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편이 된 누군가의 모습이 자꾸만 아른거린다. 일제히 몰아친 도술에 휘말려 찢어지고 불타오른 어느 사람들. 그는 사건이 유야무야 마무리되고 현장이 수습되는 동안에도 그들의 조각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언뜻 제 한 손 보태어 엉망으로 발겨 버린 시신들을 마지막까지 확인하고자 하는 집념이라도 있는 듯했다. 시신의 앞에 다가가 몸 낮추고, 흐릿한 시야를 분명히 해가면서까지 그것들을 눈에 담고자 했다. 발걸음을 돌려 순순히 돌아간 그나마의 결정도 통제할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돌아가란 지시가 없었더라면 유현은 끝끝내 그 자리에 붙박여 날이 새도록 그것들을 내려다보고 있었으리라. 그것이 제 어떠한 욕망을 충동질했기에. 몸. 한때는 숨쉬던 사람들의 마지막 흔적. 인간으로 난 모든 이들이 공평하게 가진 유기有機의 증명. 그것들을 보고 있자면 살 안의 것들을 바라는 충동이 치솟는다. 진주를 캐내려 조개의 살을 헤집듯, 볼품없이 뒤엉킨 조직들의 틈으로부터 찬연히 빛나는 가치를 찾아내고 싶어지는 것이다! 숨이 멎은 순간부터 이것들은 더는 아무런 의미 없는 껍데기일 뿐이라는 사실은 물론 알고 있다. 육肉은 사유하는 인간을 정의하는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는 것 역시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욕망이란 으레 이성을 제치고 뇌리에 들어차고 말지 않는가. 그날의 광경은 이미 화상과도 같이 선명하게 남아 기어이 오늘에까지 따라붙었다. 그에 화유현은 흔연히 사유한다. 골몰하는 뇌중에 떠올리는 것은, 때아닌 유년의 기억이다.
오래 전부터 나는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어렸을 적엔 그 이유를 몰랐다. 아니, 사실 완전히 모르지는 않았다. 단지 유충했던 이지로는 이리저리 얽힌 감정의 골로부터 어떤 갈래를 구별지어야 할지, 그 하나하나의 결에 어떤 이름을 붙여 주어야 하는지를 깨우치지 못했을 뿐이었다. 뭉텅이져 쏘아지는 감정의 틈바구니에서 가장 뚜렷하던 정서가 무엇인지는 직감으로나마 깨닫고 있었다. 적개심. 그것으로 인해 나는 내가 늘 그들에 속하지 않음을 여실히 되새겨야만 했다. 원인은 어디에서부터라 지목하기도 무엇한 난제였다. 그 단초가 내 집안의 관습적인 습속 탓인지, 나라는 인간 자체의 이상성 때문인지, 내가 그간 일으켜 온 문제 때문인지, 그 모든 것을 포괄하고도 남은 여러 문제점 탓인지. 사실 이는 어려울지언정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존재라 해도 거창할 것 없었다. 배척은 내게 상처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뭉클한 체온과 따뜻한 말 한 마디가 멀다 하여 외로움을 느끼기에는, 나는 이미 그따위 따돌림 따위와는 비할 수 없는 중대한 문제를 떠안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스스로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달랐던 모양이다. 그 사람은 회계 보조 역으로 고용되었던 여자였는데, 사정이 있어 학당에 다니지 않고 일찍부터 타향살이하며 지내는 중이라 자신을 소개했다. 아직은 소녀라는 말이 어울릴 나이였지만 어렸던 내 눈에는 충분히 어른으로 보인다 생각했다. 그는 늘 무심한 채로 홀로 겉돌던 나를 퍽 가엾게 여겼던 모양이다. 어쩌면 살던 곳과는 딴판으로 다른 싸늘한 객지에서의 외로움을 내게서 겹쳐 보았던 건지도 몰랐다. 어느 날부턴가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먼저 다가와 친밀하게 말을 붙이고, 짧은 휴식시간을 쪼개어가며 함께 시간을 보내주었다. 내게 부족한 것들을 챙겨 주고 내가 괜찮다 여기는 상황을 그렇지 않다 말해 주었다. 어른들은 물론 이 상황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나 내심으로는 자신들의 처사가 부당함을 알았던 것인지, 종종 그에게 핀잔을 두곤 했지만 적극적으로 금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차라리 그때 막았더라면 그 애에게는 나았을 텐데. 나는 그에게서 많은 것들을 얻었다. 상식을 더분 온갖 사소하고 많은 이야기와, 혈연으로 이어진 사람들에게서는 엿보지 못했던 다채로운 표현들, 그리고 내게는 끝내 와닿지 않았던 애정을. 그래서 나는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다. 옳게 말하려면 편안한 존재로서 기호하기 시작했다는 편이 더 적확하겠다. 당시에 어렵다 느꼈던 다른 사람들에게였다면 감히 품지도 않았을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순전히 그 때문이다. 나는 자연하게도 그 사람에게 관심이 생겼다. 그 사람이라면 아마 늘 그래왔던 것처럼 나를 용납해 주리라 함부로 짐작했다. 단 한 번도 드러내지 못했던, 해소되지 못할 오래된 궁금증에 그만 불이 켜지고 말았다.
