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제 동급생. 뱀을 닮은 여학생이 그랬다. 사감님들께서 들어가 있으라고 한 거니 일단 들어가자고. 가현도 동의했었다. 그렇게 하기로.
그러나 여기 나와있는건 누구? 흑룡기숙사 6학년 임 가현이다. 본인이 30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한 이야기를 망각할 만큼 기억력이 딸리는 편은 아니었으나, 그냥 얌전히 기숙사 안에 있기 싫었을 뿐이다. 제 부모에게 너무 제멋대로 구는 건 성숙하지 못한 짓이라며 타박을 받는다 한들 괜찮을 것 같았다. 혼은 조금 나면 그만이지만 그 짧은 시간에 기숙사 안에서 뒹굴거리며 노는 건 질색팔색이다.
"흥.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더군다나, 그렇게 성숙하지 못하게 노는 게 아니라 그저 만담을 나누며 도움을 주고 다닐 뿐인데 간섭할게 뭐가 있담. 사춘기때나 하고 말법한 소리를 입 밖으로 늘어놓으며 미묘하게 뾰로통해진 표정으로 혼자 툴툴대고 나니 속이 시원해졌다. 흥. 누가 날 막을수 있겠어.
"날씨도 이렇게 좋은데~ 기숙사 안에만 있으라는 건 나한테 큰 시련인걸."
그리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불어온 찬바람에 가현은 두루마기를 살짝 여몄다. 지 혼자 콩트 찍는것도 아닌데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하는 것은 가현이 으레 해오던 일 중 하나였다. 그래서인가, 자신과 절친한 몇몇은 행동이랑 마인드만 좀 어떻게 바꾸면 참 좋겠다며 당연한 이야기를 했으나 가현이 다른것도 아니고 그런 요구사항을 순순히 들어줬다면 아마 지금의 삶과는 많이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혼자 별에별 짓을 다 하며 느긋하게 산책하던 가현. 이윽고 한 남학생을 마주친다. 자신의 기억이 어긋나지 않았다면, 일단 흑룡 기숙사는 아니었던것 같은데. 수업하면서 종종 마주치곤 했던 느낌이 있었다. 나른하게 반쯤 감겨있던 눈매가 부드럽게 곡선을 담아 휘어진다.
"짜잔. 내가 누구게~"
그래놓고서 남학생의 뒤로 살며시 다가가서는 남학생의 눈을 두 손으로 가리고 정답이 들려올지 오답이 들려올지 모를 말을 일단은 입 밖으로 꺼내놓고 보는 것이었다.
>>589 온화의 진단은 호쾌하고 시원시원하니, 풍류를 즐기는 사람 같아서 읽는 맛이 있네요! 드라마를 좋아하는구나, 주로 어떤 장르의 드라마를 좋아할까요? 즙 많은 과즙... 거기다 수박에 청주...? 온화는 맛잘알이에요! (끄덕) 머리에 손이 많이 간다..(메모) 애주가인 면이 드러나는 것 같은 질문도 있지만, 손으로 갈증을 달래달라니... 욕심쟁이어라. 궁금하면 무슨 수든 쓴다니... 비설털이에 특화됐군요...!(아님) 세상에나, 세상에. 마지막에 '스스로 찾아간다'는 것도 그렇지만 기만하지 말라니... 호쾌하고 멋지기도 하여라...
최근 결석을 한 수업의 진도를 따라잡기 위해 기숙사에서 공부를 했다. 세상 자유롭게 살면서 수업에 그리 성실하지 않은 성하가 공부라니. 기숙사의 동기들은 처음에는 의외의 눈빛으로 바라보지만, 이것이 6년 동안 반복되어서 익숙해져버렸다. "아, 쟤 또 수업 빠져서 공부하고 있구나." 라고 말이지. 성하는 갑자기 부적을 쥐고 무언가 주문을 외우더니, 방 안에서 마치 태풍과 같은 바람이 순식간에 일시적으로 불다가 멈추었다. "어어엇 성공했다!"라는 말과 동시에. 어질러진 물건들과 헝클어진 성하의 머리는 덤.
