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니까, 다른 곳에 있는 것들 중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태어난 기린을 만들기 직전에 MA님이 직접 자신 안에서 개념을 떼어 만들었지. '
김 서방이 씩 웃으며 말했습니다. 마치, 그 때를 회상하기라도 하듯 잠깐 말이 없던 그가 고개를 돌려 온화를 바라봤습니다.
' 모든 신수는 MA님 안에서 개념을 하나씩 받았어. 다섯 용은 이 곳에서 자연을 맡고 있지. 청룡은 날씨, 적룡은 불, 백룡은 대지, 흑룡은 물, 황룡은 그들을 조율해. 다른 곳으로 넘어 간 신수들의 대용품으로 만들어져서 너희들은 그들의 독기를 받게 되었어! 물론, 그들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암, 그렇고 말고. '
김서방이 키득키득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그가 쪼그리고 앉아, 한 손으로 턱을 괴고 당신들을 내려다봤습니다.
' MA님 안에서 나온 개념들과 다른 곳으로 넘어간 신수들과 비슷한 것들을 그러모아서 만든 거라, 인간들에게 치명적인 독기를 내뿜지. ' ' 그 이상을 말하면 내 목이 달아나서 안 돼. '
다른 신수들에 대해서 질문해야 할 것 같습니다.
>>454 가현
' 당연히 있지! '
수지 도사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뒤를 가리켰습니다.
' 날붙이는 하나씩 가져가렴. '
오, 뒤에 쌓여있는 것 같습니다. 거기서 챙겨가면 됩니다. 당신이 부르자, 보리가 화들짝 놀라며 두 손을 꼭 모아 쥐었습니다. 그는 굉장히 놀란 것 같군요.
'어, 어...? '
놀란 거 맞습니다. 그가 눈을 데굴데굴 굴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 으, 으응... 가, 가자...! '
그는 손에 작은 단도를 쥐었습니다. 도끼, 창, 칼 등등 다양한 것들 중에 작은 단도를 택한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흘러가지는 않을 정도로 듣고 있으니 드는 생각은 하나다. 뭣하러 그리 많은 걸 만들었나. 신의 의중이나 의도나 생각 따위 제가 알 길은 없지만 너무 많은 것을 만들었기에 되려 신 본인이 뒤집히는 모순이 일어난 것 아닐까. 아. 역사 공부도 좀 해둘 걸 그랬다. 다음 수업 땐 기원이나 역사 관련된 걸 들어야지...
김 서방의 설명은 간단하고 짧았기에 남은 것도 듣기로 했다. 에구구. 늘어진 몸 일으켜 반대로 늘어져선 다시금 심드렁하게 말했다.
안 물어보고 그냥 갔으면 큰일날 뻔 했다. 역시 수업이니까 필요한 건 전부 있을텐데 그걸 안 챙겨주면 서운하지. 가현은 적당히 제가 쓸만한 걸 고르기 시작했다. 도끼? 이건 찌르는 목적으로 쓰기 힘들고, 베어내는 목적으로 쓴다고 해도 거죽이 튼튼하다면 정말 숙련된 사람이 내리찍어도 튕겨낼지도 모른다. 창? 찌르는 목적으로는 가장 적합하다. 끝도 날카로우니까 적당히 힘을 주고 찌른다면 푹 들어가겠지. 거리를 벌리고 다룰 수도 있으니 굉장히 편리하다. 칼? 거리를 좁혀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존재하나, 자신의 손에 가장 익숙한 도구다.
".... 어머나, 맙소사."
가현은 남학생이 작은 단도를 쥐고, 고른 이유에 대해 말하자 놀란 듯 남학생을 보다가 미소지었다. 맙소사. 그저 귀여워서 그랬던 거야?
"너가 더 귀여워, 귀염둥이~"
그래도 어느정도 실용성이 있고, 이 남학생 역시 제사장 가문이지 않은가. 제물을 바쳐보았다면 칼 다루는 것에는 조예가 깊을 것이다. 도사님이 말한 지칭대명사인지 아니면 그냥 가현의 사심이 들어간 애칭인지 모를 호칭으로 남학생을 칭하며,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의 칼을 집었다. 역시 이게 나한테 최고라니까.
"자. 다들 두고 가거나 깜빡 잊은 물건은 없지? 출발하자."
3인 1조인 만큼 가현은 제 조원들을 챙기며 물건들을 다시 체크했다. 칼 오케이. 부적 오케이. 그리고 서로간의 이름을 부르지 말 것. 어린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면 주의해서 접근할 것. 모든 걸 숙지했으니 이제 문제가 될 건 없겠다.
