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많은 일들이 있었던 하루가 지나가고 다음날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MA님을 짧게나마 영접한것만 해도 벌써 세번째였으며, 정말 예기치 못한 뜻밖의 인물마저 기숙사 방으로 데려왔으니. 이 날은 절대 잊지 못할 날이 될 것이다. 날짜 아래에 빨간 글씨로 신 님 영접, 그 세번째 날.이라고 곱지만 어딘가 비뚜름한 악필과 명필 그 사이의 글씨로 적어두고 잠들었지.
늘 그랬듯 쪼그리듯 동글게 몸을 만 자세로 잠을 청하던 가현은 제 눈을 비추는 아침 햇살에 천천히 눈을 뜬다. 지금이 몇 시야. 굉장히 푹 잔 기분인데.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어제 잠들기 전 미리 감아뒀던 머리를 정돈한다. 이리저리 뻗치는 걸 정리하기란 생각보다도 더 힘든 일이었기에, 가현은 물뿌리개로 물을 몇번 뿌려가며 빗질해 정돈한다. 원래 같았다면 자고 일어나서 개운하게 씻을텐데, 지금은 손님에게 욕실을 내어줬으니 어쩔 수 없는 패턴 변화였다.
"저기. 일어났어요? 아침이예요. 해가 중천에 떴다구요~"
가볍게 욕실 문을 노크하는 정중한 행동과는 상반되는 조심스럽지 않은 몸동작으로 벌컥 문을 열어젖힌다. 며칠 밤낮을 샌 것 같으니 아직 자고 있을수도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일단 불은 켜지 않았다. 일어난걸 확인하고 나서 켤 생각이었다.
"안 일어나면 욕조 물 다 빼버릴거예요~? 나 심심해. 나랑 말동무 좀 해줘요~"
그리고 역시 그런 행동과는 또 정반대로 살며시 욕실 안으로 들어가 욕조 근처에 쪼그려앉아 나긋나긋하게 이야기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제의 의문점이 다 해소되지 않은 탓이었다. 막 자고 일어난데다가 학당 밖으로 나가지를 못하니 심심하기도 했고.
>>470 유현이 심리였구나 백룡에 딱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q^ 궁금하다고 사람을 찌르면 안되냐고? 아니 돼. 무조건 돼 하고싶은거 다 해 해부? 절개? 말만 해 ^q^(임가현주 나가.) 어렸을때의 순수한 호기심 한가득..! 미식이구나 미식이야~~
그런 위협에도 연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직 사감일 당신이 돌보는 청룡의 학생인 자신을 해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당신이 그렇게나 감추려는 비밀을 멋대로 파헤치려 하는데도 이렇게 위협으로만 끝나는 것으로 확신한다. 지금은, 그렇다면 나중에는 알려줄 생각이긴 할까. 선배의 이름을 듣고선 연은 눈에 띄게 동요한다. 떠나가는 춘 사감의 뒷모습을 쫓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인다. 알려고 할수록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으니. 연은 고개를 내젓고서 기숙사로 돌아간다.
딸깍. 스위치를 눌러 불을 켠 가현은 다시 욕조 옆에 쪼그려 욕조에서 상체를 내민 남성을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맨날 천으로 가리고 다니길래 어떻게 생긴지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까 또 새로운 느낌이었다. 입가에 있는 타투가 꽤 인상적이었다. 옷이 쫄딱 젖었는데 괜찮으려나. 저 상태로 나가면 분명 눈에 다 띌테다. 물에 젖어있는 머리를 손으로 살살 토닥거려주던 가현은 어깨를 으쓱였다. 역시 하루만 잔다고 며칠 밤낮을 꼬박 지새운게 나아지지는 않는 듯 보인다.
"그러니까~ 사소한 거든 아니든 저랑 이야기 좀 나눠달라. 그런 의미예요. 언니의 부탁을 들어준거에 대한 보답이라고는 했지만... 정말로 그냥 잠만 자고 갈 생각은 아니었겠죠?"
남자의 물음에 정말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어제 조금 다급하게 데려온것도 있고, 졸려 보여서 얼른 푹 재웠으니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기도 했다. 옷이 물에 부딪히는 소리가 선명하다. 역시 저 상태로 그냥 내보낸다면 의심을 살 게 분명할것 같은데. 이걸 어쩐다. 수업 이야기에 가현은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으나 금방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으, 어차피 사감님들도 수업 불참하시는 일이 잦아서요. 이번에 동 사감님도 병가를 내시기도 했고~ 한번쯤은 그냥 농땡이 피워도 눈감아주시지 않을까요~?"
정말 당당하게 수업을 땡땡이치겠다는 것을 선언하는 가현이었다. 자신이 남들을 포용하는 만큼, 남들도 당연히 자신을 포용해주겠지. 자신감과 자기애에서 비롯된 강한 포용은 기어코 뒤틀리고 또 뒤틀려 그 방향성이 모호해지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 남자. 사감들이 본다면 분명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 것 같았다. 이전에 농질에게 보이던 반응들을 떠올려보고는 가현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적어도 자신이 여기 있으면서 의심을 안 사게끔 쭉 지켜보는게 낫겠지.
