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 달에 한 번 꼴로 있는 체육관의 휴일이다. 하야토에게는 힘겨운 반장의 일과를 끝내고 숨을 돌릴 수 있는 방법이었지만 체육관이 휴무인 것을 어떡하냐. 그런데 오늘이 휴무인 걸 어떡해. 그래서 오늘은 처음으로 가미즈나 마을을 둘러보려고 한다. 오토바이도 아직 수리 중이니깐..걸어다니자.
"또 이렇게 보면 정상적인 곳이란 말이지~"
도쿄와는 다르게 매연냄새도 안 나고 소박한 곳. 시비를 걸어오는 불량배가 넘치는 도쿄와는 달랐다. 역시 학교가 잘못된 거지, 가미즈나 마을이 이상한 건 아니었어(?). 영국에서도 런던에서 살았는데..평생을 대도시에서 살다가 이렇게 작은 마을에서 살아보는 것도 색다르네.
그런데 여기저기서 느껴지는 시선은 아직 익숙하지 않네. 하긴..백인혼혈인 녀석이 이 동네의 교복을 떡하니 입고 있으니깐 눈에 띌 수 밖에..그런데..저 길거리에서 복숭아 파는 할머니는 누구시지? 양도 저거 밖에 안 되는데.. 고작 저거 판다고 길거리에서 이렇게 장사하고 있는 거야..?
"할머니~ 이거 제가 다 살게요~"
복숭아를 좋아하진 않는 하야토지만..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할머니가 파는 한 봉지 가량의 복숭아를 그 자리에서 다 샀다. 그렇게 복숭아 봉지를 들고 거리를 돌아다니던 중, 한 색다른 복장의 여자가 하야토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는 그에게 건네지는 전단지.
하야토가 가장 꺼내고 싶은 말은 "언제 봤다고 반말이야?"였다. 하지만 절제력을 발휘해서, 하야토는 친절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미안해요. 제가 커피를 별로 안 좋아해서."
사실 하야토는 커피를 좋아한다. 하지만 안 좋아한다고 했다. 뭐랄까, 소녀의 복장도 그랬고 전단지의 표지도.. 하야토에게는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칭찬하는 폼이 제법 능숙했다. 잠자코 여기까지 따라와서 먹이를 주는 것도 그렇고, 금붕어를 빤히 쳐다보는 것도 그렇고⋯⋯ 의외로 이 아기 금붕어들이 마음에 든 것일까? 자신 좋아하는 아이들을 좋아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정말 좋은 일이라 그저 신이 났다. 무쿠루마는 그가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수 분의 시간 동안 침묵을 지켰다.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의 적막 속에서 들이차는 주홍빛 햇살과 어여쁜 금붕어들이 섞여 직조된 사랑스러운 시간을 그도 느껴봤으면 했다. 무엇보다, 얼굴 상태가 영 아파 보였으니까.
"저기, 와타누키 군. 오늘 고마웠어. 밥 같이 먹어준 것, 귀찮을텐데도 나랑 어울려준 것 말이야. 와타누키 군만 괜찮다면 언제든 금붕어 보러 와도 좋아!"
그러고선 또다시 헤실거리는 웃음을 걸친다. 이번만큼은 불량 군이 아닌 와타누키 군이라 부른 것은 장난으로 고맙다고 하는 말이 아니라는 의미.
"그렇구나..." 아쉽다. 이긴 하지만 신관님이 호텔에 관한 말을 듣는다면 호캉스도 부지런해야 하는데 그걸 시도하려 하다니.... 장족의 발전이라며 눈물을 쓱 훔칠지도 모를지도? 물론 지금 알 방법은 없지만.
"배부르다 같은 감각은 이상한데." 항상 배고픈게 정상인걸. 이라는 말을 하는 사야카. 그리고 급식이 있다는 말은 처음 듣나봅니다. 아 그랬나. 라는 말을 하다니. 자기 자신이 너무 관심없이 산 거 아닌가요?
