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는 조금은 질색하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렇게 계속 생면부지인 사람들을 대해야 하는 직업은 절대 무리다. 인디 밴드로 활동하면서 라이브도 하고 있지만 이건 순전히 취미의 영역이라 언제든 관둘 수 있다. 다만 배우나 아이돌이라면 그걸 직업으로 삼아야 할 것인데 그렇게까지는 지금으로서는 절대 무리인 셈이다. 게다가 이렇게 이상한 악의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은 대중 특히나 어린 아이들 앞에 우상으로 나서선 안 되는 법이다.
" 아, 에, 어, 억지가 아닌데.. 으.. "
더 우겼다간 미움 받을지도 몰라. 리오는 이 쯤에서 인정해야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다짜고짜 전부 자기가 계산하겠다고 한다면, 당연히 부담이 될 지도 모른다. 기껏 친해졌는데 또 다시 멀어질 수는 없으니까 리오는 타협과 양보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지막의 에이드만 계산하는걸로 하자기에 리오는 금새 또 '응!' 하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 응... 사에쨩하고는 친구.. 좋아.. "
성공했어 리오. 사에쨩하고도 둘도 없는 친구야. 친해지고 싶었는데 이제 친구가 됐어.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잔뜩 붙어다니고 항상 과시할 수 있어. 사에쨩하고는 좋은 친구. 리오는 미소를 짓고 다시금 '좋아' 하고 말했다. 사에도 웃어주고 있었기에 리오도 마찬가지로 웃을 수 있었다. 아리스로 돌아가지 못하고 웃고있었다. 리오는 흠흠, 하고 목을 가다듬고는 다시 일할 시간이라는 듯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상당히 세세하고, 특이한 개념의 사생관이다. 마치, 진짜로 그렇게 알고 있는 듯 이야기를 하는 느낌... 물론 기분 탓이겠지. 그나저나 이 여자애, 상상력이 굉장하다. 설정 노트 같은것도 펴 보지 않고 이런걸 줄줄 말하고 있다니. 이런 게 '진짜 광기' 라는건가? 음, 그리 생각하니 조금 오싹할지도. 마주쳤을 때 느낀 그 오싹함이 그런 느낌이어서였나...
"흥미로운걸. 존재의 운명이 곧 영혼이라는거고... 죽는다는 건 운명과 개체의 소멸이 아니라, 내세로 옮겨지는 것이고, 망자의 세계랑 산 사람의 세계는 경계를 두고 한 세계를 공유한다, 라..."
말 되는걸. 완전히 다른 별세계가 아니라 경계를 사이에 두고 공유되고 있기에, 이런저런 사고나 원인 등으로 영적 존재가 경계를 넘어 이곳에 나타나는 것. 그것이 심령 현상... 개연성이 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듣는다면 완전히 허구의 소리로 치부하겠지만. 물론 나도 이런 이야기는 당연히 허구라고 생각한다. 다만 역시 그거다. 저마다 생각하는 것도 다르니까, '이 사람은 세상을 이렇게 보는구나' 하는 관점에 따라 흥미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기에 심령과학이 재미있다고 본다.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고.
"그래? 하기사, 요즘 들어서 심령 현상이 좀 잦아진거 같더라. 대부분 그냥 무서워서 헛것을 본거겠지만. 그나저나 곤란하다니? 퇴마라도 하고 그러는거야?"
물론 퇴마를 하는 시늉을 하는 정도겠지만. 아니면 뭐... 정말로 퇴마사인가? 영 능력자라거나? 진짜면 재미있을 거 같긴 하다. 그리고 그렇담 특종 거리는 따놓은거고. 진짜일 확률은 지극히 낮지만, 오컬트 같은건 그 낮은 확률로 생기는 일을 덕질하는거니까.
리오의 난색에 의아하게 갸웃, 고개를 한 번 기울인다. 나이에 비해 충분히 능숙해서 연기자의 요건은 너끈히 갖췄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아니, 전혀 훈련되지 않은 고등학생이 저만큼 해내는 건 그다지 일반적이지는 않지······. 재목의 발견이 무산되자 아쉽다는 듯 눈썹을 늘어뜨렸다가는, 이내 고개를 연거푸 끄덕여대는 리오가 귀여워 조금 웃었다.
