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실헤실 맹하게 풀린 얼굴이 왼쪽으로 추욱 기울어진다. 힘 빠진 듯 머리가 어깨에 닿을 것처럼 늘어지다가 또 무서우리만치 빠릿하게 휙 원래대로 돌아온다. 이 취객, 대단히 날래다. 취했다고 방심해서는 안될 것 같다. 그보다도 그는 술 때문에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와중에도 본인이 최근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중요한 사실만은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나. 학교 다니던 그 얼굴로 술 취해서 같은 학교 학생을 괴롭히기나 하고 있는데. 지금도 그렇다. 기껏 도와주려는 사람을 무시하고 시선이 저 시커먼 하늘을 향했다가, 멀리에 밝혀진 가로등 빛을 좇다가, 고개 푹 숙이고 아래쪽의 잔디 깎인 모양이나 빤히 들여다보고 있다. 그러다 별안간 번뜩 고개를 들고 폭소를 터뜨린다. 참지 못할 즐거움이 넘칠 듯 흘러내리면서도 반쯤은 찌푸리듯 하는 표정이 괴이했다. 정확히 사에가 막연하게 겁 먹은 그 순간에 터진 웃음이었다. 음귀의 체성이란 참 고약하지. 두려운 감정을 마주하자면 그것이 더할 나위 없는 환락이라도 되는 양 하릴없이 기분이 들뜨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적어도 하네와 같은 학교 다니는 아이를 괴롭히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술 취한 와중에도 제대로 박혀 있어서, 그저 웃고만 말 뿐 꿋꿋하게 헛소리 이어가고 있다.
"에이. 점수 따위 필요 없다. 나는 그냥─ 결착을 내어야겠어!"
그래, 승부! 이기고 지는 것보다는 겨루는 순간의 박진감이 더 좋다! 척 들어올린 주먹이 이리저리 갈피 못 잡고 흔들리지만 그 생각은 굳건해 보였다……만, 역시나 주정꾼답게 그런 의지도 다른 말에 금세 정신 팔려서 까먹고 말았다.
"왜애? 선생이 대수냐. 아니 망할지라……. 나는 흉하면서도 무엇보다 길하니 망할 수가 없거느을……."
적어도 말을 걸어서 주의를 돌리는 것이 효과가 아주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혼자서 뭐가 우스운지 또 우하하 웃음 터뜨리더니─이번에는 그저 호탕하기만 한 가벼운 웃음이다─, 풀썩 주저앉아 있던 몸 비척비척 일어날 듯 말 듯하다. 의외로 순순하게 끌려가 준다. 이런 상황이 한두 번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는 고개 돌려 이 사태에 휘말린 죄없는 피해자를 게슴츠레 쳐다보다가 한껏 진지한 낯으로 입을 열었다.
"어느 날 먹을 것을 찾아다니고 있었는데, 한 마을이 보였으므로, 다가가 살피면, 인간들이 잡은 물고기를 소금에 절이느라, 모두 바삐 움직이고 있었지, 그때 나는 절인 물고기를 창고에 저장하는 것을 보았고, 밤이 되었을 때, 몰래 창고로 들어가, 물고기를 훔쳐 먹어 배를 채웠지, 그리고 그다음 날도, 그다음의 다음 날도, 물고기를 훔쳐 먹었고, 인간들은 줄어드는 물고기에, 내 존재를 눈치챘지만, 나를 잡지는 못했지, 나는 그런 인간들을 비웃으며, 또다시 물고기를 훔쳐 먹으러 마을로 향했으나,
그 마을 어귀에 이르렀을 때, 나무 위에서 별처럼 반짝이는 두 눈을 보았지, 나는 깜짝 놀라, 먼지 일으켜가며 도망쳤으나, 카무이치카포가 그 날카로운 발톱을 겨누며, 내게 날아오니, 결국 나는 카무이치카포의 발톱에 잡히게 되었지, 카무이치카포는 노기 가득 머금은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네가 도둑이구나 하니], 나는 [절대 나는 도둑이 아니다] 부인했지, 하지만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카무이치카포가 알고 있을 게 분명했지,
그렇게 화가 난 카무이치카포는, 부리와 발톱으로 내 살을 찢었고, 이후로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게 되었지,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나면, 카무이치카포의 발톱 아래에는, 갈가리 찢긴 쥐가 죽어 있었고, 그 귀와 귀 사이에 내가 앉아있었지, 인간들에게 못된 짓을 했기 때문에, 거짓말을 했기에, 벌을 받아, 하찮은 죽음, 나쁜 죽음을 맞이했던 것이지, 그러니 모든 쥐들아, 인간들에게 악행을 저지르지 않도록 하거라, 거짓말을 하지 말거라, 하고 머리만 남은 쥐가 말하면서 죽었습니다."
