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 일로 얌전하게 병이 따진 숙취해소제를 선뜻 받아든다 싶더니, —아차 싶은 사이에 그대로 병을 든 채 밖으로 달아나버린다. 이야! 정말이지 진절머리 나고 무지 골때린다! 어쩐지 이상하게 순순한 척 말을 듣는다 했다. 그녀는 빈 옆자리를 바라보며 이마를 짚고 깊은 한숨을 토해낸다. 통유리에 팔짱 낀 뒷모습이 투과되는 걸 보면 영영 가버린 건 아닌 것 같았다만. 답답해진 미야나기는 뭐라도 좀 차가울 만한 것을 찾았다. 가령 답답해진 속을 싸악 내려줄 술이라든가. ······가 아니야! 술이 아니야! 저 사람 때문에 나까지 불량해지고 있잖아! 그녀는 잔뜩 혼란에 빠져서는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거나 골라 담아다 카운터에 쾅 하고 내려놓았다. “······계산이요.” 자동문이 열림과 동시에 싸늘한 바람이 밀물처럼 가까워진다. 미야나기는 머리카락을 새까맣게 휘날리며 잔뜩 퉁퉁 불어있는 그에게 다가갔다. 온몸으로 대놓고 ‘나 열받았어요’라는 티를 팍팍 내고 있는 게, ······역시 무서워서 지금이라도 도망갈까 싶은 마음을 굉장히 자극했지만. 그리고 또. 또 이상한 소리. 약간의 오기를 섞어 소심하게 반항했다.
“아까부터 자꾸 이상한 말을 하는데······ 너 몇 살이니? 2학년 아니야? 혹시 복학했다거나 입학유예 돼서 진짜 성인인 거면 사과할게.“
2학년 복도에서 만났으니까 2학년!이라는 제법 합당한 추론이다. 외국인인 데다 말투도 참 엉뚱하게 배워와서는 이상하게 어려운 한자어를 골리 쓰는 게 새삼 이상하게 느껴졌다. 퍽 불쾌한 얼굴로 온갖 불평불만을 죄 늘어놓으며 툴툴대자, 저도 나름 항변 아닌 항변을 하려 애쓴다.
“나도 싫은 소리 들으면서까지 이러고 싶지 않아. 힘들어.“
그야 안 그래도 피곤해 죽겠는데 당장 돌아가서 발 뻗고 있고 싶지 누가 취객을 돌보려 할까. 게다가 공포스럽기 짝이 없는 동교의 불량 학생을! 심지어 표정도 완전 이상하고 무서워. 미야나기는 허겁지겁 편의점 봉투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 입에 물었다. 먹으려고 한 건 아니고 그냥 손을 넣었는데 잡힌 게 아이스크림이었다. 어쨌든, 욕은 욕대로 다 해놓고 마시라는 숙취해소제는 단숨에 고분고분 삼킨다. 그러면서도 이번에는 남은 두 병을 죽이기라도 할 듯 화난 얼굴로 노려보고 있다. 그녀는 제 손에 여태 쥐어진 유리병을 한 번 내려보다가, 단호하게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아니지. 그럼 이걸 누구 주려고 샀을까. 설마 내가 마시려고 샀을까?“
부스럭대며 봉투를 열어 안을 들여다 본다. 우유, 탄산음료, 아이스크림······ 당황한 나머지 참 많이도 샀다! 그녀는 다시 그중에서 하나를 골라 남은 숙취해소제와 함께 건넨다. 초콜릿 우유였었나. 손이 모자라 앞니로 물고 있는 아이스크림 때문에 발음이 뭉개져 얼간이처럼 들렸을 테다.
”술을 마시든 말든 상관 안 해. 그치만 길에서 그러고 있는 건 위험하잖아. 제대로 들어가는 것까지만 보고 신경 끌 테니까 걱정 마. 아니면 차 태워줄 테니까 그거 타고 돌아가.“
오늘은 마지막 날.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주기 위한 용도로라도 한번 점수를 모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치아키는 학교 1층 현관 구석에 살짝 숨겨둔 QR코드지를 꺼냈다. 자신들이 숨긴 것이니 자신들은 그 위치를 금방 알 수 있다는 것이 조금은 비겁할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꺼내놓으면 지나가면서 알아서 QR코드를 찍지 않겠는가.
