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는커녕 구급대나 불러야 할 처지만은 면한 데에 안도해야 할까? 거리에 나뒹구는 소리를 요란히 동반했던 것과는 달리 희끄무레한 은빛 아래 그는 잘도 태평하다. 잔뜩 헝클어져 뒤집어쓴 잡풀과 허연 꽃잎이 아니었다면, 미처 고꾸러졌다는 사실조차 짐작 못 했을 것이 참 수상쩍으리만치 말짱한 모습이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이번에는 웬 영어 노래—평소에 K-POP을 좀 들었다면 좋을련만—까지 신나서 불러대고 있으니 그녀는 잠깐 제 선택을 후회해야 했다. 그냥 아는 척하지 말고 지나갈 걸······. 그러나 지금이라도 모르는 체 줄행랑 놓을까 싶었던 계책도 한순간이다. 자는 양 길가에 축 늘어져있다 말고 삽시에 상체를 벌떡 일으키자 놀란 숨을 작게 들이키며 얼른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그러고서 이어지는 것은 뜬구름 잡는 주정의 언어다.
“······혹시 그쪽은 아직 하교를 안 했나요?“
하다하다 이 달밤에 학생이 학교에 안 있고 뭐하냐며, 저를 도리어 무뢰한 몰이하는 게 정말 적반하장이다! 게다가 이건 또 무슨 해괴한 말투람. 지다이모노의 무사를 자처하는 이야기꾼이 무대 위에서나 쓸 법한 극적인 언투를 능청스레 쓰는 모습에 그녀는 혀를 내둘러야 했다. 아무래도 요즘 언어 교수법은 대단히 문제가 있다. 수강생이 저런 요상한 말투를 쓰고 있는데 왜 아무도 교정을 안 한 거지? 심지어 팔순 먹은 노인이 꼬마애 대하듯 하대까지 하는 투다! ······어느 돌팔이 어학원에서 수료한 건지 문득 그가 무척 걱정되는 순간이다. 제 혼자 얼굴을 찌푸렸다 폈다 하는 모습은 그녀의 눈속에 그저 험상궂게 비쳐 마른땀이 등 뒤로 차게 흐른다. 쇳내나는 밤바람에 섞여 부유하는 술내와, 동시에 어깨를 덥썩 잡는 손아귀에 미야나기는 지레 겁먹었다. “줄게요! 점수 줄게요! 그냥 제 거 다 드릴게요! 전부 가져도 돼요. 와아, 2, 22점이나 받을 수 있다, 되게 부럽다.” 움큼 쥔 손 앞에서 그녀는 제대로 울상이었다. 불량배한테 단단히 잘못 찍혀버리고 만 것이다! 하지만 신고라도 했다가는 바로 학교로 연락이 갈 테지. 아직까지 일본 사회에서 미성년자의 음주란······ 좀 적잖이 문제되는 일이지 않겠는가. 그녀는 최대한 조용히 해결하겠노라 따가운 침을 혼자 삼켰다. 태평하게 가위바위보 따위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란 말이다. 미야나기는 조금 더 용기낼 필요가 있었다.
“지금 그, 그게 문제가 아니라 당장 돌아가야 할걸요. 혹시 근처에 선생님들이라도 지나갔다간, 진짜로 망해요. 집에 혼자 갈 수는 있어요?“
제 어깨를 쥔 손아귀에 힘이나 들어갈지 의심스러웠지만 그대로 부축하듯 일으켜 세우려 노력했다. 술에 쩐 취객을 돌봐준 적이나 있어야 알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전혀 감이 안 잡혀 난감하다! 편의점에 들어가서 숙취해소제라도 먹여야 할까. 새파랗게 질린 얼굴에 맺힌 것이 몽우리져 떨어지는 달빛인지 식은땀인지 모호하다.
헤실헤실 맹하게 풀린 얼굴이 왼쪽으로 추욱 기울어진다. 힘 빠진 듯 머리가 어깨에 닿을 것처럼 늘어지다가 또 무서우리만치 빠릿하게 휙 원래대로 돌아온다. 이 취객, 대단히 날래다. 취했다고 방심해서는 안될 것 같다. 그보다도 그는 술 때문에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와중에도 본인이 최근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중요한 사실만은 기억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나. 학교 다니던 그 얼굴로 술 취해서 같은 학교 학생을 괴롭히기나 하고 있는데. 지금도 그렇다. 기껏 도와주려는 사람을 무시하고 시선이 저 시커먼 하늘을 향했다가, 멀리에 밝혀진 가로등 빛을 좇다가, 고개 푹 숙이고 아래쪽의 잔디 깎인 모양이나 빤히 들여다보고 있다. 그러다 별안간 번뜩 고개를 들고 폭소를 터뜨린다. 참지 못할 즐거움이 넘칠 듯 흘러내리면서도 반쯤은 찌푸리듯 하는 표정이 괴이했다. 정확히 사에가 막연하게 겁 먹은 그 순간에 터진 웃음이었다. 음귀의 체성이란 참 고약하지. 두려운 감정을 마주하자면 그것이 더할 나위 없는 환락이라도 되는 양 하릴없이 기분이 들뜨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적어도 하네와 같은 학교 다니는 아이를 괴롭히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술 취한 와중에도 제대로 박혀 있어서, 그저 웃고만 말 뿐 꿋꿋하게 헛소리 이어가고 있다.
"에이. 점수 따위 필요 없다. 나는 그냥─ 결착을 내어야겠어!"
그래, 승부! 이기고 지는 것보다는 겨루는 순간의 박진감이 더 좋다! 척 들어올린 주먹이 이리저리 갈피 못 잡고 흔들리지만 그 생각은 굳건해 보였다……만, 역시나 주정꾼답게 그런 의지도 다른 말에 금세 정신 팔려서 까먹고 말았다.
"왜애? 선생이 대수냐. 아니 망할지라……. 나는 흉하면서도 무엇보다 길하니 망할 수가 없거느을……."
적어도 말을 걸어서 주의를 돌리는 것이 효과가 아주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혼자서 뭐가 우스운지 또 우하하 웃음 터뜨리더니─이번에는 그저 호탕하기만 한 가벼운 웃음이다─, 풀썩 주저앉아 있던 몸 비척비척 일어날 듯 말 듯하다. 의외로 순순하게 끌려가 준다. 이런 상황이 한두 번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는 고개 돌려 이 사태에 휘말린 죄없는 피해자를 게슴츠레 쳐다보다가 한껏 진지한 낯으로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