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현실과는 이면에 있는 것들을 하나씩 입밖으로 나열할 때마다 그녀는 들릴듯 말듯한, 아주 조용한 혼잣말로 당신의 말을 중얼거리며 되풀이했다. 어떤 이유에서일까. 게다가 흐리고 가라앉은 자색빛의 눈동자 속에서는... 미약하게 빛이 가볍게 반짝이는 것도 같다. 그런 그녀는 당신이 장소 이동을 제안하자 이내는 뒤를 졸졸 따라 얌전히 벤치까지 걸어가 앉았다.
"...음, 그럼..."
먼저 운을 틔운 것은 그녀였다. 그녀는 펼쳐진 자신의 얇은 손 끝을 서로 마주치면서, 옆자리의 당신에게 시선을 보내며 묻는 것이었다.
당신은 축복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당신의 말에 긍정적으로, 그녀의 고개가 가볍게 들썩였다. 이렇게 된 이상 후회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이다. 과연 무슨 축복이 될련지. 저주나 아니라면 다행이겠건만.
"―그럼 잠시."
그런데 그녀는 그렇게 말하더니, 별안간 사전 경고도 없이 당신의 불쑥 코 앞으로 다가와서는 뻗은 두 팔로 당신의 허리를 감싸 자신 쪽으로 끌어 안아 오려 하는 것이었다. ...느닷없이 포옹을 하려 드는 것이다. 그렇지만, 원채 둔한 그녀다. 행동 자체는 느릿느릿해서 아마 당신이 원한다면 손이 닿기도 전에 움직여 그녀의 팔이 허공을 젓게 만들 수도 있었을테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는 당신을 자신의 품 안에 그대로 감싸 안고 있다가 길지도 않은, 그렇지만 짧지도 않은 -실제로는 약 10초가량-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때 쯔음에서야 당신을 놓아주려 한다. 그리고나서 그녀는 얼굴색도 변하지 않고 조용히 말하는 것이다.
여러모로 뭔가 '서툴다'라는 느낌이 강한 이 중2병 신입생은, 벤치로 가자는 말에 날 앞장세우고선 뒤를 마치 병아리 쫓아오는마냥 졸졸 따라오고 있었다. 벤치에 도착해서 자리에 앉자, 이쪽도 따라 앉는다. 묘하게 귀여운 구석이 있네. 사람이 다른 사람을, 특히 외형을 평가해서는 안되는 일이긴 하지만 상당한 갭이 느껴졌다.
겉으로만 봐서는 굉장히 무뚝뚝하고, 어른스럽고, 좀 세보이는데도 눈빛이라던가, 몸짓은 전혀 딴판이었다. 약간 굼뜨기도 한게... 움직이는데 익숙하지 않다는 느낌? 이상한 비유지만, 느껴지는 바로는 그렇다.
"어디부터 시작해볼까? 일단, 영이 보인다고 했지? 그건 망자의 영혼? 아니면 살아있는 사람의 생령 같은거야? 참, 그렇게 되면 죽은 뒤에는 어떻게 되는거고? 영혼 같은게 어디로 가는게 아니라 남아있는거야? 아니면 어딘가로 떠나야 하는데 모종의 이유로 남아있다거나? 아니면..."
상대편의 느릿한 텐션에 비해, 이쪽은 입이 열리자마자 속사포마냥 질문을 마구 던져댔다. 질문이 몇 가지의 수준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자마자 헙, 하고 다시 입을 일단 다물었다.
"아, 미안. 조금 들떠서.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하자고 찾아온 사람은 처음이었거든."
솔직히 그렇다. 그것도, 우리 학교가 정말 희한할정도로 선남선녀들만이 넘치지만... 이런 미인이 먼저 찾아와서, 괴담 내지는 오컬트의 이야기를 하자고 하다니. 이거 혹시 꿈인가? 당장 꿈이라고 해도 아,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일 정도의 가슴벅찬 일이다. 어쩌면 몰래카메라 같은건가? 그럴수도 있고. 정말이지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당장은 믿는 모습은 보여주는 수 밖에. 그리고 조금 궁금해지기도 했다.
