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 작은 사건이 벌어졌다. 사용인들 사이에서도 얘기가 나돌았지만 일주일도 안 되어 조용해진, 고작 그 정도에 불과한 사건이. 그렇지만 변화는 있었다. 아회를 향한 사용인들의 행동이 변했다는 점이다. 여전히 사생아를 향한 멸시의 시선과 괴롭힘은 나아질 기미가 없었지만, 적어도 아회에게 약초를 캐러 가자며 요괴가 많던 설산에 두고 가 홀로 내려오게 하거나, 의식주를 건드리는 등의 괴롭힘은 줄어들었다. 수업을 들으러 갈 때면 드문드문 작은 얘기가 나돌았다.
"저 사생아가 그때 어땠는지 보았나?" "봤지. 사실 마음에 걸렸던 차야. 내게도 여덟 된 딸이 있어서 그런지……." "어휴, 저 안타까운 것. 잘못 태어났지." "차라리 도망쳤으면 몰라." "그러게나 말이야. 이렇게는 안 됐을 텐데." "……태어남이 죄는 아닌데." "거 입 좀 조심해! 여긴 북부야, 이 사람아. 태어난 것도 죄인인 곳!" "아이고, 맞다. 누가 들은 건 아니겠지?"
아회는 유령처럼 고요히, 대화를 못 들은 척 다시금 어두운 복도를 지나쳤다.
"평균보다는 높구나." "……." "다만, 네 무가의 수치다. 고작 남들보다 조금 위를 웃도는 수준으로는 그 수치를 지울 수 없지. 도련님을 보거라. 곧 조기졸업을 하신다는데 너도 더 노력해야지 않겠느냐? 발끝은 따라야지." "……." "알았다면 다리 걷어붙여라." "알겠습니다."
묵묵히 수업을 듣고, 꾸지람을 들어도 침묵했다. 아회는 쐐액, 하는 회초리 소리에 눈을 질끈 감았다.
"아니, 다리가 왜 이 꼴이람?" "……." "또 회초리 맞고 말을 안 했지, 내가 못 살아. 이런 꼴로 가주님을 맞이하면 도련님이 아니라 내가 죽는다고요!" "그럼 연고를 가져다주세요." "하아, 기다려 봐요."
돌아올 때도 사용인에게도 필요한 것이 아니면 입을 다물어버렸다. 아회가 불러 세우자, 사용인은 덜컥 문을 열다 고개를 휙 돌렸다.
하여튼 이상한 애라니까. 어차피 불쌍해서 봐주는 건데 뭐가 그렇게 좋다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뒤로 쿵, 문이 세차게 닫혔다. 아회는 사용인이 덜컥 나가버린 별채 구석에서 아회는 작게 중얼거렸다.
"아니야."
아닐까? 형님께서도 연민에서 시작된 정임은 분명할 것이다. 저번에, 비가 오던 날에 내가 처량했으니까. 그 이후로 잘 대해주시는 걸 텐데…… 어째서일까, 형님을 생각하면 조금 다르다. 사용인들이 이따금 불쌍하다는 시선을 못 이기고 도와줄 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들었으니까,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이런 애정이 절대 옳은 것이 아닌 건 안다. 마님은 날 싫어하니까. 형님께서도 가끔은 이상한 방법으로 도와주시긴 하지만.
"그래도……."
삭막한 곳에서 거의 유일하게 정 주는 제 가족이었으니까. 아회는 사용인이 연고를 가지고 올 때까지 기다리듯 몸을 웅크렸다. 형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날 떠나지 않을 거야. 그랬으면 좋겠다. 진짜 가족이 되고 싶어. 형은 내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듬직하고, 믿음직하고, 또…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형님을 떠나지 않을 거야……. 아회는 그렇게 사르르 잠들었다. 아회는 몸을 일으켰다. 숨을 쉬기 불편했던 나머지 몸을 뒤집고 한참이고 헐떡이다 밭은 기침과 식은땀을 줄줄 내뱉고 흘렸다. 베개를 짚은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쓰러지듯 몸을 다시 침대에 뉘곤 한참을 더듬거리며 얼굴을 더듬다 눈을 덮어 가렸다. 끅, 끄윽, 흐윽……. 고통에 가득 찬 신음과 함께 미처 내뱉지 못한 숨을 황급히 뱉고 들이켜며 몸을 웅크렸다.
>>176 아주 오랜만의 윤하 진단이어라! 부정할 수 없다면서 누구도 나와 같은 일을 겪지 않았다고 얘기하는 점에서 씁쓸한데도, 앞으로도 없을 거란 말이 소름돋게 다가오네요... 윤하의 목표를 생각하면 더욱이요. 식당에서 나온 뒤에 맛없다고 말하는 거 되게 귀여운걸요. 마음 속의 블랙리스트...ㅋㅋㅋㅋ 어쩐지 체계적으로 이건 이래서 별로였어. 라고 할 것만 같은 적폐가 있답니다. 무도회 복식...? 제가 살게요. 그 사진 사요!!! (지갑과 통장을 오픈해요!!) 나와라, 어른의 카드...!! 아아. 보고 말았어요. 보고 말았어요... 윤하야...(오열) 살아온 인생의 절반 정도가 없어지는 것도 안타까운데, 아아악... (또 긁어보고 마구 구르면서 오열중) 우리 윤하 행복하게 해주세요!!!!😭😭😭 진심을 얘기해!!! 진심으로 행복해지길 바라!!! 당위성이 있다면 몸을 내어주는 것도 안타깝지만, 이루어야 할 것이 있으니 유예시간을 달라고 하는 모습은 처절한 느낌까지 들어요. 모하... 모하모하! 모하!! 귀여운 어감이어요...!! 앗, 물건 때문에 골머리 앓는 거... 뽀짝한 느낌이어라. 물건을 잃어버리면 도깨비님 돌려주세요~ 하면 된대요..(소근) 윤하도 분명 찾을 수 있을 거라 믿어요...!! 찾아야만 해요!!! >:0
쌍둥이의 얘기만 들었을 때엔 마냥 순진하거나 제대로 물들어버린 것이 아닐까 싶었지만. 잠시 마주해보니 알겠다. 아마 그 누구보다도 생각이 많겠지. 생각의 크기를 100이라 하면 100 전부 바깥에, 남에게 돌려놓았을 것이다. 제가 그것을 모를 리가 없다. 어쩌면 헛다리일 지도 모르지만. 차라리 헛다리인 편이 흘려넘기기도 편하겠지만.
