1 확률일 터이나 더 자세히 파고들면 변수가 많으니, 순전히 운으로 승부하는 내기가 되겠다. 단정한 미간이 설핏 아등그러진다. "어려워." 하지만 아무도 안 속을 엄살이다. 얼마 안 가 다시 평소처럼 반반한 낯으로 돌아온 유현이 제 얼굴로 한 손 가져갔다. 검지 바깥쪽으로 느릿하게 턱을 쓴다. 아까 어떤 사탕을 골랐는지 제대로 봐 둘 것을 그랬나. 집중했더라도 어차피 침침해서 못 봤을 테니 미련은 갖지 않기로 했다. 잠깐의 고민 끝에 턱 쓸던 손가락 척 들어 세우며 답 내었다.
안타깝게도 그는 흑룡이라 적대하는 사람이 꽤나 있어서 문제였다. 자기가 건네어주는 쿠키를 눈앞에서 부숴버리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으니 말이다. 수제인걸 알면서 그러니 그들의 의도는 너무나도 뻔하게 전달되어왔다. 그럼에도 윤하는 개의치 않고 누구에게나 쿠키를 전해주고 있었다.
" 입에 맞으신다니 다행입니다. "
물론 자신의 쿠키를 먹어본 사람들 중에서 싫어했던 사람은 지금까지 단 한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신입생들에게도 자신이 만든 쿠키를 조금씩 포장해 나눠주면 모두에게 호평이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싫어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처음 먹는 사람이 앞에 있으면 그는 언제나 긴장하곤 했다.
" 원하신다면 남은건 가져가셔도 됩니다. "
어차피 자신의 것에 대한 욕심도 없거니와 쿠키의 재료는 많으니 그는 이렇게 남는 것들을 모조리 남에게 주곤 했다. 이번엔 그 대상이 눈앞의 남학생인 것이고. 손에 든 보리차로 가볍게 목을 축이던 윤하는 아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 북쪽이라. 매우 추운 곳이라고 들었습니다. "
다른 지방은 비교를 불허할 정도의 추위.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 분의 벌을 받았기에 어쩔 수 없이 거기에 눌러앉아있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 학생도 그 벌을 받은 가문의 후손인 것일까. 뭐 남들이야 이런 사실에 수근대겠지만 윤하에겐 아무렴 좋은 것이었다. 이 학당에서 그런게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 그냥 곡옥의 평범한 가문 태생입니다. "
물론 평범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멸문 직전이니 평범하다고 불러도 오히려 과대평가를 하는 수준이다.
" 추운 지방 사람이라고 하면 점점 더워지는 이 시기가 곤란하시겠군요. "
아무래도 북은 여름에도 그렇게까지 덥지는 않을 것 같으니 말이다. 지금도 한낮엔 기온이 올라 조금 뜨겁다고 여겨지는데 좀 더 시간이 지나면 강렬한 더위가 한낮의 시간을 점령하고 있을 것이었다. 나름 차갑게 준비한게 다행이라 생각하며 들고있던 보리차를 다시 한번 홀짝인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고 가현 역시 방긋 웃었다. 훗날을 이렇게 기약하기까지 했으니, 자신의 인생은 한 없이 아름다우며 화려하게 피어나 덧 없이 져버리며- 끝내는 이 남자가 바라는 대로. 그리고 자신은 자신이 바라는 대로. 그렇게 한 걸음 더 나아갈수 있을 것이다. 오직 신을 위해 태어났으며 신을 위해 살아왔고 마지막마저 신을 위해 남을 이용할 뿐인 가장 완벽한 산제물로써의 끝은 상상만 해도 짜릿해지게 되는 것이기에 가현은 끝끝내 해사하게 미소지을 뿐이다.
"또 입꼬리 올라간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했어요, 안 했어요? 참을성 없게 굴면 못 써요~"
그러니 아직은 안 된다. 자신이 직접 신과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몸소 그 존엄을 이끌고 올때까지 어떤 일이 있어도 버텨내겠노라고. 자신의 기억만큼은 마음대로 하지 말라고 한 것 또한 그 뜻이었다. 직접 존엄성을 이끌고 찾아와줄 무렵- 자신은 한 몸 바쳐서 신의 것이 되어줄 덧 없는 인간이었기에. 아. 이러면 꽤 재미있어지겠다. 어쩌면 이 남자와의 약속은 못 지킬지도 모르겠는걸. 그런 생각을 속으로 감춘 채 그저 미소지으며 남자의 볼을 가볍게 콕 찌르며 거절의 뜻을 전할 뿐이다.
뒤를 돌아있는 동안 자신의 걱정에 대해 괜찮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긴 그런게 두려웠다면 대놓고 거기서 그러고 있진 않았을 것이다. 쓸데 없는 걱정이라고 여기며, 자신과의 지향성은 다르지 싶은 것도 느낀다. 자신은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농질의 부탁이 잘 이루어지기를 바랄 뿐이었으며 그로 인한 치밀함이었을 뿐.
"그래요? 그럼 오빠만 믿을게. 오빠, 그 만큼 강한 사람일테니까~ 아. 옷 다 입은거예요? 이제 슬슬 뒤돌아도 될까요~?"
물기 젖은 옷이 걸리는 소리. 그리고 옷 갈아입는 소리. 바람이 살짝 느껴지는 걸 봐서는 한바퀴 돈 모양이다. 굳이 그렇게 거창한 제스쳐를 취해주지는 않아도 되는데 그랬다고 생각하니 괜히 웃음이 나온다. 아. 참 재밌는 사랔이야. 이 사람도. 밑도끝도 없이 물 타령 하는것만 제외하고 본다면 굉장히 귀여웠다. 느릿느릿하고 듣다보면 자연스럽게 잠이 올것만 같은 목소리도 이젠 익숙하다.
"실패해도 자극이 되는거예요? 그 사람 엄청 치밀한가보네. 보통은 실패한다고 하면 어쩔줄 몰라하는 게 대부분이던데, 보통내기가 아닌가보네요~"
궁기라는 사람에게도 자연스럽게 흥미가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실패하든, 성공하든 자신들의 목적은 무조건 달성하게 된다. 결국 우리가 어떻게 발악해봐야 저들의 손아귀 내에서 놀아나는 모습 외에는 연출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그저 이 학당이 평화롭고 안온하기만을 바랬다면- 분명 치를 떨고 증오할 만큼 치밀하며 어느 하나 허점이 없다. 허나 가현은 그것마저도 포용하게 되는 것이다. 당신들이 원하는대로, 그저 덧 없는 노름거리의 모습을 한껏 선보여주기 위하여.
"오빠랑 같이 지내는거. 농질 언니랑, 궁기씨랑, 그리고 또 더 있어요? 사람이 꽤 많은것 같은데 각각 어떤 느낌이예요~?"
농질은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야기를 더 듣고싶어지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끝까지 파고들어서 결국 모든 것을 낱낱이 알게 된 상태로, 제 곁에서 자신 하나만을 만족시켜줘야 할 사람이니까. 과거의 자신이 그렇게 다짐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