"그래? 그럼 다행이야~ 나중에라도 필요한거 생기면 언제든지 이야기해줘. 들어줄 수 있는 건 다 들어줄게~"
정말 자신은 충분히 그럴 의향이 있었다. 흑룡 기숙사였으니 당연한 호의였다. 아마 자신이 흑룡 기숙사가 아니었더라도 그랬을 것이다. 이렇게 무해한 남학생에게 어찌 호의를 베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가현은 옆머리를 배배 꼬는 남학생을 보며 한결같이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흐뭇하다는 말이 이럴 때 쓰이는 거 아닐까.
"근데 난 그게 의문이야~ 동 사감님은 흑룡 기숙사 뿐만 아니라, 이 학당 아이들이라면 다 좋아하시거든? 적어도 내가 아는 사감님이라면, 누굴 막 피하고 그러진 않으실 거란 말이야."
설령 MA님에게 몸을 자주 바쳤다고 하더라도, 어지간한 흑룡이라면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그것도 사랑이라면서 넘길 수 있을텐데. 가현은 눈동자를 도륵 굴렸다. 어쩌면 이유가 그 것 하나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남학생이 말해주지 않은. 어쩌면 남학생도 모르는 이유가 더 있지 않을까. 훗날 사감님에게 남학생의 궁금증을 여쭈어보러 갈 때 살짝 돌려서 말해봐야겠다.
"응! 당연 맛있지. 목은 좀 막히기는 하지만, 고소하고 폭신하고.."
물어보지 않은 것들까지 술술 이야기하고는 빵을 다시 한 입 가득 집어넣고 세상 다 가진 표정을 지었다. 아주 만족스러운 맛이다.
탈주자는 오늘도 즐겁게 머리를 푼답니다.😌 사실 어장 외적인 의미긴 하지만, 아회가 머리를 틀어올리는 이유는 제가 그런 캐릭터를 좋아하기 때문이어요... 펜이나 빗으로 대충 틀어올리고, 나중에 그걸 풀어서 쓰는 모먼트나... 여성 황제 옆의 단정한 국서 느낌... 아니면 대충 틀어올린 나머지 완벽한 모습에서 관리가 덜 된 부분을 참 좋아해서...(?)
충격 받은 표정을 짓는 남학생을 보며 가현은 마냥 웃었다. 역시 귀여운 애들은 한번씩 놀려주면 재밌다.
"...."
그리고 숲에 들어오고 나서야 뭔가 좀 꼬였다는 걸 알아챘다. 들어가기 전에 수신호를 정할 걸 그랬다. 그 어느때보다 듣는 것이 중요한 상황에서 이렇게 되어버리면 조금 곤란한데. 뭐. 어떻게든 되겠지. 즉흥적으로 그때그때 판단하고 대처하는 것 역시 몸에 익혀두어야 하니 가현은 우선 나아가기로 했다.
"왜 그래. 뭐가 들려?"
이윽고 남학생이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가현 역시 발걸음을 멈추고, 또 다른 학생에게도 멈추라는 손짓을 하며 챙기고 나서 온 신경을 집중하기 시작한다.
평화로이, 기숙사 방 안 흔들의자에 앉아 깜빡 잠들었던 날이다. 온기가 뺨을 간지럽히자 눈꺼풀이 느릿하게 눈동자를 드러낸다. 잠결 뚝뚝 묻어 나오는 시선에 흐린 주홍빛이 일렁이는 것을 보며 아회는 다시금 눈을 감았다. 노을이 진다. 빠르면 유시酉時, 아니면 술시戌時겠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미시未時였는데, 나도 참. 이렇게 잠이 많아져서야 큰일이구나. 아회는 곤란하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긴 머리가 등을 타고 우수수 쏟아져 허벅지 중간을 간지럽혔다. 방에 불을 때지 않아도 이리 따뜻한 걸 보니 바깥 날씨도 참 좋겠구나.
"……나도 참 무뎌졌어."
오래간만에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해야겠다. 가급적이면 인적이 드문 곳으로, 무리에서 동떨어져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은 평화로운 한때에도 고개를 내밀며 자신의 주변을 맴돌기 마련이니. 아회는 선추 달린 부채가 숨어있을 소매를 가볍게 흔들었다.
