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쨩-♪ 아, 나 이름 말했어? 안 말했지? 나는 코리야마 유즈루, 마음대로 불러도 돼, 마음대로. 유즈도 좋고 윳쨩은 환영이에여."
사치로 불러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대뜸 삿쨩이라고 부르며, 한 문턱을 넘자마자 무서운 기세로 거리를 좁힌다. 자칭 윳쨩은 그렇게 말하고 잠시 허리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다가 다시 작은 소녀 쪽을 내려다봤다.
"그나저나 삿쨩은 이런 신사 자주 오나봐? 소원 비는 거 부끄러워서 일부러 덜 유명한 데로 왔는데. 보통은 큰 쪽이 영험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특이하기도 하구."
주머니 안 손에서 안 보이게 500엔 동전 여럿을 잘그락 잘그락, 만지다, 에라이, 됐다. 하며 괜히 저지 지퍼나 올리고 만다. 베르단디에게는 운 좋은 날이고 유즈루에게는 운 나쁜 날이었다. 유즈루는 소원비는 걸 들키고 싶진 않았으니까. 그래서 사람 없을 시간, 덜 유명한 곳으로 온 건데.
다행이에요! 알레르기가 없다고 하니까, 제일 예쁜 빨강색 포장지의 사탕을 고르면 돼요. 딸기일지 체리일지 모르겠지만요. 그리고 미안하다는 메모에 이름을 남기는게 맞는 건지 아닌지 헷갈려요. 제가 누구인지 알아야 사과를 받을 수 있는데, 제가 누구인지 알아서 사과를 받을 마음조차 생기지 않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와타누키 씨는 상냥하니까 괜찮을 거라고, 멋대로 생각해서 상냥함에 기대려고 하면 안 됩니다.
“... 유치원생이에요?”
순수한 감상이었습니다. 제가 선생님이고 와타누키 씨는 유치원생인 걸까요? 이제 뭐 하느냐고 물어보니 교실을 쓸다말고 멈춰섰습니다. 열심히 쓸었으니 대걸레질만 하면 되긴 하는데, 와타누키 씨가 도와줄 생각인 걸까요? 와타누키 쓰는 상냥하지 않아요. 상냥하고 친절합니다.
기대로 일렁이는 눈이 기쁨으로 들어찬다. '먀', '선배'-! 라니, 자신이 별명을 지어주니 저도 지어버리는 모습이 아주 귀엽다. 요정 같은 생김새를 한 후배 양이 화끈하게 같이 별명을 질러버린다. "호오오⋯⋯!" 하는 소리와 함께 입을 세모 꼴로 모아 감탄한다.
"좋아⋯! 후지링!"
뇌에 새기듯 혀 위로 앞에 있는 후배 양의 이름을 굴려본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탕처럼 처음의 새콤함이 느껴진다.
"역시 경력직이구나, 후지링. 쥬니히토에? 그거 엄청 무겁고 입기 힘들어 보이던데! 앗, 멋진 걸. 등 뒤를 돌아보는 선이 굉장이 예쁘고 멋있어! 쥬니히토에 입은 거, 보고 싶어졌는데. 사진 있어?"
청산유수로 칭찬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장갑 낀 손이 맞닿아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질 새도 없이 블레이저의 주머니를 뒤적여 핸드폰을 꺼낸다. 케이스부터 분홍색과 붉은색 조합인 것이 깜찍하고 호러틱하게 장식되어 있다. 화면을 응시하느라 숙인 고개 사이로 양쪽으로 묶은 탁한 머리칼이 재킷 위로 사르륵 흘러내린다. 한쪽 장갑을 빼내더니 주머니에 집어넣고 익숙한 듯 빠르게 토도독, 하고 화면을 켜 라인을 들어가자 91이라는 어마한 수가 뜬다. 친구 추가가 된 수였다. 무쿠루마는 분홍빛 핸드폰을 그녀에게 내민다.
"이참에 라인 교환하지 않을래, 후지링?"
흥미로운 사람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인연의 실이 있다면 제 실은 잔뜩 얽혀 부풀어있겠지. 무쿠루마는 그렇게 세계를 넓혀가고 그 안에서 안정감을 찾았다. 그녀에게 내민 것은 또 하나의 실, 무쿠루마의 눈이 그녀가 맞잡고 엮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비롯된 소망으로 가득 찬다.
"후지링 풍류를 즐기다 지각했는 걸~."
결국 내뱉었다, 그 단어! 지각! 무쿠루마는 광기에 가까운 기대감으로 충만해졌다가 진정하고는 다시 제자리로 착 두 발을 붙인다. 어쩐지 미심쩍하게 묻는 듯하는 그 말에 눈을 좌우로 굴리다 뒷머리를 한손으로 쓰다듬는다.
