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즈막한 발소리 대신하듯 검 울어대는 소리 났다. 그런 검 달래듯 품에 안고 쓰다듬었다. 안 돼. 지금은 밥 없어.
하 사감의 방 앞. 문 두드리고 열려던 손 무색하게 안쪽에서 벌컥 열렸다. 열리자마자 저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거구의 하 사감- 보다 펄럭이는 하얀 가운 먼저 보인다. 거기까지면 놀라지 않았을 것인데. 대뜸 나온 말이 화 내는 목소리 아니라 어벙해졌다. 눈 크게 뜨고 입 벌어진 채 하 사감 빤히 보고 있으니 들어오란 듯 옆으로 비켜선다. 그것 보고 뭐랄까 홀린 것 마냥 안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가고서야 퍼뜩 정신 차려 별 희안한 것 보는 눈으로 하 사감 돌아보았다.
"이 시간에 싸돌아댕긴다고 화도 안 내고 왜 그러시오? 징그럽게."
이제 보니 하 사감 얼굴 좀 벌겋다. 술 마셨다고 저런 거 같진 않은데. 온화 자연스레 품에 안은 검 보았다. 이것 돌려주러 온 줄 알고 들떴나? 진짜인가? 묻는 말 보니 그런 거 같기도 하다. 돌려주긴. 어림도 없지. 한 팔로 역린 더 꼭 안고 한 손 들어 하 사감이 든 와인병 가리켰다. 그리고 당당하게 말했다.
"얘는 어딜 가든 쫓아오니까 데려온 것 뿐이오. 거 술 좀 나눠주소! 저녁에 자느라 못 나갔단 말이네."
알콜 부족인지 다른 이유인지. 묘하게 투덜대는 말투로 말을 하곤 늦게서야 방 안을 둘러본다. 천천히 빙 둘러보는 것이 뭐가 있나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앉을 곳 찾는 거 같기도 한데. 술 얻어내는게 먼저인지 둘러본 끝에 와인병 보고 하 사람 얼굴 본다. 그것 빨리 내놓으라는 듯.
"변할 리 없는걸? 강하게 자리잡은 신념은 날이 가면 갈수록 커지는 법이며.. 타오르는 증오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더라도 꺼지지 않으니까. 두려워할건 없다고 생각해."
첫 번째 대목에서는 자신의 상황을. 두 번째 대목에서는 하 사감님에게 들은 MA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이야기한다. 제아무리 자신의 이성이 자리잡게 되더라도 그 이성의 한가운데 자리잡고 점차 세를 불리는 것이 신념이며 제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씻겨나가지 않을 인간들의 업보는 꾸준히 지속될 것이었으니. 시간이 흘러 희석되는 것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어쩌면 그것이 자신의 이성 그 자체이기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급하게 해치우려 할 필요 없어. 뭐든 느긋하게,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이어가봐~ 서두르다간 분명 중요한 것 한두개를 놓치고 그때 가서 후회하게 될걸?"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느낀것 중 하나는 빠르다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빠르고 정확하기까지 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 두가지 조건을 완벽히 충족시키지 못한다. 그렇다면 일에 있어서 급하게. 아마추어처럼 나서는 것보다는 시간을 두고 공들여가며 가장 완벽하고 합리적인 결과를 찾는것이 더 옳을 것이다. 이 남학생의 복수에 있어서도 크게 다를건 없다고 느꼈다. 진정으로 그들을 용서할 수 없고 씻겨나가지 않을 원한을 품고 있다면 사람은 더욱 치밀해져야만 한다. 계산적으로. 그리고 이익을 따져가면서.
몽블랑을 한입 더 먹으려던 가현은- 그 말에 포크를 놓고 형용할수 없는 미소를 머금으며 남학생을 바라보았다. 자. 이게 도대체 무얼 의미하는 말일까.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저 의도가 뭘까. 잡아달라고? 아니면 응원하라고? 자신은 끝내 저 남학생의 죽음으로 향하게 될 불순한 계획을 애원하며 막을 만큼 오지랖 넓고 선한 사람은 아니나, 그렇다고 제 사람이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길을 향하겠다고 이러고 있는걸 그냥 봐주고 있을 사람도 아니었다. 그렇게 내가 벽을 때리는 꼴이 보고 싶은걸까? 그렇다면 기꺼이 보여줘야지. 다시금 가현의 손에 힘이 들어가며 금방이라도 벽을 향할 기세를 내뿜다가- 이윽고 멈춘다. 아까 우동집에서 그랬던 것처럼, 깍지를 끼고 가현은 히죽 웃는다.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대화를 끊어버릴 순 없지. 슬슬 재밌어지려고 하니까.