역시나 날이 좋다. 노을이 져도 공기가 적당히 차가우니 괜찮은 편이구나. 채비한 모습은 일순 흐트러졌던 기숙사 안 모습과는 다르다. 단정한 옷차림, 마땅한 비녀를 구하지 못해 얇은 붓으로 헐겁지만 확실하게 틀어올린 머리, 그리고 부기는 빠졌지만 드문드문 남아있는 잔 생채기와 옅은 멍 자국. 바깥으로 나가는 발걸음 소리는 나지 않는 수준에 가까웠다. 하물며 짚고 다니는 지팡이마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발걸음으로 유령처럼 기숙사를 빠져나가더니 당도한 곳은 인적이 드문 곳이요 호수 주변이다.
"…날씨 참 좋구나."
아회는 고개를 들어 코를 위로 치켜올리곤 가볍게 바람 부는 방향을 파악했다.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기분 좋은 싸르르 소리가 울린다. 사람은 없는 것 같으니 여유롭게 쉬어볼까.
기숙사에 아회 눈 뜰 적, 천부의 불 꺼진 주점에선 온화 눈 떴다. 얇은 비단 발 드리운 창으로부터 따순 노을빛 내리쬐는 방에 붉은 머리 한껏 흩뜨린 채 누워 고운 분내 나는 아씨 무릎을 베개 삼아 누운 그 모습이란. 고작 열여덟 먹은 계집애라고 보기 힘든 권태로움 있었다.
"아씨. 온화 아씨. 이만 일어나셔야지요. 곧 저희 불 킬 시각이어요." "ㅁ... 벌써 그리 됐소? 내 방금 눈 감은 듯 허이... 반 시진... 아니 일각만..." "그리 말하셔도 해는 똑똑히 움직였답니다. 자. 일어나야지요?" "에잉... 야박하긴..."
곤히 잠든 온화의 뺨을 무릎 내어준 아씨가 부드러이 쓸어주며 잠에서 깨웠다. 막 깨어 시간을 묻자 늦은 유시쯤 되었단다. 아직 해가 이리 환한데 유시라니. 계절이 바뀌긴 바뀌었구나. 제 어깨 받쳐주는 손길 받으며 미적미적 일어나 옆에서 내밀어주는 면경에 얼굴 비추었다. 헤- 한 제 얼굴 보고 피식 웃었다. 그 난리를 겪고 잘도 잤군. 마른 세수 하여 얼추 정신 차리고, 챙겨주는 옷 받아 걸치고 일어선다.
"가기 전에 잠시- 라 하고 싶지만. 더 있으면 이모님께 한소리 듣겠네. 한숨 잘 자고 가오." "예. 살펴가시어요."
배웅을 위해 따라 일어서는 아씨를 슬쩍 안고 얼굴 슥 가까이 한다. 그러나 익숙하게 태연히 웃는 그 얼굴 보고 다시 피식 웃으며 가겠노라 손을 흔들었다. 흔들흔들 떠나는 뒤로 대문에 붙은 종이 등롱에 붉은 불 켜졌다.
노을진 천부 거리엔 슬슬 하루의 고단함 적시려는 이들이 삼삼오오 걸어다닌다. 거리의 안쪽으로 들어오는 이들 사이를 붉은 두루마기 너울거리며 거스른다. 어느새 꺼낸 곰방대 물어 연기 내뱉으니 걷고 있음에도 나른함 배가 된다. 이대로 들어가기엔 아쉬우니 조금만 더 길을 새어볼까. 하여 가는 길에 보인 가게에서 주전부리 몇몇 골랐다. 종이와 노끈으로 포장된 따끈한 그것 받아들고 다시 설렁설렁 걸었다.
지나가세. 지나가세. 여는 어데로 가는 길인가. 괴이한 신께 가는 샛길이로세...
사람이 줄어들수록 조용해짐 채우려 홀로 흥얼거린다. 대충 걸친 안경알 너머, 멍한 눈으로 앞인지 허공인지 모를 곳을 보며 흔들흔들 나아간다. 이제 학당 안에는 들어왔던가. 기숙사는 저 앞이던가. 문득 물내가 스치듯 지나가 슬그머니 그리로 걸음 꺾었다. 멀지 않은 곳에 호수 정경 보일 쯤, 흐릿한 눈에 단정한 뒷모습 보이자 단박에 생기 빙그르르 돈다. 그 때부턴 발뒤꿈치 들고, 손에 든 것도 소리 나지 않게 들고, 조심조심, 살금살금, 치밀하게 그 뒷모습에게 다가가-
"와악!"
하며 덥석 안으려 했다. 혼자 어찌나 신이 났는지 달려들 적 긴 머리며 긴 옷자락이며 요란스럽게 펄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