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이라도 돈을 뿌리려는 것을 당신이 말리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꺼내두었던 3000엔을 도로 넣어 둘 수 밖에 없었다. 그러고나서는 이렇게 중얼거리듯이 말한다.
"필멸자들은 금전이라면 모두 기뻐하는 줄 알았습니다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니. 인세는 역시 알기 어렵군요......"
돈과 부는 물론 무조건 좋은 것이지만, 단지 교내에서 길 안내를 해주었다고 3000엔을 받아가는 강도가 어디 있겠는가. 누가 본다면 감히 돈의 신인줄 알겠다. 당연히도 그런 순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신은, 당신이 정중히 사양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마음에 걸리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고맙다는 말이면 괜찮을텐데. 허나 신이 되어서야 단지 그런 말뿐만으로는 신의 위상이 살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물론 당신이 신도 아니고,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따지자면 당신은 그저 또 다른 신을 모시는 신관일 뿐이겠지만, 괜스레 신으로서의 자존감이 하늘을 뚫는 이 사신은 그런 걸 스스로 용납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마침내, 좋은 대체 안을 하나 번뜩 떠올린 것처럼 고개를 치켜올리더니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필멸자. 당신에게는 축복을 내리겠습니다."
축복이라면, 흔히 말하는 바로 그 축복일까. ...지금 여기서? 어떻게? 내린다고 하더라도, 토아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수많은 팔백만 신 중에서도 사신이다. 과연 어떤 종류의 '축복'일지 불안이 솟아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렇듯 피어나는 의문점은 모두 접어둔 채로, 당신에게 그러한 기적을 하사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그녀는 말했다.
"받으시겠나요? 사양은 않으셔도 좋습니다......"
어쩐지 하사받는 인간이 아니라 자기쪽에서 안달이 나 이렇게 종용하고 있으니 더욱 불안스럽다.
아아, 그거구나. 그거. 여러가지 의미로 그거다. 얘도 이러나 저러나 오컬트는 관심이 있지만... 방향성이 살짝 다른 거 같다고 알아챘다. 그래. 아직 고둥학교에 막 올라온 상태다. 중학생 때 쯤 발병하는 '그 병'이 좀 늦게, 오래 간다고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지.
하지만 이런 시즌에 단 한명도 받아주지 않고 현실을 대차게 꽂아넣어 버리는 것은 여린 감수성에 상처를 줄 수도 있다. 거기다, 나도 남말을 할 처지가 아니기도 하고. 오컬티즘이라는 걸 좋아한다는 건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다는거겠지. 똑같이 철이 덜 든 녀석들끼리, 사이좋게 지내도 괜찮을거다.
"뭐어... 내 죽음 같은건 잘 모르겠다만, 영적 존재나 사후세계 같은 것 관련으론 나도 취급은 하니까..."
그리고 솔직히 말해두자. 나는 이런 식으로 시선을 내리고 있다가 흘긋 올려다보며 부탁하는 것에 상당히 약한, 이 시대의 건전하고도 나약한 남고생일 뿐이다!
"좋아. 계속 복도에 서서 이야기하기도 뭐하고... 그럼 어디 좀 앉아서 이야기 할까? 아, 저기가 좋겠다."
공연장을 후끈하게 데운 열기가 아직도 공기 곳곳에 남아있었다. 그것은 대기실에서부터 달려오는 그녀의 구석구석 흘러들어갔는지 볼이 상기되어 있었고, 공연을 무사히 마쳤다는 뿌듯함이 저에게로도 전해져오는 듯했다. 오늘 리링 무지 열심히 했지. 사실 체리 블라썸 펀치의 멤버라는 것부터 놀랐지만, 남들과의 의사소통에서 꽤 애를 먹는 아이가 공연을 한다는 것 자체로도 놀라움의 연속이지.
"리링, 힘냈구나. 처음에 나 못 찾는 줄 알고 조금 철렁했어~."
