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현의 꾹 쥔 두 주먹 위에 자신의 손을 살짝 얹으며 웃어보인다. 웃으면서 얘기하다가도 벽치기를 할때쯤엔 표정도 바뀌곤 했었는데 이제는 그럴 일이 없어 가끔은 그때가 그립기도 했었다. 가현이 그렇게 벽을 치면 윤하도 하던 이야기가 어디까지 진행되었던 입을 꾹 닫고 바라보았다. 가현과 이야기하는 시간은 지금이야 일상의 일부분이 되었지만 그때는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게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러니 가현과 사이가 틀어지는걸 바라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그런 반응이 나왔었다.
"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올만한 곳이지. "
분위기도 괜찮고 맛도 괜찮으니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좋겠다는 생각을 머릿속 잘 끄집어낼 수 있는 영역에 저장해둔다. 다음에 누군가가 그런 것으로 고민하고 있으면 추천해줄만한 코스가 하나 더 늘어난 것이니까 말이다. 그래도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가는 것은 조금 별로인 곳이기도 했지만 그것이 가게의 전략이라면 굳이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말차 몽블랑에 아이스크림에 마끼아또까지. 아무리 방금 양이 적었다곤해도 저렇게 먹을 수 있는건가 싶었지만 여학생들에겐 간식배가 따로 있다는 얘기도 들려오니 그는 자신의 몫인 아이스밀크티를 주문하고선 자리로 돌아왔다. 평소라면 가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꺼려했을텐데 자신이 먼저 이야기의 운을 트는 것을 보면 분명 심경의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윤하는 어디부터 이야기해야할까, 하고 고민하는듯 큼큼거리며 목을 가다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 운중(雲中) 모 가(家). 말 그대로 구름 한가운데 있는 것 같다고하지. "
자신의 진짜 성씨를 말해주며 이야기를 시작한 그는 천천히 예전의 이야기부터 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도포에 그려져있는 문양, 까마귀가 구름 한가운데서 바라보고 있는 그 문양이 가문의 것이라고 말한 그는 검은색에 둘러쌓여 살던 가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머리도, 옷도 검은색 일색인 그들의 몸에서 다른 색이 있다면 피부와 오른쪽의 붉은 눈이라는 것을.
" 나는 가문의 적자. 전(前) 가주의 첫째 아들로 태어나서 원래라면 가문을 이끌어갔어야했던 아이야. "
비록 제사장 가문에 비해선 별 볼 일이 없는 가문이긴 해도 몰락하기 전까진 꽤나 위세가 있던 가문이었기에 만약 몰락하지 않았더라면 그 또한 가문의 적자라는 입장에서 좀 더 다른 이들에게 알려져 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였다.
" 이 가문은 백(白), 그러니까 흰 것을 매우 경계하고 배척하는 경향이 있어. 집 안의 어떤 것도 흰 기운이 도는 것은 들여선 안되고 죽었을때 들어가는 관도 검은색, 그리고 관 주변을 특별한 검은색의 가루로 원을 그려 흰 것의 침입을 막기까지 하니까 말이야. "
어르신의 장례식에서 자신이 뿌린 그 검은 가루를 말하는 것이었다. 가문의 직계만 열 수 있는 상자 속에 들어있는 그 검은 가루는 만드는 방법이 가주에게만 전해내려오고 있었으나 가문의 몰락과 함께 제조법 또한 알 수 없게 되어버려 그 상자 안에 들어있는 것만이 마지막이 되어버렸다.
" 그렇다면 왜 나는 이런 모양새일까. 그야 난 백침(白侵)이니까. 흰 것에 물들어버린 아이가 태어나면 가문에 큰 일이 일어난다는 얘기가 있었지. 예전에도 종종 그런 아이들이 태어났었고 그 아이들은 머리가 밀리고 눈이 뽑힌채로 여생을 지내야했어. 죽이면 또 다른 큰 일이 일어난다기에 죽이지도 못하는 이들이 저지른 만행이지. "
다행인 점은 몇세대에 걸쳐서 태어난다는 것과 직계에선 한번도 태어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허나 윤하가 태어나면서 직계에도 처음으로 백침이 태어나버렸고 처음 겪는 상황에 뒷처리를 진즉에 하지 못한 그의 가문은,
" 그게 내가 태어나서인지 아니면 아다리가 잘 맞았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 우리 가문은 순식간에 몰락해버렸어. 단체로 미쳐버린 것처럼 서로를 증오하고 죽이기 시작했다고하지. 우리 부모님도 서로가 죽을때까지 죽였다고 했으니 말이야. "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그 이야기를 하는 그의 얼굴은 담담하기 그지 없었다. 여기까지 이야기했을때 주문했던 것들이 나왔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문한 음료과 간식들을 가져와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이런 얘기를 하면서 먹을만한 것들은 아닌 것 같은데 어차피 상대는 가현이고 그런 것에 연연할 아이가 아니니 그도 맘편히 이야기 할 수 있었다.