"그게~ 하려다가 선생한테 몇번이나 걸렸지 뭐야. 그래서 배로 청소했어! 그치만 이번에는 될 거, 얼⋯⋯."
이렇게 가다간 더 늦어! 하고 뒷말을 덧붙인 후 그녀를 이끈다. 빨리 오라는 듯 손을 살랑살랑 흔들 뿐이었으니 가지 않고자 한다면 충분히 가지 않을 수 있었다.
봄바람이 불었다. 봄바람 치고는 퍽 쌀쌀하고 변덕 지니 미풍이라 하기 어려웠던지라, 가면을 온통 뒤덮은 종이 장식이요, 고헤이요, 새끼줄이요, 방울이 요란하게 휘날렸다. 그 소리를 듣고 아래에서 다소곳이 서있던 청년이 고개를 쭉 빼올렸다. 신사의 토리이 위, 가리기누와 허벅지 반을 덮는 사시누키 차림의 조그마한 아이가 허공을 말가니 쳐다보고 있다. 청년이 모시는 신, 운조악요대조주다.
"오오토리 님." "……."
오늘도 별 헤아리기에 푹 빠졌는지 들은 척도 않는다. 대조大鳥는 한번 푹 빠지면 주변에서 큰 사건이 터져도 모를 존재라 가만히 서서 호법하기로 했다. 저번에는 그나마 정신이 덜 팔렸는지 저건 콘페이토 자리고, 저건 깃털 자리라 가르침을 받는 은혜를 입었으나 오늘은 그런 기회가 없어 제법 아쉽던 터다. 곁을 지키며 생각하기를 아버지는 어떻게 이런 분을 존경하며 따랐던 걸까 싶다. 청년 또한 어릴 적부터 보았기에 깊이 존경하지만 아버지만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모시는 신이 지구가 평평하다 해도 당연히 지구는 평평하다고 믿을 사람이었다. 어떻게 그리도 맹종할 수 있느냐 여쭌 적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시간이 지나면 너도 알게 될 것이라 하였다.
그리고 깨달을 시간이 채 지나기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교통사고였다. 손쓸 새도 없이 그 자리에서 돌아가셨단 소식을 듣고 장례 기간동안 하루도 눈물을 그치지 못했지만, 신은 하루도 울지 않았다.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장례식이 끝났을 적에만 순진무구하게 한 문장만 뱉었을 뿐이다.
─ 이제 네가 대물림 하네요?
기실 장례식 동안 원망을 많이 하였다. 동생인데, 그래도 가족인데 어떻게 눈물 하나도 흘리지 못하는 걸까 생각했었다. 다만 순진무구한 문장은 그간 인세의 유희를 돕기 위해 동생으로 입적하였고, 인간과 다를 바 없이 성장했기에 동생이라 여겼던 순간은 이제 끝이라는 듯하여 그는 정신을 차릴 수밖에 없었다. 이제 유메미시 쇼이치로는 없으니 스스로 해내지 않으면 몰락하는 것이다.
정신을 차린 것은 좋았으나 정작 다른 부분으로 원망이 샘솟았다. 아버지께 조금이나마 더 운수가 있었더라면 살아남지 않으셨을까, 어째서 아버지에게 그런 불운을 주셨을까 하는 마음이다. 참으로 불경한 일이라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을 갈무리하고자 했다.
"이로하, 이로하." "네, 오오토리 님."
그는 고개를 깊게 숙이며 읍한다. 작달만한 신은 목덜미를 기점으로 긴 꽁지깃 두 개가 뻗었는데, 바람이 불자 요란한 장식들과 함께 자연스레 휘날리고 있었다. 조그마한 입이 벌어지는 것이 한참 먼 위임에도, 하물며 뒷모습만 봤는데도 꼭 정면에서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인생은 덧없어요?" "그렇습니까." "쇼이치로의 일은 내가 베풀 수 있는 최고의 행운이었어요, 어차피 손을 썼더라도 몸만 멀쩡하지, 다시는 눈을 못 떴어요?" "……." 하지만 원망하고 살아도 돼요? 이번에도 지키지 못했어요?" "어찌 제가 오오토리 님을 원망하겠습니까." "이로하, 이로하." "예." "향기로운 꽃도 언젠가는 져 버리는데, 우리가 사는 이 세상 누군들 영원할 리가 없어요?*"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이로하라는 이름도 기실 이 신이 지어주었노라 하였다. 이제야 이 이름이 왜 붙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이로하는 고개를 더 깊게 숙이며 눈을 감았다.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조그마한 인영은 어느새 토리이에서 내려와 깊이 고개를 숙인 청년에게 손을 뻗었다.
"착해 착해-"
인간이 어찌 신의 의중을 알까. 헛된꿈 꾸지 않는 것이 주어진 역할일진대. *) 이로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