"그리고 당신을 그냥 내버려두기에는 걱정이 좀 되어서. 아, 자꾸 그쪽이나 당신 거리기도 좀 그런데. 오빠라고 불러도 돼요~? 아무튼. 말동무 해줄 거예요, 안 해줄 거예요~?"
말을 마치고 히죽 웃으며 손가락으로 입가에 있는 타투를 꾹 눌러보았다. 어제부터 느낀 거지만, 몽롱한게 꽤 귀여운걸.
모른다, 라. 어디에 있는진 모르는 걸까. 많고 두렵다, 영험한 존재에게 두려운 것이라면 무엇일까. 곰곰이 되짚어 보면 저주이지 않을까, 뇌리를 감질나게 스칠 뿐이다. 일단 좋은 것은 절대 아닐 터다. 아회는 목화를 달래기 위해 손을 들어 가볍게 쓰다듬는다.
"두려워 마시지요, 어떻게든 해결해 볼 터이니."
그리고 높다, 라. 아회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며 고개를 기울이듯 돌리더니 볼을 가볍게 비빈다.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그리 얘기하고는 현진 도사를 응시한다. 가도 되냐는 듯. 만약 허락 떨어지면 행여나 목화 떨어질라 고개만 슬쩍 기울이곤 자리 빠져나갔을 터다. 백룡 기숙사에 들릴 일이 있다.
>>485 최강 궁기님도 백룡 출신 범죄자라고..? 유현이도... 범죄도사 찍어보지 않을래...? 우리 갓캐 하고싶은거 다 해 임가현이 후원 빵빵하게 해줄게 ^q^(?) 아늬 쪼갈라본대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음 역시 백룡기숙사 시트캐야 과거사도 백룡모먼트 한가득이잖아~~ 그러면 지금의 유현이한테 옛날 이야기 해주면 흑역사 취급할까?
학당의 문이 잠겼다. 아무래도 동 사감님이 잠궈버린듯 했는데 하 사감님이 난리를 쳤음에도 열리지 않는 것을 보면 닫혀도 단단히 닫힌 모양이었다. 허나 애초에 학당 밖으로 외출을 잘 나가지 않는 그에게는 재료를 사지 못한다는 것 빼고선 일상과 다를바 없는 나날이었다. 재료도 마침 사둔지 얼마 지나지 않은터라 충분하게 있었고.
그래서 그는 그저 평소처럼 기숙사를 나서서 학당 내부의 공원으로 향했다. 그가 높은 곳에 앉아있을때를 제외한다면 가장 많이 가는 곳이기도 했다. 그야 많은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이었으니 말이다. 예전보다 부쩍 홀로 앉아있는 시간이 늘어난 그였지만 이유는 알 수 없었다.
" 어라, 저희 구면이지 않나요? "
그렇게 공원에 도착하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감은듯한 눈, 자신과 비슷한 잿빛이지만 좀 더 푸른기운이 일렁이는듯한 머리, 일련의 사건이 일어날때마다 보이는 남학생이었다. 서로 가까이 서있던적도 있었기에 분명 자신의 얼굴을 알아볼 것이라 생각해 먼저 가서 아는체를 한 그는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 혹여 기억이 나지 않는다해도 일단 반갑습니다. "
그는 항상 이런식이었다. 조금의 연결고리만 있어도 일단 들이댄 다음 상대를 재빠르게 파악해서 최상의 관계로 끌어올리곤 했다. 특유의 눈치와 언변으로 가능한 일이었고 그것을 지금 눈 앞의 남학생에게도 일단 행하려는듯 했다. 그러나 상대가 어떤 기숙사인지도 모르는 상태라 조금의 기초적인 정보는 필요했으니.
" 흑룡의 모 윤하입니다. "
저번의 적룡 소녀때처럼 먼저 이름을 알려준다. 상대가 알려주지 않아도 상관 없었다. 그저 상대에게 자신을 각인시키기 위한 행동이었으니.
>>490 어... 어라 그러게요...? 혹한다(?) 어허 어허 넣어두세요 우리 아직 캐끼리 만나지도 못했어! 가현이도 뒤틀린 흑룡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으니까 만난다면 <모든 인간을 포용함>vs<모든 인간이 흥미로움>으로 자강두천할 것 같아서 재밌어 보여요...😊 그냥 그때는 그랬었지~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서 흑역사는 아닙니다! 사실 지금도 사람의 몸....에 흥미 보이는 건 완전히 못 버리기도 했고...👀
>>491 으아악 온화야 그건 안돼!!! 온화를 만났을 때의 시점은 저러면 안 된다는 걸 확실히 알았던 다음부터라 다행이에요...😇 맨 처음 만났을 때 구석에 짱박혀서 숨어 있었던 것도 1.집에서 왕따당함 2.워낙 이상한 애라 풀어놓으면 손님한테 이상한 짓 할지도 모르다 보니까.... 라는 설정상의 이유였답니다!
