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4 검은색의 두루마기. 평소에 입는 것과는 별로 다른게 없는듯 했지만 청과 홍으로 수놓아진 자수가 아름다웠다. 입는 것 정도야 어려운 일은 아니지. 허나 뒷편에 놓인 흰 소복이 그의 눈에 띄었다. 다음엔 저것을 입는건가 싶었지만 일단 부탁 받은 것부터 입기로 한다.
" 그럼요. "
그렇게 옷을 입고 있으니 가현이 먼저 소복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함부로 만지면 안되는것 같아 나는 두루마기를 걸치고선 가현의 뒤를 따라갔다. 함부로 만지지는 않을테니 개인적으로도 그 옷이 좀 더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그러니까, 저기까지의 범위를 명확히 하기 위해 지팡이를 잠시 한 구석에 세워둔다. 풀잎에 물 닿는 소리요 기분 좋은 흙과 물내음이 심상 평온하게 한다. 한 걸음 움직여 물 느릿하게 주다 보면 귓전을 때리는 목소리보다 다른 것이 꽂히니, 뱀 소리다.
……뱀.
쓰다듬는 손, 소맷단 속에서 기어나오며 남모르게 몸 휘감던 것, 그것이 있던 곳에는 언제나, 언제나…….
"……."
아회 그대로 굳어버린다. 물뿌리개를 겨우 거두는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떨리는 손길에 물뿌리개에 담겼던 물이 찰랑대다 바닥에 몇 방울 큼지막하게, 후두둑 쏟아진다.
"죄송, 합니다. 잘 듣지, 못하여. 뭐, 라고 하셨, 지요."
더듬더듬 입 떼고는 심호흡 한다.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무상할 인간이어라, 결국 모든 것은 같은 인간일 뿐이다…….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일단 만든 옷. 누가 찾으러 올것같은 예감. 썩 심상치 않기는 했다. 기분에 내키는 대로. 마치 무엇에라도 홀린 양 그렇게 행동했다는 것이 미심쩍은 일이었으나, 가현은 이 옷에 대해서는 아는게 없다. 그저 찜찜한 호기심과 의문점이 혀를 감싸고 돌 뿐이었다.
"그럼요. 어차피 간단한 일 하나만 하고 갈 생각은 아니었으니까~ 또 다른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말씀하셔도 좋아요."
여기 있는 동안 뿐만이 아니라, 다른 때라도. 임자가 있는 옷을 뒤로 한 채 가현은 옷 고르기에 열중이었다. 까만 옷. 하얀 옷. 무늬가 있는 옷. 가리지 않고 하나씩 살펴보다가, 마음에 드는 옷이 있으면 한번쯤은 제 몸에 대어보기도 했다. 살 의향이 있었기 때문에. 같이 온 남학생에게 이건 어떠냐며 물어보기도 하면서, 누가 저 여우 자수가 들어간 옷을 가지러 올지 기다렸다.
>>467 모윤하는 안그런척 하면서도 무언가를 파악하는데는 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릴적부터의 버릇이 계속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겠지. 그렇기에 그는 주인의 말에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만들어보고 싶어져서 만들었는데 찾으러 올 것 같다니. 평소라면 그렇겠지, 하고 넘어갔을 일이 어제 있었던 일 때문인지 그의 이성 어딘가를 쿡쿡 찌르고 있었다.
" 봐주는건 어렵지 않아요. "
가현은 어느새 만들어져있는 옷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천이 걸려있고 그 천들로 만들어진 수많은 옷들. 그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이 있는지 몸에 대보기도 하며 의견을 구하고 있었다. 그는 나름 진지하게 그녀에게 잘 어울리는 옷들을 조금씩 선별해주기 시작했다. 찾으러 올 것 같다는 사람이 언제 올지 모르니 말이다.
부채라면 도술을 쓰는데 쓰는 것도 있는데.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건가. 온화는 군말없이 매호씨가 주는 종이 부채를 받아들었다. 곰방대는 재를 털어낸 뒤 허리춤에 꾹 찔러넣고, 두루마기는 어깨에 걸친 것을 팔을 꿰어 대충 입는다. 머리는- 하나로 묶였으니 되었나. 옷이며 머리를 만지며 매호씨의 말을 들은 온화는 그러냐는 표정으로 눈을 끔뻑였다.
