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이라고 누구나 공부를 하고 대학에 진학을 한다는 건 편협한 사고입니다. 말실수를 했는지도 몰라요.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말에 눈을 깜빡거립니다. 고향이 멀리 있는 걸까요? 타지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아는 얼굴이 하나 떠올라서, 조금 마음이 쓰입니다. 나홀로 타지 생활은 힘들고 외로울 것만 같은데, 이렇게 상냥할 수 있다니 신기해요. 우산 끝에 맺혔다가 떨어지는 물방울을 바라봅니다. 너머로 편의점이 가까워져요.
“......우산, 품절일 수도 있으니까 기다려주세요.”
들어가는 문 앞에서 걸음은 멈춥니다. 우산 아래에서 나와 편의점 차양막 아래에 서요. 선배님이 발을 돌려버리실까봐 불쑥 멋쩍은 부탁을 합니다. 그렇게 우산을 안 쓰겠다고 거절을 해놓고, 지금은 부탁을 하고 있으니 이상하게 보일 거예요. 하지만 선배님을 붙잡아둘 핑계가 기억나지 않았급니다. 선배님에게 줄 간식을 사올테니 기다리라 말할 수는 없잖아요! 선배님의 답을 들을 시간도 부족해서 서둘러 편의점 안으로 들어갑니다. 빠르게 우산이랑............ 어느 간식을 좋아하는지 모르니 하나씩 다 집어요. 부담스러울 수도 있으니 비싸지 않고, 양이 적은 낱개 포장 위주로요. 사탕은 맛 서너가지 정도, 초콜릿 하나, 젤리 작은 봉지입니다. 결제도 서두르고, 어서 편의점 밖으로 나옵니다. 손목에 걸린 우산, 두 손에는 간식을 들고 나왔어요. 선배님이 계신다면 간식들을 내밀고서 감사 인사를, 힘내서 할 거예요. 선배님이 안 계시다면............ 정말 반으로 찾아가야할 지도 모릅니다.
# 막레로 받을 수 있게 써왔어. 미유키가 떠났을지 안 떠났을지만 미유키주 마음대로 해주면 될 것 같아. 😊 그리고 아픈 것 같은데 무리말고 푹 쉬고 훌훌 털어버리자. 🥲
도리어 되물어오는 질문에 미야나기가 단호하게 끄덕였다. 이 신님은 그녀가 알고 있는 것들 중 가장 뒤를 짐작하기 힘든 존재임에 틀림없다! 종종 파악 가능한 면모도 있긴 했지만, 언제 어디로 튈지 전혀 예상이 안 되니 대체로 그렇다. 그러고선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 뚝 떼는 모습에 결국 학을 떼고 말았다. 아무래도 그냥 본인이 적응하는 게 제일 빠를 것 같다.
귀를 기울여 경청하던 미야나기의 얼굴이 점점 하얗게 질리더니 기어코 경악했다. 어떻게 든 예시마다 이렇게 쇼킹할 수가! 게다가 뒷부분 역시 원하기는커녕 괜히 엮이기도 싫은 일투성이다. 부활? 살릴 사람도 없다. 영생? 제발 평범하게 죽고 싶다. 시간 이동? ······이건 조금 혹하네. 여하간 기막힌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그녀가 곧 자리를 털며 일어났다. 님프가 호수 위를 걷듯 산뜻한 걸음으로 어디론가 사라진다 싶더니 금세 뒤에서 종이를 뜯어내는 소리가 났다. 다시 나타난 미야나기는 빈손이 아니었다. 그녀의 곁으로 푸른색 포스터 한 장이 달랑달랑 흔들렸다. 짠! 눈꼬리를 둥글게 휜 그녀가 얼른 두 손을 들어 포스터를 넓게 펼쳤다. 세상에. ’무용부 신입 부원 모집’? 단칼에 거절당할 부탁만 고르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본인은 되도 않는 요구라는 걸 전혀 모르는 눈치인지 꽤나 의기양양한 얼굴이었다. 미야나기는 생글거리는 웃음으로 긴 손가락을 들어 천천히 종이 위의 글씨를 톡톡 훑었다.
“사실 중도 입부는 원칙상 안 되지만······ 그 정도 권한은 저한테 있겠죠. 부원이 되면 여기서 나가지 않아도 돼요.”
요컨대 절충안이라는 거다. 보통은 입부를 하느니 차라리 당장 나가려 할 테지만 거기까지는 생각 못 했나 보다. 열심히 설명을 보충해가며 제안하는 입가에 반짝거리는 미소가 함박 걸려 있었다. 미야나기는 포스터를 착착 예쁘게 접어 그의 손에 억지로 들려 주려 했다.
“열심히 하시면 이번 예무제에 설 수 있을 거예요. 마린스키 발레단의 마리아 호레바가 딱 이맘때쯤 발레 시작한 거 알아요? 유럽이나 러시아는 안 돼도, 아메리카는 제가 책임지고 보내드릴 수 있어요!”
그녀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며 말했다. 운좋게 적절한 발등과 골반, 무릎을 갖추기까지 했다면야 유럽도 문제 없다! 또 이 세 가지가 가장 큰 걸림돌이기도 했다. 무용수의 자질을 가름 짓는 결정적인 요건이니 말이다. 물론 이런 쓸데없는 고민은 애초에 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미야나기 씨는 꿈을 좀 깨시길 바랍니다······.
