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천천히 턱을 쓰다듬으면서 잠시간 진지한 표정을 지어보인다. 확실히 자신이 그녀에게 장난을 많이 치긴 했다만, 그렇다고 농담을 크게 한 적은 없던것 같다고 떠올리며 아쉬운 마음을 뒤로 넘긴다. 그렇긴 하더라도 확실히 그녀가 좀 믿지 못할 이야기는 맞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자, 알게 된지 얼마 안된 상대에게, 그것도 아예 다른 종족이 자기 보고 잘생겼다, 혹은 이쁘다고 한다면 누가 믿겠는가? 당장 블랑 본인이더라도 조금은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녀의 반응도 확실히 당연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그것을 떠나서 자신은 레아 본인이 마음에 든 것도 사실이다. 이성적인 면 보다는 본인의 내면이 확실히 무언가 이끄는 힘이 있다고 해야할까? 그녀 본인은 딱히 신경쓰지 않겠지만, 어쩌면 정령들이 그녀를 따르는 것도, 혹은 많은 이들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그녀의 내면이 무언가를 끌어당기는 것이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자신이 그녀를 이렇게 붙잡게 된 것도 행운일 수도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의 질문에 답해주는 그였다.
"일단 난 다른 용들에게 해본적이 없다네. 그대들 말로는 외톨이, 아웃사이더 등으로 일컫을 수 있겠지. 물론 자네가 하는 말이 일리도 있다네. 다른 종족이 그 종족의 눈으로 바라보고 이야기 하는 셈이니까, 말이지. 허나 말이야."
그가 살짝 자세를 틀어 그녀에게 상체를 들이민다. 적황색의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한 눈동자가 그녀를 응시한다. 그 두 눈에는 여지껏 보여줬던 장난기같은 것 없이, 그녀를 정확히 담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것은 과연 그녀 본인 뿐만인걸까? 아니면 그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직시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그렇게 생각할 겨를 없이 재차 말을 이어 나갔다.
"자네를 보고 있으면 미의 기준이 달라진다고 해야할까? 그대가 아름다운 것은 겉모습만이 아니야. 그 안에 깃든 내면, 그 마음이 중요한 것일세. 외모가 이쁜게 전부가 아니라는 거지. 저번의 그녀처럼 외모가 이쁘다고, 그 내면에 깃든 무언가는 지울수 없는게 사실일세."
그가 천천히 손을 뻗어서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는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상냥함이 담긴 손길이었다. 그렇게 머리가 헝클어지지 않게 조심스레 쓰다듬으면서 그가 부드럽게 미소를 머금는다. 뭐라고 해야할까? 조금은 곱슬거리는 느낌과 더불어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감촉이라 하는게 걸맞지 않을까?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편안한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어갔다.
"자신감을 가지게나. 그대는 그대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잘 하고 있고, 또 잘 해낼 것이야. 내가 장담해주겠네. 내가 말한 것, 잊지 않았겠지?"
그러나 그 순간, 장난기가 동한 것일까. 그의 눈가로 장난꾸러기 같은 눈빛이 스쳐지나가지만, 이내 오늘만큼은 그만 두자는 듯 머리에서 손을 떼내고는 다시 남은 차를 모두 들이키는 그였다.
레아의 진지병은 아무래도 불치병에 가까운 듯합니다😅 그럴 거 같아서 시트에도 넣은 거입니다만..😓 너무 진지하기만 하면 재미없다고 하신지라 좀 찔리는군요🙄 놀자고 하는 건데😑
세상을 따돌립니까😮?! 근데 대빵님 같은 친구(?)도 있고 또 용들이 원래 다른 용들이랑 안 어울리는 독고다이 타입이라고도 하셔서 헷갈리지 말입니다🤔 오로치는 ㅋ 퍼드에서 본 일러 말고는 아는 정보가 0에 가깝습니다만😅 옛날에 사람들이 8이라는 숫자에 의미 부여를 많이 한 것 같기는 하군요🙂
앗....!! 그런 의미는 아니에요!! 너무 긴장되어보이고 불편해 하는거 같으니 편하게, 긴장 풀고 있으라는 뜻이었어요!@
아앗.... 드립입니다 설마 진짜 그럴까욬ㅋㅋㅋㅋㅋ 그리고 저번에 블랑이 했던 말은 불교관에서 감각에 대해 말하는거에요, 직감을 넘어선 무의식(즉 말나식), 그리고 그 저편에 있는 아뢰야식도 따지자면 제 8감각이니까요. 여담으로 건볼트의 세븐스는 저 말나식이 모티브로 알고 있습니다!