”그래, 앞으로도 쭉 잘 부탁할게. 학교 가서 모르는 척하면 나 진짜 서운하다?“
이를 테면 갑자기 얼음 공주 아리스 양 모드로 돌아가서 찬 바람 휭 날린다든지. 그럼 되게 슬프겠지? 미야나기는 ‘쭉’, 짧은 그 부사를 끊어 발음하지 않고 강조하듯 늘린다. 물론 새학기에 터놓고 지낼 수 있는 친구를 빨리 맞이한 것도 행운이지만, 그녀 역시 리오가 진심으로 마음에 들었으니까. 약간은 집착적인 반언어의 표현이다. 아, 그나저나 너무 오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나! 이윽고 다시 아리스로 돌아간 리오가 음색을 가다듬으며 두 손을 모으고 서자, 미야나기는 잽싸게 자리를 고쳐 앉고서 테이블 위에 올려둔 카드를 집는다.
어떻게 반응할까⋯⋯. 무쿠루마는 고개를 슬며시 기울인 뒤 생각에 잠겼다. 리링, 그러니까 이치노세 리오. 같은 동네에 거주 중인 2년 지기 친구. 특징, 매우 의존적임. 여러 친구를 사귄 만큼 인간군상이 다양하고 그만큼 괴짜들도 많았으나, 이런 쪽은 처음이다. 친구에게 집착하는 정도야 흔히 볼 수 있는 정도라지만, 이 정도의 의존성과 자기파괴적 발언을 일삼는 유형은 단언컨대 없었다. 자신이 ‘모두’와 친해지는 대신 ‘모두’에게서 적정량의 거리감을 얻는 편이라 그럴 지도 모르고, 보이는 성격 자체가 바보 같이 명랑한 면들이었으니 무쿠루마가 먼저 거리를 좁혀왔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이렇게 대놓고 거리감을 좁혀오는 사람은 좀처럼 없었고, 있더라도 전부 선 밖으로 내쳐낸 이후라는 소리였다. 다만, 그녀와 함께한 시간이나 오늘 그녀가 보여준 ‘열정’은 무쿠루마에게 제법 중요한 포인트였어서, 그저 엄지와 검지로 그녀의 양볼을 쭈욱 당겼을 뿐이었다.
“또! 그런 말 할 때마다 볼 잔뜩 늘려버린다?”
무쿠루마는 눈꼬리를 올리며 눈을 힘껏 부라렸다. 볼을 부풀려 그다지 위협적인 모양새는 아니었고, 무쿠루마 자신도 진심으로 화낼 심산은 아니었으니 심려 섞인 장난은 그렇게 장난으로 그쳤다.
“천천히 해도 돼~.”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느새 리링은 얹어진 짐으로 인해 상당히 무거워진 실루엣으로 나타났다. 기타와 가방을 번갈아보다가 개찰구를 통과하고 전철까지 가서는, 제 권유를 만류하는 리링을 향해 물음표가 띄워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치만 엄청 무거워보이는 걸. 무겁지 않아? 아니면 이리 줄래? 도착할 때까지 잘 들고 있을게."
빈자리를 두고 계속 서서 이야기하는 것도 그렇고, 한 번 거절한 권유를 다시 한 번 내밀기도 그래서 무쿠루마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에잇, 하고 자리에 착석했다. 그러고는 다리를 툭툭 치고 기타와 가방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후 리링이 행동을 취하고 나면, 무쿠루마는 입가에 손바닥을 가져다대고 작게 속닥이기 시작했다. 거짓말 한 것은 교묘하게 말을 섞어 숨겼다.
“언제부터 했는지는 정확히 모르는데, 체리 블라썸 펀치의 멤버가 된 건 언제부터야? 계기라도 있어? 아, 결성 직후부터 알았더라면 조금 더 많은 공연을 볼 수 있을 지 모르는 일이니까, 아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