아니, 아무리 시급이 뛰었다지만 음식값 빼도 남는 거 있는 게 맞아? 메이드 카페, 급여는 꽤 쳐준다는 게 정말 사실—물론 리오의 말이 거짓을 가장한 배려일 경우도 고려해야 하지만—이었군. 하긴 일하는 걸 지켜본 입장에서도 일반 카페보다야 일이 참 고되어 보이기는 했다! 단순 서비스직이라기엔 직접 불 쓰는 요리도 해다 바쳐야 하는 데다 캐릭터 연기까지 해내야 한다. 그리고 이, 이상한 아저씨들까지 견뎌야 해······. 미야나기는 아무래도 메이드 카페 직원이라는 건 오히려 일종의 배우로서 받아들이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리오는 커서 연극 배우가 되고 싶은 거야? 아니면 아이돌이라든가.”
그나저나 나름의 강수를 뒀음에도 리오는 물러서기는커녕 전혀 양보할 생각도 없어 보인다. 게다가 뭐? 그나마 음료만 사는 걸로 이해했는데 그것도 아니고 전부 다 계산할 마음이었던 거였어? 아르바이트 한 돈을 이렇게 써버려도 되는 거야?! 저를 생각하는 마음은 고마웠으나, 친구가 땀 흘려 번 돈을 낼름 받아먹을 만큼의 철면피는 미야나기에게 없었다. 리오 역시 약간 쭈뼛대는 게 용기 내서 하는 말인 것 같긴 했지만······. 미야나기는 단호히 거절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억지 부리지 마, 리오. 서비스는 둘째치고 음식값은 먹은 사람이 치루는 거야. 시급 높게 받은 건 대타로 나온 거니 당연해. 그건 리오 몫이잖아.“
—근데 하마터면 넘어갈 뻔했다. 이런, 미인계라니! 주인님이라고 불러도 안 되는 건 안 돼! 차마 외면할 수 없는 눈빛으로부터 시선을 돌리며, 미야나기는 이미 카페와 한몸이 된 아저씨들을 한순간 이해할 뻔한 위기를 모면한다. 이거 까닥하다간 나도 저 아저씨들처럼 되는 거 아니야? 나도 저렇게 하루 종일 메이드 카페에서 죽치고 살게 되어버리는 거 아니야?! 단번에 상상되는 어두운 미래에 미야나기의 얼굴이 잠깐 하얗게 질린다. 그러다가는, 이내 소근거리며 털어놓는 리오의 이야기에 본인도 모르게 얼떨떨한 얼굴을 했다. 아무리 같은 반이라지만 제대로 대화해본 건 오늘이 처음인데, 타인이나 다름없는 자신에게 즐거웠다고 말하는 걸로 모자라 뭔가를 해주는 게 기쁘다고 한다. 살면서 또다시 이런 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 미야나기는 난처한 표정 대신에 그냥 환하게 웃기로 했다.
”······마지막에 나온 에이드만 리오가 사주기야?“
/ 씻으러 간다고 해놓고 기절잠 잔 뒤에 밤에 돌아온 죄인을 몹시 쳐주십시오………(석고대죄) 글에는 이름만 적었지만 실제로는 뒤에 -쨩이라고 호칭 꼬박꼬박 붙이고 있어!
그녀가 서툴러 보이는 것은 아마, 당신의 기우일뿐은 아닐 것이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렇게 누군가를 찾아온 것도, 이야기를 하는 것도, 흔하게 있는 일은 아니었을테니. 하기사, 영이니 사후세계이니 하는 주제를 다루고 같이 나눌 범인이 어디 발에 채이겠냐만은... 하지만 그런 것을 감안하더라도, 우선 그녀는 '사람' 내지는 '다른 자'와의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잦은 것은 아닌... 그런 느낌이었다. 그런 그녀는 당신의 물음을 한 번 다시 살피듯 시선을 저멀리 허공에 던지더니, 입을 열어 차근차근 이야기해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내용이란...
"......제가 말하는 '영'이란 것은, 흔히 한 존재의 운명을 일컫는 것입니다. 영과 운명은 서로 묶여있는 것으로... 말하자면, 하나의 운명이 영이라는 형태로 불리며, 보이게 되는 것이에요. 즉슨, 운명이 다하면 영조차도 사라지게 됩니다. 필멸자들이 흔히 인지하고 있는 '죽음'은, 단지 한 존재의 운명이 죽음에게 인도 받아 명계로 향하는 과정인 것이죠......"
