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팔짱을 끼며 생각에 잠긴 반응을 보아하니 뭔가 자신의 말을 그녀가 대강 이해한듯 싶지만, 어쩐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이를테면 이상한 부분에서 캥겨 엉뚱한 오해가 생긴다던지...
그런 마음이 들었지만 일단 그런 걱정은 뒤로 해두고 안전하게(?) 목적지인 도서관까지 바래다 주는 것이 자신의 임무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종일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엔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단순히 자신처럼 이곳의 상황이 익숙하지 않은 걸 수도 있으니.
그것이 어떤 시점에서의 차이냐는 조금 달라지겠지만...
"......"
큰일이다. 도리어 더 난해한 호칭이 되어버린 상황에 그녀는 당혹스러워해야 할지 웃어넘겨야 할지 순간적으로 고민에 빠졌지만 고민보다 더 빨리 후자쪽으로 몸이 반응하고 있었다.
"두갈래의 필멸자라... 두갈래(헤어스타일)가 영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요~"
엉뚱한 호칭이 되어버렸음에도 아랑곳않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이젠 나른함이 느껴지는 분위기를 넘어 어딘가 맹해보이는 구석까지 느껴지기도 했다. 안내하기 위한 손을 머뭇거리다가 이내 맞잡은 것까지 포함해서,
그래도 좋은게 좋은 거니까, 오히려 이렇게 잡고 이끌지 않으면 그녀가 도중에 알 수 없는 이유로 멈춰서거나 하진 않을까 싶은 불필요한 걱정까지 생겨나는 토아였다. 이것도 번뇌라면 번뇌라고 해야 할지...
"마치 봄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네요. 물론 봄이긴 하지만요?"
손에 휘감기는 조금은 거센 봄바람 같은 감촉, 사람의 체온이라 생각하기엔 미미한 한기마저 느껴질 정도였지만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찌 되었건 손을 잡고 있다는건, 제대로 이끌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손만 잡았다고 무작정 앞으로만 향하는 것이 아닌, 가끔 그녀쪽으로 돌아보기도 했다.
하야토가 처음부터 고교생활을 가미즈나에서 시작했다면 서로 알지는 못해도 얼굴은 알고 있었을 거다. 둘 다 눈에 띄는 외관이니깐 말이야. 하나는 양아치스러워 보이는 혼혈. 또 하나는 '아가씨'라는 단어가 적절한 정돈된 소녀. 그나저나 A 학급이면은.. 전에 내가 중재해줬던 사춘기 소년과 같은 반이 아닌가? 내가 오토바이까지 태워줬지만 막상 통성명은 못 했는데 말이야. 그 친구.. 틱틱대지만 나쁜 친구는 아니라고 느껴졌는데. 뭐랄까, 챙겨주면 무슨 오지랖이냐고 화낼 것 같지만 그래도 챙겨주고 싶은 녀석이랄까.
갑자기 얘기가 다른 데로 흘렀네. 어제 치아키 선배의 "얌전한 척 하는 질 나쁜 양아치가 싫어"에 이어서 이번에는 태권도를 어떻게 배웠냐는 포크볼. 이 학교 학생들은 입학하기 전에 야구부한테 포크볼 합숙훈련이라도 받나?
"취미에요, 취미..헤.. 운 좋게도 제가 가르치는 곳이 있는 동네에서 살았어가지고.."
절대 영국에서의 태권도 유망주였다는 얘기는 안 한다. 그 전에 원래 전공이었던 걸 취미였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했고. 영국에서 살았다는 사실도 숨겼다. 이어서 빠르게 화제를 돌리는 하야토.