"방 청소 하니까 보여줄 순 있는데.." 방 청소라는 말을 들으면 내가 그렇게 더럽게 보이나. 같은 미묘한 감정이 들어서 그런지(자기 자신을 되돌아볼 필요성이 시급합니다) 핸드폰을 들어서 사진첩을 들이밀려 합니다. 지금 이 일상 중 이게 가장 큰 행동이었어! 만일 사진을 본다면 그냥 입주전 하우스같은 생활감없는 방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리오는 한 발자국 더 다가가서 전단지를 펼쳤다. 아직 고개를 제대로 들지 않고 전단지를 바라보던 리오는 간판이라고 적힌 메뉴들을 하나하나 손으로 집으며 일러주었다. 봄 한정 메뉴인 벚꽃 버블티, 특제 레몬 샤베트, 초코 치즈 퐁듀 그리고 자기가 직접 만들어 주는 거라며 얼음공주의 악의와 정성이 담긴 수제 철판 오므라이스라는 심상치 않은 이름의 오므라이스도 일러주었다. 아직 오겠다거나 말겠다거나 하는 말은 없었다. 의미를 따지자면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오지 않겠다는 의사표명이었지만 리오는 그런걸 크게 신경쓰는 타입이 아니었다. 아무나 한 명만 걸리라는 타입의 사람에게는 잠깐 서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만으로도 반 쯤 성공이었으니까. 리오는 복숭아를 보곤 오- 하고 표정을 살짝 바꿨다.
" 우리 가게 모모쨩이라는 아이도 있.. 에? "
리오는 이제야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보고는 '하프?' 하고 물 흘러가듯이 물었다. 이 마을에서 외국인을 보는 것은 정말로 흔치 않은 일이다. 그럼 그보다 더 흔치 않은 일은 무엇이었냐면 하프 즉 혼혈을 보는 일이었다. 학교에서도 자기 반의 친구들 몇 명이나 마음이 맞는 친구들, 이제는 고치고 있다지만 의존증에 멘헤라끼까지 있는 자기를 바라봐주는 소수의 친구들을 빼면 그 외의 사람들에겐 그다지 관심도 없는 데다가 커뮤증도 조금 있었던 탓에 다른 반 사람을 꿰듯이 알고 있을 리는 전무했다.
" 디저트 맛있다구요- 귀여운 여자아이들도 잔뜩 있고. 지금이라면 노래 같은 이벤트도 있을텐데? "
분명 재밌을 것이라 말하면서 리오는 미소를 지었다. 하교나고 나서 거울을 보고 출근 전에 몇 번인가 '자연스러운 미소'라는 것을 연습했다. 늘상 듣는 말은 인상이 차갑다던가 왜인지 모르게 다가가기 어렵다던가 사납거나 무서워 보인다는 이야기였다. 그래도 지금은 일하고 있는 중이니까 좀 더 귀여운 미소를 짓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에 구태여 거울까지 보면서 연습한 회심의 미소였다는 것이다. 연습을 한 회심의 미소라는 점에서 '자연스러운' 미소는 아닐테지만 뭐, 괜찮나.
자고로 배부르게 먹으면 배가 부른 법인데 그런 것이 이상하다니. 뭔가 자신과는 생각하는 것이 조금 다르지 않나 생각을 하면서 치아키는 순간적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생각을 더 하거나 하진 않았다. 뭐가 어찌되었건 자신이 할 일은 하나. 학생회장으로서 해야 할 말은 하는 것이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무튼 급식에 대해서 확실하게 이야기를 한 후, 치아키는 사야카가 보여주는 핸드폰 사진첩을 조용히 바라봤다. 그리고 그는 그 사진을 빤히 바라보다가 사야카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리고 아무런 말 없이 뚱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머리를 괜히 긁적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이런 것을 보여달라고 해도. 정말로 여기서 사람이 사는 것인지도 의문일 정도인데. 생활감이 전혀 안 느껴지잖아. 설마 귀찮아서 이렇게 두는 것은 아니지? 아니. 물론 개인 방을 어떻게 정리하건 그건 개인의 자유이긴 한데."