"그렇소? 아, 떨어질 걱정일랑 마소. 건방 떠는 것도 내 재주요!"
참으로 근거 없는 큰 소리를 땅땅 치고 줄을 타기 위해 그리로 간다. 길게 쳐진 줄 위에 올라가 한바탕 놀아주면 되겠으나, 온화는 무엇이 걸리는지 바로 올라가지 않고 줄을 빤히 보았다. 그러다 매호씨를 보고 말했다.
"여 보오. 이 줄 좀 더 올려주소. 이래 낮아서야 어찌 흥이 나것소! 한 척 더 올려주시구랴!"
저런 당당함은 어디서 나오는걸까. 허리에 손을 짚고 당당히 요구를 하긴 하였으나 들어주면 좋고 아니어도 그만이었다.
줄의 준비가 끝나면, 고운 가죽신 툭툭 벗어놓고 줄 위로 훌쩍 몸을 올린다. 한 손에 든 부채 살랑이며, 유유자적하게 줄에 걸터앉아 구경꾼들을 향해 씨익 웃는다.
"자, 가보자고!"
휘릭- 길게 늘어진 새빨간 머리카락이 둥근 궤적을 그렸다. 키 훌쩍한 몸을 날쌔게 움직여 줄 위로 올라서고, 겁도 없이 몸을 세우더니 줄을 퉁겨 몸을 띄우고- 그렇게 춤을 추듯 줄을 탄다.
일행에게 얻어맞은 듯, 남성이 짤막하게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일행에게 화는 못 내는 것 같습니다.
' 못 들을 수 있지. 카페 문이 열렸나? 주문을 했는데, 너무 일찍 온 게 아닐까 싶은데. '
남성이 당신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습니다.
' 한 번에 많이 주문했지. '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입니다 낮으면서도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목소리는 아주 잠깐 들렸습니다.
왜냐면...
쾅!!!!!!
안에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매캐한 냄새가 당신의 코를 간질입니다. 안에서 무언가 큰 사고가 난 듯 싶습니다.
[>사장님!!!!!!] [>지금 오픈 안한 거 안 보이나! 떽!!!!] [> :) 자유]
>>473 >>476
포목점 주인은 당신들에게 연신 고맙다고 말하며, 신상이라는 말과 함께 몇 벌의 한복을 가지고 옵니다. 당신들의 취향에 맞을 옷들입니다.
사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 여기서 한 벌씩 고르게! 내가! 그 대가로 이 옷들 중 한 벌을 주겠네! '
와! 땡잡았다!
[>감사합니다! 호갱님!]
>>474
남성의 얼굴이 검댕으로 얼룩졌습니다. 아무래도 제대로 사고가 벌어진 것 같습니다. 주방은 거의 누가 폭탄을 터뜨리고 간 수준이었습니다. 당신의 주문이 제대로 발동 된 듯 바닥의 타일과 깨진 그릇 등이 고쳐지기 시작합니다. 검댕은, 방치합시다. 당신은 아직 이것을 치우는 마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 아이고! 살았네! 드디어 살았어! '
근데 밖에서 목소리가 들립니다.
[>밖을 본다] [>무시한다] [>청소는 내 운명~]
>>477
' 수 가.. 수 가... 들어는 봤는데.... 내가 나와서 신경 안 쓴지 너무 오래됐어. 그럼, 제사장 쪽이니? '
그녀는 당신에게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물었습니다. 당신의 집안을 떠올리려는 것처럼 눈을 아래로 내리깔기도 했지요.
' 예외는 존재하지. 극히 드문 일이긴 하지만 말이야. '
빵 집 주인이 당신의 맞은 편에 앉아, 한 손으로 턱을 괬습니다.
' 첫째로, MA의 마음에 들어야 하지. 그리고 그건 꽤나 어려운 일이란다. ....... 나도 거의 처음에 가까우니까. '
>>491 첨예한 얼굴이 부정하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리다가 머뭇거리는 기색이 서렸다. 고민을 한 건지 두 박자 쯤 쉰 말이 드디어 입 밖으로 꺼내졌다. "바치는 쪽입니다." 갓난아기 시절부터 새겨진 문양의 고통이 세월을 뛰어넘어 돌아오기라도 한건지, 어쩐지 욱신거리는 느낌이 들어 눈매를 움찔거렸다. "그건… MA님의 마음에 드셨다는 의미인가요?"