"......"
태풍이 어떤 기상현상인지를 알면서 생각없이 방 안에서 그 도술을 실험해본 것은 도대체 어떤 정신이어야 가능했던 것일까. 방이 어질러진 와중에도 헝클어진 자신의 머리만 다시 정리를 한 뒤에 사감 몰래 기숙사 밖을 나갔다. 기분전환을 위해서였다.
하늘.
선선한 날씨에 구름들이 규칙 없이 자리를 잡고 있는 하늘이구나. 오늘의 하늘은 다른 날보다 유난히 더 아름다우니, 지금 이 자리에서 한지 안에 내 손으로 더 하늘을 담아주고 싶구나. 하지만 저 중구난방의 구름은 똑같이 중구난방인 내 인생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니, 종이 안에 저 모습을 담기에는 글러먹은 내 자신을 스스로 그리는 것과 같아 갑자기 그리기가 싫어진다.
그래도 저 하늘은 다행이다. 낮에는 구름 밖에 없지만, 지금 밤에는 촘촘히 빛나는 별들이 그들을 맞이해주고 있으니깐. 저 별들도 중구난방이요, 서로를 보며 위로를 해줄 수 있겠지. 아니, 애초에 본인들의 무규칙함을 그다지 안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 혼자만 설레발을 치는 셈이 될 것이ㅈ...어어어?
"....?"
갑자기 부드러운 촉감의 무언가가 내 눈을 가리기 시작했다. 그 촉감의 근원은 사람인 것을 금방 알아챘고, 부드럽고 고운 촉감으로 보아서는 여인임이 분명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누구냐는 말에, 누군가가 장난을 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3초 동안의 무반응. 갑작스러운 상황에 갑자기 고장이 난 것이다. 생각이 복잡해져서가 아니다. 오히려 생각이라는 기능이 갑자기 멈추어버린 셈. 성하는 대답 없이, 천천히 여인의 손을 잡아서 자신의 눈에 살포이 떼게 한 뒤에 뒤를 돌아보았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으면서도, 기억에서 애매하게 가물가물한 여학생. 성하는 그 여학생 앞에서 침묵을 유지했다. 그 여학생의 눈에는 식은 눈으로 퉁명스럽게 보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성하는 정말 누구인지 기억해내려고 기억을 되살리고 있는 중이었다.
Q. 도화에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나요? A. 아회는 홀로 있는 것을 즐겨서, 수업이 아니라면 인적이 드문 곳에 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기숙사 방에서 얌전히 쉬며 편지를 쓰곤 한답니다. 책을 읽는 것을 즐기기도 하지만 남에게 책을 빌려주지는 않아요. 인적이 드문 곳은 주로 도화 주변의 호수(가 있다면요)나, 숲 입구(가 있다면요)나, 전투의 흔적이 역력하게 남아있던 장소가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저잣거리로는 절대 나가지 않네요. 네에.
Q. 수업시간에는 어떤 태도로 임하나요? A. 조용한 태도로 임해요. 쟤는 다 끝냈나? 싶으면 묵묵히 자기가 할 일 다 끝내놓고, 질문은 수업이 끝나면 개인적으로 찾아가서 하는 타입이에요.
Q. 대인관계는요? A. 인간이 다 그렇지 뭐……. 라서 좁아요. 제사장 가문과는 그렇게 큰 연을 쌓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 피하는 면도 있어요. 1학년 때 제사장 가문 아이가, '우리 엄마가 제사장이라 아는데, 무가에서 궁기가 나왔댔어!' 같은 말을 했고 그 이후로 사람이랑 안 만나려 드는 일화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 이전에도 안 만나려 들었겠지만...(노답이에요)
성하 : 그 뱀과 마주한다면..흥미도, 원한도 사지 말아야지. 실제로 내가 그것과 마주친다면 어떤 생각을 가질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좋아하는 반응 있잖아. 반항하지 않고 알아서 무서워하면서 찌그러져 있는 것. 살기 위해서는 그럴 수 밖에 없을 것같네.. 나를 제물로 원한다면 덤비거나 조롱하다가 죽게. 어차피 죽는 건 똑같으니깐 기분이라도 더럽게 만들고 죽어야지.
