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쨩은 소꿉친구고, 학생회장 선배님은 심부름 하러 갔다가 마주쳐 만난 거고, 지금 아저씨를 만난 것도 아르바이트하다가 마주치게 된 우연입니다. 우연이 두번이나 되는데 이걸 인기로 쳐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잇쨩은 약속해서 만난게 맞기는 해도 인기가 많은 건 잇쨩 쪽입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설명하지 않을 거니까 아니라고 고개만 도리도리 젓습니다.
“...린 씨보다 나을 것 같은데요.”
사탕은 받아먹기만 하고 따라가지 않았어요. 애초에 그렇게 나쁘신 분으로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학생회장이니까요, 학생회장이라고 하면 모범생이잖아요. 우등생이라는 이미지가 뚜렷한데 그런 짓을 하실 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때는 사탕 준다고 쫓아갔어도 화과자 노점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셨을 거에요. 그런데 아저씨는 재밌어보인다 싶으면 오만데 다 나다니고 장난치기 좋아하니까요. 휘말리면 무릎 까먹을 것 같습니다.
“바보.”
한국어입니다. 제가 한국어를 하는 건, 아저씨가 일본어를 하는 만큼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서투른 실력이지만 ‘바보’ 라는 단어는 발음이 쉬우니까 할 수 있어요. 굳이 일부러 한국어로 소리낸 건 아저씨가 하는 말에, 제가 정말 바보같아서 입니다. 아저씨한테 박대의 기준이 어떻게 되는지, 전 이미 박대하고 있다고 해도 할 말 없습니다. 못된 아이라는 것도 지금의 이야기입니다. 이미 그러니까, 아저씨는 지금도 저를 어릴 때 보던 것마냥 아껴주시는 건지도 몰라요. ...지금 계속 매달려계신 걸 보면 그냥 장난치기 편해서일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조금 들지만요......
“아빠가 지금도 경찰이셨으면 잡아가라고 했을텐데 아쉽습니다.”
스토커의 표본이라고요. 특히 차단 해버린다고 했을 때 했던 말을 고스란히 들려줬을 거에요.
“............머, 머리만 정리하고요.”
도깨비의 신인지 강아지의 신인지 확인해보아야 한단 생각이 들어요. 강아지도 이리저리 놀러다니고 아무한테나 들러붙기 좋아하는 건 똑같으니까요, 사실 정말로 강아지의 신일지도 몰라요. 두 손 꼭 붙잡고 있는 저 모양새는 또 뭐냐고요! 꼭 신한테 소원 비는 인간들의 손 모양 같잖아요, 지금 누가 신인데요! ...인적 드문 곳 찾는 거란 말만 안 붙였어도 거절했을 거에요. 거절했을 겁니다. 저 떄문에 일본까지 와있다는 걸 아니까 효도하는 기분으로 고개 끄덕인 거에요. 마음의 준비는, 머리를 정리하면서 하기로 해요. 마음의 준비할 시간도 시간이지만, 인적 드문 곳 간다고는 해도 마츠리인데 머리 헝클어진 채로 돌아다니기는 싫으니까요.........
드러누운 상태 그대로 소년의 박수소리와 칭찬을 들으면서, 사치는 생각했다. 망했다, 망했다고. 차라리 등으로 느껴지는 싸늘한 바닥에 동화되어서 이대로 목숨이 끊어지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았다. 학생회장님 앞에서 갑자기 넘어져서 전방회전낙법?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하하, 하하하, 그러나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가능토록 하는 불운 결정체가 사치 베르단디의 인생인 것을. 석화, 이대로 석화되어서 동상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죽은 눈으로 조용히 등허리를 동그랗게 말아 쭈그려 앉는다. 뒤늦게 올라오는 부끄러움으로 토마토같이 익어버린 얼굴을 머리칼과 소매에 숨긴 채로, 푸슈슈,
그리고 이 와중에도 친절하게 학생회장님께서는 자신에게 말을 붙이고 계셨다...... 백 프로 좀 이상한 애라고 생각했겠지, 그렇겠지. 심호흡 대신 남몰래 길고 긴 한숨을 내쉬고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얼굴은 푹 숙여 대충이나마 머리카락으로 가리려고 노력했지만, 불타는 고구마마냥 붉음은 그대로인 채.
"...가, 가가, 감사합니다....."
안 다쳤어요, 들릴 듯 말 듯 잔뜩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였다. 그래, 소년의 말마따나 오늘은 참배를 하러 왔으니 일단은 참배, 참배다. 마음같아서는 냉큼 집까지 도망치고 싶지만 여기까지 오는 길도 순탄하지만은 않았으니까,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참배는 하고 돌아가는 거다! 고개를 살짝 숙여 한번 더 꾸벅 인사하고는, 언제 넘어졌냐는 듯 재빠르게 달아나듯 신사 안쪽으로 향한다.