정말 생각 이상의 귀차니즘 환자. 혹은 다른 가능성의 무언가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치아키는 두 손을 자신의 허리에 올린 후에 가만히 사야카를 바라봤다. 그리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약하게 숨을 내뱉으면서 이야기했다.
"좋아. 정했어! 일단 밥을 제대로 먹는 것부터 하자! 앞으로 급식을 꼬박꼬박 먹을 것! 일단 거기서부터 시작하자. 후배 양. 그렇다보면 언젠가는 귀차니즘도 줄어들고 좀 더 이것저것 할 수 있는 의욕이 생길거야!! 그렇고 말고!"
그렇게 제안을 하며 치아키는 이내 시계를 확인했다. 지금은 점심시간.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종이 치기 전에는 돌아가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상대의 대답 정도는 듣고 싶었는지 그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봤다.
어라, 머쓱해하는 걸까? 귀여운 면이 있네, 불량 군은! 그 말은 속으로만 삼키며 그저 방긋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어쨌든 자신은 낯선 이었지만 불편한 시간은 되지 않았다는 거겠지? 무쿠루마는 그에게 눈 굴려 바라봤다. 우와, 주머니에 손 넣으니까 진짜 불량 군 같다. 사나운 기색은 없지만! 이것도 즐겁게 속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다급한 손길로 블레이저 주머니를 뒤적이다가 핸드폰을 꺼냈다. 쁘띠 고어 틱하게 꾸며진 케이스가 나타났다. 무쿠루마는 장난스럽게 씨익 웃었다.
"아차, 라인 교환하면 보내주지~."
/ 교환했다하고 막레 하셔도 좋고, 막레 주셔도 좋아요 :D ! 이번엔 잊지 않고 라인 교환⋯⋯!
"음... 엄밀히 말하자면 배부른 감각이 좀 이상하다고 해야하나?" 하긴. 어둠은 보통 끝없다나. 채울 수 없다. 같은 단어들과 연관되는 일이 많으니. 인간 모습을 어찌저찌 구현해내곤 있지만 사람 모습의 배부른 감각은 영 어색한 모양이지만... 그걸 인간에게 말하기란 요원한 일이다.
"귀찮아서 정리 안한 것도 있긴 하지만... 정리 하고 있는걸." 먼지 한톨도 없이 싹 정리해서 그런 거라는 말을 합니다. 아. 그러니까 방 청소는 열심히 할 수 있다의 문제인 건가? 그러다가 급식이라는 말이라던가. 꾸준히 하라는 말에 작게 노력은 해보겠다... 라고 중얼거립니다. 그러다가 시계를 확인하는 치아키의 눈빛을 따라가서 같이 시계를 보면.
"....좀 있으면 종 칠 테니까 내려가야할것 같아" 아 일어나기 귀찮은데... 라고 웅얼거리면서도 비척비척 일어나서는 구겨진 옷자락을 정리하려 합니다.
하야토는 곤란했다. 상대는 쉽게 자신을 떠나보낼 것같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먹고 살자고 하는 사람에게 "재미가 없어보이니깐 안 간다고." "호객하냐?" 등의 직설로 괜한 상처를 입힐 수도 없었다. 또 하야토는 정말로 이 카페에 갈 마음이 없었다. 메이드 카페라는 것은 오히려 하야토에게 소화불량을 일으키는 분위기였을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버블티,퐁듀,오므라이스..다 달거나 기름진 음식들. 하야토가 먹기를 꺼려하는 것들이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마시는 하야토에게는 느끼함..그 자체였던 것.
"그게 무슨 상관인데요."
하야토는 본질은 영국인이기에 자신이 들고 있는 복숭아와 모모라는 사람의 연관성을 바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는 귀여운 여자아이들과 이벤트가 있다는 말에 하야토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저 귀여운 사람은 취향이 아니라서.."