아아아악!
비명이 들렸다. 귀청을 찢을 듯한 고성에 놀란 나머지 칼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 찔린 상처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피는 까진 무릎이나 긁힌 상처 따위에서 보던 것보다 진하고 거세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평온하게 잠들어 있던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말이 되지 못할 신음과 울음을 뱉어내었다. 아니다, 그는 분명하게 무어라 말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지평을 발견한 기쁨에 그저 들떠 누가 건네는 말이든 알아듣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건 뭐야?"
왜 늘 보던 때보다 얼굴이 질렸을까? 왜 화를 내? 왜 숨을 똑바로 쉬지 못하지? 눈물은 울지 않을 때도 흐르는 것이었나? 표정이 왜 그럴까? 지금 그 반응은 무엇을 뜻해? 당초에 원하는 것을 취하지 못했어도 나는 그 반응만으로 무척 즐거워졌다. 아직은 가장 원초적인 표출조차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던 때라, 태어나 사람의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간은 어느 누구도 쉽게 보여주지 않던 모습을 놓칠 수는 없었다. 나는 대답을 종용하려 했으나 그는 피 흐르는 허리를 부여잡고, 발걸음 위태로이 넘어져 가면서도 꾸역꾸역 기듯이 자리를 뛰쳐나갔다. 왜 도망을 가나. 몰래 하려던 짓 들킨 이상 더 할 생각 없는데. 아픈 게 싫었나? 그렇다면 내 손에서 칼을 빼앗으면 그만 아닌가. 무어라고 외치고 웅성대는 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것 같다. 나는 한창 달갑다가도 김이 새어 가만히 앉은 채 도망치는 뒷모습을 지켜보다, 문득 또 하나의 의문을 갖는다. 얼룩진 칼의 날 위로 언제나의 무념이 어슷이 비쳤다.
나는 나를 파헤치기로 했다. 방금과 같이 나를 가르고 속을 살피면 무엇이라도 의미 있는 것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드러난 근육에도, 막을 새도 없이 솟아 웃옷을 흠뻑 적신 핏물 속에도, 내가 찾던 무언가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 사실이 못내 싫었다.
"왜 그 아이를 찔렀니?" "궁금했어요." "무엇이?" "살 안쪽에 뭐가 있는지 보고 싶었어요. 열어 보면 보일까 해서." "네 팔은 왜 그었고?" "누나가 왜 소리를 지르는지 알고 싶었어요. 나도 아프면 알 줄 알았어요."
거짓말이다. 나조차 나를 설명치 못하기에 말 돌렸다. 가장 순수하고 무지했던 그때에도 그 사실 하나만은 똑똑히 직감했기 때문이다. 곧은 말을 꺼내는 순간, 지극히 당연하여 진절머리가 나는 그 사실을 직시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으므로.
"……어째서 그런 것들이 궁금한 거야?"
나를 취조하던 어느 친척은 어쩐지 할말을 찾지 못한 듯 어물거리다 물었다. 이 물음에만은 입 열지 못하고 대답을 삼켰다. 나는 알고 싶었다. 깨달아 더는 의문하고 싶지 않았다. 태어난 순간부터 나를 따라 다니는 이 지독한 결핍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당신들이 나와는 무엇이 다른지 알고 싶었다.
