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나기는 낮은 한숨 섞인 목소리로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동감해요. 여태 한 번도 의심 안 했다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야.“ 어쩜 그렇게 바보같이 철썩 믿고만 있었을까! 조금만 고민해 봐도 지적할 허술한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물론 그들이 악의를 가지고 자신을 억누르기 위해 꾸며낸 말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저뿐 아닌 모두가 강박적으로 규율에 얽매여 이 순간까지 살아가고 있을 테니까. 별빛은 죄 얼굴 방향으로만 쏟아졌기에 어둠 속에 표정을 묻는 건 실패했을 듯싶다.
“어쩌면 전부 의미 없었을지도 모르겠어요.”
혼잣말처럼 한 마디 내뱉고는 또다시 엷은 한숨. 당사자조차 가늠 하나 안 되니 제아무리 전능하다 해도 짐작되는 건 당연히 없을 수밖에. 가로등에 희미하게 지는 애꿎은 그림자만 밟다 말고, 문득 어렴풋하게 고개 든 그녀는 못 들을 소리라도 들은 양 얼떨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 말은 처음 들어 봐요. 난 항상 스스로에 대한 의식을 죽여야만 했으니까요.“
그러나 곧바로 이어지는 기막힌 이야기에 새파랗게 경기를 일으켰다. “켁, 몇 명씩이나 돼요? 거짓말!” —이었으면 좋겠다. 갑자기 무슨 헛바람이 들어서 웬 신들이 단체로 학교나 다니고 있는 거람! 신씩이나 됐으면 등교하기 따위 말고도 할 수 있는 좀 더 멋진 일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들 사이에 영문 모를 공교육 신드롬이라도 새삼 불고 있나 보다.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애써 존중하기로 했다. 시키는 대로 순순히 머릿속에 지도를 펼친 미야나기는 이내 누군가를 떠올렸는지 금방 반달처럼 웃었다. “아하. 제가 세 번째로 존경하는 분이 자란 곳인데.“ 타인의 출신지에 대해 아는 척할 지점이 있다는 건 행운이다. 그게 자칫 무례할 수 있는 스테레오 타입만 아니라면야.
”신이라지만 낯선 곳에서 지내는 건 힘들 텐데. 저도 어릴 때 타지에서 오래 살았어요. 그리고 지금, 여기도 타지.“
물살을 튕기듯 손가락으로 허공 혹은 땅 위를 가르켰다. 비록 신과 인간이라지만, 어쨌든 이방인이라는 신세는 맨 같아 어쩐지 동질감을 느꼈다. 신 된 입장으로서는 인세 자체가 외지나 다름없겠지만 말이다.
답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많이 아파서 화가 난 걸까요? 보이지 않는 곳에 상처가 있을 수도 있다고, 다른 곳은 다치지 않았냐고 물어보기까지도 했는데 제가 너무 조심성이 없었어요. 부주의했습니다. 어떡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서 와타누키 씨를 흘끗 쳐다보았어요. .........쳐다보지 않았던 쪽이 좋았을 지도 모릅니다. 와타누키 씨의 머리카락을 붉은 색이에요. 그리고 귀 끝이 비슷한 색깔이란 걸 봐버렸어요. 아팠던 게 아니라 부끄러웠던 것 같아요. 당연합니다. 저도 누가 제 손을 덥썩 잡으면 놀라고 당황해서 부끄러울테니까요, 배려심이 너무 모자랐습니다. 저도 덜컥 민망해집니다. 얌전히 두 손을 모았어요. 아까처럼 섣부른 짓을 또 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말을 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아져서, 헛기침을 하며 대답을 하는 와타누키 씨의 대답에 고개만 끄덕거렸어요. 늦봄은 늦봄이고 여름이 다가오기는 다가오는 중 것 같습니다. 얼굴에 열이 올라서 더운 기분이 들어요.
“아까, 고의 아니에요. 실수입니다. 와타누키 씨가 상처 만져서, 만지려고 해서 그런 거잖아요.”
...그래도 사과는 해야한다고 생각해서, 사과하려고 꺼낸 말이었는데 마무리가 이상합니다. 문장이라던지 문맥도 전부 이상한 것 같아요. 머리가 더워서 일을 못하는게 분명합니다. 역시 말을 하지 않는 편이 나았던 것 같아요. 와타누키 씨의 말에 대답을 열심히 하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삐죽이 내밀어진 입술이 눈에 들어오자 그는 조금쯤 동그래진 눈으로 상대를 올려다보았다. 오늘 처음 본 사이건만 저 삐진 듯한 표정을 하고 있으니 왠지 모를 친근감이 솟아날 것만 같다. 골탕 먹일 생각은 아니었는데 모르는 사이에 무안하게 만든 모양이다. 멀뚱하게 바라보던 것도 잠시 싱글싱글한 표정 돌려놓고 저 역시 벌떡 일어나 몸을 앉혔다. 팔짱 척 끼고는 어깨 으쓱하고 있으니 여전히 장난기만 가득한 태도다.
"내가 외국에서 난 신이라 자세하게 설명하면 말이 너무 길어져서 말이지. 도깨비라고 알런가 모르겠네."
