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이 전부 끝나고 방과후 시간이 찾아왔지만 미카는 교실을 나서지 않았다 그저 책상에 풀썩 엎드려서 무기력하게 스마트폰이나 들여다보고 있을 뿐 아직 교실을 떠나지 않은 아이들의 말소리가 시끌벅적하다 그런 와중 제게 말을 거는 누군가가 있었으니 고개를 돌려보니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 학생회장이었나
하기사 제 눈으로 봐도 딱히 뭔가를 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허나 원래 이렇게 대화라는 것이 성립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그는 태연하게, 정말로 가볍게 이야기를 하면서 두 어깨를 으쓱했다. 여긴 뭐하러 왔냐는 물음이 곧 흘러나오자 그는 쿡쿡 웃으면서 손으로 그를 가리켰다.
"뭐긴 뭐야. 중국의 삼국지 읽어본 적 있지? 거기서 삼고초려라는거 알아? 거기서도 세 번은 찾아간다는데 난 한 번밖에 얘기 안했으니까 앞으로 두 번은 더 와야지! 그래서 이렇게 왔다는 말씀! 은 물론 반 정도 장난이고~"
정말로 가볍게 장난이라는 말에 괜히 악센트를 붙이면서 그는 다시 한 번 어깨를 으쓱했다. 이어 그는 가만히 교실 안을 고개를 돌려 두리번 돌아보더니 또 다시 가벼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 살며시 근처에 있는 책상에 자신의 오른팔을 올려서 제 몸을 지탱하며. 그렇게 무게중심을 살짝 뒤로 옮겨서 조금 편하게 제 몸을 지탱한 후에 그는 말을 이었다.
"이 반에 우리 학생회 임원도 한 명 있거든. 아. 와타누키 군을 말하는 거 아니야. 여기에 있는 다른 아이. 아무튼 조금 전달사항이 있어서 찾아왔다가 와타누키 군이 우연히 보여서 말이야. 말이라도 걸까 해서 이렇게 왔지. 하핫! 이렇게 하나하나 소통하는 학생회장 찾아보기 힘들걸? 의외로 많겠지만 말이야."
다시 웃음소리를 내뱉으며 그는 제 가슴을 손으로 톡톡 친 후에 바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사탕 먹을래?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물론 이번엔 깜짝 만남이니까 서프라이즈 사탕일수도 있는데 도전해볼래? 운 테스트 할 겸 해서 말이야. 하나는 붉은색이고 또 하나는 더 붉은 색이야. 어떤게 취향이야? 아. 안 먹는다는 선택지도 있어."
"꽤 놀랐나보네? 하지만 와타누키 군. 반 정도가 장난이라는 것은 반 정도는 진심이라는거야. 이러니저러니 해도 네 일 솜씨를 보면 뭔가 이런저런 일을 시키면 되게 잘 할 것 같거든. 다음에도 한 번 만나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이렇게 콕 찔러보긴 할거니까 알아둬! 오늘은 여기까지만!"
쿡쿡 웃으면서 그는 가만히 오른손 검지를 위로 세운 후에 미카의 눈앞에서 가볍게 흔들었다. 살짝 장난을 치는 것처럼, 혹은 약을 올리는 것처럼. 하지만 특별히 더 말을 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아 이번에는 이 정도로만 하겠다는 것은 진심인 모양이었다. 그 와중에 건성으로 제 말에 맞장구를 치는 모습엔 살짝 쓴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더 아픈데 말이야.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지만 애써 표정은 싱글벙글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오. 빨간거? 운이 좋네! 맛좋은 딸기 사탕이야! 받아!"
이어 치아키는 주머니에서 딸기 맛 사탕을 꺼낸 후에 미카의 손에 살며시 쥐어주려고 했다. 이어 더 빨간 사탕을 살짝 끄집어낸 후에 그는 두 어깨를 으쓱하면서 장난스러운 웃음소리를 쿡쿡 냈다. 포장지 너머로도 상당히 붉어보이는 그 사탕을 가볍게 손으로 흔들더니 그는 손가락으로 그 사탕을 가리키면서 이야기했다.
"참고로 더 붉은 것은 계피맛. 잠 깰때 이거 먹으면 진짜 좋아. 가끔 졸린 선생님들 있잖아? 이를테면 고전을 가르치는 신타로 선생님이라던가 말이야. 그럴 때 이것을 먹으면 한방이라 이 말이지! 어때? 이것도 하나 가져갈래?"
