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 당연히 잡동사니만 한가득 가져다 놓았으니 사람의 이목을 끌 리가 없다. 범려나 자공, 백규가 살아 돌아와도 이런 걸 팔아치울 수는 없을 것이다. 키구치 요이카는 조금 시무룩해져서 고개를 숙였다. 앞머리가 찰랑 하고 이마 밑으로 늘어졌다. 그러고 있다가, 점 이야기를 듣자 눈을 가린 머리카락 너머로 시선을 들어올린다. “⋯점?”
그런 방법이 있었나? 요이카는 점의 종류를 머릿속으로 열거해 본다. 신사에는 오미쿠지를 뽑는 통이 있고 흉한 운세는 나뭇가지에 묶어 흘려보낸다. 점을 치고 그 점을 파훼하는 방식이다. 또는 이름으로도 점을 칠 수 있는 모양이지만 요이카는 사람의 이름에 약하다. 같은 반의 학생들이 손바닥을 한참 주물거리며 손금을 보거나, 아침마다 TV에서 언급된 별자리를 이야기하는 것도 일종의 점이다. 그러나 요이카 자신은 점을 칠 줄 모른다. 물론 왕년에 제법 많은 인간의 인연을 이어 주었고, 재액이 쉬는 해에는 온 들판에 풍년이 들게 만든 적도 있다. 그런데 그걸 점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인연을 잇고 풍년을 부르는 그런 일은, 두 눈에 보이는 것을 두 손으로 잇기만 하면 될 따름이다. 요이카는 그런 것보다도 눈앞의 물잔을 들어서 옮길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 훨씬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한 해 농사의 풍흉을 미리 아는 것에 집착했다. 그 해 팔백만 석의 소출이 나온다는 사실을 미리 안다고 해도, 실제로 가을이 되어 손에 쥐는 쌀 한 줌의 가치만 못할 텐데. 그래도 요이카는 선심을 못 이겨서, 파종 시기에 웃긴 옷차림을 하고 자기 앞에 몰려들어 온 사람들에게 농사의 결과에 대한 힌트를 알려주고는 했다. 나뭇가지가 떨어지는 모습이나 연기가 피어오르는 방향 같은 것으로 말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어김없이 결과를 잘못 해석했다.
“당신 농사 지어?” 요이카는 한참을 고민한 끝에 말했다. “대충 올해 몇 만 석인지 정도는 귀띔해줄 수 있는데.”
아니, 역시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방금 한 말은 잊어. 그래도 시험 삼아 당신이랑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이래봬도 나는 감이 좋으니까. 올 가을 원예부실에서 키우는 코스모스의 꽃잎이 몇 개일지를 보지도 않고 알아맞혔고, 오늘 내가 싸 온 점심 도시락 메뉴도 이미 알고 있지. 심지어 오십음도에 들어 있는 가나가 몇 개인지도 나는 알아.” 그렇게 술술 말하면서, 요이카는 아무 탄자쿠나 뒤집어서 ア부터 ン까지 가타가나의 오십음도를 그렸다. 46개다. 이어 가슴 주머니에 꽂혀 있던 펜을 책상에 있던 짧은 실로 자기 손가락에 묶는다. 손을 들어올리자 펜이 손가락에 매달린 채 오십음도 위에서 흔들렸다. “아무 질문이나 해 보겠어? 재화, 인연, 운수, 운명⋯. 당신이 알아도 될 정도까지는 알려 줄 테니.”
배려는 당연하지 않아요. 등불을 나눠주는 건 신사의 사람으로서 해야할 일이었을 지는 몰라도, 곤란한 일이 생길 수도 있을까봐 다른 분이 아니라 선배님에게 등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건 하지 않아도 괜찮은 일입니다. 심지어 필요없다고나 말해버렸드니 괘씸해서 안 도와줬어도 아무도 뭐라 못 했을 거예요. 이런 말들을 말하지는 못 하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선배님한테 무언가 보답할 수 있을만한게 있으면 좋겠는데, 입시가 코 앞인데 귀찮게 하는 건 아닐까 걱정돼요.........
“...안과 가보세요.”