" 다행히도 그 참사에서 살아남은 극소수의 방계 사람들은 곡옥 구석에 숨어지내기 시작했어. 이상하지. 단순히 가문이 망한건데 큰 죄를 지은 것처럼 구석에 숨어서 그렇게 살고 있을까? 아직 그 이유는 알아내지 못했어. 하지만 곧 알아낼 수 있을꺼야. "
이야기가 여기까지 다다르자 묘한 희열에 찬 얼굴이 된 그는 창 밖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이 어디인진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곡옥쪽을 바라보는 것은 확실했다. 아무래도 그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방향에는,
" 불쌍한 사람들. 하나 남은 직계가 그 '재앙'이라 죽이지도 못하고 조치도 하지 못한채 그저 방치에 학대만 일삼았지. 어릴땐 아프고 서러웠지만 이젠 다 이해해줄 수 있어. 다 이해해줄 수 있지만 ... "
몽블랑과 함께 나온 포크를 집은 그는 손에서 포크를 살살 돌리다가 테이블을 살짝쿵 찍으며 말했다.
" 이해해주는 것과 용서하는 것은 별개잖아 가현아. 그치? 그들도 하고싶은대로 했을뿐이니까 나도 하고싶은대로 할 뿐이야. 가현아, 이제 스무명 남았어. "
이야기는 거기서 끝인듯 했다. 방금까지의 분위기는 어디가고 맛있는 것들을 바라보며 눈을 반짝인 그는 어서 먹자며 들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고 스푼으로 아이스크림을 살짝 떠서 입에 넣었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가현은 향해 있었다. 마치 평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얘, 너도 어차피 그 여자와 똑같단다. 아닌 척, 고결한 척, 모든 순수함을 다 떠안은 척 그리 살다가 언젠가는 정결한 것을 네 손으로 더럽히겠지. 아닐 것 같더냐? 내 역으로 묻자꾸나. 왜 학당 내부에서 ─의 동생임을 숨기고 살더니. "신령 님. 시생이 졸업하면…… 혹은 그 이전에, 학당에 위험한 일이 생기면 꼭 가게로 돌아가야 합니다. 알겠지요?"
1. 먼저 선물을 주고, 받은 뒤 다식인 걸 확인하면 잠시 덤덤히 상자를 매만지다 감사하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호랑이 가면을 쓴 쪽빛 머리의 남성이었다'라는 사실을 들으면 애써 미소를 짓는답니다. "그렇군." 하면서 잠시 말이 없어지다가도, 그 사람이 누구냐 물어보면 "……일전 은혜를 입었던 분이오." 같은 말로 얼버무릴 거예요. 그리고 온화가 떠나고 나면 호수에 던져 버리려다 덜덜 떨더니 그대로 주저 앉을지도 모르겠어요. 어쩌면 울어버릴지도.
2. '호랑이 가면을 쓴 쪽빛 머리의 남성이 전해달라 했다'는 말을 먼저 한다면, 아회는 받지 않으려 들 거예요. 아니면 받기가 무섭게 손에 쥔 상자가 우그러지고 다식이 뭉개지겠죠. 그리고 그 사람이 대체 누구길래? 라고 묻는다면 평소와는 다른 반응을 보일 거예요. 온화가 평소처럼 살갑게 안거나 다가오면 어깨를 딱 붙잡고 밀어내면서 "다시는 묻지 말고, 그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마시오. 낭자의 선행임은 알지만 앞으로는 어떤 것이든 의심하시오. 알겠소? 위험에 빠질 수도 있어." 라고 나지막하게 경고할 거예요. "내 반복은 격을 떨어지게 하니 두 번 입 열지 않을 것이오." 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을 꺼내면요, 음, 어, 아.
"격 떨어지게 굴지 말라 했을 텐데 내가 그리도 우스운 사람이지. 결국 인간은 다 그런 법이야……. 경고를 중히 여기지 않아 늘 사달을 내고 나를 탓해." 라며 스스로 멀어지고 자리를 뜨려 할 거예요, 응.
>>400 만약 꺾었던 꽃이 시든다면, 가현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해질까요. 마음에 드는 대상에 대한 소유욕이 분명히 느껴지는 답변이네요. 그리고 캐붕은... 모두들 상황에 따라 조금씩 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신경 쓰시는 만큼 정말 매력 있게 다가오고 있으니까요. 오열하지 말아요. (가현주 둥가둥가)
남학생의 이야기가 시작될 적, 가현은 그 내용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 하 사감님과 이야기를 나눌때와는 다르게 자신이 뭔가 의문이 들만하면 그 의문을 바로바로 해소시켜주는 이야기들이 이어졌기에 가현은 말 중간중간 끼어들어 의문을 표하는 것 대신 이야기를 경청할 수 있었다. 하 사감님도 이렇게 말해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끝까지 형제들 위치를 안 알려주겠다며 고집을 부리시고 말이야. 야속하다니까.