Q. 당신의 눈 앞에 이질감과 위화감이 강하게 들며, 이 장소에 존재해서는 안 될 것을 마주한 느낌을 주는 뱀 한 마리를 마주했습니다. 이 때 캐릭터의 반응을 서술하시오. A.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계속 느껴지는 미지의 공포에서 어떤 존재인지 익히 깨닫고 예를 다해 절하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신에게 밉보일 필요는 없을 테니...👀 그거 말고는 사고가 아예 정지되어 뻣뻣하게 굳기만 하고... 식은땀을 흘리는 버전도 있지 않을까 싶고... 사실... 각종 감각을 느끼기 전에 뱀이라는 걸 깨달으면 그 순간부터 이미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을 것 같지만요...🤦♀️
역시 대답이 들려올 리 만무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냥 오며가며 잠깐 봤던 것이 전부인 사람을 목소리만으로 기억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터이니. 떠올려보자면 제 부모가 그렇게 이야기하던 성숙하지 못한 짓이라는 것이 이런 거 아닐까 싶다. 사람이라면 어지간해서는 포용하지만, 동시에 제멋대로 구는 일이 잦은 것. 그게 임가현이었기 때문에.
"정답은 임가현이었답니다~ 돌아다니기 딱 좋은 날이야. 그렇지?"
그렇기에 제 손을 떼고 뒤를 돌아보는 와중에도 천연덕스럽게 날씨 이야기를 하며 순순히 손을 내려놓는 것이다. 그리고 멀리서 보았을 때는 살짝 흐릿했던 자신의 기억이 윤활유를 바른 듯 매끄럽게 이어나가지기 시작했다. 꽤 훤칠한 키. 그리고 고우면서도 남성미가 물씬 묻어나는 용모. 하나의 얼굴에 퇴폐며 이상적인 멋이며 여러 매력들을 한번에 담아둔 남학생. 가까운 사람은 아니었으나 들리는 이야기로써 익히 접했던 그 학생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게다가 주변 사람들이 당신에게 대쉬를 하다가 호되게 당한 경험을 한탄스럽게 풀어내는 걸 들어준 적도 있었고.
만약 저 역시 다른 아이들과 생각하는 것이 같았다면, 당신에게 구애의 뜻을 한껏 전하다 차디찬 바람을 맞고 쓸쓸히 돌아섰을까?
"근데 몰랐어. 나 말고도 다른 기숙사 학생이 이 시간에 돌아다니고 있을 줄이야~ 사감님이 보시면 이놈~한다?"
그것은 고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가현은 일단 자기 할 말을 그렇게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나긋나긋하게 쏟아내고 있었다. 침묵은 익히 겪어왔다는 것인 양 그저 나른하게 웃으며 남학생을 빤히 바라보던 가현은 이윽고 고개를 갸웃 기울이는 것이다.
"으음. 혹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걸 좋아하는 편? 그래서 내가 방해한것에 대해 불만점이 생긴 걸까. 아니면, 뭔가 우울한 일이라도 있었니."
그렇다. 그제서야 그 침묵과 이어지는 남학생의 시선을 인식한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 속내는 누구나 모르는 일이기에, 그 시선의 의미가 무얼 뜻하는지 역시 헤아리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떠오르는 대로 한껏 물어보는 것이다. 경우의 수를 뭐든 많이 던져댄다면 하나 정도는 적중할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에.
"아니면 너도 흑룡 기숙사를 별로 안 좋아하는 편? 아쉬워라~ 우리만큼 다른 기숙사 아껴주고 보듬어주는 애들이 어디 있다고."
