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완전 긴장했나봐. 아까전의 그것 때문인가. 되게 멋졌는데. 그렇게 생각하며 치아키는 로봇처럼 몸을 돌리는 사치를 가만히 바라봤다. 일단 부적을 보고 싶다고 하니 치아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진열대에 있는 부적을 하나하나 손으로 가리켰다. 물론 부적 자체에 큰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봤쟈 아주 사소하고 작은 좋은 일이 가능하게 하는 정도? 물론 그것만으로도 일반적인 부적보다는 효과가 있는 것이긴 하지만 과연 부적을 사는 이들이 그 정도로 만족을 할지. 그래도 일단 자신 쪽에선 팔면 되는 거니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는 말을 이었다.
"좋아요. 좋아. 여기까지 왔는데 부적 하나 정도는 사야죠. 물론 꼭 사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념으로? 하핫. 아무튼 여기는 인연의 신인 키즈나히메님을 모시는 신사. 그렇기에 아무래도 인연에 도움을 주는 그런 부적이 많아요. 이를테면 여기에 있는 이것은 좋아하는 이와 좋은 인연이 생길 수도 있는 부적. 이것은 가족과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는 부적. 그리고 이것은 친구와 좋은 인연이 생길 수도 있는 부적. 그 외에도 가지각색 많으니까 천천히 구경해봐요. 하지만..."
이어 치아키는 물이 담겨있는 컵을 살며시 권하면서 표정을 진지하게 바꿨다. 지금까지 보이던 가볍고 혹은 경박했던 모습과는 아무래도 차이가 있었다. 이내 진지한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고 그는 부가적인 설명을 이었다.
"결국 만들어내는 것은 자기 자신이에요. 이 부적은 약간의 계기를 만들어 줄 수는 있지만 그 끈을 묶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이어야 해요. 신은 약간의 도움은 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결정적인 도움은 잘 주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부적을 사는 것은 좋지만 부적만으로는 효과가 없고 자기 자신이 움직여야 신도 도와준다는 점은 잊지 말아주세요."
설명이 끝나자 그는 이어 다시 싱글벙글 웃는 모습으로 보이더니 탁자 아래 쪽에 있는 상자에서 '키즈나히메'를 본따서 만든 작은 봉재인형을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지금 부적을 사면 아이고! 세상에! 이렇게 귀여운 키즈나히메님 인형도 서비스! 무려 부적+인형이 1+1 서비스!! 자. 무슨 부적 고르시겠어요?"
"무리는 아니야. 무리는. 애초에 난 무리라는 단어를 싫어해서 말이지. 무리하게 뭔가를 하거나 하진 않아. 그런 것보다는 가늘고 길게 사는 사람이니까 안심해도 좋아. 후배 군."
굵고 짧은 것보다는 가늘고 길게. 꼭 이름이 안 남아도 좋으니까 그냥 어렴풋하게나마 기억에 남게. 그리고 매사를 즐겁게. 자신의 좌우명을 머릿속으로 다시 한 번 중얼거리며 치아키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정말로 괜찮다는 듯이 편안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한편 제 물음에 물은 그다지라는 말에 치아키는 잠시 생각을 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오케이. 그렇다고 막 바뀌거나 하진 않겠지만 어느 정도는 참고하도록 할게! 아무튼 수학여행지? 아. 그거야 당연히 비밀이지. 알고 싶으면 학생회 들어오면 알려줄 수도 있는데 말이야. 하핫. 물론 이건 권유가 아니야. 그냥 학생회 멤버들 정도만 안다라는 이야기야. 적어도 지금 단계에서는."
기밀사항 중 하나라는 듯이 오른손으로 숫자 1을 표현하며 치아키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주 조금만 힌트를 주는 것도 좋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나 그렇게 하면 알게 모르게 다 퍼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기에 힌트조차도 주지 않으려고 이야기를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끝내면 너무 심술궂다고 생각을 하며 치아키는 딱 정보 하나만 주기로 하며 입을 열었다.