물론 정말로 장난스럽게 이야기를 하지만 진짜로 줄 생각은 없었는지 딱히 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그는 그 사탕을 주머니 속에 쏙 집어넣었다. 이어 그는 두 어깨를 으쓱하면서 미카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건 그렇고 눈빛을 보면 그다지 흥미가 없어보이고... 전에도 일 시킬 때 보니까 뭔가 벽이 은근히 쳐져있는 것 같던데. 역시 학생회장님이라서 조금 높게 느껴지고 막 대하기 힘들고 그래? 내가? 나름대로 가깝게 프랜들리하게 다가가려고 하는데 그래도 힘들다면 어쩔 수 없는 거긴 한데 말이야. 너는.. 가만히 보면 꼭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아서 말이지."
아, 우습고 즐겁다. 천지분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와중에도 저 여자아이 얼굴에 드러난 감정이 무엇인지는 훤히 느껴지니 무척이나 기분이 들썩거린다. 그러잖아도 빙빙 도는 머리가 더욱 잡란하게 현란했다. 즐거움이 과하여 지독할 지경에 이를 것만 같다. 아, 이건 좋지 않다. 기분이 너무 좋아서 주체하지 못하게 되면 으레 큰일이 나곤 했다. 이럴 땐 뭐라도 때려 부수면 괜찮아지기 마련인데… 어디 칠 만한 것 없나……. 눈앞의 아이? 때렸다간 큰일난다. 주변에 있는 물건들? 그것도 부수면 아주 혼이 날 테고…… 젠장, 어찌 된 것이 때려부술 만한 물건 하나 없어! 짜증스레 땅바닥을 쿵 치고는 그는 제 머리를 흐트러뜨렸다. 아, 머리. 머리 하니 그거다. 흐리멍덩한 와중에도 시퍼런 빛 여전한 두 눈이 휙 옆을 향했다. 혼자서 무슨 결론을 내렸는지 그는 은근슬쩍 사에의 머리를 휘휘 쓰다듬으려 들었다. 설마하니 곧 말할 두상 운운은 이것 때문이었던 걸까.
"그러니까아 왜 안 되냐는 게다……. 학생의 음주를 금하는 까닭은, 그, 무어냐. 대개 아직 성년이 못 되어 그런 것 아니냐? 나는 학생이지만 고령이니 합법이야!"
제 하는 소리가 일장 연설이라도 되는 것처럼 '합법이야!'라며 머리 위로 검지 척 세운 채 외친다. 잔뜩 만취한 상태에서 하는 소리치고는 제법 논리적인 말이고 맞는 소리이긴 했다. 하지만 정작 이 논증에서 본인이 가장 큰 오류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으니 말이 될 리가 있나. 상대보다 어린 얼굴로 '성인'도 아니고 고령이라 박박 우겨대는 것은 무슨 경우인지. 체중이 보이는 덩치보다는 가벼운 것인지, 아니면 취객치고는 쌩쌩해서 몸을 잘 가누는 덕분인지 그를 이끌고 돌아다니기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그것 아느냐? 고릿적 삼한이라는 나라가 납작한 두상을 좋이 여기었어……."
명백하게 의식의 흐름을 탄 헛소리이니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적어도 말도 안 되는 소리 나불거리느라 아까처럼 괴상한 기행은 하지 않고 있으니 다행스런 일이었다. 제 동행에게 집중하고 있던 눈길이 불량 청소년 보는 사에의 시선에 매대 쪽을 향하였다. 어어, 그러니까 좋아하는 것이라면……. 눈앞에 진열된 물건들을 훑어보다, 그는 이내 몸 돌려 어느 곳으로 홀린 듯이 휘적휘적 걸어간다. 발걸음이 향하는 장소가 어디인가 지켜보고 있자면, 편의점 양주 코너 앞이다. 그는 자연스럽게 보드카와 그 옆의 위스키를 집어들고─ 술 취한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신속하고 빠르게 계산대로 튀어 달려가려 했다. 이 영감탱이 말 다 잘라먹고 자기 듣고 싶은 '좋아하는 거'라는 부분만 들은 모양이다. 이 술쟁이가!
정말로 아쉬운건지, 아니면 아쉬운척 하는 것인지. 괜히 어깨를 으쓱하며 치아키는 반쯤 장난스럽게 이야기했다. 이어 계피사탕을 다시 주머니 속에 쏙 집어넣으면서 그는 자신이 한 물음에 대한 답에 귀를 기울였다. 대하기 어렵다는 말에는 어쩔 수 없나~ 라는 마인드로 괜히 웃으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으나 '원래 이런 애'라는 말에는 치아키는 이내 고개를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였다.