빈말이라, 그런 생각은 없었다. 그보다는 다른 종의 미적 요소에 대한 평가가 대등한 교류 상대로 여기면서 이루어지는 것인지가 의문이었다. 인간은 (적어도 인간이 사회를 구축한 영역에서는) 다른 동물 종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기에 여타 동물이 인간보다 하등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용과 인간을 견주면 (굳이 비교하는 게 우스울 정도로) 인간이 신체 능력은 물론 신체 상태에 좌우되는 의지력도, 마력도, 지성도 부족하다. 그런 이상 용은 인간을 하등 동물로 여길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인간을 다른 동물과 다르게 볼 수 있는 점을 굳이 꼽자면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일 텐데, 그조차도 용의 언어는 인간이 모르고, 용이 인간의 언어로 의사소통을 해 주는 수준이다. 그렇다면? 용이 인간의 미를 거론하는 게 인간이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동물을 보고 예쁘다, 귀엽다 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을까? 물론 안다. 그는 나를 대등한 지성체로 대해 주고 있다는 거. 아니었다면 내가 지금처럼 지내고 있지도 못하지.(어떻게 해도 그가 원하는 대로만 되는 내기를 걸기도 했지만) 하지만 난 인간이라 용과 인간의 명백한 격차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그래서 생김새 얘기가 나오면 귀애받는 동물이 된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어 버린다. 하지만 이런 심정을 어떻게 해야 조리 있게 전달할 수 있을까?
이리저리 궁리하는 중에 그의 답변이 이어졌다. 정말로 동족과는 교류가 적은 모양이구나. 그때, 그가 앉은 자리에서 훅 거리를 좁혔다. 일순 움찔했다가 속눈썹이 짙게 드리워 뚜렷한 눈매로 시선이 이끌렸다. 맑은 날의 노을 같은 선연한 적황색 눈동자가 마치 잔잔한 수면처럼 레아를 비추고 있었다. 이전까지의 따스하지만 조금은 장난스럽던 분위기와는 달리 예리하면서도 뭔가를 찾아내려는 집요함마저 엿보이는 눈빛이었다.
속이 파헤쳐지는 듯한 기분에 압도되어 눈을 질끈 감는데, 뜻밖의 말이 귓전을 울렸다. 미의 기준이 달라진다고? 어리둥절한 나머지 도로 눈을 떴다. (여전히 그의 눈동자에는 레아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고, 레아가 무심결에 제 머리칼을 묶듯이 움키자 그와 똑같이 움직였다.) 내면이라니, 그는 분명 독심술은 안 쓴다고 했는데. 내 마음이 어떨지 어떻게 알고? 그 순간, 일상적인 경험에서 쌓여 왔지만 머릿속에 묻혀 있던 정보가 생생해졌다. 평소 친근하거나 긍정적으로 여기는 상대는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를 떠나 인상이 좋아 보인다. 다른 집 아기가 아무리 오밀조밀 예쁘게 생겨도 내 조카가 제일 귀엽고, 초면엔 뚱하거나 매서운 분위기다 싶었던 사람도 친해지고 나면 한결 훈훈하고 밝아 보인다. 흑룡이 마음이라고 가리킨 것도 그런 게 아닐까? 그러니까, 친근감이 든다는 의미! 그렇게 생각하니 그가 생도 행세를 하는 용의 외모에 박한 것도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사이가 정말 나쁘구나.
