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1 첨예한 얼굴이 부정하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리다가 머뭇거리는 기색이 서렸다. 고민을 한 건지 두 박자 쯤 쉰 말이 드디어 입 밖으로 꺼내졌다. "바치는 쪽입니다." 갓난아기 시절부터 새겨진 문양의 고통이 세월을 뛰어넘어 돌아오기라도 한건지, 어쩐지 욱신거리는 느낌이 들어 눈매를 움찔거렸다. "그건… MA님의 마음에 드셨다는 의미인가요?"
하루를 꼬박 새웠다. 잠을 전혀 자지 못했다. 하룻밤 사이에 너무도 많은 일이 일어나서 생각이 도저히 정리가 되질 않아 잠을 제대로 설쳤고 지금 시간 기준으로 잠을 자지 못한지 몇 시간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본가에 있을 때에는 이럴 때가 있으면 둘째 언니를 찾아가면 곧잘 해결이 되곤 했었지만 지금 이 자리에는 둘째 언니도 없거니와, 본가로 돌아가는 일 따위를 할 생각도 없었다. 결론으로 넘어가자면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예민지수가 미터기를 뚫고 폭발했다는 것이었다.
" 아.. 졸려.. 피곤해.... "
반쯤 죽은 눈으로 잔뜩 피폐해진채로 터벅터벅 걸어가던 니오는 어깨를 툭 부딪히자마자 불같이 짜증을 내며 손을 들어 멱살을 잡았다.
" 아 뭐야! 눈 똑바로 안 뜨고 다녀? 내가 잘 보이게 눈 파줘? 아니면 뭐야, 나 작다고 무시하는거야? 아~ 작아서 안 보인다 이거지? 뒤졌다. 넌 뒤졌어. 그냥 지금 뒤졌다고 복창해. "
한 바탕 싸움이 일어날 뻔 했다가 양 옆에서 친구들이 뜯어말려 팔다리를 휘저으며 멀어진 니오는 자기가 생각해도 오늘은 좀 과하다고 생각하며 느리게 심호흡을 했다. 해야할 일을 하자. 이것만 끝내고 나면 푹 쉬는거다. 니오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게시판앞에 서서 제대로 보지도 않고 '그럼 난 이거.' 하고 말하며 발걸음을 옮겨 포목점에 도착했다. 뭔가 잘못됐다고 느낀 건 도착하고 난 이후였다. 그거 잠깐 걸었다고 제법 상쾌해진 기분이다.
" 아... 조졌네... 저기, 저 모델.. 왔는데요. 괜찮아요? 저 같은 사람이어도.. "
주변에 있는 사람이 다 최소한 170은 되어보이는 사람들인데 그 사이에, 본인 입으로 이렇게 말하긴 싫지만, 어린아이 같은 꼬마가 껴있어도 되는건가 싶은 생각이 들어 머리를 긁적였다.
친절의 댓가는 어떤 형태로든 돌아오기 마련이었다. 자신이 제사장에 오를 후보로 이름을 올리고, 가문의 차기 당주로 낙인찍힌 뒤 제 부모와 가문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익히 봐오던 광경이다. 임씨 가문 사람들은, 남에게는 항상 친절했으니. 하지만 그 속내마저도 온전히 그럴 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어머나, 감사해요~ 하지만 받기만 하는 건 저랑은 안 맞아서."
죽 늘어놓은 한복들 중 적당한 것을 하나 골랐다. 검은 색 바탕에 새겨진 과하지 않은 꽃과 나비 무늬가 제법 마음에 들었다. 부디 그 분도 만족해주시길 빌며, 아까 살피던 옷들 중 마음에 들었던 것과, 남학생에게 추천받았던 옷들 몇 벌을 더 들고 왔다. 이건 따로 살게요. 하는 말과 함께. 그러면서도 가현은 중간중간 출입문을 돌아보며 이 옷을 사기로 한 사람이 오진 않을까 기다리고 있었다.
>>491 맘에 드는 옷을 한 벌 준다는 주인장의 말에 그는 웃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어쩌면 이게 오늘의 일급 대신일수도 있겠지만 호의는 호의니까 말이다. 파는 옷들이 하나 같이 고급져서 일급 대신이어도 받을 돈보다는 훨씬 더 받을 것 같기도 했으니 말이다. 간만에 새옷이 생기겠다는 생각과 함께 윤하는 옷을 이것저것 살펴보기 시작했다.
