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타누키 씨가 인사를 받아주었습니다! 제 인사가 어색했던 탓에 와타누키 씨도 어색한 모양이에요. 다음 번에는 좀 더 자연스럽게 인사할 수 있도록 연습해야겠습니다... 집에서 거울을 보고서 웃으며 인사하는 연습도 해야할 지 몰라요. 친구인 와타누키 씨에게도 인사를 어려워하고, 웃는 걸 힘들어하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더욱 어렵고 힘들 겁니다.
“...정말로요?”
의심하려는 게 아니라요, 대답은 잘 지냈다고 하는데 인사하는 손에 반창고가 붙어 있습니다! 와타누키 씨가 아니라 손을 빤히 쳐다보게 됐어요. 싸우지 않기로 약속은 아니어도, 그러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말을 들었어요. 물론 노력이라고 했으니까, 노력해서 이만큼 밖에 다치지 않은 걸 수도 있는 거고, 꼭 싸워서가 아니더라도 손바닥을 다칠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상처가 보이면 잘 지냈다는 말이 겉치레같은 말일까봐 걱정되어버리고 말아요.
“잘 지냈습니다. 좋은 일들이 있었어요.”
겉치레도 거짓말도 아니예요. 얼렁뚱땅 약속하게 되었긴 해도 아저씨랑 마츠리에서 놀았던 것도 좋은 일이고, 보충수업 때문에 방학 중에도 하교를 하다가 우산없이 마주친 쏟아지는 빗길에 우산을 씌워주는 선배님을 만난 것도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 여름방학을 곱씹을 시간은 아니예요! 먼저 말을 걸었으니까, 대화가 끊기지 않게 하기 위해 무언가 물어봐야 합니다.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와타누키 씨는 전학생이었단 사실을 떠오르고, 좋은 일들 중 하나인 마츠리 이야기가 떠올라요. 와타누키 씨는 마츠리에 가봤을까요?
지금껏 꽤나 떠들썩하게 지냈다지만 이야기가 퍼질 정도였나? 반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기색으로 잠시 돌이켜 보니…… 생각해 보면 그럴 만한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다 자기가 틀리게 말했다는 걸 깨닫자 기운차게 흔들거리던 손의 움직임이 뚝 멎는다.
"으악, 내가 잘못 알았었네! 이번에는 꼭 잘 기억해 둘게."
본인 역시도 늘 왜곡 당하거나 '그게 뭔데?' 취급을 받곤 하니 이 부분은 잘못했다 생각한 모양이다. 그래도 너구리 같은 동물은 안 대서 다행이지……. 너구리가 나쁜 건 아니지만 늑대나 여우보다는 둥실둥실해서 확연하게 다르니 말이다. 아참, 그건 그렇고 우연히 꿀잼 상황극에 말려들게 되어─엄밀히 따지면 본인이 뛰어든 거다─ 원래 목적을 완전히 잊어 버리고 있었다! 하지만 급한 일은 아니니 곧장 제 볼일 보러 쌩하니 가 버리지는 않기로 했다.
전에 없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치 단호한 답변에 그는 일순 말문을 잃었다. '그렇지만 난 사람이 아니라서 예외……'라는 변명이 소심하게 뒤따르는 듯하다 이내 사그라졌다. 영업정신이 무척이나 굳세서 저도 모르게 고분고분해질 뻔했다! 여태 몰라보았던 사에의 기개에 감탄하기도 잠시, 그는 금세 평소의 당당한 염치를 되찾았다. 뭐가 자랑인지 어깨 으쓱하며 얄밉게 뺀들거리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자존심 챙기는 신은 아니라서 말이지!"
한 입으로 두말하기 쯤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이 말씀! '없어 보여!'라 말하는 듯한 눈빛은 낯짝으로 이미 다 튕겨내었다. 있어 보이기 위해 신경썼다면 툭하면 초롱초롱한 눈빛 쏘아대며 가련한 척을 했겠나. 자기가 불쌍한 체하는 것은 습관성에 가까울 지경이면서 사에의 간절한 눈빛에는 그다지 적극적인 반응이 돌아오지 않는다. 그런 종류의 영예에는 통 관심이 없는데다 오히려 책임지기 싫어 피하고 싶어하는 성정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오, 너 대단한 사람이었어?" 지금도 어째 수석 무용수보다는 다른 쪽에 더 관심이 가는 모양이고. 기세를 되찾고 나서는 아예 사에가 본인을 설득하려는 모습을 흥미진진하게 구경하고 있다. 반짝 빛나던 표정이 지역 뒷담화로 끝나버리자 그는 기어이 빙글빙글 괘씸하게도 웃었다.
"어쩔 수 없지. 여긴 대도시에 비하면 시골이니까."
타지 사람이 남의 동네 불평을 하고 있으니 애향심이 강한 사람이 들었더라면 불쾌해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도 마찬가지로 줄곧 놀거리 없는 지방에 살았던지라…… 이런저런 시설의 측면으로는 여기가 더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여하간 열심히 영업을 슈슉 피해 대던 그가 문득 싱글거리길 멈추었다. 팔짱을 끼고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더니 곧 여상하게 말한다. "어디 나가는 거 아니고, 그냥 동아리로만 하는 거라면 생각해 볼게." 번복하는 짓 쉽게 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그래도 명색이 소원 들어주는 신이시다. 사에의 말대로 영입 시도 정도야 얼토당토않은 억지 부탁도 아니었고, 이쪽에서 먼저 소원 들어 주겠다고 장담했으니 어느 정도는 응해도 되겠다 생각은 하는데. 사실 중요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근데 나 등교만 하지 수업도 잘 안 듣거든. 들어와 봤자 유령 부원 될 것 같은데?"
'입부'는 들어줄 수 있어도 출석태도는 보장 못하겠다. 하네를 위해 제대로 들어줄 용의가 있는 부탁도 이렇게 등교만 하고 농땡이 부리는 판인데 동아리는 더더욱 태만하지 않을까……. 괜히 물만 흐리고 바쁜 입시생들한테 방해나 되지 않을까 모르겠다. 그런데도 이 아저씨는 이런 소리 하고 나서는 우하하 시원하게 웃지를 않나. 수업도 안 듣는 불량학생이라는 게 뭐가 자랑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