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개는 죽음을 목도할 때. 선인장 비슷한 모양이면 나쁜 소식. 가현은 이 부분에서 의문을 품었다. 나쁜 소식에도 더 나쁜 소식과 덜 나쁜 소식이 있기 마련인데, 신선님의 행종이 여간 예사롭지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나쁜 소식이길래 저리 비밀스럽게 행동하는 걸까. 이것도 물어봐야지 했는데 사랑이라는 말 앞에 금방 지워진다.
"으응, 사랑이라...."
사랑. 짜릿한 울림. 특정 대상을 사랑한다는 개념은 가현에게는 무의미했다. 자신은 어차피 모두를 사랑하며, 절대적인 존재를 향한 해바라기같은 사람이기도 했으나 어찌 인간이라는 존재 따위가 신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가끔 그런 상상을 할 때면 행복해지기는 하나 가문 사람들이 안다면 당장 제 목이 달아날지도 모를 일이다. 기껏 제사장 후보와 차기 당주의 자리까지 앉혀놨건만 네까짓게 어찌 왕을 모독하냐면서 말이지.
"한번 찾아볼까요~ 이미 있을수도. 아직 없을수도 있겠지만요."
그래도 역시 궁금증은 못 참는다. 이런 이야기까지 들었는데, 다시 점을 치지 않는 게 이상하잖아.
발 잡혔을 적엔 어이쿠 하는 표정 슬쩍 떠올랐으나 밑에서 다리 거는 아회 보고 이건 빠져나갈 수 있겠구나 싶었다. 온화 발 잡힌 채로 바닥 짚은 손 움직여 빙글 몸 돌렸다. 거꾸로 있는게 썩 편치만은 않으니 일단 벗어나볼까. 잡힌 발은 내어주고 잡히지 않은 발 한 번 접어 그대로 현진 도사의 어깨를 걷어차려 한다. 성공한다면 그 반동으로 몸을 뒤로 빼내려 할 테고.
가현은 방 안으로 들어가는 남학생을 따라 들어갔다. 이야. 이렇게 또 타인의 기숙사 방에 초청을 받아보는 건 처음이었다.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절로 의식하게 되는 달달한 향이 코 끝을 간질였다. 음. 방에다가 향수라도 뿌리는 걸까? 창문을 열어 놨으니 그건 아닌것 같다. 뭘 엎질렀나 하던 찰나 가현은 기어코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를 내었다.
"프흐흐... 너 엄청 귀여운 건 알고 있니? 배가 많이 고팠었구나~?"
맙소사. 이 무해함은 도대체 뭘까. 지금 모습만 보자면 도무지 남학생이 그 유명한 송씨 가문원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아니. 그 이전에 자신과 동갑내기라는 게 정말 신기할 정도였다. 낯을 엄청나게 가려서 자신을 먼저 불렀으면서 눈을 질끈 감고 있지를 않나. 그냥 좀 구워먹을 수 있는거 그렇게까지 얼굴을 붉혀가며 한껏 부끄럽다는 티를 내지를 않나. 자신이 충분히 이해하고 포용해줄 수 있는 범위였지만 알면 알수록 조금 더 놀려주고. 괴롭히고. 삐지게 해 보고 싶을 만큼 귀엽게 보인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나눠준다면 나야 고맙지~ 입이 심심할때 먹을 간식거리는 언제나 환영이야~"
가현은 남학생이 가리키는 대로 얌전히 소파로 나아갔다. 처음 말한대로 사감님을 찾던 게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으나 지금은 대화를 나눠보는것이 더 재밌을 것 같았다. 어차피 사감님들이 이 남학생을 피한다면 결국 자신과 같이 찾으러 간다고 하더라도 달라지는건 없을 것이었다.
이윽고 가현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폐하가 누굴 지칭하는 말인지는 눈치를 챌 수 있었다. 몸을 내어준다는 이야기도 무슨 말인지 감이 잡혔다. 그러면 이 남학생은 그릇으로써 아주 적합한 인물일 터. 신의 그릇. 절대적인 존재의 그릇이기 때문에, 사감님들마저 겁을 집어먹고 피하는 것이겠지. 가현의 눈이 호기심을 담기 시작한다. 하지만, 순수한 호기심만 담은 건 아니었다. 마지막에 간택받는 것은 오직 자신이어야만 하는데. 어째서. 이 남학생의 어디가 그렇게 좋아서. 역시 제사장들의 수장 가문은 타고난 혈통 자체가 다른걸까? 절대적인 존재가 이끌릴수밖에 없는 무언가가, 이 남학생에게 있는 걸까? 시간이 걸리더라도 알아내야만 한다. 알아내서. 자신이 닮을 수 있는 부분만큼은 최대한 닮아가고 앞지를 수 있는 부분들은 따라잡을 엄두도 내지 못하게 격차를 벌려주겠다. 그런 어두운 생각들을 품은 채 가현은 미소지었다.
"그렇구나. 이래저래 난감하겠는걸. 사감님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더라도 바로바로 못 풀고. 힘들었겠다~"
일단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친해지고 가까워져서 자신에게 필요한 걸 알아낸다는 목적 이전에 흑룡으로써 이 가여운 남학생의 고민거리를 이대로 그냥 넘어가고 모른 척 한다면 가현이 아니다. 가현은 남학생을 한참 바라보다가, 무심한 듯 머리를 몇번 쓸어주었다. 아까 전부터 쓰다듬어보고 싶기는 했기 때문에 사소한 사심을 채우는 느낌이었다. 애초에 도와줄 생각이었으니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면 되겠다 하는 건 머릿속에 대강 그려져있던 상태였지만, 일단 사심 채우는 것에 열중하기로 한 가현은 일부러 앓는소리를 내며 한참 남학생을 쓰다듬고 고민하는 척을 했다.
"으으으음- 어쩌나-.... 아. 좋아. 그러면 내가 너 대신 사감님들께 네가 궁금해하는 것들을 물어보고, 알아낸 다음 들려줄게~ 어때?"
사감님들께서 나를 피해 다니지는 않았으니까. 가현은 그렇게 덧붙이며 남학생의 머리위에 올려두었던 손을 거둔다.
이렇게 난감할 수가. 센스가 좋다는 건 듣던 중 다행인 소식이지만. 낙법 취하려다 도사의 행동에 잠시 멈칫한다. 흙먼지의 매캐함이 자욱하고, 아회 비틀거리며 일어설 적, 휴식과 대련 재개에 한숨 돌리듯 고개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배려에 대한 짧은 감사를 뒤로 몸을 풀었으니, 슬슬 막아볼 준비도 해야겠지. 아회 흙먼지를 털어내듯 손 들어 툭툭 몸 가볍게 치듯 털려다 2차 습격에 무방비하게 당해버리고 만다.
"히잉이……. 낭자, 놓아주시오……."
드디어 반응했다. 움찔 떠는 것이 놀란 것이 틀림없다지만 히잉이, 큰 소리도 아니고 바람 빠지듯 기운 일절 없는 소리다. ……앙탈도 아니고 이 무말랭이 어찌하면 좋을까. 힘 다 쏟았다는 양 축 늘어진 채로 주변 소리에 몸 맡기기로 했다. ……그래, 기실... 지쳤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