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당의 문이 잠겼다. 아무래도 동 사감님이 잠궈버린듯 했는데 하 사감님이 난리를 쳤음에도 열리지 않는 것을 보면 닫혀도 단단히 닫힌 모양이었다. 허나 애초에 학당 밖으로 외출을 잘 나가지 않는 그에게는 재료를 사지 못한다는 것 빼고선 일상과 다를바 없는 나날이었다. 재료도 마침 사둔지 얼마 지나지 않은터라 충분하게 있었고.
그래서 그는 그저 평소처럼 기숙사를 나서서 학당 내부의 공원으로 향했다. 그가 높은 곳에 앉아있을때를 제외한다면 가장 많이 가는 곳이기도 했다. 그야 많은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이었으니 말이다. 예전보다 부쩍 홀로 앉아있는 시간이 늘어난 그였지만 이유는 알 수 없었다.
" 어라, 저희 구면이지 않나요? "
그렇게 공원에 도착하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감은듯한 눈, 자신과 비슷한 잿빛이지만 좀 더 푸른기운이 일렁이는듯한 머리, 일련의 사건이 일어날때마다 보이는 남학생이었다. 서로 가까이 서있던적도 있었기에 분명 자신의 얼굴을 알아볼 것이라 생각해 먼저 가서 아는체를 한 그는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 혹여 기억이 나지 않는다해도 일단 반갑습니다. "
그는 항상 이런식이었다. 조금의 연결고리만 있어도 일단 들이댄 다음 상대를 재빠르게 파악해서 최상의 관계로 끌어올리곤 했다. 특유의 눈치와 언변으로 가능한 일이었고 그것을 지금 눈 앞의 남학생에게도 일단 행하려는듯 했다. 그러나 상대가 어떤 기숙사인지도 모르는 상태라 조금의 기초적인 정보는 필요했으니.
" 흑룡의 모 윤하입니다. "
저번의 적룡 소녀때처럼 먼저 이름을 알려준다. 상대가 알려주지 않아도 상관 없었다. 그저 상대에게 자신을 각인시키기 위한 행동이었으니.
>>490 어... 어라 그러게요...? 혹한다(?) 어허 어허 넣어두세요 우리 아직 캐끼리 만나지도 못했어! 가현이도 뒤틀린 흑룡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으니까 만난다면 <모든 인간을 포용함>vs<모든 인간이 흥미로움>으로 자강두천할 것 같아서 재밌어 보여요...😊 그냥 그때는 그랬었지~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서 흑역사는 아닙니다! 사실 지금도 사람의 몸....에 흥미 보이는 건 완전히 못 버리기도 했고...👀
>>491 으아악 온화야 그건 안돼!!! 온화를 만났을 때의 시점은 저러면 안 된다는 걸 확실히 알았던 다음부터라 다행이에요...😇 맨 처음 만났을 때 구석에 짱박혀서 숨어 있었던 것도 1.집에서 왕따당함 2.워낙 이상한 애라 풀어놓으면 손님한테 이상한 짓 할지도 모르다 보니까.... 라는 설정상의 이유였답니다!
그럼 느긋하게 가볼까요~ 앗 일상이면 온화 드디어 밖으로 나오는 건가!!! 밖으로 나온다면 온화가 갈 만한 곳이 어디어디 있지...🤔 거기에서 마주친다거나, 아니면 궁금한 거 못 참는 크레이지 백룡맨이 그냥 적룡까지 쳐들어가는 상황()은 어떨까요?
지팡이 짚으며 여유로이 걷는다. 흥미로운 눈초리가 꽂히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어찌 눈치를 보겠는가? 아니, 죄인가. 어느 쪽이든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아회 기억을 더듬는다. 형님께서는 어떤 방에 있었을까, 그 방은 아직까지 남아있겠지? 서서히 구석으로,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곳으로… 하늘을 올려다 보듯 고개 올린다. 그리고는.
남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욕조 안으로 고개를 숨기자 가현은 픗 하고 웃음을 새어보냈다. 다시 불을 꺼줄까 싶기도 했으나, 그냥 정말로 잠만 자고 나갈 생각이었다는 이야기가 괜히 괘씸해서 그냥 놔두었다. 이건 괘씸죄에 대한 가벼운 벌이예요. 그 이야기를 직접 한 건 아니지만 그렇게 말하듯이 빙긋 웃는다.