이 신은 원래부터 모르는 상대에게도 거리낌없는 성격이니 케이의 짐작은 잘 들어맞은 것이다. 그는 상대의 입에서 제 이름이 나오자 반사적으로 고개를 갸우뚱하며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어, 그러니까 아는 사이였던가? 인간 신분 이름으로 부르는 걸 봐선 학교 학생인 모양인데 어째 기억이 나지 않는다. '미안하지만 모르겠다'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표정으로 뻔히 보였을 테다.
"엥, 나 유명인이었어?"
그렇게까지 튀는 짓은 안 했다고 생각하는데! ……이 양반의 괴상한 행동거지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들이 이 생각을 들었다면 백이면 백 이마를 탁 치며 한탄했으리라. 그는 무심한 기질이 있어 제게 당장 중요하지 않다 여긴 사건들은 홀랑 잊어버리곤 했지만, 적어도 자기를 아는 듯한 신이 누구였는지 곰곰이 생각할 정도의 기본적인 예의범절은 있었다. 그래서 이어지는 이야기를 얌전히 듣다가…… 듣다 보니…… 아하! 뭔가 생각날 것 같기도 하다! 손바닥을 짝 마주치며 그가 외쳤다.
"아! 그 친구의 친구……라면 그, 뭐더라…… 늑대?"
여우가 갯과이긴 하지만 한참은 틀렸다. 어쨌건 완전히 모르는 사이인 줄로만 알았던 때에도 꽤 좋은 첫인상이었는데 친구의 친구 쯤 되는 신이라면 더 반갑다! 그는 악수하자는 의미로 한쪽 손을 척 내밀고는 말긋말긋한 눈으로 케이를 바라보았다. 악수에 응해 주었다면 위 아래로 휙휙 야단스럽게도 흔들었을 거다.
"나도 소개를 해야 할 텐데 이미 아는 것 같으니까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아무튼 반가워, 이 이름을 알고 있으면 당신도 학교에 다니는 건가?"
"에이, 그런 거 안 빌 것 같은 사람한테도 이런 조건은 기본으로 달아줘야 해. 뭐든지 해주겠다고 말했다가 듣고 나서 말 바꾸면 없어 보이잖아."
놀리려는 의도는 아니었지만 화들짝 놀라는 반응을 보고 키득거린다. 처음 만났을 때는 워낙에 놀랄 만한 상황이었으니 그러려니 했는데, 이 여자아이 다시 보니 꽤 놀리는 재미가 있다! 사에가 알았더라면 기함할지도 모를 감상이다. 아무튼 그는 사에가 무언가 부스럭거리는 일을 다 끝내기까지 기다리며 잠시 딴생각을 했다. 이런 기회가 생기면 누구를 죽여 달라거나 저주해 달라거나, 이미 모집 끝난 서류를 조작해서라도 합격을 시켜 달라거나, 수명을 늘려 달라는 둥의 소원을 비는 경우가 그리 드물지는 않아서…… 그런 것들에 비하면 부자가 되게 해 달라는 소원은 들어줄 수 있으니 양반이다. 그리고 무용부에 들어와 달라는 부탁은 그보다 쉬우니 선녀 같은 수준이고. 어, 잠깐. 입부라고?
"으어?"
늘 종잡기 어려운 마이페이스였던 그가 사에 앞에서 이렇게 당황한 반응을 보인 것은 아마 처음이었을 거다. 그는 저도 모르게 멍청한 소리를 내고는 열심히 설명하는 기세에 휩쓸려 얌전히 경청했다. 포스터도 얼결에 받았다. 아니, 나 미국까지 갈 생각 없는데……. 어느새 본인이 미국에까지 진출하고 나서야 그는 질문하는 기자처럼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어… 근데 나 그 정도로 열심히 할 생각은 없는데."
그래, 발레가 싫은 건 아니지만 결국은 그게 문제다. 가미즈나에 한동안 머물러야 할 문제를 둘째로 치더라도, 애초에 그는 무언가를 깊이 파고들 만한 열의가 웬만해서는 생기지 않곤 했다. 게다가 쫓아내지 말라는 말을 그런 식으로 반격에 쓸 줄이야! 들여보내 달라며 창문까지 두드리면서 난리를 쳤던 것이 무색하게 그는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기로 했다. 아니, 애초에 이건 역전재판 같은 게 아닌데 말이다…….
"일학년이신데 삼학년인 저까지 소식이 들려오는 정도면 유명인이라고 할 만 하지 않겠습니까."
케이가 작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뒤이어 들려오는 늑대냐는 말에 특유의 티벳여우 표정이 나와버리고 말았지만. "여우입니다만...." 어쨌든 악수를 하고 손이 휙휙 흔들리는 것을 보다가 수호도 비슷한 기질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음을 떠올렸다. 한국 신들은 원래 다 이런 걸까 아니면 내가 만난 한국 신들만 이런 성격인걸까. 고민해도 나오는 것은 없었지만.
"네. 저는 3학년 A반입니다. 모쪼록 재미있는 학창 생활 보내셨으면 좋겠네요. 그런데, 은행에는 무슨 볼일로 오신 것인가요?"
제 차례는 난리통에 이미 지나가버려서 표를 다시 뽑거나 내일 다시 오거나 해야할 성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