하루를 꼬박 새웠다. 잠을 전혀 자지 못했다. 하룻밤 사이에 너무도 많은 일이 일어나서 생각이 도저히 정리가 되질 않아 잠을 제대로 설쳤고 지금 시간 기준으로 잠을 자지 못한지 몇 시간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본가에 있을 때에는 이럴 때가 있으면 둘째 언니를 찾아가면 곧잘 해결이 되곤 했었지만 지금 이 자리에는 둘째 언니도 없거니와, 본가로 돌아가는 일 따위를 할 생각도 없었다. 결론으로 넘어가자면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예민지수가 미터기를 뚫고 폭발했다는 것이었다.
" 아.. 졸려.. 피곤해.... "
반쯤 죽은 눈으로 잔뜩 피폐해진채로 터벅터벅 걸어가던 니오는 어깨를 툭 부딪히자마자 불같이 짜증을 내며 손을 들어 멱살을 잡았다.
" 아 뭐야! 눈 똑바로 안 뜨고 다녀? 내가 잘 보이게 눈 파줘? 아니면 뭐야, 나 작다고 무시하는거야? 아~ 작아서 안 보인다 이거지? 뒤졌다. 넌 뒤졌어. 그냥 지금 뒤졌다고 복창해. "
한 바탕 싸움이 일어날 뻔 했다가 양 옆에서 친구들이 뜯어말려 팔다리를 휘저으며 멀어진 니오는 자기가 생각해도 오늘은 좀 과하다고 생각하며 느리게 심호흡을 했다. 해야할 일을 하자. 이것만 끝내고 나면 푹 쉬는거다. 니오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게시판앞에 서서 제대로 보지도 않고 '그럼 난 이거.' 하고 말하며 발걸음을 옮겨 포목점에 도착했다. 뭔가 잘못됐다고 느낀 건 도착하고 난 이후였다. 그거 잠깐 걸었다고 제법 상쾌해진 기분이다.
" 아... 조졌네... 저기, 저 모델.. 왔는데요. 괜찮아요? 저 같은 사람이어도.. "
주변에 있는 사람이 다 최소한 170은 되어보이는 사람들인데 그 사이에, 본인 입으로 이렇게 말하긴 싫지만, 어린아이 같은 꼬마가 껴있어도 되는건가 싶은 생각이 들어 머리를 긁적였다.
친절의 댓가는 어떤 형태로든 돌아오기 마련이었다. 자신이 제사장에 오를 후보로 이름을 올리고, 가문의 차기 당주로 낙인찍힌 뒤 제 부모와 가문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익히 봐오던 광경이다. 임씨 가문 사람들은, 남에게는 항상 친절했으니. 하지만 그 속내마저도 온전히 그럴 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어머나, 감사해요~ 하지만 받기만 하는 건 저랑은 안 맞아서."
죽 늘어놓은 한복들 중 적당한 것을 하나 골랐다. 검은 색 바탕에 새겨진 과하지 않은 꽃과 나비 무늬가 제법 마음에 들었다. 부디 그 분도 만족해주시길 빌며, 아까 살피던 옷들 중 마음에 들었던 것과, 남학생에게 추천받았던 옷들 몇 벌을 더 들고 왔다. 이건 따로 살게요. 하는 말과 함께. 그러면서도 가현은 중간중간 출입문을 돌아보며 이 옷을 사기로 한 사람이 오진 않을까 기다리고 있었다.
>>491 맘에 드는 옷을 한 벌 준다는 주인장의 말에 그는 웃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어쩌면 이게 오늘의 일급 대신일수도 있겠지만 호의는 호의니까 말이다. 파는 옷들이 하나 같이 고급져서 일급 대신이어도 받을 돈보다는 훨씬 더 받을 것 같기도 했으니 말이다. 간만에 새옷이 생기겠다는 생각과 함께 윤하는 옷을 이것저것 살펴보기 시작했다.
" 이건 어때? "
그리고선 같이 있는 가현에게 옷을 보여주며 물었다. 그래도 혼자 고르는 것보단 둘이 고르는게 실패 확률이 적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