"그런가봐요~ 저번에 노랫소리에 홀린 사람들 죽여버리고 난 이후부터 사감님 상태가 좀 안좋아보이기는 했어. 혹시 뭐 짚히는거 있어요? 아. 그럼 이제 오빠라고 부를게요?"
잠깐 남자의 눈을 응시하던 가현은 어깨를 으쓱인다. 영 모르겠단 말이지. 참인지 거짓인지. 제대로 드러나는 사람들은 읽기 쉬웠으나 이렇게 자기 주장이 확고한 부류의 사람들은 눈을 들여다봐도 그 사람이 거짓을 고하는지 진실을 고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근데 이건 싫은가보다. 그것 하나는 확실했기에 가현은 타투를 찌르던 손을 거둔다. 귀여워라. 더 찔러보고 싶지만 일단 참는게 좋겠지. 지금은 무해해보여도, 이 사람이 자신을 간단하게 죽여버릴수 있을 만큼 위험한 자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응. 내가 만족할때까지 어울려주면 적어도 오빠가 여기 머무는 동안은 푹 잘수 있게 해줄게요~ 맨날 그렇게 졸린거예요? 아니면 이번에는 더더욱?"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일상적인 이야기 속에 자신의 궁금증을 살살 끼워두기 시작한다. 과연 이 남자는 어디까지 자신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오래 놔둔다면 그만큼의 위험 부담이 커지겠으나 이미 신의 존엄을 감히 몸에 담아두고 있던 자신이었다. 그런 상황보다 더 위험한 상황은 자신에게는 없다고 여기며, 가현은 한껏 포용을 베풀어주려 했다. 그러고 보니까 그 눈으로 농질 언니랑 이 사람을 한번도 못 봤구나. 뒤늦은 아쉬움이 몰려왔으나 후회는 없었다. 언젠가 때가 되면, 물어볼수 있겠지.
"어라~ 그거 재밌네요. 제가 가지고 싶은게 무엇이든. 어떤 사람이든. 정말로 다 줄수 있어요~? 그 이야기 괜히 한건 아닌것 같은데, 제가 갖고 싶은게 뭔지 알고 있어요?"
우습기도 하지. 내가 진정으로 가지고 싶은게 뭔지, 네가 과연 헤아릴수 있겠니. 가현은 꽤 재밌다는 듯 눈을 빛내며 남자를 바라본다. 흥미롭다. 재밌다. 즐거워진다. 자신감은 곧 강함과 비례되는 것이며, 자신은 MA의 절대적인 힘에 반한 덧 없는 인간이었으니. 이 자는 신과 비교한다면 한없이 나약할 것이지만- 자신과 비교한다면 여러모로 앞서 있을 것이기에, 잘 구슬리고 다독인다면 힘이 되어줄수 있을지도 모르지.
>>499 ㅋㅋㅋㅋㅋㅋㅋㅋ 자강두천 하는거 뭔가 끌리는데(?) 유현이 시트 봤을때부터 임가현 분명 그 탐구심도 전부 포용해주고 받아들일것 같다는 강한 예감이 들었어 ㅋㅋㅋㅋㅋ 평범한 탐구심이 아니라는것까지 알게 되면 오히려 임가현 측에서 더 신기해하면서 '꽤 재밌네~ 네 탐구심은 어디까지일까? 알고 싶어졌어.' 이러고 들이댈것 같기도 하고() 앗 아직 못버린 모먼트구나~~! 앞으로 어떤 행적을 보여줄지 기대가 되는걸 ^Q^
문이 잠겼다. 욀총 없으나 그나마 마지막으로 새겨두자 싶어 깊이 뇌리에 각인해둔 것이라면, 동 사감이 사람의 죽음을 목도하기가 무섭게 문을 닫아버렸던 것 정도일까. 그때 분위기가 어땠더라, 압도적인 감정에 휩싸였기 때문인지 잘 기억은 나지 않다마는 지금도 분위기 언뜻 흉흉한 것 보아 하면 조만간에 또 사달이 나겠거니 어렴풋이 예측할 수 있을 뿐이다. 지금 상황에 불만 품은 사람들 많아 보이나 그는 태연하기 그지없다. 애초에 나갈 일 거의 없거니와 인간의 삶은 무상한 법이지 않은가.