이거는 진심이었다. 그래서 하야토는 일본 스타일의 아이돌 혹은 지하아이돌에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귀여움'보다는 '칼군무' '힙함'에 더 중점을 둔 케이팝에 더 관심이 있을 정도. 하여튼 하야토는 일본식의 귀여움 문화를 별로 안 좋아했다. 이런 말을 하기는 그렇지만..오그라든다고..
"아니다, 저 카페는 안 갈 건데..이거 복숭아들 그냥 가지세요. 먹으려고 산 거 아니라서."
카페에 도착해, 행복한 고민을 마치고는 테이블 바에 걸터 앉아 인내와 기다림의 시간을 견뎌내고 있는 참이었다. 라고는 해도 여유 있게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뿐이지만. 새로운 메뉴가 출시된 덕분인지 그저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간이 비는 주말의 날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카페가 붐비는 한낮의 날이었다. 편히 앉을 자리가 충분히 있었더라면 그도 카페의 번영을 함께 축복했을 텐데.
문득 오른손에 느껴지는 진동에 깜짝 놀라 손을 놓아 버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이 짧은 틈에 제법 많은 거리를 이동한 진동벨이 타인의 발치에서 앵앵 울고 있었다. 요망한 것. 피식 웃으며 저 발발거리는 것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한 번 깜짝 깜짝 놀래는 것이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다.
“죄송합니다아“
급하게 걸어가기도 전에 한가한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니. 민망함에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리며 몸을 숙여 주우다 그제야 상대를 슬쩍 바라보았다.
# 같은 학년이니 적당히 아는 얼굴이어도 좋고 아니어도 좋고:3 그리고 꼭 진동벨에 발 맞은 사람으로 등장하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영 미덥지 못한 눈빛을 보이면서 치아키는 가만히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하지만 이 이상은 사생활이니 이 이상 침범하진 않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며 치아키는 굳이 더 그 관련으로 말을 하진 않았다. 아무튼 급식을 꾸준히 먹는 노력이라도 하겠다는 말에 치아키는 겨우 뿌듯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이렇게 또 한 학생을 도울 수 있었다는 혼자만의 기쁨이자 뿌듯함이었다. 이렇게 하나하나 시작하면서 열의를 되찾아가면 이 시간이 무익하진 않으리라고 생각하며 치아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어나기 귀찮아도 수업은 잘 들어야 해! 수업은 기본 중의 기본이야! 물론 졸릴 수도 있고 피곤할 수도 있고 졸 수도 있지만 말이야."
사실은 나도 살짝 졸 때 있거든.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치아키는 정말로 가볍게 키득거렸다. 아무튼 내려가봐야 한다는 그 말에는 동의를 하며 치아키는 쭈욱 기지개를 켠 후에 자신도 내려가보려는 듯 출구 쪽을 바라보다 사야카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다음에 만날 땐 얼마나 달라져있는지 보겠어! 후배 양! 사야카..라고 하면 되나? 그 한자?"
성은 뭐야? 그렇게 물어보면서 대답을 들으면 치아키는 다음에 또 보자는 말을 하며 나가려고 했을 것이다. 아니면 그녀가 먼저 나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나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기억하고 있는 대로 되돌려놓았으니까." 뿌듯할 게 아니야. 옅은 표정이 뿌듯함이라는 게 느껴질 것 같아...
"수업시간엔 안 자는데.." 정말 의외인 사실이겠지만 수업시간엔 안 잡니다(?)
"키리나즈메." 사야카는 히라가나로 적혀 있을 테니. 성의 한자를 물어보는 것으로 생각한 사야카는 키리나즈메. 라고 합니다. 아테지가 있어서 처음보면 읽기 힘드니까. 그러고는 자신도 이름을 알아야겠다는 듯 보고는 읽어보지만... 음. 잘 읽었으려나? 어찌되었건 다음에 만날 때에는 아이자와 학생회장님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어나서는 적당히 내려가려 합니다. 벤치 좋았는데... 싶은 눈으로 한두번 뒤돌아봤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