소용돌이 문양 자수 놓인 목면의에 오비 두르고 좌정한 아이가 신요를 다 읊고 나면 빙그레 웃으며 제 앞에 앉은 또래를 건너다본다. 그러면 또래로 보이는 아이는 그런 샤먼을 무언가 불만족스럽다는 눈치로 바라보고 있었을까. 왜 그런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아는 것이지만, 모르는 것 마냥 짐짓 순진한 얼굴로 샤먼 아이가 묻는다.
"왜 그런 얼굴을 하고 계시는지?" "내가 그 녀석을 혼내준 것은 맞지만, 죽이진 않았는데."
그 도둑 쥐 녀석을 하늘에서 땅 구경 시켜주고 나서 단단히 일러주었을 뿐이니. 그 불만에 샤먼인 아이 해맑게 웃고서는 말한다.
"아, 우리 귀여우신 하나님, 하지만 이래야지만 교훈이 되는걸요?" "용서하는 것 또한 교훈이 아니더냐."
불퉁한 어조로 말하나 샤먼인 아이 얼굴에 걸린 미소는 그대로라, 한숨 길게 내쉬며 알아서 하라는 듯 손을 내젓는다.
사실 지금 이대로라면 뭘 해도 미카가 그냥 가~ 이런 식으로 나올 것 같기 때문에 뭔가 엮이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미카는 지금 이벤트에 참여를 하지 않고 있기도 하고 둘이서 어딜 놀러가기도 참 애매할 것 같고... 그냥 간단하게 방과 후에 마주한다던가 그런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요. 2학년 A반에 일이 있어서 들렸다가 미카를 발견했다던가 해서 말을 건다던가 식으로.
이벤트가 한창인 시간이지만 어느덧 이벤트도 끝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면 자신도 충분히 시간을 준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며 치아키는 어깨를 으쓱하며 가볍게 반을 돌아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2-A에 있는 학생회 임원이 한 명 떠올라 오늘은 딱히 크게 해야 할 일이 없으니까 ㅡ물론 치아키에겐 학생회장으로서의 일이 있었다. ㅡ 오지 말고 바로 가도 좋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 2-A로 들어섰다. 이미 수업이 다 끝난 후라서 그런 것일까. 꽤나 분주하지만 아직 자리에 남아 이야기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이들을 하나하나 확인하지만 안타깝게도 임원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차. 엇갈렸나.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핸드폰을 꺼낸 후에 라인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은 오지 않아도 된다고.
그렇게 메시지를 보내고 나가려는 순간, 낯익은 이의 모습이 보였다. 전에 봉사활동으로 온 아이가 아니던가. 뭔가 말을 걸어도 딴청을 피우는지, 그다지 관심이 없는지 뭔가 되게 벽이 느껴지던 아이. 인사라도 해볼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피식 웃으면서 그에게 다가갔다.
"본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보는 것 같네. 와타누키 군? 뭐하고 있니? 하교 준비중이야? 아니면 전에 내가 한 제안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중일까? 나는 얼마든지 오케이인데~"
키득키득 웃는 모습이 조금은 얄밉지 않았을까. 허나 진지한 목소리는 아닌 것으로 보아 그냥 말을 걸기 위한 명분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치아키는 미카를 빤히 바라봤다. 지금 뭐하고 있냐는 듯이.