학당의 학생에게 일을 떠맡기고, 때로는 피를 보아도 이곳은 천공섬이다. 언제든 스러질 덧없는 삶이요 쉬이 지나가버릴 봄날과 다를 바가 없다. 그 대상이 자신이 되었다는 점에도 유감을 표하지 않는다. 어차피 생이란 그러한 법이다. 그리 큰 의미 없는 것. 가령 지금처럼 아무 생각 없이 돌아다니는 행위와 마찬가지로. 천부에다 비녀의 수리를 맡겼건만 돌아갈 수 없으니 머리를 붓으로 대충 쪽지고 공원을 배회한다.
"아."
낯익은 목소리가 들리자 아회 지팡이를 앞으로 짚었던 것을 슥 밀어 제 가까이로 끌어오고는 고개를 돌렸다. 나긋하게 곡선을 그어내어 덮인 눈꺼풀이지만 시선을 마주하는 듯싶었다. 누구더라, 상대를 깊이 외우지 않는 삶이지만 그 생각도 오래가지 못했다. 당장 며칠 전까지만 해도 고깃덩이의 편에 섰다가 정신 차린 사람 아닌가.
"……구면이구료."
침묵은 살짝 길었다. 과묵한 성정이기도 하거니와 고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대화의 흐름이 끊겼어도 재량껏 입 벌릴 줄은 알았으니, 그는 반갑다는 말에 고개 묵묵히 끄덕이며 "기억하고는 있소." 짤막히 답할 뿐이다. 눈앞의 당신은 사회성 제법 있는 사람이겠거니, 지팡이 위에 양손을 다소곳이 올려두었다.
아, 취소. 사회성이 아니라 흑룡 사람이라 그랬구나. 잠시 지팡이를 만지던 손길이 느릿해지더니만, 잠시 침묵했다. 아주 잠깐의 침묵은 그가 자신도 소개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 고민하는 것 같았다.
"적룡의 무 아회라 하오."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적룡임에도 당신에게 적개심을 드러내진 않는 것 같다. 어쩌면 고요함 때문에 적개심이 드러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노릇이고, 그것도 아니라면 드물게 기숙사와 다른 사람일지도 모르고. 다만 고개를 느릿하게 기울인다. 대화를 짤막히 이끌어주듯.
>>511 약간 기싸움 아닌 기싸움 같고...(?) 아앗 가현이는 역시 그래주는구나 감동이에요...🥺 ㅋㅋㅋㅋㅋㅋ그러면 이제 재밌어하는 가현이를 재밌어하는 유현을 재밌어하는 가현이로 무한흥미써클이 이어질지도...(?) 확실한 건 유현이도 가현이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된다면 엄청나게 흥미로워하지 않을까요~ 이 정도의 광신은 정말 드무니까! 에잇 기대해도 별 거 없어요 훠이훠이(?)
>>513 으아악 간지러워~😆 온화주야말로 온화한테 그런 비설 줬으면서!(맞간질간질!)
궁금한 거 못참는 성격의 장점: 노빠꾸 가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들쳐메고 간 적 있냐구요ㅋㅋㅋㅋㅋ!!!! 네넵 그럼 선레 써올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516 ㅋㅋㅋㅋㅋㅋㅋ 그 무한흥미써클 내에서 이루어지는 기싸움 느낌인거지~~! '어라. 이거 봐라. 내 호기심을 만족시켜주기도 전에 나한테 흥미를 느껴? 재밌네.' 이런 생각 하면서 계속 파고들것 같고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친해지는 루트도 꽤 맛있을것 같다고 생각중이야! 서로서로 흥미 가지게 될거라고 망상중 ^q^ 임가현은 지금까지 봤던 사람들 중 추 사감님 제외하고 이렇게까지 탐구심 특출난애는 처음이라고 여길것이라머.... 떡밥 주워먹는 비둘기는 쫓아내도 다시 날아와 주워먹을 준비를 하지 ^Q^()
상대는 자신을 적룡이라 소개했다. 저번에 그 소녀도 그렇고 적룡들은 하나 같이 딱딱한 모양 같아 그는 속으로 살짝 웃어버렸다. 허나 지금은 어떻게 보면 서로에게 첫인상을 새겨주는 것이니 속마음은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 윤하는 여전히 옅은 미소를 입가에 드리운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이 흑룡이라 타 기숙사 사람들에게 미움 받고 있는 것도 잘 알고 있었고.
