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서 또 처음 들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도 뒤에서..느낌이 안 좋다. 느낌이 쎄해. 무언가 엄청난 짬이 나에게 뒤집어씌일 것 같은 안 좋은 느낌...내용을 들어보니깐 본인이 토끼장 문을 활짝 열었다는 얘기..본인 탓이라는 거잖아.
"그러면 어서 이 녀석부터 토끼장에 넣고 나머지 녀석 찾으세요. 그런데 이제 시간도 얼마 안 남아서.."
이거는 그나마 부드럽게 말한 것이다. 일을 일으킨 건 당신이고 나는 시간이 없으니깐 알아서 해결하라는 뜻.
"아니..나 시간 없다고요! 뭔 동심동덕이고 인간의 도리야?! 진짜 선배란 놈들 중에서 정상을 못 봤어!"
이 선배란 분도 또 알 수 없는 얘기를 한다. 가미즈나 고등학교의 3학년들은 다 하나 같이 정신이 나간 사람들인 건가...? 아니야..아직 치아키 선배..학생회장 선배는 정상일 거야.. 아..그걸 떠나서 반장도 괜히 했다. 반장이면 아무래도 이런(?) 선배들과 접촉이 상대적으로 많을 거잖아.
이런, 에리카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돌파해야 하는 건지는 아직 모르는 나이, 문득 떠올린 것은 어제 저녁에 있던 일이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베를 짜다가 얼이 빠져서 오랜만에 손이 살짝 베었고 어째야 할지 몰라 오도카니 서서 보고 있자니 할머니가 들어와 호들갑을 떨던… 그때가 되어서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아서 호들갑을 떨었던가. 그렇게 자신에 대해 방심해서 일이 터지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으니까. 여기서는 어디까지 아는지를 알아내야하는데…
“아, 그거면 이해했슴다. 요컨대 제 팬인검까?”
아니 아무래도 좋지!!! 에리카는 순식간에 기분이 좋아져서는 얼핏 심각한 것처럼 하던 말투도 버려저린 채로 만면에 미소를 띄웠다. 봄눈 양 이라니 2대째나 아가씨, 어르신으로도 불린 적이 있지만 이렇게 눈이라고 불린 건 처음이라 어쩐지 즐거워진 것이다.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지금까지 타인에게 이래저래 보호받으며 자라온 에리카에게는 몇가지 결정적으로 부족한 것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겸손이었다. 칭찬 받으면 받는 대로 그래! 나는 대단하다! 그렇게 받아들여버렸으니.
“그런검까… 저랑 같은 계획이었다고… 하지만 저는 이제 됐슴다!!! 솔직히 감상이 없으면 못 만들 정도로 소재가 부족한 나이는 아니니 말임다!!! 후지와라 에리카임다! 가족들은 에리라던가 아가씨라고 부르고 있슴다!”
그런데 예술적 감상이라니 어쩐지 좀 저랑 비슷한 과인 것 같슴다. 에리카는 그렇게 생각했다. 본 적은 없지만 그림을 그리는 화공이나 아니면 악사이기라도 한 것인가보다 하고 판단을 마친 에리카는 이리 저리 돌아다니며 모델처럼 포즈를 짓고는 어떻냐는 듯 웃으며 무쿠루마를 바라볼 뿐이었다.
“에? 오늘 눈이 오지 않았슴까. 그러면 차라도 한잔 하면서 구경하고 싶어지지 않슴까? 그래서 늦었슴다!!! 아, 그래도 들어가는 방법은 듣고싶슴다!”
다소 작위적인 목소리로 놈이 휘청거리다 풀썩 쓰러진다. 최악인 점은, 이 녀석... 상당히 병약하게 생긴 탓에 그럴듯해 보인다는 것이다. 쓸데없이 열연이다. 설상가상으로 놈의 앞에 서있을 불쌍한 희생양, 죄없을 선인, 한 것이라고는 지나가던 토끼를 걱정한 것 뿐인 상냥한 소년인 하야테의 인상은...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어떤 눈으로 비춰질지 굳이 필설로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 믿겠다.
흰 머리카락이 더러운 바닥에 닿아 먼지가 묻건 안 묻건 신경쓰지 않고, 놈이 당신의 발목을 붙잡는다.
"소년. 진심인가요? 이 늙고 병든 나를 토끼 몰이꾼으로 쓸 생각이라면 몹시 실망입니다. 작금의 젊은이들이 이토록 무정한 줄 몰랐는데. 이 흉금에 커다란 흉터가 생길 것만 같아요."
투명하고 큰 눈이 미동없이 당신을 응시한다. 술술 나오는 가스라이팅만큼이나 부담되는 시선이 아닐 수 없다. 청산유수, 나긋한 음성과 어울리는 천진한 미소로 놈이 종지부를 찍는다.
"학생, 정없게 그러는 거 아니야."