" 이건 어때? "
그리고선 같이 있는 가현에게 옷을 보여주며 물었다. 그래도 혼자 고르는 것보단 둘이 고르는게 실패 확률이 적으니 말이다.
줄 퉁기는 소리 나면 구경꾼들 환호 소리 터져나온다. 긴 머리꼬랑지 요란히도 흔들리면, 자유로이 몸을 놀려 줄 위를 난다. 줄타기를 배운 적은 없지만 이런 건 보통 요령이 곧 재주다. 그리고 온화는 그런 재주 하나 끝장나는 편이었다.
"얼쑤!"
깅누차게 추임새도 넣어가며 이리 뛰고 저리 퉁기며 노는 사이, 문득 온화의 시야에 검은 것이 걸렸다. 검은- 사람. 아니다. 옷이 검다. 저를 보는 건지 묘기를 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웃고 있는 건 알겠다. 온화는 검은 옷 여인을 향해 보란 듯이 한쪽 눈을 찡긋 했다. 그리고 묘기를 계속했다.
심호흡을 해내고 답하려다가도 낮으면서도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들리자 입을 벌린 그대로 멈춰버리고 만다. 폭음, 큰 사고가 났는지 매캐한 냄새까지 났음에도 아회는 놀라지 않은 듯 우두커니 선 채로 고개를 올린다. 목소리가 들린 곳이다.
"……."
시간이 멈춘 듯 아회 그대로 굳는다. 애써 떨리는 손을 멈추기 위해 물뿌리게 거세게 잡는다. 평온한 기색에 언뜻 당혹감이 서린다. 등골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도망쳐라. 아회야, 도망쳐야만 한다. 아회야, 아회야! 뱀이 기어오듯 선득한 느낌에 뒤를 돌고 뛰고 싶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안다.
감정이 요동친다. 심장이 거세게 방망이질 친다. 호흡이 흐트러졌다. 비명이 목을 비집고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소리를 지르고 싶다. 호통이라도 치고 싶으나 손이 덜덜 떨린다. 떨림이 몸으로 전파된다. 물이 넘치는 것을 억제할 수 없었다. 물뿌리개가 바닥에 떨어져 바닥 물범벅 된다. 식은땀이 이마에 한줄기 흐르고 말았다. 정신 차려야 한다. 이대로라면 처음부터, 망가지고 말 것이다! 달달 떨리는 입술을, 겨우 벌렸다. 예비하라, 대비하라, 설마 한복판에서 사달 내겠는가!
"……이, 이 소란을 능히 들으셨다면, 주문을 받을 상황이, 아님을 아실 터라 믿습니다."
' 가더라도, 이건 가져가야지. 임시로 만든 지팡이다. 나중에 수업할 때 정식으로 하나 만들어줄테니, 한 번 써봐라. '
작은 상자에 곱게 들어간 아무 무늬가 없는 검은색 지팡이 입니다. 그리고 英사감은 당신의 옷매무새를 곱게 잡아주려는 듯 단정하게 만졌습니다.
' 사시나무 목재와 용의 심근이 들어간 지팡이다. 잘 휘어지니까 채찍처럼 쓰지 말고. 사고치지 말고. 다녀와라. '
앗. 이거 부모인가요!?
당신이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포목점 주인은 검은색 두루마기를 입어달라는 말과 함께 여우 무늬가 새겨진 흰 소복을 찾아가는 사람을 알려달라 했습니다. 무엇보다, 그 주인이 누구인지 왜 이 옷을 만들었는지 본인이 몰랐으니까요.
기다리던 그 때, 얼굴 절반을 여우 가면으로 가린 여성과 얼굴을 가린 남성이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일색 검은색으로 온 몸을 치장한 여성의 머리칼이 끝으로 갈수록 백색입니다.
그리고 남성은 계속 알 수 없는 노래를 허밍으로 흥얼거리고 있었습니다. 포목점 주인의 눈이 점점 흐리멍텅해집니다.
' 옷을 찾으러 왔는데. '
당신들을 흘긋 본 여성은 가게 주인에게 말했습니다. 누군가에겐 익숙한 목소리입니다. 아무렴.