" 그저 반가운 마음에 부른 것뿐이랍니다. 분명 한 두번 본 사이가 아니었지요? "
농질이 왔을때도 하사감님이 폭주할때도 그리고 얼마전의 그 사건 때에도 이 남학생과 마주쳤으니 오늘만 벌써 네번째였다. 세번째 만남까지 말 한마디 나눈 적이 없으니 오늘에서야 드디어 통성명을 하게 된 것은 윤하의 기준에선 상당히 늦은 편이었다. 그는 아회의 지팡이를 보고선 고개를 갸웃했다.
" 분명 다리가 불편한 것 같진 않았는데 말입니다. "
물론 다리가 불편한 사람만이 지팡이를 짚는 것은 아닌지라 그는 별거 아니겠거니하고 자체적으로 결론을 내리고선 아회를 바라보았다. 양 눈의 색이 다른 홍채가 상대방을 향하고 이내 눈웃음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 바쁘지 않으시다면 ... 어디 앉아서 얘기하는건 어떨런지요? "
근처의 벤치를 가르켰다. 그가 오래도록 공원을 다니면서 찾아낸 그늘이 사라지지 않는 벤치였다. 태양이 움직임에 따라 햇빛에 노출되는 벤치도 있었는데 공원의 몇몇 벤치들은 그러하지 않았고 그가 가리킨 것은 그것들 중의 하나였다. 상대방이 거절하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지 먼저 가서 벤치에 자리를 잡은 그는 손가방에서 능숙하게 무언가를 꺼낸다.
" 마침 주전부리도 있으니 말입니다. "
아침에 갓 구운 한입크기의 쿠키들과 차게 식힌 보리차였다. 이젠 낮의 날씨도 조금씩 더워지고 있었으니 뜨거운 것은 자기 전에나 조금 마시고 있었다.
자극. 자극이라. 떠올려본다면 이전에 농질이 방문했다가 돌아갔을 때는 하 사감님이 반응했다. 그렇다면 그것도 자극의 일종일까? 이런 일이 앞으로도 반복될거라는 불길하면서도 짜릿한 예감이 들었다. 남자의 말에 의하면 아직 사람이 더 있다. 농질. 이 사람. 그리고 궁기라는 사람. 최소 셋인데, 이들이 원하는 목표가 무엇인진 모르겠으나 학당 사감들을 전부 자극할 속셈이라면 최대 다섯은 되겠지.
"궁기라는 사람. 꽤 많은걸 알고 있나봐요? 저번에 허락하느니 어쩌니 했던 것도 그렇고... 오빠랑 농질 언니를 이끌어주나요?"
아무래도 석연치가 않아 다시 물어보았다. 어제는 너무 피곤해보여 답을 얻지 못했는데, 오늘이라면 대답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가현은 남자의 머리를 다시 쓰담어주었다. 말동무 안 해줄것 같았는데 역시 말로 잘 구슬리면 불가능한건 없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방긋 웃는다.
"응. 그럴 것 같았어. 포목점에서도 주인한테 같은 방법으로 홀리게 했었죠. 근데 신기하네. 그때도 누가 물에 데려가지는 말라고 했던 거예요? 궁기라는 사람이 그랬던 걸까요~?"
저 또한 욕조의 빈 자리에 팔을 척 올려놓고 턱을 괸 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지금껏 노랫소리로 홀리게 만든 사람이 한둘이 아닐거라는 것은 예상하고 있었다. 그동안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양 같은 학당 학생들을 공격했던 다른 학생들. 그리고 포목점 주인. 이번에 어디론가 달려간 학생까지. 생각해보면 희안하기도 했다. 그렇게 사람을 홀리게 해 마음대로 조종하는 남자가 수업은 안 가냐느니, 저 학생 죽을건데 안 잡느냐니 하는 상식적인 물음을 하다니. 의외로 좋은 사람일지도 몰라..?
이윽고 가현은 한바탕 웃음을 터트린다. 물에 데려간다. 누구를. 나를? 가소롭다는 뜻이 아니었다. 자신의 사랑 방법과 꽤 유사하지 않은가. 자신 또한- 죽음으로써. 산 제물로 바쳐짐으로써 그 사랑이 오롯이 완성된다고 믿고 있었는데. 그저 가현의 억지일수도 있겠으나 그런 것은 안중에 없었다.
