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윤씨도 의뢰를 받으셨군요. 저는 바티칸에 머무르고 있는데 아무일도 없어 간만에 쉬나 싶었더니 갑자기 뭔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더군요."
어쩌다보니 게이트에 휘말려서 자기소개서를 쓴다던가 인성교육 등 반갑지 않은 교육을 받고 있지만.
"봄의 신, 아이는 그 신의 후계 비슷한 존재인가요? 게다가 굳이 그렇게 중요한 아이를 인간에게 맡겼다는 건 그 신의 영향력이 기울었다는 것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군요. 위험하고도 귀찮은 일에 휘말리셨네요."
누군가의 곤경을 두고 보지는 못하는 성격에 그 귀찮은 일에 또 마음쓰면서 나섰겠지. 아이를 건내줄 정도면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꽤 신뢰를 다진 모양이다. 게다가 '아이'가 관련된 일이면 어린 아이가 아이답게 살기를 원하는 시윤이니 더욱 지나치지 못했을 것이 뻔했다.
"역시 곤란한 분이에요. 이 말을 그런식으로 다시 받아치시다니. 한 번이라도 그냥 넘어가면 좋았을텐데요. 뭐, 그랬다면 저희가 이렇게 대화할 일도 없었으려나."
농담아닌 농담도, 짓굳은 태도도, 시건방진 태도도, 제 자신 위에 켜켜히 쌓은 시덥잖은 가면을 내려놓고 다시 무미건조한 미소를 짓는다. 사사로운 정과 관련된 감정을 덜어내려 노력하는 린이기에 역설적이게도 그녀에게는 지금의 표정이 본인에게 허락할 수 있는 가장 진실된 얼굴이었다.
"저는 나름 시윤씨를 믿고 있어요. 저는 믿지 않는 사람한테 이렇게까지 제 얘기를 하지 않아요."
그래서 가끔은 더 곤란했다. 그녀는 적당히 믿을 수 있는 좋은 사람과 그럭저럭 동료로 남을 수 있는 괜찮은 관계로 남고 싶었지 그 상실을 두려워 하고 죄책감이 남을 정도로 마음에 공간을 두고 싶지는 않았다.
"신은 믿음을 먹고 사는 존재에요. 당연히 자신의 운명을 선택할 수는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필멸자들의 믿음에 묶여 있어요. 만약 그 도라라는 분이 많은 신도를 둔 강한 신이었다면 그런 희생이 있었을까요."
"....확실히 심상찮은 일이 벌어지고 있지. 애초에 이 특별 의뢰 자체 부터가 그렇잖아."
의념기를 준다는 파격적인 보수는 물론. 직접 가보고 느꼈다. 이건 본래 우리급에게 넘어올 건수가 아니다. 그럴 정도로 협회가 긴박하게 몰려있는 사태. 그야말로 '심상찮은 일'이다.
"보람찬 일이라고 해줘. 실제로 위험하고 귀찮은 일일지 몰라도, 나는 하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맡게 된 지금도 후회하지는 않아. 애가 잘 따라줄까 조금 불안하기는 하지만, 그건 그거고."
나는 그녀의 말을 가볍게 정정하기로 했다. 물론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당사자인 내 감상이 제일 중요하지 않겠는가. 나는 후회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애정을 받고 자라나야 할 아이가 위험하고 귀찮은 일로 표현되는 것은 달갑지 않았던 것이다.
"린은 통찰력이 좋은 사람 좋아하잖아.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지만, 어느정도는 잘 보이기 위한 노력일지도 모르지. 설렁 설렁 넘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럼 그 정도의 관계로 멈출테니까."
무미건조한 상대에게 나는 적당히 친근하게, 적당히 덤덤하게 대답한다. 태도가 차차 달라져 나가는 그녀와 다르게, 나는 결국 한결 같다. 좋게도 나쁘게도 정직한 인간이란 녀석이니까.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군. 기뻐."
나름 믿고 있다는 말에, 별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고 웃어보였다. 별로 아주 살가운 태도도 아니었고, 평소처럼 길고 우아한 설명과 논리가 따라 붙지도 않았지만. 저 말이 진심이라고 느낀 만큼, 나도 얌전히 받기로 한 것이다.
"응. 있었을거야."
그녀는 나에게 질문을 건넨 것은 아니지만. 마지막이 질문조였던 것을 이용해, 나는 상쾌하게 단언했다.
"아까 우리가 서로 동의했듯, 종교란건 그리 이성적인 이유로 설립되는 단체가 아니지. 구원을 바라고, 누군가를 믿고. 그 믿음은 위대하고도 확고한 힘을 가지고 있음에는 이견이 있을 수가 없어. 그런걸 얘기해버리면 모든 종교와 신성을 별 볼일 없다고 말하는 셈이 되어버리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다. 신들은 믿음에 묶여있다. 그것은 뼈져리게 겪고 왔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그 강대하고 굳건한 믿음과 신앙에 결코 밀리지 않는 것이 하나 있으니까. 그러니까 반드시 있었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