서로 생각부터 통하지 않았으니 어디에서부터 훈육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을 테다. 나는 혼이 나긴 했으나 호되게 꾸지람 듣지는 않았다. 어른들은 내가 저지른 행동이 무척이나 잔악한 짓이니 다시는 이런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돌아가며 단단히 일렀으나, 왜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인지를 설명해주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좋은 행동이나 나쁜 짓이라는 둥의 모호한 말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엔 상해를 금하는 암묵적인 약속이 있다 말해 주었다면 차라리 이해했을 것이다. 나는 영 알아듣지 못했으나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차피 세상은 어느 하나도 내게 친절히 일러 준 적이 없었다. 이해 없는 수용일지라도 나는 따르기로 했다.
그때부터, 아니, 태어나 사유란 행위를 할 수 있게 된 순간부터. 무엇 하나 나는 알 수 없었으며 무엇 하나 내게는 답이 되지 못했다. 내가 온전히 이해한 것이란 결론 없을 탐구에 매달려 천착하기뿐이다. 나는 그 속에서 벗어나고 싶다가도 어느 때엔 하릴없는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다. 생의 모순이 통렬했다. 나는 그 모순만은 사랑할 수 없을 것만 같다.
굉장히 많은 일들이 있었던 하루가 지나가고 다음날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MA님을 짧게나마 영접한것만 해도 벌써 세번째였으며, 정말 예기치 못한 뜻밖의 인물마저 기숙사 방으로 데려왔으니. 이 날은 절대 잊지 못할 날이 될 것이다. 날짜 아래에 빨간 글씨로 신 님 영접, 그 세번째 날.이라고 곱지만 어딘가 비뚜름한 악필과 명필 그 사이의 글씨로 적어두고 잠들었지.
늘 그랬듯 쪼그리듯 동글게 몸을 만 자세로 잠을 청하던 가현은 제 눈을 비추는 아침 햇살에 천천히 눈을 뜬다. 지금이 몇 시야. 굉장히 푹 잔 기분인데.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어제 잠들기 전 미리 감아뒀던 머리를 정돈한다. 이리저리 뻗치는 걸 정리하기란 생각보다도 더 힘든 일이었기에, 가현은 물뿌리개로 물을 몇번 뿌려가며 빗질해 정돈한다. 원래 같았다면 자고 일어나서 개운하게 씻을텐데, 지금은 손님에게 욕실을 내어줬으니 어쩔 수 없는 패턴 변화였다.
"저기. 일어났어요? 아침이예요. 해가 중천에 떴다구요~"
가볍게 욕실 문을 노크하는 정중한 행동과는 상반되는 조심스럽지 않은 몸동작으로 벌컥 문을 열어젖힌다. 며칠 밤낮을 샌 것 같으니 아직 자고 있을수도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일단 불은 켜지 않았다. 일어난걸 확인하고 나서 켤 생각이었다.
"안 일어나면 욕조 물 다 빼버릴거예요~? 나 심심해. 나랑 말동무 좀 해줘요~"
그리고 역시 그런 행동과는 또 정반대로 살며시 욕실 안으로 들어가 욕조 근처에 쪼그려앉아 나긋나긋하게 이야기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제의 의문점이 다 해소되지 않은 탓이었다. 막 자고 일어난데다가 학당 밖으로 나가지를 못하니 심심하기도 했고.
>>470 유현이 심리였구나 백룡에 딱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q^ 궁금하다고 사람을 찌르면 안되냐고? 아니 돼. 무조건 돼 하고싶은거 다 해 해부? 절개? 말만 해 ^q^(임가현주 나가.) 어렸을때의 순수한 호기심 한가득..! 미식이구나 미식이야~~
그런 위협에도 연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직 사감일 당신이 돌보는 청룡의 학생인 자신을 해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당신이 그렇게나 감추려는 비밀을 멋대로 파헤치려 하는데도 이렇게 위협으로만 끝나는 것으로 확신한다. 지금은, 그렇다면 나중에는 알려줄 생각이긴 할까. 선배의 이름을 듣고선 연은 눈에 띄게 동요한다. 떠나가는 춘 사감의 뒷모습을 쫓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인다. 알려고 할수록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으니. 연은 고개를 내젓고서 기숙사로 돌아간다.
