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치아키 선배는 날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아무래도 내 비주얼이 양아치스러우니깐..당연할 법도 하지. 치아키 선배가 의심을 하고 있다고는 확신은 안 하지만, 그런 시선을 지금까지 많이 받아왔으니깐. 정말로 나를 의심하는 거라면 앞으로 행동으로 증명해야겠지. 지금까지는 말로만 증명했잖아.
"이해해주셔서 고마워요."
본인이 해놓은 대답을 추상적이라고 여긴 하야토의 평가에 비해서 치아키의 반응은 상당히 후했다. 이와 더불어 자신의 뜻을 이해해준 치아키에 대한 내적호감도는 더 올라갔다. 학생회장을 참 잘 뽑았다는 생각이 드네.
"알겠습니다. 무리한다고 느껴질 때 되새겨볼게요."
치아키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알면서도 하는 사람..하지만 자신의 역량을 모르고 그런다면 오히려 만용이 된다. 위험한 일에 과감히 뛰어드는 것만이 용기는 아니니깐 말이야. 뛰어들고 싶은 용기를 애써 외면하고, 자신의 길을 조용히 걷는 것도 용기니깐. 하야토가 본인이 손해를 볼 것을 알면서도 선행을 해온 이유. 이것은 용기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본질적으로는 용기가 없기에 그래왔던 것이 아닐까.
녹빛 차와 밀빛 모나카가 대접된다 사실 차랑 전통 과자는 취향이 아니지만 이렇게 내어주는데 먹지 않는 것도 실례 아닐까 미카는 조용히 모나카를 하나 든다 베어물고 씹어삼키니 달달하고 텁텁한 팥맛이 느껴진다 따뜻하고 씁쓸한 차를 마셔보기도 하고
"...네."
나가는 길과 돌아가는 길 알쏭달쏭한 말이지만 이해되는 것도 같다 하지만 아직은 돌아가기 싫으니 이 신사에서 좀 더 시간을 보내도 괜찮을 듯 얌전히 대답하고 눈길을 돌려 주변을 살펴보던 도중 익숙한 의복이 눈에 들어온다 다름아닌 가미즈나고 교복 게다가 리본 색은... 1학년생임을 증명하고 있다 ...
"무녀...신가요?"
...그래도 존댓말은 고치지 않는다 갑자기 어투를 확 바꾸면 좀 그럴 수 있으니까 미카는 황급히 옷걸이에서 시선을 돌린다
"오케이. 오케이. 아무튼 2학년이니까 알아서 잘 할거라고 믿을게! 사실 제일 걱정되는 것은 1학년 애들인데 말이야."
그렇다고 1학년 아이들만 붙잡아서 다시 교육을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조금 아쉽지만 그 부분은 학생회 임원들 중 1학년 애들에게 조금 더 부탁을 하는 쪽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치아키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어 그는 책상 서랍을 연 후에 티백을 꺼내들었다. 얼그레이 티백이었다. 나중에 끊여서 먹으려는 것인지 일단 한 개 정도를 빼둔 후에 그는 하야토를 다시 한 번 바라봤다.
"무리한다고 느껴질 때가 아니라 학생회장으로서는 무리하기 전에 한 번 되새겨봐줬으면 하지만 애초에 내 말이 정답인 것은 아니니까. 그 부분도 포함해서 알아서 잘 하리라 믿을게."
가볍게 대답하는 것은 언제나의 치아키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아무튼 더 할말이 없을까. 잠시 생각을 했지만 일단 공지 관련으로 더 이야기할 것은 이것이 전부였다. 애초에 이렇게 말을 더 건 것도 어쩌다보니 그가 바로 눈에 보여서 별 생각없이 말을 걸어본 것 뿐이었다. 특별히 뭔가 더 이야기를 해야겠다..라고 느끼는 것 없이 그는 태연하게 두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튼 반장 업무로서 내가 더 말 할 것은 이 정도! 뭔가 이 이상 이 주제로 이야기를 하면 설교하고 수업시간이 되는 것 같아서 말이야. 여기까지 와서 잔소리 듣거나 필요 이상으로 지도하는 것은 좀 그렇잖아? 아하하. 아무튼 이 학생회장님에게 건의하고 싶은 없을까?"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한 번 물어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하며 치아키는 살며시 질문을 던진 후, 하야토를 다시 빤히 바라봤다. 혹시나 뭔가 말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며.