".... 아하하~ 참 곤란한 난제를 던져주는구나, 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면서 잘도 그 인원에 널 포함시키고 있네?"
비뚜름한 시선이 눈 앞의 남학생을 향한다. 하여튼 이래서 미친다니까. 그냥 좋게 좋게 예뻐해달라고 하면- 어디 덧나기라도 하는걸까. 그렇게만 이야기한다면 자신도 이렇게 골머리를 썩혀가면서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었다. 과거부터 그런 것이었다고는 하지만, 포용심이 정점에 달한 이 시점에서 저런 이야기까지 들어버렸으니 여간 환장하는게 아니지 싶다. 우동집에서도 이야기를 시작할 적 그렇게 강조했건만 뭐가 아직 성에 안 차는걸까.
"내가 널 어떻게 해야 좋을까, 응? 붙잡을까, 아니면 방관할까, 그것도 싫다면 저학년때처럼 그만 하라고 벽을 때려버릴까. 이도저도 다 아니라면..."
영원히. 내 곁을 평생 떠나가지 못하도록 네 발목 묶어 우리 집 한켠에 고이 모셔둘까. 비틀린 미소가 입술을 타고 오른다. 자신의 집착을 그렇게나 갈망하고 있다면. 끝내 제 속 긁어가면서, 우동집에서 그렇게 어필했던것조차 끝내 몰라주고 자신을 무시한 채 마음대로 군다면. 네가 이야기한대로 나도 조금 내 마음대로 굴어도 괜찮잖아? 그럼에도 끝까지 자신의 애정을 무시하고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 채, 저를 위해주는 모습이 비쳐지지 않는다면 그때부터는 자신 역시 별달리 할 수 있는게 없었지만. 제 사람을 향한 애정에 대해 밑도 끝도 없는것의 반대급부로, 관심이 식어버린다면 더 이상 시선을 주지 않는 사람이기도 했었다.
"자꾸 그렇게 재미 없게 군다면- 나도 그냥은 안 넘어가."
허나 지금은 그것과는 별개였기에, 끝내 뒤틀린 애정을 가리지 못한 채 여실없이 드러내며 가현은 웃었다. 집착의 끝을 보여줘야 그 갈증 해소할 수 있겠니. 그리 덧붙이고 나서야 포크를 들어 몽블랑을 한 입 먹을수 있었다.
무엇을 제대로 말하나 싶었더니만, 순수한 선의였다라! 손가락이 일정한 박자로 파도치듯 움직인다. 토도도독, 한 번 더 물 흐르듯 부드러우나 단단한 소리를 내고 나서야 그는 생각을 끝마칠 수 있었다.
"……아무 짓도 하지 말라 명하셨다 들었습니다."
사람을 선택하게끔, 본성을 드러내게끔 해서 가장 유용할 사람을 곁에 두게 한다라. 지극히 당신 다운 생각이고, 당신이 베푸는 선의이자 애정이겠지. 우스웠다. 나의 형님께서는 여전히 높은 곳, 제 앉아있는 곳을 기준으로 삼으니 진창 밑에서 구르던 저를 이해하지 못하고 지고하신 행동을 보여주시는구나. 그것이 내게 있어 기만인 줄을 모르고. 아니, 몰라야지. 알고도 그랬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뺨을 할퀴고 물어뜯다 죽임 당해도 여한이 없을 것이니.
"기실 그 부분에서 섭섭했습니다. 제 나이도 곧 약관이거니와, 아무 짓도 안 하는 것은……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형님을 만나기 전까지 무엇이라 불리었는지."
저는 여기에서도 유령이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갖은 수모와 풍파로 인해 감정이라곤 잿더미가 되어버린 목소리로 덤덤히 읊조린다. 하고 싶었던 말을 눌러 담으며 다른 말을 꺼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제 곁엔 아무도 없었으면 했는데 왜 기껏 채워둔 물 잔을 엎지르십니까? 지금은 적기가 아니다. 드러내서는 안 될 것이 있고, 드러내야 할 것이 있다.