딸깍. 스위치를 눌러 불을 켠 가현은 다시 욕조 옆에 쪼그려 욕조에서 상체를 내민 남성을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맨날 천으로 가리고 다니길래 어떻게 생긴지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까 또 새로운 느낌이었다. 입가에 있는 타투가 꽤 인상적이었다. 옷이 쫄딱 젖었는데 괜찮으려나. 저 상태로 나가면 분명 눈에 다 띌테다. 물에 젖어있는 머리를 손으로 살살 토닥거려주던 가현은 어깨를 으쓱였다. 역시 하루만 잔다고 며칠 밤낮을 꼬박 지새운게 나아지지는 않는 듯 보인다.
"그러니까~ 사소한 거든 아니든 저랑 이야기 좀 나눠달라. 그런 의미예요. 언니의 부탁을 들어준거에 대한 보답이라고는 했지만... 정말로 그냥 잠만 자고 갈 생각은 아니었겠죠?"
남자의 물음에 정말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어제 조금 다급하게 데려온것도 있고, 졸려 보여서 얼른 푹 재웠으니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기도 했다. 옷이 물에 부딪히는 소리가 선명하다. 역시 저 상태로 그냥 내보낸다면 의심을 살 게 분명할것 같은데. 이걸 어쩐다. 수업 이야기에 가현은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으나 금방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으, 어차피 사감님들도 수업 불참하시는 일이 잦아서요. 이번에 동 사감님도 병가를 내시기도 했고~ 한번쯤은 그냥 농땡이 피워도 눈감아주시지 않을까요~?"
정말 당당하게 수업을 땡땡이치겠다는 것을 선언하는 가현이었다. 자신이 남들을 포용하는 만큼, 남들도 당연히 자신을 포용해주겠지. 자신감과 자기애에서 비롯된 강한 포용은 기어코 뒤틀리고 또 뒤틀려 그 방향성이 모호해지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 남자. 사감들이 본다면 분명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 것 같았다. 이전에 농질에게 보이던 반응들을 떠올려보고는 가현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적어도 자신이 여기 있으면서 의심을 안 사게끔 쭉 지켜보는게 낫겠지.
"그리고 당신을 그냥 내버려두기에는 걱정이 좀 되어서. 아, 자꾸 그쪽이나 당신 거리기도 좀 그런데. 오빠라고 불러도 돼요~? 아무튼. 말동무 해줄 거예요, 안 해줄 거예요~?"
말을 마치고 히죽 웃으며 손가락으로 입가에 있는 타투를 꾹 눌러보았다. 어제부터 느낀 거지만, 몽롱한게 꽤 귀여운걸.
모른다, 라. 어디에 있는진 모르는 걸까. 많고 두렵다, 영험한 존재에게 두려운 것이라면 무엇일까. 곰곰이 되짚어 보면 저주이지 않을까, 뇌리를 감질나게 스칠 뿐이다. 일단 좋은 것은 절대 아닐 터다. 아회는 목화를 달래기 위해 손을 들어 가볍게 쓰다듬는다.
"두려워 마시지요, 어떻게든 해결해 볼 터이니."
그리고 높다, 라. 아회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며 고개를 기울이듯 돌리더니 볼을 가볍게 비빈다.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그리 얘기하고는 현진 도사를 응시한다. 가도 되냐는 듯. 만약 허락 떨어지면 행여나 목화 떨어질라 고개만 슬쩍 기울이곤 자리 빠져나갔을 터다. 백룡 기숙사에 들릴 일이 있다.
>>485 최강 궁기님도 백룡 출신 범죄자라고..? 유현이도... 범죄도사 찍어보지 않을래...? 우리 갓캐 하고싶은거 다 해 임가현이 후원 빵빵하게 해줄게 ^q^(?) 아늬 쪼갈라본대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음 역시 백룡기숙사 시트캐야 과거사도 백룡모먼트 한가득이잖아~~ 그러면 지금의 유현이한테 옛날 이야기 해주면 흑역사 취급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