그것은 익히 겪어왔던 일이기에 익숙한 것이었다. 가현의 입장에서는 제 기숙사를 안 좋아하는 아이들 역시 포용해야 할 소중한 존재들이니 그런 의견 앞에서도 늘 한결같이 굴어왔지만. 이제 떠오르는 경우의 수는 다 늘어놓았는지, 가현 역시 일시적으로 침묵해%#(.
>>623 풍류를 즐긴다니 너무 과찬이야... 얘는 그냥 양아치인걸~ (부끄)(?) 드라마는 딱히 장르를 가리지 않는데~ 대신 뭘 봐도 박장대소할 수 있다? ㅋㅋㅋㅋ 아회 기다려라~ 온화가 치근치근 비설 털러 간다~ ㅋㅋㅋ 다시금 말하지만 온화 요것은 겉멋만 잔뜩 든 양아치라오~ 속으면 아니되어~~
>>627 오호 오호 우리 무 오라비 요런 사람이구나~ (메모) 저잣거리로 안 나간다구? 안되겠다 온화야 오라비 업고 나들이 나가자~ ㅋㅋ
>>609 역시 내 뇌내망상이 맞아버렸다! 윤하는 매주매주 챙겨보는 편이거든. 드라마 자체를 잘 안보는 편이긴한데 한번 보기 시작하면 매주 칼같이 시간 지켜서 보러간다고~ 온화가 수를 쓸만큼 궁금한거 ... 역시 가문의 일이 가장 궁금하지 않을까~~ 물론 윤하가 먼저 운을 떼는게 아니라면 별로 궁금해하진 않을 것 같지만!
>>611 제사장 되면 시간 없는거 좀 짠해지네 ... 지금 많이 놀아둬라 모윤하! 그래도 본인이 즐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이지. 윤하는 커서 무슨 일을 할지 아직 정해진게 없네. 가문을 이끌 가주가 될 지도 모르고 그냥 평범한 소시민이 될지도 모르고 ... 가현이네 주방장이 될 수도 있겠는데 ㅋㅋㅋ 뭐가 됐던 재밌을 것 같지만 말이야.
생각을 되살리는 중에, 본인이 임가현이라고 밝히는 여학생의 말에 임가현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떠올려보았지만 생각이 잘 나지 않았다. 성하는 사교성이 활발하거나 친구를 넓게 사귀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소수의 친한 친구들 외에는 데이터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외모는 얼핏 기억이 난다. 또래 여자아이들보다 큰 키가 튀는 점이었기에 미세하가나마 기억하고 있었던 것. 아, 수업 중에 알게 모르게 눈이 우연히 마주치곤 했던 여학생이었어.
이 여학생 이름이 임가현이구나. 같은 수업을 듣고, 반말을 하는 것을 보아하니깐 기숙사가 다를 뿐, 동급생이겠네. 보석을 보니...흑룡이군. 인신공양을 바탕으로 한 금술을 쓰는 녀석들. 청룡이 본래 흑룡을 싫어하는 것을 안다. 외부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MA가 아닌 인간에게 충성하고 인간의 권리를 우선시하는 우리 "반 가문" 의 사상에 반대되는 기숙사이기도 하고.
"받죠, 벌점."
지금 기숙사를 돌아다니면 사감에게 혼난다는 가현의 말에는 벌점을 받으면 된다는 성하의 대답으로 돌아왔다. 다소 딱딱해보이는 대답이었지만, 목소리의 톤이나 말투는 날이 선 느낌은 아니었다. 날이 선 것이 아닌 로봇 같다고 해야 될까.
여학생은 성하의 표정을 보고 화가 났다고 생각한 것이지, 여러 원인들을 물어보았다.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했냐, 우울한 일이라도 있었냐, 혹시 자신이 흑룡이라서 싫어했냐..등..성하는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의문을 가졌지만, 곧 자신의 침묵이 원인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혼자의 시간도 좋아하고, 우울한 일도 있고 흑룡을 싫어하는 것도 맞지만 원인은 아니에요."
"누구인지 떠올리느라고 그런 거에요."
정말 누구인지 떠올리려고, 생각을 하느라 침묵이 생긴 것이었다. 멀티태스킹에 약한 성하였기에 한 가지 행동을 하면 다른 행동을 잘 놓치기 마련이었다.