미야나기의 칼날같이 선득한 기민함은, 때때로 너무 많은 것들을 제 의사와는 무관한 채 스스로에게 속절없이 일깨우고는 했다. 남들은 미처 보지 못한 징그럽고 불결한 것들을 가장 먼저 발견한다거나 어느 지하의 무용실에서 결코 봐서는 안 될 것—물론 헛것일 수도 있겠으나—을 보았으며, 차마 알고 싶지 않은 누군가의 속마음까지 곧잘 표정에서 읽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한 예리함이 이 순간 다시금 그녀의 머리맡에 대고 마구 속살거리고 있었다. —이 남자아이는 절대 곁에 두고 지내서는 안 된다! 그쯤을 파악하는 데엔 굳이 날카로운 직감까지도 필요하지 않았다. 두려움에 질려 겁을 집어먹은 걸 간파하자마자 얼굴을 반짝 치켜들고서 기이한 웃음을 터뜨려대는 걸 본다면, 누구라도 유령을 마주한 기분일 거다! 이쯤되어 사실 그녀는 너무 무서워서 그냥 울어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지만 이내 그저 본인이 착각했겠거니 애써 자신을 다독였다. 만질 수 있음은 곧 실재함을 의미하니 적어도······ 귀신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가위바위보에, 유치한 결투에, 이벤트 점수에나 집착하고 술까지 만취한 귀신 따위 들어본 적도 없다! 자, 봐라. 지금도 승부니 점수니 열심히 떠들어대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단순히 귀신‘처럼’ 무서운 불량배와 엮인 것뿐이라며 찰나의 공황을 마무리짓는다. 흠! 이제 별로 안 무섭네. 그런 것 치고는 납을 맞고 호수에 추락한 학을 닮아 참 처량한 꼬락서니였지만.
“대수가 왜 아니에요! 이거 걸리면 절대 벌점 정도로 안 끝날걸요. 술을 마실 거라면 적어도 아무도 안 보는 데서 드세요.”
꼴에 훈계해대는 그녀조차 음주는 안 되노라 말리지는 않으니 모범생은 못 된다. 흉이 어쩌니 길이 어쩌니······ 뒷말은 거의 알아듣지도 못한 채 열심히 고개만 주억거린다. 이 사람, 아무래도 이상한 시대물 드라마에 푹 빠진 모양이다. 외국인인 것 같던데 드라마 보고 언어 공부한 건가? 저런, 볼 거면 좀 어지간히 평범한 드라마로 봤어야지! 안타까움에 혀를 끌끌 차다 말고 그가 온순하게 제가 이끄는 대로 끌려갈 기색을 보이자 얼른 부축을 돕는다. 차마 자신이 커버할 수 없는 큰 키가 휘청대었을 수도 있겠으나, 어차피 내일이면 죄다 잊어버릴 테지. 그럼 자신은 이제 영영 얼굴을 비추지 않으면 된다. 낑낑대며 여태 꺼지지 않은 밝은 조명을 따라 힘겹게 걷다 말고 가라앉은 시선이 도로 자신을 향하자 미야나기는 한껏 굳어 긴장했해버렸다. 그러나······.
“그, 그러는 그쪽이야말로 정말 멋진 두상······ 을 갖고 계시네요.”
모르겠다! 이게 맞는 대답인 건지도 전혀 모르겠다! 살아생전 남의 두상을 칭찬하기는 또 처음이다. 그녀는 아마 편의점에 도착하기까지 거의 대뇌를 내놓은 채로 있었던 것 같다. 진땀을 빼며 자동문 앞에 멈춰서자 연신 울리는 센서벨에 내리꽂히는 직원의 이목을 침착한 척 외면하며, 곧바로 숙취해소제가 진열된 매대로 엄숙하게 걸어갔다. 초록색 병, 황금색 병, 짙은 청색 병······. 가지각색의 작은 유리병들이 화려한 설명 문구를 덧붙이며 자신을 뽐냈으나 어떤 게 좋을지 그녀가 알 턱은 없다. 겨우 읽어낼 수 있는 특징점이란 하나같이 ‘죄다 맛없어 보인다’정도. 미야나기는 조심스레 옆에 기대어 서있을 불량 청소년을 물끄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