그 말을 툭 던지고 나서는 지금껏 당당하게 나이 많다고 우겨대던 태도가 거짓말이었다는 것처럼, 그는 정확히 몇 살이냐는 물음에 잠시 말문을 잃었다. 할말이 없어서는 아니었다. 어…… 내가 몇살이더라. 제 나이를 본인도 정확히 모르기에 생긴 불상사였다. 인간도 스물 넘어서는 슬슬 자기가 몇 살인지 헷갈릴 때가 오는데 신은 오죽할까. 심지어 그는 지금 취한 상태라 일일이 계산하기려 해도 산수가 잘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아… 그때 왕 이름이 내물인지 뭔지였던 것 같은데……. 그때가 기원후로 몇 년이지? 눈 게슴츠레하게 뜨고 손가락을 접어가지만 그걸로 계산이 될 리가 있나. 결국 앞자리만 세다 말고 말했다. 고개도 갸우뚱하면서 어째 목소리에 확신이 없다.
"천… 천육백?"
신과 인연이 있다거나 하는 경우처럼 특별한 배경이 있지 않고서야 이런 소리를 곧이곧대로 믿어준다면 그 사람도 세상 살기 참 힘들리라. 어느 모로 들어도 주정뱅이 헛소리처럼 들리는 말일 뿐이다. 하지만 술 취한 사람 집중력은 짧다고, 이번에도 계산에 집중하느라 상대방에게 향하던 불퉁한 감정도 덕분에 깜빡 잊은 듯했다. 원래가 그런 성격인지 지금이 특수한 상황인 것인지 이 순간만 봐서는 참 단순하다고 해야 하나. 그러느라 그는 얌전히 숙취해소제를 받고 말았다.
"아잇, 무슨 인간이 이리도 날래……."
하나 마셔 줄쏘냐! 그는 초코우유만 챙기고 숙취해소제는 주머니에 넣었다. 바보같은 도깨비… 초코우유도 숙취해소에 도움 된다는 사실도 모르고……. 우유갑을 뜯어 초코우유 역시 단번에 목구멍으로 다 때려넣고서는, 입가 대충 닦으며 중얼인다. "불만 듣기 싫으면서 참섭하는 이유가 무어냐? 나였담 누가 엎어져서 죽든대도 무시했을 터인데……." 처음 봤을 때보다는 조금 술이 깨고 있는지 제법 논리적인 소리가 나온다. 아직도 말투 괴상하고 앞서 천육백 운운이나 했으니 멀쩡한 상태라기엔 한참 멀었지만. 알코올성 얼간이 비슷한 상태인 그는 그 잠시 동안에도 기분이 휙휙 바뀐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술 깨라고 간섭하는 상대에게 불만스러운 표정 무시무시하게 지었으면서, 이제는 또 헤실거리며 들이대고 있다.
"아! 나 좀 데려다 주렴. 응, 이 한창 때 늙은이 혼자 나다니기엔 세상이 몹시도 흉흉하지 않느냐?"
그러며 두 손 꼬옥 마주잡고 사에를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일상생활에서도 종종 써먹곤 하는, 눈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될 때까지 부담스럽게 쳐다보기 전법이다!
술주정 tmi 플로우인 건가요...??? 뭏론 이제 안즈는 청소년이니까 아직 술은 못 마시고 안 마셔봤지만... 성인이 되어서 마신다면 애정표현+감정과잉(특히 울기) 정도가 아니려나요? 친구들 붙잡고 사랑한다고 안고 다니기... 플러스 굴러다니는 나뭇잎 보고 외로워 보인다고 슬프다면서 울기?
188 자캐는_원한을_산_일이_있는가 ㅓ.... 있지? 종종 언급되는 날라리양아치원숭이 시절에는 행실이 별로 좋지 않았었고... 그것 외에도 하도 까불거려서 빈축 산 경험도 좀 있고... 그래도 그건 하도 옛날 일이라서 원한 가진 사람이 얘보다 먼저 죽었거나 적당히 옛날 흑역사 취급하고 넘어가주는 경우도 많아서 큰 문제는 없대~
337 자신에_대한_헛소문이_도는_걸_안_자캐는_어떻게_행동하는가 들어 보고 재밌으면 용서해주고 아니면 응징한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임...😋
341 자캐는_생각부터_vs_행동부터 엄연히는 생각부터 하는 쪽이긴 한데, 생각을 제대로 돌아보지 않고 떠오르는 그대로 행동으로 옮기기 때문에 생각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편...🤦🏻♀️
>>793 어서 오세요! 린주! 으앗. 아무래도 도깨비..라서 그런지 그런 일이 있었군요. 하기사 신으로 살다보면 정말로 긴 세월을 살았을테니 그게 이상하진 않을터! ㅋㅋㅋㅋㅋㅋㅋ 아닛. 재밌으면 용서해주는 거예요?! 막 나쁜 의도로 하는 말이라도 재밌으면 용서해주는거예요?! 그리고 어..그래도 결국엔 생각이죠! 생각을 먼저 하는 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