그럼 느긋하게 가볼까요~ 앗 일상이면 온화 드디어 밖으로 나오는 건가!!! 밖으로 나온다면 온화가 갈 만한 곳이 어디어디 있지...🤔 거기에서 마주친다거나, 아니면 궁금한 거 못 참는 크레이지 백룡맨이 그냥 적룡까지 쳐들어가는 상황()은 어떨까요?
지팡이 짚으며 여유로이 걷는다. 흥미로운 눈초리가 꽂히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어찌 눈치를 보겠는가? 아니, 죄인가. 어느 쪽이든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아회 기억을 더듬는다. 형님께서는 어떤 방에 있었을까, 그 방은 아직까지 남아있겠지? 서서히 구석으로,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곳으로… 하늘을 올려다 보듯 고개 올린다. 그리고는.
남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욕조 안으로 고개를 숨기자 가현은 픗 하고 웃음을 새어보냈다. 다시 불을 꺼줄까 싶기도 했으나, 그냥 정말로 잠만 자고 나갈 생각이었다는 이야기가 괜히 괘씸해서 그냥 놔두었다. 이건 괘씸죄에 대한 가벼운 벌이예요. 그 이야기를 직접 한 건 아니지만 그렇게 말하듯이 빙긋 웃는다.
"그런가봐요~ 저번에 노랫소리에 홀린 사람들 죽여버리고 난 이후부터 사감님 상태가 좀 안좋아보이기는 했어. 혹시 뭐 짚히는거 있어요? 아. 그럼 이제 오빠라고 부를게요?"
잠깐 남자의 눈을 응시하던 가현은 어깨를 으쓱인다. 영 모르겠단 말이지. 참인지 거짓인지. 제대로 드러나는 사람들은 읽기 쉬웠으나 이렇게 자기 주장이 확고한 부류의 사람들은 눈을 들여다봐도 그 사람이 거짓을 고하는지 진실을 고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근데 이건 싫은가보다. 그것 하나는 확실했기에 가현은 타투를 찌르던 손을 거둔다. 귀여워라. 더 찔러보고 싶지만 일단 참는게 좋겠지. 지금은 무해해보여도, 이 사람이 자신을 간단하게 죽여버릴수 있을 만큼 위험한 자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응. 내가 만족할때까지 어울려주면 적어도 오빠가 여기 머무는 동안은 푹 잘수 있게 해줄게요~ 맨날 그렇게 졸린거예요? 아니면 이번에는 더더욱?"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일상적인 이야기 속에 자신의 궁금증을 살살 끼워두기 시작한다. 과연 이 남자는 어디까지 자신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오래 놔둔다면 그만큼의 위험 부담이 커지겠으나 이미 신의 존엄을 감히 몸에 담아두고 있던 자신이었다. 그런 상황보다 더 위험한 상황은 자신에게는 없다고 여기며, 가현은 한껏 포용을 베풀어주려 했다. 그러고 보니까 그 눈으로 농질 언니랑 이 사람을 한번도 못 봤구나. 뒤늦은 아쉬움이 몰려왔으나 후회는 없었다. 언젠가 때가 되면, 물어볼수 있겠지.
"어라~ 그거 재밌네요. 제가 가지고 싶은게 무엇이든. 어떤 사람이든. 정말로 다 줄수 있어요~? 그 이야기 괜히 한건 아닌것 같은데, 제가 갖고 싶은게 뭔지 알고 있어요?"
우습기도 하지. 내가 진정으로 가지고 싶은게 뭔지, 네가 과연 헤아릴수 있겠니. 가현은 꽤 재밌다는 듯 눈을 빛내며 남자를 바라본다. 흥미롭다. 재밌다. 즐거워진다. 자신감은 곧 강함과 비례되는 것이며, 자신은 MA의 절대적인 힘에 반한 덧 없는 인간이었으니. 이 자는 신과 비교한다면 한없이 나약할 것이지만- 자신과 비교한다면 여러모로 앞서 있을 것이기에, 잘 구슬리고 다독인다면 힘이 되어줄수 있을지도 모르지.
>>499 ㅋㅋㅋㅋㅋㅋㅋㅋ 자강두천 하는거 뭔가 끌리는데(?) 유현이 시트 봤을때부터 임가현 분명 그 탐구심도 전부 포용해주고 받아들일것 같다는 강한 예감이 들었어 ㅋㅋㅋㅋㅋ 평범한 탐구심이 아니라는것까지 알게 되면 오히려 임가현 측에서 더 신기해하면서 '꽤 재밌네~ 네 탐구심은 어디까지일까? 알고 싶어졌어.' 이러고 들이댈것 같기도 하고() 앗 아직 못버린 모먼트구나~~! 앞으로 어떤 행적을 보여줄지 기대가 되는걸 ^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