...묘하게 세세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그녀의 '뇌내 설정'인 걸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어지간한 작가들의 입지가 흔들릴 지경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들을 얼굴색 하나 변치않고 막힘없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마치 그러한 것들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처럼. 게다가 아직 끝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녀는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여기서 '명계'란, 필멸자... 당신이 살고 있는 인세의 안쪽면을 의미합니다. 죽음과 삶은, 경계를 두고 하나의 세계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가끔은 안쪽에 있어야 할 영이 어떠한 이유로 경계에 걸려서 남아있거나, 겉면에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한 경우는 가지각색으로, 저조차 모두 떠올리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해요......"
그렇게 이야기 하던 와중, 그녀는 문득 다른 신경쓰이는 일이 있는지 시선을 낮게 낮추고서는 자신의 턱을 손으로 살살 문지르는 것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요즘은 부쩍, 길 잃은 영혼들이 눈에 띄는 일이 늘어났습니다. 그 탓에 저는 조금 곤란하다고 느끼고 있는 참이었습니다만...... 과연, 어째서일까요. 으음..."
" 응.응. 찾아서 다행이야 정말로- 하마터면 오해할 뻔 했어. 내가 억지로 끌고 왔구나 하고.. 아니면 나보다 중요한 다른게 생긴 줄 알 뻔 했어. 아- 위험했네~ 그랬으면 나 죽어버렸을텐데 "
장난처럼 들리는 목소리였다. 힘들어 죽겠다던가 피곤해 죽겠다던가 할 때의 그런 일상적인 목소리 톤이었다. 그도 아니라면, 조금 맥락을 맞추자면 '에~ 헤어지기 싫어~ 보고싶어서 죽을지도 몰라~' 라고 하는 느낌. 보통의 사람들은 거기서 멈춘다. 어차피 진짜 죽을 생각도 없거니와 장난으로 하는 이야기에 불과했다. 리오는 조금 달랐다. 죽을거야- 라고 한다면 진심이다. 좋아해준 만큼 좋아해주지 않는다면 죽어버린다. 사랑해준 만큼 사랑해주지 않는다면 죽어버린다. 바라봐주지 않는다면 자기파괴적인 행위를 일삼고 바라봐주지 않아서 이렇게 됐다고 상대방을 탓한다. 이 악질적인 가시덩쿨은 속에서 자라서 점점 꿈틀거리며 자라나 숙주를 벼랑 끝에 내몰고 있다.
" 응. 좋아- "
리오는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이 좋다는 듯 미소를 짓고 눈웃음을 지으며 눈을 감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가장 잘 챙겨주는 친구 중 한 명이다. 그 만큼 소중한 사람이기에 미움받기는 싫다. 스스로가 자기파괴적인 행위를 일삼으면 좋아하지 않으니 고쳐나가야한다. 계속 그러면 미움받을지도 모를텐데 그건 정말 최악이니까. 리오는 같이 돌아가자는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 괜찮아 괜찮아! 완전 괜찮아! 지금 완전 100% 컨디션이야! 그럼 잠깐만 기다려줘 짐좀 가져올게 "
리오는 금방 돌아온다고 말한 후 다시 도도도도 하고 대기실로 뛰어갔다. 등에는 기타를 메고 한 손에는 이펙터 보드 가방을 들고 걸어나온 리오는 나올때도 조금 급하게 뛰어나온 감이 있었다. 잠깐 사이에 없어져있으면 어떡하지 라는 말도 안되는 걱정때문에.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미야를 보고 나서야 발걸음이 천천히 잦아들었다. 여유롭게 전철에 타고 나서 앉으라는 말에 리오는 고개를 한 차례 갸웃했다가 절레절레 저었다.
" 으응- 나는 괜찮으니까 미야가 앉아. 나는 여기 앞에 바닥에 앉으면 돼. 짐이 많아서 차라리 그게 편하기도 하구 "
지하철 바닥에 앉아있는 여자아이는 최악이려나 하는 생각이 순간 스쳐지나갔다. 주변에서 자신을 보는 시선이 어떤지는 잘 알고 있다. 저 녀석 위험하다던가, 제대로 지뢰라던가, 멘헤라니까 가까이 하면 끝 맛이 안 좋을 것이라던가 하는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들은 데다가 또 알고있기에 고쳐보겠다고 노력중이었다. 사실 바닥에 앉아있는 것도 별로 신경쓰지는 않지만 같이 있는 미야의 처지가 곤란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음- 하고 고민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한 리오는 이내 말을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