그렇게 실마리를 찾자, 앞서 떠올렸던 의문을 되짚을 힘이 생겼다. 상대를 진심으로 대하는지 동물처럼 대하는지를 어떻게 분별하는가? 분별 불가능하다. 상대를 대하는 방식을 가르는 기준은 종이 아니라, 자신이 감정 이입 하고 애착을 가졌는지 여부니까. (영지민에게는 무심하면서도 귀애하는 동물에게는 안달복달한다는 귀족들의 소문이 심심찮게 들려오는 것도 그래서겠지.) 인간은 감정 이입을 하면, 그 존재가 인간이든, 이종족이든, 동식물이든(심지어 무생물이나 픽션 속 캐릭터라도!) 자신에게 근접한 존재로 의인화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러면서도 이성적으로는 감정 이입한 존재의 한계 역시 인식할 것이나, 그 존재가 자신이 어려워했던 문제에 대한 조언이나 답을 해 줄 수 있거나 토론 같은 지적인 활동도 할 수 있다는 게 드러난다면? 대등한 지성체로 대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용도 비슷하지 않을까? 인간의 지성이 용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일지라도, 그래도 용의 언어로 다양한 지적 활동을 해 보인다면, 인간을 다시 보게 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그런 결론에 이를 즈음, 레아의 정수리에 온기 어린 손길이 부드럽게 덮였다. 흑룡은 어느새 부드럽고 편안해 보이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 모습과 머리를 어루만지는 감촉이 어우러지니, 다시금 할머니와 부모님과 라민 선생님이 떠올랐다. (라민 선생님이 머리를 쓰다듬으신 적은 없지만) 수습 기간 끝나면 본가 한번 다녀올까? 딴 생각에 쏠릴 찰나, 그가 바위 절벽에서 해 주었던 격려를 상기해 주었다. 실낱같은 가능성이라도 붙잡을 줄 안다라, 정말 그럴지 한번 해 보자. 레아는 (손을 거두고 마저 차를 마시는) 그를 바라보며 머릿속을 정리했다. 그런 뒤 이제는 미지근하게 식은 차를 단숨에 들이켰다.
"용과 인간의 능력 격차를 생각하면, 저는 용에게 인간이 여느 동물과 다름없이 보이리라는 생각을 떨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탓에 블랑님이 저를 전적으로 존중해 주신다는 걸 알고, 블랑님의 아름답다는 표현이 저를 친근한 존재로 여기신다는 의미라고 짐작하면서도, 블랑님께 외모 얘기를 들을 때는 마치 동물처럼 귀애받는 듯한 착각이 들어 버립니다. 이 점 헤아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대로 표현된 걸까? 찻잔을 움킨 손이 떨렸다. 아직 더 중요한 얘기가 남았다. 레아는 심호흡을 하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용족의 언어가 음성 언어인지, 아니면 정신 파장을 맞춰야만 구사할 수 있는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만약 전자라면 인간을 비롯한 다른 종족이 배울 수 있도록 발음과 억양과 음절의 장단을 기록해 두면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380 380에 넣으려다 깜박한 부분이 있어서 한 문단 수정하겠습니다😢! (연달아 이러네요 덤벙거려서 큰일입니다😓) 해당 문단은 바뀐 내용으로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_ _)!!
속이 파헤쳐지는 듯한 기분에 압도되어 눈을 질끈 감는데, 뜻밖의 말이 귓전을 울렸다. 미의 기준이 달라진다고? 어리둥절한 나머지 도로 눈을 떴다. (여전히 그의 눈동자에는 레아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고, 레아가 무심결에 제 머리칼을 묶듯이 움키자 그와 똑같이 움직였다.) 내면이라니, 그는 분명 독심술은 안 쓴다고 했는데. 내 마음이 어떨지 어떻게 알고? 그 순간, 일상적인 경험에서 쌓여 왔지만 머릿속에 묻혀 있던 정보가 생생해졌다. 평소 친근하거나 긍정적으로 여기는 상대는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를 떠나 인상이 좋아 보인다. 다른 집 아기가 아무리 오밀조밀 예쁘게 생겨도 내 조카가 제일 귀엽고, 초면엔 뚱하거나 매서운 분위기다 싶었던 사람도 친해지고 나면 한결 훈훈하고 밝아 보인다. 흑룡이 마음이라고 가리킨 것도 그런 게 아닐까? 그러니까, 친근감이 든다는 의미! 그렇게 생각하니 그가 생도 행세를 하는 용의 외모에 박한 것도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사이가 정말 나쁘구나.