그리고 지금은 드러낼 것이 다른 방향으로 있지 않은가.
잘 새겨들었다. 그래, 새겨듣기만 했다. 타인이 돌발행동을 할 줄은 몰랐던 당신이 지금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당신이 방금 전까지 누구의 동생이겠느냐 얘기하던 존재가, 새겨들을 것만 같던 존재가 대담히도 이런 사달 벌이니 어떤 생각을 할까. 역겹다? 죽여버리고 싶다? 쓸모가 없다? 이런 것이 내 동생이라니, 짜증이 날 지경이다?
"좋아하실 줄 알았습니다……. 형님께서 좋아하는 것은 저 또한 좋아하는 것인데 틀릴 리가 없어야지요."
어느 쪽이든 나랑 같은 생각을 하면 좋을 텐데. 내가 가진 생각을 내어줄 테니 그 머리를 비집고 좀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도끼를 가져와 그 속을 갈라내야만 볼 수 있을까. 그래, 어릴 적에 첫 요괴를 잡은 손도끼가 남아있을 터인데, 그걸 쓰면 좋을까. 태연하게 생각하던 아회의 눈은 새파란 시선을 그대로 마주하고 있었다.
"무례를 용서하시니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뺨을 부여잡은 손가락 중 엄지가 더듬더듬 움직인다. 가면이 만져지자 아쉽다는 듯 해사하기 지었던 미소 애달파진다.
"다만 간만의 상봉이거늘, 아쉽습니다……."
나긋하게 부탁하는 것이 가면 한 번만 벗어달라는 것 같다. 허락하지 아니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설마 얼굴 더듬다 눈을 후벼파기라도 하겠나. 그럴 일은 없다. 아직은 그럴 시기가 아니다. 대신 느릿하게 한쪽 손 떼더니 손가락 까딱인다. 품 속에서 부적 둥실 떠오르며 두 냥 정도 감싸곤 날아간다. 주문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에 시간을 쓸 여력 따윈 없다는 듯, 그리하고 나서야 "눈치가 있다면 빠르게 내오겠지요." 따위의 말을 지껄였다.
심장 절반이 어쩌구 하는 말에 복잡미묘한 표정을 지은 온화 고개 작게 도리질 쳤다. 항상 혼내던가 화내던가 둘 중 하나인 사람, 아니, 사감이 사근사근하니 괴리감 엄청나다. 그래도 검 뽑아 승질 죽이게 할 일은 없어서 낫다. 지금은 귀찮거든.
"아- 그러니까 내가 죽지 않고 계속 만족 시켜 주면서 먹이도 주면 된다 이 말이구려?"
역린이 주인을 따르는 조건들을 하나하나 역으로 나열하고 한 쪽 입꼬리 올렸다. 그깟 거 별 것 아니라는 듯. 그래. 뭐 별거냐. 쥐가 새끼치듯 늘어나는게 사람이요 사방 들끓는 것 요괴다. 제 죽지만 않으면 되는데 그것 어려워서 그렇지.
방 안 둘러보니 제 방과 다를게 없다. 어질러졌다는 점이 말이다. 소파며 의자 있는 것 보고 다시 하 사감 보자 어이 없다며 새 술병 불러낸다. 불러냈으면 얼른 주던지. 히죽이면서 재밌었다느니 말하길래 친히 코 앞까지 다가가 직접 그 술병 가져오려 했다. 그러려고 손 뻗었다가 돌연 궤도 살짝 틀어 하 사감의 팔 위에 사뿐 얹는다. 그리고 천천히 느릿하게 쓸어내리려 하며 싱긋- 웃는 얼굴로 말한다.
"어째 혼자 있어도 혼자인 것 같지 않더라니. 다 보고 있으셨소? 그런 취미가 있을 줄은 몰랐소."
킥킥킥. 재밌다는 듯 우스워 죽겠다는 듯 실소 흘리고 하 사감의 팔에 슬그머니 제 팔 휘감으려 한다.
"같이 즐겼다면 나야 좋으나. 셈은 잘 못 된 듯 하오. 요괴는 서넛인가 베었고 인간만 여섯이었소."