축제에서 저랑 노는 것보다야 다른 사람이랑 노는게 더 재밌을 거란 건 굳이 비교하여 확인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어요. 전 눈에 띄고 싶지 않아하고, 낯선 사람은 커녕 소중한 연이 되어버린 친구 사이에서도 부끄럽다고 툭툭거리기만 합니다... 제가 괜히 망치게 될 것 같아서 친구가 있어도, 없어도, 어느 상황에서도 누군가에게 축제에서 같이 다니자고는 말할 수 없어요.
“후회해도 제 탓 아니라고 한다면요.”
그러니 선뜻 선배님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도 없습니다. 선배님은 분명 같이 놀 다른 사람이 많을 것 같으니까요, 굳이 저랑 재미없게 다니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선약도 없고, 친구하자고 해준 선배님이니까 괜찮을 것도 같지만, 그건 제 입장만 생각한 거니까 못 되게도 남탓을 해버리는 거예요. 재미없어서 후회하게 되어도 선배님 탓이라고 해버리겠다는 못된 심보입니다......... 그러다 마츠리 이야기를 꺼내니 눈을 깜빡거려요. 아저씨에 대해서는 비밀이 많으니까, 일부러 ‘어디의 누군진 모르겠지만’ 라고 말했을 때도 답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직접적으로 이야기가 나와버리면 둘러댈 말이 필요해져요. 저번에 와타누키 씨에게는 친한 후배라고 말했었으니까, 이번에도 친한 후배라고 말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냥 친한 후배예요.”
이미 아저씨는 제게 과분한 인연입니다. 정말로 운이 좋았는걸요. 아저씨는 운이 나빴고요. 차라리 언니나 오빠들 중에 한 명이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아저씨랑 즐겁게 같이 학교에 다녔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17년을 알고 지냈으면 이미 깊은 인연이 아닌가 싶어요. 저한테는 평생이니까요.
안과를 가보라는 그 말에 치아키는 히잉.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하네를 빤히 바라봤다. 설마 여기서 이런 말이 나오게 될 줄이야. 방금 자신이 무슨 말을 잘못했던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괜히 머리를 긁적였다. 뭔가 이전에도 손이 더럽다느니, 지금도 안과를 가보라느니. 뭔가 모르게 날카로운 듯 하면서도 날카롭지 않은 그 모습에 그는 가만히 고개를 갸웃했다. 좀처럼 감을 잡기 힘든 이 후배를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그는 잠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뒤이어지는 말을 쭉 들으며 치아키는 일단 조용히 침묵을 고수했다. 후회해도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 부분에서 특히 주목하며. 물론 뒤에 있는 친한 후배라는 말에 대해서는 그는 적당히 넘겼다. 그다지 중요한 상황도 아니고 자기 입으로 친한 후배라고 한다면 친한 후배인 것이니까. 그보다는 왜 '후회해도' 라는 말이 나올지 알 수 없어 치아키는 가만히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마저 입에 집어넣고 천천히 그 달콤함을 목구멍 속으로 꿀꺽 삼켰다.
"나야 혼자 다니는 것보다 누구랑 다니는 것이 좋긴 한데... 왜 후배 양은 내가 후회한다고 생각하는거야? 아. 설마 후배 양이 후회한다는 그런 이야기려나?"
그 달콤함을 완전히 집어삼킨 후 치아키는 살며시 고개를 내려서 그녀와 눈을 마주치려고 했다. 평소와 다를바 없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그와는 별개로 내 탓으로 해도 상관없어. 내가 권유했고 내가 같이 다니자고 했으니 그야 원인과 결과론적으로만 따져보면 내 탓인거지! 하핫."
그렇게 말을 마친 후 치아키는 다시 고개를 들었고 쭈욱 두 팔을 뻗어 기지개를 켠 후에 다시 팔을 내렸다. 분주하기 짝이 없는 주변을 잠시 바라보던 치아키는 이어 잠시 생각을 하다가 그녀에게 살며시 물었다.
"그럼 후배 양은 어디로 가보고 싶어? 후회하지 않도록 처음에는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같이 갈게. 아. 남자 출입금지 구역 이런 곳은 곤란한 거 알지? 그 외라면 정말로 조용한 녹차 마시는 곳이라도 괜찮아. 이래보여도 나. 녹차라던가 꽤 좋아하거든. 집이 신사라서 그런지 어릴 때부터 꽤 많이 마셔서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