→ 속이 파헤쳐지는 듯한 기분에 압도되어 눈을 질끈 감는데, 뜻밖의 말이 귓전을 울렸다. 미의 기준이 달라진다고? 어리둥절한 나머지 도로 눈을 떴다. (여전히 그의 눈동자에는 레아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고, 레아가 무심결에 제 머리칼을 묶듯이 움키자 그와 똑같이 움직였다.) 내면이라니, 그는 분명 독심술은 안 쓴다고 했는데. 내 마음이 어떨지 어떻게 알고? 그 순간, 일상적인 경험에서 쌓여 왔지만 머릿속에 묻혀 있던 정보가 생생해졌다. 평소 친근하거나 긍정적으로 여기는 상대는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를 떠나 인상이 좋아 보인다. 다른 집 아기가 아무리 오밀조밀 예쁘게 생겨도 내 조카가 제일 귀엽고, 초면엔 뚱하거나 매서운 분위기다 싶었던 사람도 친해지고 나면 한결 훈훈하고 밝아 보인다. 흑룡이 마음이라고 가리킨 것도 그런 게 아닐까? 그러니까, 친근감이 든다는 의미! 하기야 대하기 편하고 친해지기 수월한 타입이라는 얘기는 학창 시절에도 더러 들었다. 그 덕에 붙임성이 썩 좋은 편은 아닌데도 대인관계가 그럭저럭 무던했고. (용에게도 그렇게 보일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지만.)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그가 생도 행세를 하는 용의 외모(굳이 그 용의 외모를 언급한 건 본체도 미형 용이어서일 듯하다. 인간으로 변신할 때는 원하는 모습으로 꾸밀 수 있을 테니)에 박한 것도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사이가 정말 나쁘구나.
레아의 말은 정석에 가까운 것이었다. 당연히 자신이 존중을 담아서 행동했다고는 하지만, 상대방과 자신의 종족은 다른 시점에서 시야가 완전히 똑같을 수는 없었다. 그것을 부정할 생각도 없고 그걸 인정하는 것, 거기서부터 모든 대화가 시작되어진다는 걸 생각하면 그녀의 말이야 말로 정답이 아닐까? 의외의 곳에서 다가서는 안목이었다. 말의 의미가 같더라도 주체가 다르다면 당연히 그 의미는 왜곡되어 질 수 밖에 없다. 물론 블랑이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본인이 보기에도 그 금룡보다는 지금 레아가 내고 있는 광채는 아름다움,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기에 본인은 그것을 손에 넣으려고 꽤 얄팍한 계략까지 꾸몄었으니까. 그렇기에 그녀의 마음을 아예 이해하지는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보다 훨씬 더 고등의 존재가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들이 애완동물을 아끼는 개념일 수도 있었으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 생각이다. 그렇기에 크게 괘념치 않는 것도 사실이니까. 하지만 만약에, 정말 만약에, 그녀가 아주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마저 사실이라면?
"네 말은 지극히 당연하단다. 그리고 그리 생각하는 것은 어찌보면 납득이 갈만큼 확실한 이야기지. 허나,"
그의 시선이 천천히 레아를 향한다. 그것은 강욕, 강렬한 소유욕이었다. 어느 구전이건 설화건 용은 항상 강욕의 화신으로 나온다. 레어를 가득 채울만큼의 금은보화는 물론이요, 한 나라의 공주를 납치한 설화도 있었다. 어떤 이야기는 확실히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그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전부 용을 욕망에 찬 무언가로 묘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다고 해서 내 의견을 굽히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드는군. 오히려 그대를 더 옆에 두고 싶다는 생각뿐이야. 어쩌면 무례한 이야기일수도 있겠지만, 만에하나 그것이 친근하다는 의미나, 그대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동물의 귀여움이나 사랑스러움이 아니라면 어쩔텐가?"