늘 생각하지만 소개할 때 척하고 알아듣는 이 없으니 이것만은 조금 고단하다. 하지만 장난스레 던진 말에도 골몰해 주는 상대를 보고 있으려니 사소한 불만 정도야 무슨 의미가 있나 싶고. 자신이었다면 5초 고민하다 모르겠다 했을 텐데 열심히 생각해주는 걸 보니 저 이도 참 상냥한 성정이라는 생각을 속으로 한다. 고심 끝에 돌아온 답변을 들은 그는 딱 손가락을 튕겼다. 경쾌한 소리가 마치 정답을 알리는 벨소리처럼 울렸다.
"정답! 누구랑 진득하게 만나는 것도 자리잡고 앉아서 수양하는 것도 나한텐 영 안 맞아서. 그냥 한가해서 놀러나 왔지."
노는 것보다 중요한 목적이 따로 있기야 하지만 곧이곧대로 말할 필요까지는 없으니 또 퉁치기로 했다. 반절은 그간 해 보지 않았던 학창생활에 혹했던 것도 사실이라. 슬그머니 미유키에게로 몸 기울이며 그는 또 짓궂은 물음 찔러 보았다.
"괜한 걱정은 아닐 수도 있어. 알아채기 힘든 교묘한 불행을 주는 방법도 얼마든지 있거든. 이미 모두들 화를 당하는 중인데도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일지도 모르지. 네가 이 일로 머리 싸매고 고민하게끔 만든 것만 해도 넓은 의미에서는 벌 아니겠어?"
평생껏 얽매여 두려워하던 과보가 사실은 무용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는 허무한 마음을 그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위로하거나 진심 어린 공감을 해줄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충격을 가져다 준 명제를 뜯어고쳐 줄 수는 있었다. 물론 그것이 긍정적인 방향의 정정이 아니라 문제겠지만. 그다지 잘한 소리도 아니건만 그는 뒤늦게 엄지손가락 척 들어올리고 예의 바른 고양이마냥 씩 웃고나 있다.
"너도 꽤 복잡하게 살았나 보네. 뭐, 의식 없이 살더라도 그중에서 마음 가고 끌리는 게 있다면 부딪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걸. 나 원래 이런 소리 잘 안 하는데, 내 조카 비슷한 애랑 닮은 구석 있는 것 같길래 하는 말이다?"
'원래 이런 소리 안 하지만 네가 조카/딸/손녀 같아서'라는 말은 너무나도 전형적이고 고리타분한 꼰대 화법이지 않나. 어깨나 으쓱하며 가벼운 태도로 말하지만, 남의 마음 좀처럼 헤아리지 않는 그가 시큰둥한 반응 대신 이런 소리 하는 경우는 정말 드물었다. 하지만 그런 것도 잠시 새파래진 사에를 보자 또 한껏 만족스러운 미소로 얄미운 웃음소리 흘린다. "여기 지명이 가미즈나잖아. 이름부터 신 자가 들어가는데 연관이 없을 것 같아?"
"나쁘지만은 않아. 난 고향에서 할 만한 것들은 웬만큼 다 경험해 봐서 그런지 낯선 게 더 반갑기도 하네."
글쎄. 고단하다 해봤자 고작해야 도깨비라 말하면 열이면 열 모두 '그게 뭔데?'라고 대답하기에 적당히 퉁쳐서 말하게 되는 설움밖에 없다. 아, 아니지. 밥 해 먹는 게 좀 귀찮다는 것도 있겠고. 여기 음식 너무 짜다는 것도 있다. 어라, 나 꽤 고충을 겪고 있었잖아? 둔감한 그는 그간 자각하지 못했던 타향살이의 고충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그리고 둔한 마음씨에 번쩍 좋은 생각도 하나 스치고 말았다. "아니, 타향살이 겁나게 힘든 것 같다. 아… 너무 힘들어서 팥 퍼먹고 죽는 게 낫겠네……." 타지 생활도 괜찮다며 말한지 5초도 지나지 않았건만 어째 말 바꾸기가 손바닥 뒤집기보다 쉽다. 그러다가도 금세 활짝 웃는 낯으로 뻔뻔스레 말하지를 않나. 과장된 행동거지 숨기지도 않는다.
"그래, 원래 타지 사람끼리는 힘든 일이 생기면 돕는다잖아? 그러니까 연락처 알려주라. 마침 집도 거의 다 와 가는 것 같고? 나 수호신이잖아, 연락처 주면 고마워서 너 돌아가는 밤길도 지켜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아이자와 치아키의 오늘 풀 해시는 자캐가_자주뿌리는_향수는 ->굳이 지금 향수를 뿌리진 않지만 아마 차후에 뿌린다고 한다면 역시 시트러스향을 뿌리지 않을까 싶네요. 약간 그 특유의 향이 치아키에게는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어요.
자캐의_매력포인트 ->매력 포인트..(고민중) 일단 밝고 발랄한 점? 하지만 솔직히 돌리면서도 되게 정신없고 뭔가 무게도 없는 그런 아이다보니 솔직히 이게 매력이라기보다는 아. 저놈 언제 철드나.. 이런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절로. (옆눈)
자캐의_손은_따뜻한편_차가운편_중간 ->따뜻한 편이랍니다. 물론 그렇다고 막 뜨겁다..그런 것은 아니고 그냥 어느 정도 손에 열기가 있어요. 그래서 추울 때는 손이 많이 시리다고 하네요. 열을 순식간에 많이 뺏겨서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