"원래 이런 애..라는 것은 무슨 의미야? 원래 성격이 조금 거리를 두고 벽을 친다는 그런 이야기?"
물론 그런 성격이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고 자신도 딱히 그렇다고 해서 거리를 두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원래 이런 이..라는 표현에는 조금 애매한 감이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굳이 그렇게 캐물어보면서 피식 웃어보였다. 그러다가 잠시 생각을 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오른손을 책상에서 떼어내며 그에게 말을 이었다.
"좋아. 좋아. 그럼 일단 그런 것은 그런 것으로 치고 그러면 어떻게 해야 내가 조금은 편하게 느껴질까? 아까도 말했지만 아직 3번째 권유가 남아있으니까 그거 하러 또 올지도 모르거든. 아. 물론 어디까지나 말 걸기 위한 명분이니까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진 말기."
거절해도 이쪽은 딱히 상관없다는 듯, 정말로 가볍게 이야기를 하면서 치아키는 이내 두 팔을 쭉 올려 기지개를 켜다가 미카를 바라보면서 다시 가볍게 말을 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난 무게감보다는 가벼운 느낌으로 있고 싶어서 말이야. 그러니까 참고용으로 묻는 거라고 생각해줘."
아참참... 지금까지 진단 답변이나 간략 서술로 간단하게 말했었는데 말 나온 김에 확실하게 풀자면!
이 아저씨... 누군가가 극도로 불안해하거나 두려워하는 등의, 공포와 긴장에서 유래된 부정적 감정을 마주하면 참을 수 없이 즐거워져. 좀 악취미적이지👀 그래서 평소에도 자잘하게 겁주거나 놀래키는 거 좋아하는 편이고... 그런데 이건 취향이라기보단 본능에 가까운 거라 즐거워하지 마!라고 해도 그게 쉽게 되지는 않아. 그래도 요즘은 일코 중이라 티 안 내려고는 하는데? 지금은 티 내버렸네~🫠
"그렇다면 그 자체는 아니라는거네. 후배 군이 어떤 이인지는 조금 더 보고 판단해야겠는걸?"
자신은 저렇게 말하고 있으나 정작 저것도 애매모하게 대충 넘기는 것에 가깝다고 치아키는 판단했다. 마치 자신을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듯이. 정말로 벽을 쌓고 거리를 두는 성향이라면 애초에 저렇게 애매모하게 이야기를 할 리도 없을테니까. 물론 자신의 추측이 항상 맞다고는 할 수 없었으니 치아키는 이내 어깨를 으쓱하는 행동을 하며 반대편 주머니에 손을 넣어 그 안에서 포도맛 사탕을 꺼낸 후에 포장지를 까고 입에 쏙 집어넣었다.
"계속 보다 보면이라. 이거 참. 학생회장님도 굉장히 바쁜 몸인데 말이야. 아. 물론 지금 이렇게 보면 꽤 한가해보일수도 있는데 그건 또 아니거든. 나중에 또 일하러 가야해서 말이야. 하핫! 아무튼 오케이. 오케이. 자주 보자 이거지? 알았어. 그렇다면 정말로 마지막 3번째 권유 핑계를 대서라도 시간을 내야겠네."
계속 보다 보면 편해진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고민을 해보기로 하며, 그와 동시에 좀 더 많이 학생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하며 치아키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물론 그게 마냥 쉽지는 않겠지만.
"그와는 별개로... 말인데. 와타누키 군은 물 좋아하니? 그러니까 물놀이! 스위밍!"
이어 치아키는 두 팔을 올려서 마치 수영을 하는 시늉을 하다가 이내 효과음으로 어푸, 어푸라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다시 소리를 멈추고 두 팔도 아래로 내리면서 키득키득 웃어보였다.
"별 건 아니고 수학여행을 여름에 가는데 약간의 리서치라는 느낌으로 말이야. 최대한 솔직하게 대답해주면 땡큐 베리 머치!"
여기까지 들어오는 길이 조금 다사다난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참배를 하겠다는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이제 남은 건 밖에서 부적을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돌아가는,
. , ,
..도, 돌아가는 길에 학생회장님을 마주치지 않을 거라고 어떻게 자신하지?