여인의 손이 가느다랗게 떨린다. 아마 저 말들을 하기 위해 그만큼 용기를 내었다는 것이겠지. 그마저도 대단하고 존경스럽구나, 누군가 그랬지, 인간의 찬가는 용기의 찬가, 인간의 훌륭함은 용기의 훌륭함이라고. 그렇기에 그대가 가진 지혜와 용기의 빛은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답고 찬란한것이라 할수 있지 않을까. 뒤 이어지는 말에 그는 결국 자신의 추악한 일면이라 할 수 있는 강욕을 거두고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쉽지 않을 것이야. 용들은 따로 육성으로 대화를 하지 않으니까. 그저 의지를 담아서, 그대에게 해보인 것 처럼 전음으로 의사를 주고 담을 뿐이니까. 용들에게 있어 말은 꽤나 큰 힘을 가지니까 말일세. 무엇보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보니.... 그대들 처럼 언어가 발달하지 못한 걸 수도 있겠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니까 말일세."
1. 굳이 설명하자면, 예 그렇습니다! 여섯가지 감각에서 저장된 감각들이 서브드라이버에 일시 보관되고 또 뽑혀진 데이터를 계속 발생시키는 분기점 역할을 하는데 이 서브드라이버이자 분기점이 말나식이 되는 셈이죠!
2. 레아가는 귀여우면서 이쁘고 사랑스럽기가 일품이니 이를 과학적으로도 증명할 수 있다!!(????)
3. ? 역으로 엄청난 발견을 할 수 있을텐데.... 살짝 귀뜸을 하자면 용의 언어가 없을 뿐이지 의사소통은 가능하단거잖아요? 통신을 예를 들어 설명하면 주파수는 다 제각각이어도 결국 주고 받는 코드는 다 일정해야지 상대방과 통화가 되고, 다른 사람과 통화를 하더라도 결국 쌍방이 동일 규격의 코드를 사용하잖아요. 그러면 그 파형을 일부나마 해독하고 원리를 적용시킨다면?
4. 다른 용들 기준으로는 미형체 맞습니다. 블랑의 미의식이 좀 특이한 점이 없잖아 있어서....
외모 평가가 거북한 심정이 잘 전달됐을까? 숨을 삼키고 있자니 흑룡이 당연한 이야기라며 긍정했다. 표정도 레아가 그 얘길 꺼내기 전과 마찬가지로 평온해 보였다. 그 선선한 태도에 레아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용이 아니라 인간에게 미인이란 얘기를 거듭 들었다면 어땠을까? 모르겠다. 어릴 때는 몰라도 왕립대학에 진학한 뒤에는 그런 얘길 면전에서 들은 적이 드무니까. (귀족들의 사교계에서야 낯 간지러울 정도의 외모 찬사가 인사처럼 여겨지기도 한다지만, 적어도 대학과 연구소는 남의 외모 평가를 대놓고 하는 건 교양 없는 처신으로 간주하는 분위기였다. 뒤에서야 -사실은 용인- 그 생도가 회자되듯이 말이 나오기도 한다만) 그래도 생각해 보면, 실장님이나 전임 연구원님 같은 상사에게 평가받을 경우 아무래도 착잡해질 것 같다. 착실하고 순해 보인다며 같은 일을 해도 좀 더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경우가 전혀 없다고는 못 하겠지만, 그런 이점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 감사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일터에서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은 업무 능력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그때, 잔잔하고 부드럽던 흑룡의 눈빛이 바뀌었다. 키 차이로 인해 내리꽂히는 시선이, 따뜻하지만 함부로 접근했다간 데일 것 같은 불꽃처럼 이글거렸다. 마주 보기는 거북한데 피해지지는 않는 그런 눈빛으로 그가 말을 이은 순간, 쓴웃음이 나왔다.
