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고통스럽다. 사람의 살을 짓이기는 추위도, 불꽃을 꺼트리고 마는 지독한 바람도. 무엇보다도 슬픈 것은 얼어붙은 나무처럼 사람의 마음도 굳어간단 것이다. 하루를 살아남기 위해 한정적인 식사를 하고, 표정마저 굳어간다. 그 과정에서 사람은 피폐해지고 점점 모두는 마음을 닫아간다. 그 과정을 자연스러움이라 표현하는 것. 그것이 겨울이 가진 어두움일 것이다.
낡은 나뭇가지가 작은 화로 위로 떨어집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듯 보이는 불꽃은 메마른 장작을 삼켜 다시금 불꽃을 피워냅니다. 분명, 그림을 보았기에 의념의 보호를 받고 있음에도 시윤은 볼이 서리다는 감각을 느낍니다. 손을 들어올려 볼을 쓰다듬으면, 볼이 딱딱하게 굳어가는 기이한 감각이 느껴졌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마치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처럼, 힘없이 울어내는 소리는 작은 단말마를 닮았습니다. 그런 아이의 볼에 대고, 한 노인이 천천히 숨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그 숨 한 번에 차갑던 공기가 따뜻해지고, 얼어붙은 가구들이 천천히 녹아갑니다.
" 녀석. 좀 괜찮더냐? "
꺄르르 웃는 아이의 손이 노인의 수염을 붙잡고 당기지만, 노인은 아픔도 모른 채로 웃음을 짓고 있습니다.
" 허허. 고 녀석. 장사로구나. "
아이의 손을 천천히 떼어낸 노인은 천천히 고갤 돌려 시윤을 바라봅니다.
....... 항거할 수 없는 강적을 만났습니다. 역성혁명이 공포에 저항해냈습니다.
" 뭐가 그리 급하여 벌써 오셨소. 이 겨울 끝나거든 데리러 와도 되었을 것을. "
툭, 하고 내던지듯 말하지만. 그 말에는 적지 않은 뼈가 숨어있는 듯 했습니다.
>>690 곧 잠겨있던 문이 열림(물리)당합니다. 딱 보더라도.. 심상치 않은 근육입니다. 만약 의념 시대 이전에 보디빌딩 대회가 있었다면 저 몸은 누가 보더라도 일등에 어울릴 법한 몸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부분을 놓고 본다면, 꽤나 잘생긴 미남입니다. 키는 190을 중간정도 넘은 듯 보였고 머리카락은 황금빛으로 빛나는 금발이었으니까요.
" 주님의 품 안에서 행복하시기를. 이단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여 찾아뵜습니다. 자매님. "
이단? 그래 제가 생각하기에도 제법 뻔뻔하게 다른 종교의 심장부에서 열심히 관광을 하고 다니긴했다. 그리고 그런 행동에 대해 린은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하나 없었다. 벤치 마킹을 할 기회가 있어야지만 중소기업들이 발전하고 소상공인의 수입이 늘면서 소비활동에 다양성이 생기지 않겠는가. 아무튼 논리의 비약이 있는 생각이긴 했지만 린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쪽도 행복하시길 빌어드리죠. 이단이라, 무슨 말을 하시는 건지 소녀는 잘 모르겠사온데. 소녀가 본 바로는 이 곳에서 성당에서의 미사외의 어떠한 다른 종교활동도 벌어지는 걸 본적이 없사와요."
여차하면 창 밖으로 뛰어내려서 도주하면 된다. 돈이야 선불로 결제했으니 큰 문제는 없고. 사실 지금도 가타부타 항의를 할 수도 있었으나 그녀는 지금까지 아무런 말도 없다가 이제와 저를 찾아낸 이유가 궁금했다.
아쉽게도 나에게는 은신한 적을 추적하는 기술 같은건 없다. 방금전처럼 겨우 막아내거나 아니면 이 주변 전체를 휘말릴 정도의 공격이 아니라면 잡기도 힘들겠지
"내 목은 비쌀텐데"
그렇다고 가만히 당하고 있을 수는 없다. 암살자라면 머리 목 심장 등 일격에 끝낼 수 있는 급소를 노리고 올거다. 그리고 그걸 노리기 위해선 내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오겠지. 흔히 친구를 놀라게 하기 위한 것과 다를바 없다. 그렇다면 공격하는 순간 전방위를 전부 막은 다음에 반격에 나서자
다만 몸이 굳어가는 이질적인 감각이 이 곳이 어떤지를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다. 추위에 얼어가는 아이를 따스한 숨결로 보호해준 노인의 광경은 분명 훈훈해야 할 터이지만.
순식간에 전신의 털이 곤두섯고, 심장이 맥동친다. 강하다. 강하다. 강하다. 아니, 강약의 문제조차 아니다. 따지자면 거구의 인간 앞에 선 개미와도 같은 것. 존재의 값어치가 단위부터 다른 이 느낌. 하늘을 올려다본 태양이 실은 누군가의 눈이었단걸 깨닫는 듯한, 코스믹 호러.