헐 그런 느낌이구나 ㅋㅋㅋㅋㅋ 그냥 어렴풋이 당주에 제사장까지 겸하면 바쁘지 않을까- 해서 언급했던건데 중간관리직 느낌이라면... 나 처음으로 임가현 얘가 좀 짠해지기 시작했어 (?)
아 근데 질문할게 있었는데!! 뭐였을까!!!() 나중에 기억나면 올리고 캡틴 돌아오면 앵커 걸게 ^-ㅠ....
>>649 ㅋㅋㅋㅋㅋㅋ 이때까지만 해도 그냥 가현주의 추측이었는데~ 결국 오피셜인걸로 밝혀져.. 임가현 얘 과로사라도 안 하면 다행일것 같은 느낌이야 ㅋㅋㅋㅋ 그래도 윤하라면 분명 킹갓쩌는 무언가가 될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 하물며 그냥 숨만 쉬고 돌아다니는 일반인이 되더라도 가현주는 격하게 야광봉을 흔들수 있지 >:3 () 주방장 진짜 되는거냐구 ㅋㅋㅋㅋㅋ 맞아 어느쪽이든 재밌을듯해!!
"오오, 역시 같은 학년이라 그런가 엄청 덤덤하네~ 막 들어온 애들 같았으면 분명 지레 겁먹고 들어갔을건데."
까짓거 받고 말지. 하는 느낌의 대답이 들려왔다. 역시 학년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그런 제도에 있어 무덤덤해지는 것은 자신이나 눈 앞의 남학생이나 다를게 없다고 보았다. 그리고. 결국 그것 또한 인간이기에 행할수 있는 작은 일탈 중 하나에 불과할 뿐이니, 그러한 일탈을 한다고 한들 그 누가 무어라 할까. 점수가 깎여나가는 것은, 가현의 입장에서는 조금 뼈아픈 손실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감수하고 나가 돌아다니며 누군가를 만나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 더 중요했다.
곧이어 가현은 남학생의 말에 말 없이 끄덕였다. 설마하니 세 경우 모두 적중하는 것일 줄은 몰랐는데. 뒤따르는 말을 들은건지 않은건지, 가현은 일단 걱정스러운 내색부터 표하기 시작했다.
"저런... 하지만 너도 알지? 우리는, 모두를 아껴. 모두를 포용해. 그러니까.. 나한테 말하기 곤란한 게 아니라면 한번 이야기해주지 않을래?"
하필이면 그런 삼박자가 갖추어진 상황에서 만난 게 나 같은 사람이라 너의 입장에서는 조금 싫을 수도 있겠지만. 아까 전까지만 해도 시선의 원인을 알기 위해 경우의 수를 한껏 던져대던 가현은, 이제 그 원인따위는 알게 뭐냐는 태도를 취하였다. 그야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것을 좋아하고, 흑룡을 싫어하는 남학생에게 우울한 일이 생겼다는데 시선의 원인을 알아봐야 뭐가 바뀌겠냐는 마음가짐 때문이었다.
"이번만큼은 그 혼자만의 시간에 함께할게. 그렇게 해도 괜찮지~? 원래 우울한 일은 대화로 푸는 게 제맛이니까~"
그 말을 하기까지는 잠시동안의 내적 갈등이 있었다. 일단 상대를 가능한 한 존중하며, 포용하는 그녀였기에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우울한 일에 대한 해소도 만만치 않게 중요하다고 여겼다. 청룡 아이들이 원래 이랬다 저랬다 하는 면이 강하기는 했으나 그런 당연한 것을 망각할만큼 가현은 지금 자신의 기분에 진심이었다. 그 결과, 일단 남학생과 더 이야기를 나누어보는 것을 택한 것이었고.
"자. 나는 잠깐 내 할말을 아끼고 있을테니, 그동안 나한테 조금이라도 이야기해줘. 털어놓고 나면 너의 속이 조금 편해질지도 모를 일이잖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