"가미즈나는 인연의 땅이라고들 하지. 수학여행지는 물이 유명한 곳. 일단 여기까지만! 이 이상은 진짜 정보 유출이니 말이야. 아. 참고로 해외는 아니니까 우와! 우리 베네치아 가요? 이러면 곤란해. 학교 예산을 모두 써도 전교생이 다 베네치아에 갈 순 없어."
물론 교사에게 의견으로서 낼 순 있지만 바로 기각될 거라고 이야기를 하며 치아키는 고개를 살며시 도리도리 저었다.
그래도 물이 아니라도 볼 곳은 많다고 이야기를 하며 그는 괜히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돌아다닐 곳은 많을테니까. 다만 모두의 기호를 맞춰줄 수 없다는 생각에 치아키는 아주 살짝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조금 더 능력이 있다면...이라고 생각을 반. 역시 조금은 아쉽다고 생각하는 것이 반. 허나 그렇다고 해도 자신은 학생회장이었고 저 후배를 위해서 많은 것을 맞춰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저 후배가 어느 정도 이해해주길 바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그는 괜히 어깨를 으쓱했다.
"좋아. 그러면 슬슬 시간도 시간이니 나는 가야겠어. 후배 군. 너무 늦게까지 있진 말고 제때 하교하기다!"
너무 늦게까지 있으면 수위가 나타나서 잡아갈지도 몰라~ 그렇게 장난스럽게 이야기를 하면서 쿡쿡 웃은 치아키는 이내 손을 흔들면서 밖을 향해 터벅터벅 나섰다. 당연히 가야 할 곳은 하나. 학생회실이었다.
"아무튼 오늘은 수학여행 일정이나 다시 짜볼까. ...뭐, 그렇다고 해도 대부분이 자유행동이겠고..." "여름이 다가오면 슬슬 이것저것 또 준비를 해야겠네. 바쁘겠어. 올해 여름은."
그런 혼잣말을 남기면서 치아키는 다시 한 번 어깨를 으쓱했다. 딱히 불만이거나 싫다는 느낌은 그의 표정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와아, 양주! 하얗게 질린 사에와는 달리 그는 참 해맑은 얼굴로 계산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뒤늦게 달려온 사에가 제지하자, 그냥 제지하다 못해 미성년자와 법적 처벌 운운하며 못까지 제대로 박아버리자 추욱 처져서는 얌전히 붙잡혀 돌아갔다.
"제에길, 합법적이고 문제 없는 방법이 있건만 시도도 못 하게 그리 막아버리면 쓰나아……."
신의 힘을 써서 속여넘기는 방법 같은 것도 있고, 외형을 조금 바꿔서 성년으로 보이게 하는 방법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옆에 딱 붙어서 감시하고 있으면 그런 수를 쓰지 못하게 된다. 술 들어간 와중에도 나름대로 빠릿하게 머리 굴려서 방금 그 짓 했던 모양이다. 과연 그는 빙글 돌아서 숙취해소제들과 눈이 마주치자, "에엥, 깨기 싫으니라…… 안 마시면 안 되겠느냐?" 울상이 돼서는 대번에 싫은 소리 한다. 무슨 약 먹기 싫다는 애도 아니고. 당연히 그는 내일 아침에 일어날 자신이 있었다! 자신이 있으니 이러고 있는 것 아니겠나. 음주 특화 종족이라 고작 이 정도 마시는 정도로 골골거리진 않을 테니 그로서는 꽤 억울한 상황이다. 그러나 마비된 머리로는 이 상황을 타개할 적당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그는 착실하게 숙취해소제 한 병을 얌전히 들고, ……차마 마시지는 못하고 후다닥 편의점 밖으로 도망쳐 나왔다. 정말이지 그 많은 나이는 어디로 먹은 건지 통 모르겠다. 따라나온다면 그대로 줄행랑 친 것도 아니고, 편의점 밖 문 바로 앞에서 팔짱 낀 채 기다리는 그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잘한 짓 하나 없고 좋은 일 하는 사람 귀찮게만 한 주제에 제 쪽이 더 불만스러운 표정이다. 그 와중에도 숙취해소제 버리지는 않고 잘 들고 있는 꼴이 퍽 우습다.