"그런가? 그리 드물지도 않은 듯 헌데."
쌍둥이에 대해 말을 하니 기억에 있단다. 저 도령도 엮인 적은 없으나 본 적은 있는 것이겠지. 그 쌍둥이는 서로 밖에 모르지만 그렇다고 폐쇄적이진 않으니 이리저리 뽈뽈대다 한 번쯤 눈에 들었을 법도-
"프흣!"
별안간 실소 흘린 것은 그가 웃으며 그 말을 했을 순간이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딱 그 문장 나온 직후다. 어디가 어떻게 웃겼는지 고개 돌리고 한 손으로 입가 가리며 키득키득 웃는다. 잠시 그리 웃는 동안 조소 명백한 눈동자가 한 순간만 그를 스쳐지나갔다. 마치, 가소롭다는 듯이.
갑작스런 웃음은 금방 사그라들었다. 때 맞춰 나온 차와 과자는 이지러진 분위기를 환기하기에 적절했다. 예절 베인 몸가짐으로 홍차를 한 모금 넘기고 마주 앉은 그가 마시는 모습도 본다. 차를 마시고 화과자를 먹자 조금 전보다 나은 표정이 되는 것도. 줄곧 응시하던 온화 잠시 머그잔 내려놓았다. 그리고 접시에 놓인 조개 모양 마들렌 집어 입으로 가져가며 말했다.
"여기저기 참견하러 다니는 것도 바쁠 터에 과자도 직접 굽는가. 하기사 그렇게 나도는 이라면 병상에 고이 누워있는 것은 좀이 쑤실 만 하지."
툭- 하니 말 던져놓고 마들렌 먹는다. 한 입 보다는 조금 큰 마들렌이었지만 온화 입에는 딱 맞았다. 얌전히 물어 넣고서 씹어삼키고 차로 입가심을 하고. 조금 줄어든 차에 같이 나온 갈색 액체를 붓고 티스푼으로 저어 섞는다. 맑은 적색이던 차의 색이 진해졌다. 다 저은 티스푼 내려놓았지만 머그잔을 들지는 않고, 비뚜름히 고개 기울이고서 마주 앉은 그 보았다.
"어째서 그렇게 사는지 내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으이. 가치 없는 것이 하는 참견 따위 터무니없는 민폐이거늘."
낄낄낄... 기울인 얼굴이 다시금 불온한 웃음소리 흘렸다. 올라간 입꼬리 내려올 줄 모르고 초승달마냥 휜 눈도 더 좁아지면 좁아졌지 풀어지지는 않았다. 그 얼굴에 내비치는 것은 악의 아닌 다른 것이었으나. 마주한 이가 무엇으로 볼 지는 모른다. 온화 그저 웃으며 줄곧 응시할 뿐이었다.
검은 개는 죽음을 목도할 때. 선인장 비슷한 모양이면 나쁜 소식. 가현은 이 부분에서 의문을 품었다. 나쁜 소식에도 더 나쁜 소식과 덜 나쁜 소식이 있기 마련인데, 신선님의 행종이 여간 예사롭지가 않았다. 도대체 얼마나 나쁜 소식이길래 저리 비밀스럽게 행동하는 걸까. 이것도 물어봐야지 했는데 사랑이라는 말 앞에 금방 지워진다.
"으응, 사랑이라...."
사랑. 짜릿한 울림. 특정 대상을 사랑한다는 개념은 가현에게는 무의미했다. 자신은 어차피 모두를 사랑하며, 절대적인 존재를 향한 해바라기같은 사람이기도 했으나 어찌 인간이라는 존재 따위가 신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가끔 그런 상상을 할 때면 행복해지기는 하나 가문 사람들이 안다면 당장 제 목이 달아날지도 모를 일이다. 기껏 제사장 후보와 차기 당주의 자리까지 앉혀놨건만 네까짓게 어찌 왕을 모독하냐면서 말이지.
"한번 찾아볼까요~ 이미 있을수도. 아직 없을수도 있겠지만요."
그래도 역시 궁금증은 못 참는다. 이런 이야기까지 들었는데, 다시 점을 치지 않는 게 이상하잖아.
발 잡혔을 적엔 어이쿠 하는 표정 슬쩍 떠올랐으나 밑에서 다리 거는 아회 보고 이건 빠져나갈 수 있겠구나 싶었다. 온화 발 잡힌 채로 바닥 짚은 손 움직여 빙글 몸 돌렸다. 거꾸로 있는게 썩 편치만은 않으니 일단 벗어나볼까. 잡힌 발은 내어주고 잡히지 않은 발 한 번 접어 그대로 현진 도사의 어깨를 걷어차려 한다. 성공한다면 그 반동으로 몸을 뒤로 빼내려 할 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