친구라는 것에 의존성이 높은 리링이 패닉이라도 빠질까봐 식겁했다. 더군다나 '그 말'도 내뱉지 않았다. 무쿠루마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는 제스처를 간간이 내보이다가, '그 자리에 없었으면 나는'이라는 문장이 나왔을 때엔 여전히 입꼬리를 올린 채로 물끄러미 응시했다. 발언하기 직전까지 가는 위험은 있었으나 기어코 뱉지는 않았으니 장족의 발전이었다. 홀로 서기 하는 아기를 지켜보듯 약간의 간절함과 기대를 품고 지었던 미미한 미소는 어느덧 화악 환해지며 빵긋 웃었다. 그러면서 한 손은 그녀에게 잡혀준 채, 나머지 한 손으로 그녀의 은회색 머리칼을 쓰다듬어주었다.
"옳지, 옳지."
두어 번 토닥이듯 쓰다듬고 손을 떼면 리링의 권유에 잠시 오늘 일정에 대해 떠올렸다. 공연을 보고 난 후에는 쉴 예정이었는데 거기에 동행자가 생긴다 해도 나쁠 것 없었다. 오히려 가면서 공연에 대한 감상평이라거나, 그 외의 것들을 이야기 나눌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동네가 같았으니 가는 길이 종착지까지 심심하지 않을 테다.
"나도 없어, 같이 돌아가자! 리링, 지금 안 힘들어? 공연 마친 직후잖아."
그렇게 말하고는, 작게 공연 곡을 흥얼거리며 전철 타는 곳으로 이끌었다. 개찰구를 넘고 입성하면 타이밍 좋게도 곧바로 전철이 도착했다. 사람이 꽤 많은 편이었는데, 완전히 퇴근 시간은 아니었는지 한두 자리 정도는 남아있었다. 무쿠루마는 그녀의 팔을 검지로 톡톡 두들긴 후 빈자리를 콕콕 가리켰다. 그러곤 입 모양으로 말했다.
리본 색이 붉으니 1학년. 하지만 모르는 얼굴이니 A반이나 C반이리라. 급박한 상황이라 자세히 살피진 못해도 인적사항은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저 이름 모를 여학생의 서툰 거짓말에 속으로 이마를 탁 친 것은 린도 마찬가지였다. 어쩐지 소심한 인상이긴 했다. 일부러 저러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거짓말을 심하게 못하는 건가? 어쩌면 분개한 선생 때문에 덩달아 겁을 먹어 당황한 걸지도 모른다. 목소리만 들어도 화가 뚝뚝 떨어지고 있지 않은가. 어느 쪽이든 나름대로 노력은 한 듯하니 제법 기특하다 생각은 들지만…….
망했다!
그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 선생이 잔뜩 떨리는 목소리에 속아넘어가 주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이지? 거짓말이면 너도 혼날 줄 알아." 분노 대신 이제는 의심이 묻어나는 목소리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거센 추격전으로 인해 힘 빠진 걸음이 바닥을 쓸며 이곳저곳을 향한다. 무언가를 열어 보는 소리, 꺼내어 치워내는 소리. 사람이 있을 만한 곳을 샅샅이 뒤지는 듯했다. 좁은 창고에서 뒤질 만한 곳은 많지 않았다. 이리저리 배회하던 발소리가 린이 있을 곳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는 숨죽여 새어나오는 호흡을 삼켜내었다. 시야 끝에는 상자 끄트머리를 굳게 붙잡은 남자의 손이 보이고─. 선생은 물건을 치워내 그 뒤편을 확인했다. 그러나 훤하게 뚫린 공간에는 아무것도 없다. 여학생이 보았기로 분명히 저 뒤로 들어간 게 확실할 텐데? 의심과는 달리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중년의 선생은 당황한 눈치였다. 그는 곧 자신이 헤집은 물건들을 원상복구하고, 뒷머리를 긁으며 성실하게 청소를 하고 있었을 뿐인 무고한 여학생에게 사과의 말을 건네었다. 무섭게 말해서 미안하다. 청소하고 있었니? 열심히 하렴, 같은 이야기 말이다. 그리고 다시 문을 열고 나가 사라졌다. 문에 가까운 여학생에게는 그 너머로 남자의 지친 한숨이 들려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친 걸음도 완전히 떠나가고 창고가 다시 완전한 정적에 찬 순간.