...늙은이의 꼬장이 수준급이다. 학교에서 편의점 알바생의 노고를 몸소 체험시켜주는 게 놈이다.
"미래로 갈 수 있다면 미래의 너를 만나고 싶어?" 사야카 : 오랜 세월동안 사람과 접해서 사람을 본뜨고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며 스스로를 길들였기에 지금의 나는 그럭저럭 온순함을 함양하고 있어. 그러나 나는 항상 연속적이기에 미래와 만나도, 만나지 않아도 달라질 건 없을 거야.
>>632 입꼬리 올리기..와. 귀여운 것을 아는군요! 그게 또 엄청 귀여운데!! 역시 잘 알아요! 우리 어둠의 신 님!! 음. 그리고 미래에도 달라질 것이 없다니. 아주 멀고 먼 미래가 되면 조금 더 달라질 가능성은 있지 않을까요? 그래도 신인데! 어둠이 아니라 신인데!
당황으로 눈이 빠르게 깜빡여진다. 올라간 입꼬리를 따라 당겨진 입술점 부근에서 식은땀이 삐질, 하고 흐르는 기분이었다. 멍하니 있는 사이 살며시 벌려진 입술 사이로 하얀 김이 후욱 빠져나오자 곧바로 입을 다물고 자연스럽게 웃음을 유지한다. 구태여 태클을 걸 이유도 없었고, 왠지 재밌으니까. 오늘부터 봄눈 양의 팬이 되었다 하지 뭐. 무쿠루마는 그렇게 생각하며 어깨를 으쓱인다.
”으응, 뭐, 팬⋯ 비슷한 거려나.“
어쩐지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다고 자랑하는 아이를 보는 것 같아 귀엽기도 했고 말이다. 외양으로 보자면 무쿠루마가 남을 애 취급 하는 것이 그다지 어울리진 않았지만, 게다가 실제 나이 차이로 보면 신인 그녀 쪽이 더 많겠지만 아무튼. 무쿠루마 입장에서는 귀여운 후배 봄눈 양이었다.
“봄눈 양 아가씨였구나. 이름을 받았으니 후지링이라고 불러버려도 되려나!”
아가씨라고 보편적인 아가씨 말투를 구사하는 건 아니구나~. 태평하게 그리 생각하며 초면에 툭하니 별명을 부여해 입 밖으로 내뱉는다. 그래놓고 얼굴은 평이하다못해 까만 콩같은 눈을 기대한다는 듯이 반짝이고 있었으니. 상대에 따라 못내 부담스러울지도 모르겠다.
무쿠루마는 양손 모두 주먹을 쥐고 ‘와아-!’하고 감탄사를 내뱉는다.
“역시 의복을 만드는 부활동을 해서 그런지 모델 같아!”
누가 보면 운동장에서 대뜸 포즈를 짓는 이를 보고 웃을 지도 모르지만 무쿠루마는 그저 감탄한다. 진심이 담긴 감탄보다는 귀여운 후배에게 ‘잘한다, 잘한다’하는 느낌이었다.
“우왓, 느긋하네에~.”
그렇게 말한 직후 무쿠루마는 어깨에 맨 가방을 꺼내 앞으로 안아 든다. 한 손으로는 교실 창문을 척 가리킨다.
“몰래 창문을 열어서 가방을 밀어놓고 화장실 갔다온 척 들어가는 거야! 나는 3층이라 무리지만 2층은 가능할 것 같지 않아?”
일단 이건 내가 때린 게 아니다. 그냥 본인이 현기증으로 쓰러진 것 뿐이야..는 개뿔 나한테 짬 때리려고 뺑끼 부리고 있는 거잖아. 병약하게 생겨도 앞의 상황을 봐라. 누가 봐도 뺑끼 쓰는 거지. 이 정신 나간 선배놈아..어서 일어나라.. 저번에 치요인지 치킨마요인지 하는 선배한테도 기가 빨렸는데. 여기서도 기가 빨리게 생겼구나.
"뭐 해요...!! 이거 안 놔?!"
다리를 당겨서 붙잡고 있던 오구치의 손을 떼버렸다.
"늙긴 무슨 겨우 한 살 차이잖아요. 거 상처가 생기면 병원 가세요. 병원 가면 낫잖아."
이거..이거 또 쉽지 않은 상대다..진짜 매소드 연기 하나는 수준급이네. 내가 이런 사람을 떠올려서라도 서비스직으로는 취업 절대 안 한다.
>>639 후투로가 뭘까요, 후루토랍니다. 감히 이름을 틀려버린 무엄을 용서해주시어요 후루토님........"ㅁ")))...!! 메이드복 아주 좋아요...... 그렇다는 것은 문화제 때 후루토의 메이드복 차림을 볼 수 있다는 걸까요...? 어쩌면 메이드카페ver 후루토님...?(행복회로 풀가동!)
>>637 보는 앞에서 꽁냥대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귀여워 에리카의 재치 있는 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