"으음~ 생각보다 단숨에 이것저것 다 알려줬는걸. 네가 항상 가문으로 불려갈 때 싫은 티를 내던게 왜 그랬는지 알것 같아~"
그렇게 듣게 된 이야기들은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방대한 양이었다. 설마하니 제가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을 들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조금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그 것들을 제때제때 반응하고 받아들이기에는 가현의 두뇌 회전은 꽤 느렸다. 가뜩이나 농질 건으로 충격이 큰 상태였기에 더더욱. 눈동자를 도륵 굴리며 가현은 잠시 침묵한다. 그러니까 이게 그렇게 된 일이란 말이지.
"하지만, 윤하? 이해랑 포용은 공존할 수 없어. 내가 내 상식으로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아무리 내가 흑룡 사람이라고 해도 포용할 수 없는 것처럼."
당장 자신도 모든 걸 포용한다고 그렇게 떠들고 다니지만, 조금이나마 MA의 이름을 더럽히고 그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에 한해서는 자비가 없었던 것처럼. 포용과 이해 둘 중 무엇이 먼저냐고 묻는다면 또 거기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기 힘들 것이었지만 적어도 자신은 이해에 조금 더 큰 방향성을 두고 있었다. 가현은 남학생 쪽으로 간 포크를 집어 몽블랑을 크게 떠 한입 가득 넣었다. 역시 몽블랑은 차가울때 먹는게 제일 최고라니까. 한참동안 입 안에서 퍼지는 행복한 달달함을 즐기며, 그 와중에도 머릿속으로 이것저것 정리하던 가현은 드디어 생각을 마쳤다는 양 말을 시작한다.
"그러니까 네가 그들을 이해할 필요는 없단 말이지. 네가 진정으로 용서하지 못할 사람들이라면 그런 사람들에게 이해 따위는 무의미해. 가끔은 자비롭지 않을 필요도 있어야 하는 법이야. 포용은 아름다운 단어이지만- 그 아름다운 단어조차 적용시키기 싫은 부류의 사람들이 늘 있으니. 그 정도 어긋남은, 흑룡 기숙사 사람이라면 누구나 포용해줄 수 있을거야~"
정확히 단어 하나로 단정짓기는 힘든 가현의 생각이었으나, 일단 자신이 느낀 것은 그러했다. 제게 소중한 사람을 함부로 대했다는 점에 대한 분노가 섞여 있었으며, 그럼에도 제가 나서지 않아도 이 남학생이 충분히 해결할만한 열쇠를 쥐고 있는것 또한 알고 있었기 때문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대신, 좀 더 시원한 복수를 위해 그것을 부추길 뿐이었다.
"그보다 스무 명? 너네 가문 사람들이 그정도 남았다는 이야기야?"
지금 당장으로써는 해석하지 못할 의문을 표출하며 고개를 갸웃 기울이고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아이스크림도 입 안에 넣는다.
>>400 앗, 가현이의 진단...! 얼마만에 반응하는 건지! 악마를 마주해도 거래를 할까 생각하는군요. 몸은 악마 따위가 가져갈 수 없노라, 이 말이 참 무시무시해요... 자신은 제물로 바쳐질 운명임을 알기 때문에... 그게 당연하기 때문에...(덜덜) 아, 아! 네, 맞아요, 믿고 있어요! 공평하고 자비로워요! MA망은 최고의 정당우먼이에요!!(비명) 어째서 꽃이 사람을 빗댄 것 같단 생각이 들을까요... 마음에 드는 꽃이라면 나만... 집착과 사랑이란! 소중한 사람을 구하는군요. 100명의 일반인은 사실 제물로 바칠 것 같단 적폐도 떠오르고 있어요, 응... MA 님의 뜻이겠거니 받아들이는 점도 매력적이어라. 신경 쓰는 점은 늘 보고 있어요! 캐붕이라지만 저는 그 사실 자체로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저도 아회 하나 굴리기가 힘든데, 매력 포인트가 넘쳐나는 가현이를 잘 표현해주시는 가현주는 늘 멋지고 빛이 난다 생각해요. 눈이 내린 곳에... 네, 갈래요! 갈래요! 같이 구경해요! 취미 활동은 거절하지 않는군요... 대단한 포용심이에요. 길을 잃었을 때 대처하는 방법도 자유분방함이 느껴지고요. 오늘 진단은 정말 알차고 맛있네요! >:3 냠냠, 즐겁게 먹었어요!
>>406 (쓰담쓰담) 아회는... 응, 조금 복잡한 아이니까요. 아니에요! 준 형님이 잘못이라고...할..까요? >:3 그래도 온화에게 바로 사과할 거예요. 내가 감정이 격해져서 그렇다느니 하면서. 그리고 음. 사실 두번째도 심하면 운답니다. 그런데 첫번째랑은 다르게 거의 정신이 나간 듯 알면서도 줬다고 혼비백산하게 울부짖을 뿐이지...🙄 (끄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