머리가 커다란 놋쇠 종이 되어서 뎅, 하고 울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역시 넘어졌을 때 그대로 집으로 돌아갈 것을 그랬다...! 뒤늦은 후회, 그러나 이제와서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여기서 홀연히 연기처럼 사라질 것이 아니라면 신사를 떠나기 위해서는 방금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가야만 한다. 하아아아아, 길게 한숨을 내쉬는 얼굴이 사뭇 진지하다. 아니야, 혹시 찾아보면 샛길이나, 뒷문이나, 하다 못 해 동물이 드나드는 길 정도라도 있지 않을까?
담 밑에 뚫린 구멍 따위를 기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서는 거기서 더 이상 생각하기를 그만두었다. 아무래도 신사의 관계자로 있는 것 같아 보였으니, 어쩌면 순찰이나 수상한 기미라도 살피러 왔다가 또 그런 모습을 발각당하면 정말로.. 정말로 거기에서 혀 깨물고 죽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그제서야 차라리 그냥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냥 평범하게 정문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 싶어지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래, 청소를 하고 있었던 것 같으니 청소도구를 정리하러 창고나 관리실같은 곳으로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그 조그마한 희망에 모든 것을 걸고.
사치 베르단디, 상상해, 상상하는 거야.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고, 평온하게, 그냥 자연스러운 일반인 1같은 얼굴로,
그러나 언제나 현실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법. 이렇게나 거짓말처럼 또 다시 마주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게다가 이제는 부적 판매대에서, 자신에게 손을 흔들며 앉아 있기까지! 우아아악, 대번에 얼굴이 다시금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머리카락을 손으로 모아 황급히 얼굴을 가렸다. 제법 거리가 있었지만 친절한 얼굴로 부적이라도 보고 가라고 권유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먼 거리는 아니었다. 부, 부적, 오늘은 포기해? 말아? 포기해? 그치만 여기까지 왔는데(오늘의 흑역사 미터기를 보면 앞으로 당당히 다시 올 수 있을지도 미지수인데), 딱딱히 굳은 로봇처럼 한참 삐걱거리던 몸을 돌려 향한 곳은.
얼른 마음에 드는 숙취해소제나 골라 넘기랬더니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그는 영 엉뚱한 곳을 향해 저벅저벅 걷는다. 미야나기는 그나마 뭘 하는지나 일단 좀 지켜보자며—그 자리에서 따질 만큼 간도 안 크다—가만히 묵인했다가는, 잠시 후 벌어지는 기막힌 상황을 목격하고 하얗게 경악해야만 했다.
”무, 무무, 무슨 짓이야. 너 신분증도 없잖아!“
황급히 냉장고의 문을 닫으며 그의 꽁무니를 뒤쫓아 내달렸다. 뻔뻔하게 카운터 앞에 서있을 비량의 손목을 잡아 제지하려 하는 그녀가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두 뺨에는 머리카락까지 잔뜩 엉켜 달라붙어 있었을 테니 진이 죄 빠진 모습이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둘을 번갈아보다, 이내 주섬주섬 술의 바코드를 찾으려 하는 직원에게 도끼눈을 치켜떠 무서운 얼굴로 단단히 경고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절대 계산해주지 마세요. 이분 만 19세 안 됐습니다. 팔면 저 바로 경찰에 신고해요.“ 그 본인은 자신이 ‘학생이지만 고령이다’라는 희한한 착각에 빠져있는 것 같았지만, 얼뜨기가 아니고서야 과연 누가 그 말을 믿을까! 사기를 쳐도 좀 제발 믿을 만한 말로 사기를 쳐야 할 것이다.
“아니이- 이중에서 좋아하는 거 있냐고요. 좋아하는 ‘술’을 고르라고 하지 않았어요. 숙취해소제! 중에서만 골라야 한다니까요. 자, 봐요!“
그의 몸을 숙취해소제들이 줄줄이 나열된 곳을 향해 다시 빙글 돌려주려 했다. 작게 한숨을 내쉬며 친절한 설명을 한 번 더 거듭한 끝에, —그녀는 결국 이 무뢰한의 행동을 절대 신뢰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냥 내가 아무거나 후딱 고르고 말지. 하하하하······. 물론 마시는 건 자신이 아니니 어떤 역겨운 맛이 나든 제 아무런 알 바 아니다. 어차피 시판 제품인데 다 그게 그거 아니야? 상표를 제대로 확인도 안 한 채 대충 잡히는 대로 세 병을 골라 거칠게 카운터에 내려두고는, 계산을 마치고서 뚜껑을 착실히 따다 우선 한 병을 그의 손에 꽉 쥐어주려 했다.
“빨리 술 깨서 집에 돌아가세요······. 몰골이 그래서 내일 아침에 일어날 수나 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