1학년 애들이라..사실 나도 1학년 아이들과 다름이 없다. 이 학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반장이 됐으니깐. 아니, 오히려 더 안 좋은 환경이지. 적어도 이 마을에서 지내온 아이들이 대부분일 테니깐. 서로의 네트워크 정도는 예전부터 형성되어 왔을 것이다. 동료가 있는 채로 사막 한복판에 놓인 것과 혼자 놓인 것은 차이가 많이 나는 법이지.
"네. 노력해볼게요."
그게 쉽지가 않다. 무리하기 전에 되새기는 것..참고는 해둬야지. 무리하지 않아도 될 상황인 줄 알고 행동하다가 결국 무리를 하게 되는 것이 문제지만..아니, 무리하게 될 걸 알면서도 뛰어드는 미려한 놈이 나였지.
"건의사항이라.. 없어요. 아직 더 많이 보고 어디가 부족한지 알아야 하거든요. 이 학교에서 저는 아직 이방인이나 다름 없으니깐. 나중에 건의드려도 될까요?"
분명 건의를 해야 될 사항이 있지만 모른다. 무엇을 보고 알아야 건의를 하지,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직 더 많이 보고 어디가 부족한지 알아야한다는 그 말에 치아키는 절로 긴장했다. 아까부터 말하는 것을 봤을 때. 특히 이방인이라고 하는 것을 봤을 때 전학을 온 것인지, 아니면 온 지 얼마 안 된 것인지. 여러모로 떨떠름한 표정을 치아키는 지을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저런 전학생이나 혹은 온지 얼마 안 된 이야말로 학교의 전체적인 모습은 잘 볼 수 있었으니까. 그러다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이 너무 많다고 보이콧 선언 같은 것이라도 해버리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기에 치아키는 절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니겠지.
"그래도 그렇게 나쁘진 않을거야. 전학생인지 아니면 1학년 극후반기에 전학을 온건진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가 좋게 만들 생각이거든! 한 해를 돌아봤을 때 재밌었던 학창 생활. 이것이 내가 미는 것이기도 하고."
물론 계획은 그렇게 잡긴 했으나 그것이 정말로 제대로 실현이 될지는 자신도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할만큼은 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하면서 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좋아. 그럼 내 쪽에서 따로 할 이야기는 끝. 혹시나 도움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찾아와. 가끔은 놀러와도 되긴 하니까. 하하. 그럼 또 사탕을 줄게."
그 중에 계피맛이 섞여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으면서 치아키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새로운 학기, 새로운 학교, 새로운 교복에 대한 설레임은 비단 그녀가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되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새로운 장소, 가미즈나 마을 그 자체가 아직은 낮설게 느껴져서일까? 아무리 마을 탐방을 하고, 신사를 둘러보고 학교에 기웃거려도 이곳이 타지라는 기분은 좀처럼 감추기 힘들었다. 지금도 잠깐만 차를 타면 신사가 눈앞에 보일것 같은 느낌,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점이 있다면 길눈은 밝은 편이었기에 입학 이후로 주변 지리는 물론이요 학교의 전경까지 금방 익힐수 있었단 것이다.
...그래도 역시 고학년의 층에 올라가는건 조심스러웠기에 지나칠 일이 있을 때마다 매번 긴장의 연속이었을까,
"......"
하지만 지금의 토아는 그런 것과는 다른 긴장감이 들었다. 어째 자신보다 더 헤매고 있는듯한 학생이 보였으니.
"무언가 문제라도 있으신지요...?"
단정할수는 없겠지만, 건너편의 학생이 내비치는 분위기는 마치 가야 할곳이 어디였는지를 잃은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