"와! 진짜 쫄려서 죽는 줄 알았네. 이래서 사람들이 공포물 좋아하는 거구나?"
다시금 요란한 소리가 고요를 찢어내었다. 공간을 틀어막은 상자를 뻥 차면서 튀어나온 남학생이 구겨진 몸을 펴며 실실 웃고 있었다. 자,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꼼수 좀 썼다. 학생으로서 남궁 린이 이렇게 앞뒤 없이 구는 것도 다 감당할 자신이 있어서 그런 거다. 신출귀몰한 도깨비님이 잠시 사람 눈앞에 안 보이도록 사라지는 일쯤이야 쉬운 일이니까. ……고작해야 이런 장난질에 신의 힘까지 쓴다는 걸 창피해할 만도 하건만. 그런 사정을 모를 여학생으로서는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모르나, 그걸 배려해준다면 린이 아니었다. 그는 성큼성큼 여학생에게로 걸어가 씨익 웃더니 이내 손을 붙잡고 악수하듯 위아래로 마구 흔들려 했다.
미유키는 꽤 장신의 키를 가졌기에 다가와 가까이 서면 그 키가 비등비등했다. 눈높이가 맞아 눈을 마주치면 미유키의 본신을 떠올리게하는 크고 동그란 금안이 보인다. 그 모습을 보면 자신도 그냥 원래의 눈색인 금안으로 다닐 걸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미 늦었지만. 케이는 미유키가 용건을 묻자 눈꼬리를 접어 웃은 뒤 말했다.
"네, 이토이가와 씨. 간밤 평안하셨나요."
올빼미 신인 미유키의 일을 생각하게 하는 장난스런 안부 인사였다.
"다름 아니라, 가벼운 부탁이 있어 왔답니다. 제가 역사 교과서를 두고 왔지 뭡니까. 폐가 안 된다면 빌릴 수 있을까 해서요."
가볍게 웃은 뒤 말을 잇는다.
"그것 보다는 3학년 되고는 마주치지 않은 것 같아서 인사 겸. 겨울 방학은 잘 보내셨나요?"
"아무래도 현세의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려나요? 그래도 '대개는 그렇지만 모두가 그러진 않는다.' 라는 이야기도 있으니까요."
금전은 살아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하물며 신사가 유지되는데에도 큰 영향을 끼치니까, 하지만 그저 중요사항 중 하나일뿐 탐욕을 부릴 정도로 필요한 것 역시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무언가라도 보상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양 마음에 걸린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저정도로까지 반응하는걸 보면 그래도 무언가를 받아야 하는게 예의일까? 하는 생각이 들던 찰나, 그렇다면 축복을 주겠노라 말하는 그녀가 있었다. 사양하지 않아도 좋다는 말은 어쩐지 거절은 거절한다,라는 말로 필터링되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 또한 과분한 셈이지만, 마냥 사양 하는 것도 분명 예의는 아닐 테니까요."
축복을 주겠단 말에 따른 긍정의 답변이였다. 아무렴, 오히려 은혜를 베푸려 안달난 쪽이 신인데 고작 필멸자일 뿐인 인간이 어찌 거절하겠는가. 마음 한켠에선 과연 명부를 쥔 이가 내리는 축복이란 무엇일까, 하는 원초적인 호기심도 있었다.
신에게 받는 축복이란 편히 살게 하거나 편히 죽게 하거나 둘 중 하나일테니 아무렴 죽기보다 더 하겠냐만은, 방금 전 그녀의 말로 미루어보건데 아직은 자신의 명이 길게 남아있다 했으니 죽는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