그 주말 산에 풀어놓고 추격하여 잡았던 것은 모두 명실상부한 인간들이었다. 그들과 이전날 도륙했던 것 하나 더하면 여섯. 그리 말하고 하 사감 이끌어 소파로 향한다. 순순히 따라와서 소파에 앉아준다면? 건방지게도 그 무릎 위에 걸터앉아 감히 시선 똑바로 마주하려 했겠지. 한 손에 역린 늘어뜨리고. 한 팔 들어 하 사감 어깨에 두르려 하면서.
"보통 물건인 줄 알았으면 거기서 이것 갖겠다 하지도 않았을 거요. 보통 아닌 정도가 아니라 내 하나도 모를 것 분명하니. 차근히 얘기 좀 해주시구려. 무얼, 밤은 아직 한참 남았으이."
먼저 말을 꺼내주겠다면 저도 사양하지 않을 것이다. 잠은 진즉 다 잤고 밤은 아직 길다. 얘기할 시간은 차고 넘쳤다. 꾸밈 없는 얼굴에 해사한 웃음 번졌다.
>>542 네...?😳 제가 온화를 많이 아낀다고 말했나요???? 겉으로 경박한 듯싶지만 사실은 속으로 살벌하고도 우아한 살기를 가진 여왕님인... 사형을 집행하는 집행인 느낌의...!!!! 온화야!!!!!!(야광봉)
하지만 정말로...
한번 적룡은 영원한 적룡 니오: 너 *발 한 번만 더 지*하면 물어 죽여버린다. .oO(나는 짱!) 온화: 에잉, 놀아주기만 하면 되는 것을 뭘 그리 튕기실까, 김이 팍 새는구려! .oO(뭐라는 거야 역린이 밥으로 먹여버릴까) 아회: 인간이 다 그렇지 뭐... .oO(형님 머리 도끼로 갈라서 생각 좀 읽어보고 싶다)
1. 도화에 사역마라는 개념이 있었더라면 아마 늑대를 데리고 다녔을 거예요. 아니면 아무도 데리고 다니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지금은 땅신령을 데리고 더니지만요! 애칭을 지어줬는데, 무영無影이라 짓기에는 너무 뽀짝해서 '목화'라고 지어줬대요. 목화 님... 하면 삑 나타나서 귀인 님, 불렀어요? 불렀어요? 이러겠지... 부럽다...
2. 언급은 안 되고 있지만 여전히 일주일에 한 번은 어머니께 편지를 보내요. 언젠가는 또 써야 하는데 귀찮음 병이 도져버린 결과여라.😔 아회에게 있어서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는 아주 의미가 깊답니다... 자라가며 그 차가운 북부에서 온정을 쏟으며 지켜준, 유일하고 온전한 아회의 편이었으니까요.
역린이는 개구진 느낌이 있죠... 말괄량이 제멋대로 천방지축! 그 점이 매력적이랍니다... 목화는 아회가 다치면 어쩌지... 하는 생각으로 늘 소중하게 안고 다닐 느낌이에요...🤔 그러면서도 쉽게 놓아줄 것 같아요. 당장 자신이 졸업하고, 혹은 학당 내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가게로 돌아가라 할 정도니... 땅신령의 모티브를 보고 생각하는 건데, 오리지널로 가면 1일지 2일지 늘 궁금했어요...🤔🤔🤔🤔
참효자랍니다! 응, 어머니께 답장은... 6년 동안 단 한번도 오지 않았답니다. 네에... 일방적인 효도가 되어버렸지만 그걸로나마 만족한대요. 칼이라도 보내지 않은게 어디냐면서요...🫤
아 짤 보고 나 정신이 혼미해져버려~ 갠적으로 1번이 좋다 보송보송 최고... 소중히 여기면서도 쉽게 놓아주고 무슨 일 생기면 바로 돌아가라 하는 거~ 음 역시 아회는 주변에 정을 주려하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 아니면 깊게 주려 하지 않거나~ 그 이유도 상대를 위해서와 자신을 위해서 반반일거 같구? 목화야 열심히 삑삑해서 아회 햇살캐로 만들어줘~~(?)
답장이 오지 않아도 꾸준히 보낸거구나. 칼이 오지 않은게 어디냐니 참... 안타깝지만 한편으론 두근두근 기다리고 있어~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어머니가 그렇게 되고 아회는 궁기만 보면 치를 떨게 되었는지~ 분면 맵고 짜겠지만 극상의 맛일테지...! (츄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