[>자유]
>>513 당신이 카페로 향하자, 아회와 대치하듯 선 두 남성이 보입니다. 한 남성의 어깨에 뱀이 올라탔고 그 앞에 선 붉은 머리 남성은 아회에게 말을 걸고 있습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두 남성 모두 얼굴을 가면으로 가렸습니다. 뱀을 어깨에 올린 남성은 검은색 호랑이 가면을, 머리가 붉은 남성은 코끼리를 닮은 검은색 가면입니다. 특이하게, 뒷 목에 기이한 검은색 타투를 새겼습니다.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선다] [>자유]
>>503 >>519
' 오! 자주 와서 아르바이트 하지 않겠는가!? '
오, 이렇게 용돈벌이를? 딜? 카페 주인이 눈을 빛내며 말했습니다. 매출이 확 오를 것이라! 너무 좋았습니다.
당신이 밖으로 나서자, 아회와 대치하듯 선 두 남성이 보였습니다. 입구 쪽에 가까이 서 있는 붉은 머리 남성이 아쉽다는 듯 자신의 뒷머리를 손으로 긁적였습니다. 그 뒤에 선 뱀을 어깨에 얹고 검은색 호랑이 가면을 쓴 남성은 말 없이 당신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 ..... 들었지? 아직 오픈 안 된 거 같은데? ' ' 네가 가자 한 거 아니었나. ' ' 그, 그건 맞는데.. 요....... '
코끼리를 닮은 짐승 가면을 쓴 남성이 호랑이 가면을 쓴 남성에게 말했다가, 낮으면서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바로 꼬리를 팍 내렸습니다.
' 아니, 다급한 주문은 아닌...!!! 데!! 한 번에 주문을 좀 많이 했거든. 사람들 몰리기 전에 가져가려고 했는데~ 아~ 아쉽네~ '
아회의 대답에 머리가 붉은 남성이 난처한 듯 어색하게 웃었습니다.
[>자유]
>>514
여인은 당신의 눈웃음에 재미있다는 듯 가리고 있던 후드를 내렸습니다. 어딘가, 흐리멍텅한 눈으로 당신을 보며 방긋 웃었습니다. 그리고 입 모양으로 무어라 뻐끔거립니다.
잘 보이지 않습니다.
[>자세히 본다]
>>504
' 다른 말로는 코가 꿰였다고 하지. '
그녀는 귀찮다는 듯 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몫으로 타 온 커피를 한 모금 마셨습니다.
' 바치는 쪽이라... 아하, 이제야 이해가 가네. 말하지 않아도 돼. 내가 버린 집안은 제사장 쪽이라 대강 사정은 알고 있으니까. '
빵집 주인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 어떻게 만났는지는 모르지만, 살았으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해둬. 벌써부터 죽는 걸 소망한다면, 나는 말릴 생각은 없다만. '
"돈이야 넉넉하게 주면 저야 환영이죠. 요새 아빠가 저 돈 많이 쓴다고, 또 많이 쓰면 용돈 끊어버리다고 해서.."
카페의 주인과 자잘한 스몰토킹을 나누다가, 밖으로 나가보았다.
이 특이한 손님들은 뭐지? 왜 다들 가면을 쓰고 있는 걸까? 마치 정체가 밝혀지면 안 되는 사람들인 것 마냥.
상황은 이러했다. 대량주문을 한 손님들이 사람들이 카페에 붐빌까봐 일찍 오셨다는 것.
"아유~ 잘 오셨습니다요. 그런데 저희가 아직 오픈시간이라서요. 조금만 기다려주실 수 있을까요? 예약주문을 하신 분들이니깐 다른 손님들이 오셔도 1순위로 먼저 만들어서 드릴게요. 그러니 나가서 연초 한대라도 피고 오심이 어떠실랑가요? 마음 같아서는 내 연초라도 드리고 싶은데, 흡연을 안 하는지라.."
본래라면 묘기를 끝내고 내려가 저 여인네를 찾을 심산이었으나. 온화의 시야 끝에 검은 후드 내려가는 것이 보이니 그럴 여유를 부릴 새가 아닌 듯 하니. 부러 몸을 크게 띄워 요란히도 줄 위에 걸터앉고 잠시 쉬어가듯 줄 위로 몸을 뉘이며 종이 부채로 설렁설렁 부채질을 한다.
익살스럽게 굴고는 있으나. 온화 그 새빨간 눈은 검은 옷의 여인에게 일점 박혀 있었다. 저 입 무어라 움직이는지 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