"왜 그리 훼방을 놓느냐? 나는 족히 연만(年滿)이야! 나이들었으니 마셔도 된대도? 계속 그리 군다면 내 아주 토라지는 수가 있어."
토라진다니, 어휘가 구질구질하지만 제대로 이해한다면 협박 비슷한 발언이었다. 신에게 좋지 못한 인상이 박힌다는, 속되게 말해 찍힌다는 뜻이니까. 술 금지당한 일이 어지간히도 언짢았나 보다. 나 도깨비라고! 도깨비는 숙취해소제 안 마신다고! 으아아 빡쳐! ……하지만 이미 딴 병, 이것을 내내 들고 있기도 무엇하고, 그는 한국인의 토속을 다분히 닮은 신이었기에 멀쩡한 음식 버리기도 아까웠다. 결국 그는 흐느적거리며 길다란 탄식 빼고서 들고 있던 해소제를 눈 감고 한 번에 비워 버렸다.
"한 병만이다. 더 딸 생각 말거라."
진짜 삐졌나 보다. 잔뜩 찌그러든 얼굴로 남은 숙취해소제를 불구대천의 원수라도 된다는 양 노려보고 있다.
누구냐고 물어보니 반문이 돌아왔습니다. 누구일까 제게 물어봐도 대답해줄 수 있는 건 없습니다! 갸우뚱을 고개를 기울이는 니노미야 씨를 보니 의문만 샘솟습니다. 심지어 이 반 학생이라고 해요. 저도 고개가 기울어요. 니노미야 씨와 눈이 마주칠 수 있는 방향이었어요. 거울같이 되었어요. ...따라하려고 한 건 아니었고요, 니노미야 씨가 스스로 누구인지 모른다면 저야 당연히 모르는 거니까요. 저도 모르겠다는 뜻의 갸우뚱이니 뜻을 전달해야 합니다. 대화하는 중에 눈을 마주치는 건 기본 예의이잖아요. 따라한게 아니에요!
“힉.”
...놀라버렸어요! 당연합니다. 팔뚝을 눌러 보려고 한 거니까요, 니노미야 씨가 와서 닿을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깜짝 놀란 소리를 내버렸어요. 놀라서 굳은 것도 굳은 거지만, 놀란 소리를 내버린게 민망해서 굳어버렸습니다. 제대로 닿았으니까 니노미야 씨는 귀신이라던지 신은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제가 지금 귀신을 만난 것처럼 굳어버렸습니다. 부끄러워요! ...힘내서, 팔을 움직여서 다시 거둡니다. 그 상태로 굳어있을 수는 없어요. 그리고 B반의 출석부로 얼굴을 가려요. 눈을 맞추는게 예의라고 해도 못 맞춥니다, 지금은요!
“...하나도 재미없습니다.”
다행입니다, 니노미야 씨가 쿠로사와 씨여서요. 하지만 조금 걱정은 되니까요, 또 장난을 치고 있으면 안 됩니다. 영어 선생님은 쿠로사와 씨를 기다리는데 니노미야 씨도 쿠로사와 씨도 아닌 학생이 쿠로사와 씨라고 장난을 치고 있는 중이면 안 돼요. 출석부를 조금 내려들어서 눈 아래까지만 가려요. 마스크를 쓴 기분이 됩니다. 쿠로사와 씨를 빼꼼히 바라봐요.
“장난이나 치는 거 보면 시간 많겠네요. 같이 갈 곳이 있습니다.”
교무실에 가야겠어요. 영어 선생님은 쿠로사와 씨가 누구인지 알테니까요, 가짜 쿠로사와 씨를 데려가면 아니라고 하실 거에요. 그러니까 쿠로사와 씨를 데려가기로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