내가 이빨을 딱딱거리며 광란에 빠지지 않았던건. 다만, 몸에 익힌 반역의 정신 덕분이다. 나약한 인간이 강대한 존재에게 억지 부리기 위해 발버둥 친 결과물의 덕. 그것을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할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지금은 도움이 되었다.
어쨌거나 확신했다. 저 노인이 '고신'이다.
뭐가 그리 급하여 벌써 오셨소. 인가. 왜 왔냐고 책망하는 말투시로군. 겨울을 끝낼 생각도 없으시면서....그러나 조금 생각한다.
압도적인 강자에게 생각 없이 틱틱 거리는건, 용기가 아니라 그저 자살 희망자일 뿐. 지금 여기에선 고신에게 이 곳에 머물러 있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는게 중요하다.
생각해라. 생각해라. 생각해라. 거짓말은 좋아하지 않는다. 어줍잖은 거짓말은 발각되면 더 큰 화를 부른다. 그렇다고 저 존재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도 능사가 아니다. 그렇다면....
"....오해가 있으신듯 한데, 저는 이 곳을 파괴하러 온 무례한 불청객이 아닙니다. 자상하신 어르신."
나는 여기서 날뛸 생각 따윈 애초부터 없다. 무언가를 부수고 공격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이트도 아니고. 그러니 공격 의사가 없다는걸 밝힌다. 물론, 있다고 한들 어떻게 되는 상황이 아니란 점도 있다마는. 그럼 그 다음에는 그래서 왜 여기에 왔는지를 전할 때. 이것만으로는 '그럼 돌아가주시오' 라는 답변이 나올 것이다.
"저는 잊혀진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자 맹세한 수련기사입니다. 이 혹한의 겨울속에서, 찬바람 속에 묻혀져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이 곳에 왔습니다."
하이젠피우스에서 가르침을 받기 위해 기사단장님을 설득할 때. 나는, 분명 그렇게 맹세했다. 소리에 묻혀 듣지 못할 이야기들을 듣고 싶다고. 그것은 허풍이 아닌 나의 진심.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 고신의 이야기에서 악의를 느끼기 보단,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다.
잊혀진다는건 무슨 기분일까.
조금은 안다. 나의 기억속에 있는 과거의 인물들도, 전부 잊혀졌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듣고 싶다.
그러니 시선을 피하지 않고 차분하게 전한다. 나의 장점은 당당하다는 것. 나 자신을 돌아보았을 때, 부끄럽지 않다는 것. 상대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 저 강대한 존재에게 스스로가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가 악인이 아니라는 당당함 뿐.
....그치만 역시 이것만으론 부족하니까, 조금 더 실리를 덧붙이기 위해 어색하게 웃으며
"아이가 배가 고플 때, 따스한 스프를 먹여줄 수도 있습니다. 이 곳에 대해 알아가기 위해 노력할테니, 잠시간 머뭄을 허락해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강산은 작게 중얼거린다. 차마 교실에서 욕을 할 순 없었지만 혼란스러운 표정은 그대로 얼굴에 묻어난다.
가만히 보고만 있을 일은 아닌 것 같...은데. 강산이 특별반이 아니었다면, 아니 그것도 반 년 전이었다면 그도 이걸 본 다른 사람들이 남긴 덧글처럼 쓸데없이 고퀄리티라 위험한 장난 영상 정도로 치부했을 것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미친 게 아닌 이상 댓글들의 말대로 굳이 이런 1세대 빌런을 흉내내서 놀 사람은 없다. 이건 진짜로 저 빌런이 살아난 거여도 문제고 모방범이어도 문제다.
#'넓고 얕은 지식' 특성을 사용합니다. 이것을 npc에게 알린다면 누구에게 알려야 할까요?
>>720 아주... 연노란 빛의 즙이 새어나옵니다. 살짝 피부가 따갑긴 하지만, 곧 즙이 닿은 부분이 얼얼한 느낌이 듭니다.
무언가.. 알 것 같기도 하고?
>>722 고신의 표정은 여전히 고요했다. 별로 기분이 좋아보이진 않았다. 단지, 갑작스럽게 찾은 손님은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조금은 친절했단 점이 기분을 나쁘지 않게 했다. 그러나 그에게 가장 맘에 들었던 것은 맨 뒤에 붙은 그 문장이었다. 음식이 귀한 곳에서, 음식을 베풀 수 있다는 것. 이 춥고, 거친 동네에서 살아가는 그에겐 그 모습이 선인을 가름지을 수 있는 문장이었다.
" 오래 지나지는 마시게나. "
그는 툭, 말을 던졌다. 당장의 축객령은 아니었지만 손님으로 대접하겠단 의미는 아니었다. 단지 며칠 머물러도 좋다. 이방인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대접인 듯 했다.
" 그래. 그대는 어디서 오셨소? "
그는 그에게 물었다.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를 답이었다. 어느 신의 사도이던, 아니면 신을 몰아내겠다는 당찬 이들의 누군가일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