"아하~ 오빠. 물 그거, 오빠한테는 그냥 평범한 의미가 아니죠? 나를 그리로 데려가겠다는 말이예요? 그렇게 물에 데려가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해요? 그냥 둬?"
더 알고싶어. 좀 더 알려줘. 내게 알려주는 만큼, 나도 당신에게 많은 걸 베풀어주며 포용해줄수 있으니. 입꼬리를 올린 채 미소를 유지하며 독백하고는 다시 남자의 머리에 손을 얹어 쓰다듬었다. 물기가 축축해 보송함인지 부드러움인지 분간하기는 힘들겠지만 아무튼.
"안 끌어낼테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지금 이 장소에서든. 아니면 이미 오빠가 물 속으로 끌어들인 사람들이든... 결국 그들이 원하는 대로 결말을 맞이했고, 오빠가 원하는 대로 물 속에 놔둘수 있는 거잖아요?"
그게 당신의 바램이라면 자신이 그것을 흐트러트릴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나중에 제 사람들마저 그렇게 만들어버린다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기야 하겠으나- 아직 그러지는 않았기 때문에 가현은 태연할수 있었다. 이 목소리를 들으며 여기서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자신마저도 꿈결 속에 잠겨드는 느낌이 들어 기분 좋았다. 잠오는 목소리. 나중에 잠 안오면 자장가 불러달라고 하기 딱 좋은 목소리. 그렇게 여기며 가현은 방싯 웃는다.
"아. 그건 그렇고 학당에는 도대체 어떻게 들어올수 있었던 거예요? 나 깜짝 놀랐다니까. 외부인이 들어와있을 줄 누가 알았겠냐고요~"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제법 예상 외의 상황에 잠깐 어안이 벙벙했던것 같기는 했다.
그 일이 있은지 어느덧 이틀. 학당의 문이 닫힌지도 그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아직은 상황이 이리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일까, 당시의 싸움을 직접 겪지 않은 대부분의 학생들은 약간의 불안을 표출할지언정 평소와 같은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사건의 한복판에 있던 나머지 학생들은 상태가 어떨까? 돌아오자마자 종일 시체에 대해서나 생각하고 있다가 그 흥미를 가라앉자 곧바로 떠올린 생각이란 게 이런 몹쓸 궁금증이다. 백룡이란 끝없이 궁구하는 사람들의 집합이니 불가항력이었다. 그제의 사건에 아무런 유감을 느끼지 않은 유현으로서는 현 사태에 위기감을 느끼기보다도 다음 탐구를 이어가는 일이 더욱 중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멀리 움직이기 싫어하는 양반이 친히 적룡 기숙사에까지 쳐들어왔지 뭔가.
유현은 복도에 늘어선 방문의 개수를 천천히 세었다. 오는 동안 길은 헤매지 않았다. 찾으려는 방에는 이미 몇 번 정도 방문한 경험이 있었으니―다만 보통은 제 발로 걸지 않고 들려서 왔던지라, 멀쩡히 걸어서 오려니 방향이 헷갈리긴 했다― 어려울 일도 없었다. 가물가물한 눈 탓에 이 문이 맞는지를 몇 번이나 확인한 후에야 그가 방문을 툭툭 두드렸다.
"온화야, 안에 있어?"
대답이 없다면 반응이 돌아올까 해서 문에 귀를 대어 보았다. 기다리는 동안 유현은 마지막으로 보았던 온화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학생들의 상태를 보겠다며 여기까지 온 이유는 현장에 있었던 사람 중 아는 얼굴이 온화 외엔 없었던 탓이기도 했지만, 그밖에도 온화가 그날에 보였던 모습이 뇌리에 남았기 때문이다. 슬픔이라기엔 지독하고, 두려움이라기엔 괴로워 보였던 그 얼굴을 다시금 떠올린다. 지금까지 내 앞에서 그런 얼굴은 한 적 없는데. 실마리만이라도 좋다. 그는 그때의 일에 관해 알고 싶어졌다. 그리고 화유현은, 알고 싶은 무언가의 앞에서는 절대 참지 않는 멧돼지나 다름없는 인간이었다. 그 멧돼지는 이제 빚쟁이처럼 맹렬하게 방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