“와, 전학생? 저도인데! 전학생은 아니지만 외지인이죠. 역시 류세이 군도 칸토 사람이군요? 저, 마찬가지로 칸토 출신이에요.“
가미즈나 특유의 칸사이 억양이 섞이지 않은 말씨에서 이미 느낄 수 있었지만, 타지 출신인 점을 확답 받고 나서야 미야나기는 기쁜 듯 부드러운 얼굴을 하며 나섰다. 일본인이 아닌 부모님의 영향으로 칸토 말을 구사하나 싶었으니까. 아무튼 먼 타지에서 동향의 사람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차별이나 텃세가 있는 것은 아님에도 토박이와 외지인 사이에는 미묘한 간벽이 있지. 미야나기는 조금 더 긴장감이 누그러젔는지 한결 풀어진 모습을 했다.
“아까 살짝 본 거지만 취미 수준은 아니던데요. 태권도는 잘 모르지만 프로로 세워도 문제 없어 보이는 동세였어요. ······발레도 시켜 놓으면 틀림없이 무지 잘하겠지.“
뒷말은 혼자 웅얼거리듯 작게 말한다. 이내 미야나기는 소년이 주제를 바꾸고 싶은 것처럼 약간 얼버무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구태여 되묻지는 않고 그 바람대로 묵인했다. 당연히 미심쩍은 부분은 있지만. 그야 체육인의 눈은 속일 수 없다. 훈련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일반인 정도야 껌 씹듯이 알아본다고! 황망히 물어오는 그 질문이 화제 전환을 위함임을 알지만 그녀는 순순히 대답했다.
“무용부 부장이에요. 오늘은 시간이 비어서 잠깐 학교에서 연습이나 할까 하고 온······ 아앗, 내 가방.“
그제서야 내평겨친 튜튜와 가방이 생각났는지, 말하다 말고 한펄쩍 뛰고는 허둥지둥 출입구쪽으로 걸어가려 했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이상한 일이군요. 실내에는, 바람이 불지 않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럴수가, 운치도 없다니. 그녀는 당신의 비유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엉뚱한 소리를 중얼거리고 만다. 이 사신, 본디 상당히 맹한게 분명한데 묘한 구석에서는 또 현실적이기까지 하다. 인간에게 있어서는 한없이 이상하고 까다로운 상대가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과는 다르게 제멋대로인 것이 또 신이라는 작자들. 그런 신을 모시는 진즉 모시고 있던 전적이 있기 때문일까, 그럼에도 당신은 꿋꿋하게 그런 그녀를 이끌고 점차 도서관을 향해 나아간다. 반면, 뒤를 돌아서 본 그녀의 얼굴은 정작 여전히 자신이 어디로 가고있는지도 모르는 듯한 얼굴이다... 그녀는 당신과 눈을 마주치면, 그녀쪽에서도 이따금 의문섞인 눈빛을 해보이고는 해서 이 손을 놓으면 어딘가로 흩어져버릴 것 같다는 당신의 불안을 조금은 부추기고 있었다.
"......토끼를 닮은 두 갈래의 필멸자여."
그리고 거기서 갑자기 또 그렇게 부르는 건가.
"본래 저는... 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닌, 영을 통해서 길을 감지하고, 찾아갈 수 있답니다."
무슨 말을 하나 싶더니 급고백이다. 달리 말하자면, 어찌하여 지도 앞에서 길을 찾아가지 못하고 헤매이고 있었는지에 대한 변명쯤 되는 것 같은데. 그 변명이란 것이 조금 괴랄하게 들리지만... 평범한 인간에게는 괴담, 혹은 그저 성장기 한 때의 발언이라고 들릴 뿐이지만, 어쨌건 그녀는 그럴 수 있었다. 왜냐하면 죽음 본인이니까.
"허나 그렇게 하기에는 이곳은... 떠도는 혼이 너무나 많이 느껴져서... 혼란스러워서...... 곤란합니다. 으음..."
하지만 그러한 것도 모르고서, 무언가에 부딪히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보행중에도 눈을 지그시 감고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것으로 그렇게 말을 이어갔다.
시적 심상에 돌아온 현실적인 대답, 하지만 그것조차 나쁘지 않다 생각했는지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요?"