참배를 마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동전을 던져 넣고, 짝 짝, 박수를 친 뒤 간절한 마음으로.
..........이왕이면 방금 있었던 일을 모두가 싸그리 잊게 만들어 주시면 안 될까요?
자신의 눈에는 상당히 멋지게 보이긴 했으나 상대는 상당히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등허리를 동그렇게 말아 쭈그리더니 얼굴을 감추는 모습까지. 누가 봐도 상당히 부끄러워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치아키는 난감한 표정으로 두 어깨를 으쓱했다. 바로 눈앞에서 본 것을 잊으라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적어도 언급은 하지 않는 것으로 할까. 그렇게 스스로 결론을 내리며 치아키는 고개를 살며시 도리도리 저으면서 막 들려온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
"천만에요. 안 다쳤으면 된거지. 천천히 걸어요. 또 넘어질라."
그와는 별개로 자신이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일까 싶어 그는 땅바닥을 빤히 바라봤다. 분명히 빗자루로 이 근방은 다 쓸었을텐데 작은 돌멩이라도 남아있었떤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손에 들고 있는 빗자루로 다시 한 번 그 근방을 싹싹 쓸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신사 안쪽으로 향하는 그녀의 모습이 보이긴 했으나 참배를 드리러 가는 이를 붙잡을 순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아무튼 근처를 다시 한 번 쓸어내린 후, 그는 쭈욱 허리를 펴고 부적을 파는 진열대로 향했다. 자신이 주변을 청소한다고 자리를 비운 상태였기에 당연히 진열대는 텅텅 빈 상태였다. 거기에 있는 의자에 앉은 후 그는 사치가 나오는 것을 조용히 기다렸다. 김에 가볍게 마실 수 있는 물도 컵에 한 가득 따르고서.
아마 그녀가 다시 나오기 위해서 지나갈때쯤 그는 진열대에 앉은 상태에서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을 것이다. 물론 반응을 할지, 하지 않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물이라도 한 잔 마시고 김에 부적도 한 번 보고 가라고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물론 그것에 대해서 반응을 할지, 그냥 도망치듯 가버릴지는 그녀의 자유였다.
발치에 놓인 돌멩이를 괜히 툭툭 건드려본다 학교 안 오면 경찰에 전화하겠다는 말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제 안위에 대한 걱정일 거라고 주제넘게 생각해보기도 하고 타카나시 씨, 생각보다 상냥한 사람이니까 지금도 사과 받기 싫다 해놓고선 매정하게 떠나기보다 오히려 자리 잡고 앉아버리는 거만 보아도 그치만 남의 친절에 무턱대고 기댈 순 없다 그래서 (언제 돌변할 지 모르는 게 인간이니까 그래, 지독히도 이기적인 의심이다) "...알았어."
일단 대답해본다 시간 낭비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답을 마치고 나자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미카는 벤치에 앉은 타카나시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너도 집에 안 갈거야?"
...좀 웃기는 말이 나와버렸다 본인은 줄곧 여기서 죽치고 있던 주제에 정작 남한테 집 안 가냐고 묻는 꼴이라 이래서야 타카나시 씨가 제게 잔소리하던 거랑 다를 바 없다 또 신경 끄라고 대답하려나
대유잼 이벤트의 예감을 느꼈다! 지금껏 이런 이벤트를 개최한 경험은 없기에 학생회가 얼마나 고생했는지까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번 이벤트가 그와 한창때의 광기를 소유한 학생들의 흥미를 자극한 건 분명했다. 비교적 쉽게 눈에 띄는 장소에 배치한 QR코드 근처는 벌써부터 명소라도 되듯이 붐비기 시작했다. 뒤처질 수는 없지. 인파가 북적여 접근하기 어려운 위치지만 그는 스마트폰을 든 팔을 쭉 뻗고 자신이 설정한 린의 신장을 믿기로 했다. 할 수 있다, 186cm...!
"자. 자.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 오늘부터 학생회에서 새롭게 준비한 가벼운 이벤트인 '스코어 앤 붐'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봄날이 어느 정도 흘러간 어느 봄 날. 점심시간에 갑자기 교내 방송이 재생되었고 거기에선 학생회장인 치아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학생회장으로서 뭔가를 방송하려는 모양이었다. 정확히는 방금 이야기한 '스코어 앤 붐'에 대한 설명인 모양이었다. 아무튼 치아키는 신나는 목소리로 발랄하게 말을 이었다.
"간단하게 이야기를 하자면 지금 교내 여기저기에... 정말로 여기저기에 저희 학생회 멤버들이 정말로 힘겹게 숨긴 QR코드지가 있는데 이걸 QR코드 인식기로 찍어서 점수를 모으는 그런 이벤트에요. 정말로 학교 여기저기에 숨겼기 때문에 아직 학교에 익숙하지 않은 이는 이것을 계기로 학교 여기저기를 돌아보는 것도 좋을테고 가볍게 몸을 움직이는 운동도 할 수 있고. 와. 학생회가 준비한 일석이조 이벤트! 하지만 QR코드에는 항상 점수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건 알아두세요! 때로는 폭탄이 그려져있기도 한데 이건 꽝!! 그리고 점수 중에서도 마이너스 점수가 있을 수 있으니 폭탄 그림이 아니라고 안심하진 말기!"
간단하게 룰을 이야기하자면 QR코드를 인식한 후에 폭탄 그림이 나오면 0점이지만 그 외에는 점수가 들어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플러스 점수만이 아니라 마이너스 점수도 있는 것 같으니 그 점은 미리 참고를 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또한 다른 이와 QR코드 점수가 기록되는 페이지에서 가위바위보 게임을 해서 이기면 최대 30점까지 뺏어올 수 있는 모양이었다.점수가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이렇게 뺏어서 점수를 채우는 것도 방법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점수는 총...
1점, 5점, 10점, 30점, 50점, -10점, -30점. 이렇게 주어졌으며 점수를 모은 후에 나중에 학생회에 와서 그 점수를 다른 상품으로 바꿀 수도 있는 모양이었다. 점수만 충분하다면 얼마든지 가져갈 수 있으니 꼭 하나만 가져갈 필요는 없는 모양이었다.
상품은...
10점 - 다이어리 한 개 30점 - 참치 열 개 묶음 세트 50점 - 고급 만년필 100점 - 상점가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무료 식권 세 장 200점 - 3만원 상당의 상품권 300점 - 가미즈나랜드 2인 자유이용권 500점 - (만약 얻을 수 있다면) 학생회에게 사용할 수 있는 소원권 777점 - (만약 얻을 수 있다면) 학생회에게 사용할 수 있는 소원권 2장
참가할지 말지는 자유였으나 가볍게 노는 느낌으로 참가를 해도 손해보는 일은 없지 않을까?
/2월 13일부터 2월 20일 0시까지 시작되는 스코어 앤 붐 이벤트에요! 간단하게 점수를 모아서 상품을 교환하는 그런 이벤트랍니다! 우선 >>0을 쓰고 학교를 탐색하는 레스를 쓴 후에 다이스를 굴리시면 된답니다!
맨 처음에는 점수냐, 폭탄이냐를 구분하는 다이스로 범위는 1~2. 1은 점수 2는 폭탄이에요. 그리고 여기서 1이 나오게 될 경우 점수 다이스로 1점, 5점, 10점, 30점, 50점, -10점, -30점. 이렇게 7개가 있어요. 마이너스 점수로 떨어지진 않으니까 안심해주세요! 하지만 기껏 점수를 모아도 -30점을 얻으면 다 잃어버릴수도 있겠죠? 그렇게 해서 마지막 날에 점수를 상품으로 교환하면 된답니다!
생각에 잠긴 듯 미야나기는 잠깐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역시 작년부터였나. 학기가 시작되기 직전 겨울에 프리 드 로잔의 위너가 된 일로 여러 소문들에 휩싸인 건 사실이니, 재학생인 케이가 자신을 아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유명 국제 콩쿨의 수상자가 가미즈나에 입학한다—라는 이야기에 일반 학생들은 그저 신기해했지만 그건 찬사의 탈을 쓴 파문이었다. 전공생들은 그 잘난 로잔 위너가 어쩌다 소도시의 일반 학교에 온 거냐며 저들끼리 쑥덕댔다. 근거 없는 의구심은 아니다. 사실상 로잔은 비종주국의 어린 무용수를 발레 컴퍼니나 댄스 스쿨에 발탁하기 위한 수단이니까. 그녀는 입학한 뒤로 쏟아지는 모든 이목과 질문으로부터 등돌리고 입술을 꾹 다물어버리는 것으로 응수했다. 그런데······ 자신과 함께 잔을 기울이는 이 멀건 선배의 관심은 새삼 불쾌하지 않다. 어쩌면 그녀를 쭉 지켜봤음에도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 철저한 이야기꾼과 관객으로서의 거리를 유지한 유리성이 경계를 누그러뜨렸는지 모른다. 뭐, 구구절절 합당한 이유를 붙여야 할까. 중요한 건 미야나기는 그의 관심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잘 모르는 건 문제될 게 전혀 없죠. 이제부터라도 천천히 알려드리면 돼요.“
달칵 유리잔을 내려놓자 드러나는 엷은 미소는 한결 편안하게 보인다. 그 바람대로 설령 들키지 않은 채 서로를 흘려보냈더래도, 머나먼 또 다른 어느 날에 기어코 그 어렴풋한 신기루를 찾아냈으리라 자신한다. 이 비현실적인 조우가 우연이 아닌 필연인 게 맞다면. 그녀는 문득 미처 손대지 않은 모히또의 존재를 눈치채고 케이에게 느릿하게 밀어준다. 그러면서, 먹지 않고 그대로 뒀던 카나페를 다시 앞니로 물고 우물거렸다.