무드라던지, 운치라던지는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른법. 설령 느끼는게 같다 해도 그걸 표현하는 방식에 따라 또 여럿으로 나뉘는 법. 마치 같은 원전에서 태어났으나 전혀 다른 신들이 있는 것처럼, 세상엔 이런저런 사람들의 가짓수가 있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도, 그녀가 생각하는 것도 그저 그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각자의 개성, 각자의 주장, 각자의 감정, 그런 차이가 누군가에겐 별것 아닐지 몰라도 다른 누군가에겐 마냥 신기하게만 느껴지는 법이다.
그 와중에도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독특한 호칭, 고해인듯 고해 아닌 담담한 이야기에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는지 발걸음은 조금 느려졌다.
"과연... 그렇다면 더욱이 어지러울 수 밖에 없는 일이지요."
본디 영을 통해 길을 밝히는 존재이나 이 구천엔 그런 떠도는 영들, 머무르는 영들이 워낙 많은 곳이니 시야의 혼선이 오는 것들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 무녀로서 영안이 있는 자신도 그런 존재들을 하나하나 감지하거늘, 하물며 그 영으로 길을 찾는 이는 오죽 혼란스러울까.
"혹여 눈을 감는 것만으로도 그 혼란이 조금이나마 해소가 된다면, 그리 하셔도 좋답니다."
스스로가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는 시선이나 어딘가에 부딪히진 않을까 싶을만큼 눈을 감고 도리질을 하는 것도 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닐지... 생각에 잠긴 것과는 다른 의미로 그녀가 어딘가에 쏠리지 않도록 발걸음은 한층 더 조심스러워졌다. 도중에 흩어져버린들 어찌 할수 없다지만, 재촉한다 해서 달라질 것은 없는 법. 가령 흐르는 모래를 건지겠답시고 꽉 쥐면 도리어 더 흘러내려 남는 것이 없듯, 찬찬히 길을 살펴 안내하는 것 또한 하나의 방법일지도.
곤란해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미야나기는 싱글벙글 반갑기만 한 기색이었다. 같은 동네라니······. 도쿄가 넓기로는 얼마나 넓은데 동네 친구—였던 것— 정도로 생각하고 있으니. 내색은 안 했어도 미야나기는 고향을 꽤나 그리는 눈치였다. 아무렴 근교의 대도시가 있다 해도 수도만큼 좋지는 않을 테니까. 이내 소년의 둘러대는 듯한 겸양 표현에 그녀는 조금 웃었다.
그러면서 미야나기는 본인 손으로 직접 내던진 짐들을 쭈그려 앉아 꾸역꾸역 챙겼다. 텀블러 안 깨졌고 요가링 멀쩡하고. 토슈즈, ······다행히 밑에 깔린 웜업 부츠 덕분에 살았다. 튜튜도 일단 겉보기로는 판이 처진 것 같지는 않아 보이니까 무사하다. 이럴 수가! 콩쿠르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지 가방을 냅다 던지는 미친 짓을······. 이마를 짚던 미야나기가 그제야 생각을 번뜩 멈추며 앗! 하고 탄식했다. 아니 참 그래 나 여기 웜업하러 온 건데 뭘 하고 있는 거지! 손등으로 식은땀을 훔치며 미야나기가 얼른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러고 보니 한창 연습 중에 결례를 끼쳤네요. 많이 방해됐죠? 류세이 군도 편하게 있고 싶을 텐데 훔쳐보기나 하고 함부로 말 걸고.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할게요.“
/아냐 나도 기절잠 자버렸다……!! 뻘하게 원래 사에는 롯폰기 출신인 걸로 하려고 했는데 (이유: 그냥 사에주가 좋아함) 가부키 배우가 롯폰기 타워맨션에서 사는 건 좀 이상한 것 같아서 스테디의 타카나와로 타협했다는 비하인드가… 🙃
>>983 안녕하세요 캡틴!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고 좋은 오전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제 와서기는 하지만 현생 사정상 자주는 못 올 것 같은데 이 부분 괜찮을까요... >>983 안녕하세요 사에주! 가미즈나 마을 신님들과 다르게 힘 없는 한낱 인간인지라 평일에게 뚜까 당해버렸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