”그래도 꾸준히 오셨던 거 보면 의외로 클래식이 취향에 맞았나 본데요. 보통은 지루하다고 한두 번 보는 게 최선이니까요. 어떻게, 공연은 좀 볼 만하셨던가요?“
학생회 멤버들이 정말로 힘겹게 숨긴 QR 코드지라니, 저런! 그 실로 안타까운 대목을 들어버리고 만 무용부 부장은 통감의 눈물을 아니 흘릴 수 없다. 교내의 다른 어디에선가 또 하나의 부품이 학교라는 톱니바퀴를 땀흘려 굴리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열심히 준비한 이벤트인데 참여율이 낮으면 안 되지, 안 돼. 무엇보다도 그녀는 이벤트 자체에도 어느 정도 흥미가 있다. 상품보다는 가위바위보에 구미가 당기는 거지만······. 마침 아침 청소를 위해 벌컥 연 청소도구함 안쪽에서 QR 코드지로 추정되는 물건을 발견했으니 마다할 이유는 없다.
이제부터라도 천천히 알려드리면 된다. 그 말에 케이는 의뭉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알아가면 된다는 것도 아니고 알려주겠다니, 그 말은 앞으로도 계속 교류를 이어가고 싶다는 뜻인가? 케이는 맥주를 마시면서 –전혀 취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쉽기도 했다– 생각했다. 알아가면 된다와 알려드리면 된다, 라는 말의 뜻 안의 의미에 대해서. 자신이 사에에게 가지는 호감은 어느정도 자신에게는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지만, 오늘 처음 대화를 한 데다가 단순히 짐을 옮겨준 선배에 대해 사에는 과분한 호의를 베풀고 있다, 라고 케이는 생각했다.
“고마워요.”
라고 작게 답한 것은 알려주겠다는 말에 대한 답인지 혹은 모히또를 밀어준 것에 대한 답인지 모호하다. 이내 비워버린 맥주잔을 내려두고 케이는 유리잔을 하나 더 받아와 모히또를 반으로 나눈다. 딸그락,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나눈 잔을 사에의 앞으로 밀어둔다. 처음에 주문을 할 때 케이는 버터맥주가 사에의 몫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을 사에가 나눠주었으니 모히또도 그러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까 해서.
“공연은..., 후배님이 멋있었어요. 음, 뭐라고 해야 하지? 으음... 비전공자에게 감상같은 것 물어봤자 아무것도 모르니까요. 그저 다음에도 또 보러 가야겠다, 정도랄까.”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하는 말은 퍽 순진해 보였을까. 하지만 케이의 속으로는 사에의 무대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고 있었다. 무용이라는 것은 무대라는 것은 흘러가는 그 순간의 잔상과 같아서 막이 내리고 나면 사라지기 마련이었다. 카메라로 담는다는 것에도 한계가 있어서 그 공연장의 분위기와 느낌 작은 소음과 헐떡임까지 잡아낼 수는 없는 것이었으니까. 신생은 길고 인생은 덧없이 짧았고 인간이 무대에 오를 수 있는 전성기는 그보다 더욱 더 짧았다. 사에 또한 그럴 것이다. 한 명의 댄서가 일생에서 춤을 출 수 있는 그 시기는 마치 케이와 같은 신들에게는 벚꽃 한 이파리가 떨어져 허공을 나붓거리다 바닥에 내려앉는 그 짧은 순간과 같았다.
케이는 민망한 듯 안경을 벗고 손등으로 눈을 문질렀다. 그리곤 다시 안경을 쓰지는 않고 잘 접어 목에 걸어두었다. 조금은 날카로운 듯한 눈매가 드러나자 아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잔을 부딪히자는 듯 모히또 잔을 어설프게 내미는 것은 아마 화제를 전환하기 위함일까.
“그나저나, 학교 생활은 어때요? 이제 일년은 지났으니까 익숙해졌겠지만...”
케이는 무난한 화두를 던졌다가 꽤나 재미있는 이야기가 생각났다는 듯 말을 덧붙였다.
“아, 혹시 학교 뒷정원에 검은 여우가 나타난다는 이야기... 들어본 적 있어요?”
아무런 의도 없이 던진 이야기는 아니었다. 케이는 사에의 반응을 살피며 모히또를 한 모금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