"전 아직 서고 관리나 비서 일을 시작도 안 했습니다.."
난감하다. 외모든 내면이든 업무와는 상관이 없을 텐데 옆에 두고 싶다니, 이건 완전히 업무 외적인 평가잖아. 그런데 당혹스러운 말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친근하다는 의미도, 동물 귀여워하듯 보는 것도 아니면 어쩔 거냐니? 얼떨해 눈만 끔뻑거렸다.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그의 마음이지. 내가 뭘 어쩌나? 내가 어쩔 수 있는 영역이긴 한가? 잠시 멍해졌다가 찻잔을 쥐었으나, 잔은 이미 빈 채였다. 빨리도 먹었다. 찻주전자에서 마저 따라 마시려니 갓 따른 찻물은 아직 뜨겁다. 이러라고 주전자에 덮개를 씌운 거겠지만, 뜨거운 거 못 먹는 사람은 힘드네. 그래도 정신은 들어서 두 손으로 깍지를 끼고 대답했다.
"생각을 바꿔 주십사 하는 게 아닙니다. 제 외모 얘기를 제게는 안 해 주십사 청한 겁니다."
그런데 친근감을 느끼는 것도, 동물처럼 보는 것도 아니면 뭐지? 인간이 미술품이나 꽃 보면서 감탄하는 거랑 비슷한가? 꽃이라, 굳이 따지자면 그쪽에 가까울 듯하다. 미술품은 잘 관리하면 오래도록 보존 가능하지만, 꽃은 아무리 애써도 금세 시드니까. (인간의 외모는 꽃보다야 오래 유지되는 편이지만 그래 봤자 용에게는 한철일 테고) 생각을 이어가던 중 레아는 제 머리칼을 꼬았다. 그의 생각이 어떤지 추측해서 뭐하나? 타자의 생각은 내가 왈가왈부할 영역이 아닌데. 그래서 잡념을 털려는 듯 꼬던 머리칼을 손으로 빗질해 넘겼다.
그러던 중 미소와 함께 돌아온 답. 용족은 음성 언어가 아니라 전음으로 의사소통한다. 젠장, 음성 언어면 기록해 둘 경우 여러모로 유의미할 거라고 기대했는데! 하긴 음성으로 의사소통을 했다면, 이제까지 용학을 연구한 인간이 수두룩한데도 여태 용어(龍語)가 안 알려졌을 리 없네. 그러면 어쩐다? 전음과 비슷한 방식이면 어찌어찌 배운다 쳐도 다른 사람한테 가르치거나 널리 알릴 방도가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 배우는 거조차 주님 찾고 싶어지게 기 빨리는 과정일 테고. (마력을 지닌 사람이면 그나마 좀 수월하게 익히려나? 하지만 그래서야 일부만 배울 수 있는, 특권적인 지식이지 않을까?) 음성 언어도 안 쓸 정도면 문자는 더더욱 없겠다. 용족의 의사소통 수단 연구는 답이 안 보이네. 기운이 쭉 빠졌다. 멍하고 답답했다. (물론 힘들더라도 따로 배워 보고 싶긴 하다. 발바리아를 세웠다는 그 용에게 욕을 퍼붓고 싶은 마음도 아직 있고. 하지만 연구 주제로 삼기는 글렀다는 게 허탈했다.)
넋을 놓을 뻔했다가 두 손으로 제 볼을 찰싹 쳤다. 아니지. 낙담하면 안 되지. 선행 연구와 겹쳐서든, 막상 연구하려니 자료나 근거가 부족해서든, 구상했던 주제가 엎어지는 일은 드물지 않다. 그럴 때마다 기죽으면 연구 못 한다. 새 주제 찾아야지.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여지껏 그에게 들은 정보(그와 같은 외양은 용의 이형이라거나, 용의 개체 수가 감소하고 있다거나, 용은 일정 시기가 지나면 섭식은 불필요해지는 대신 수십 년에서 수백 년에 걸쳐 수면해야 한다거나, 개별적으로 생활하지만 대표를 뽑기도 하고 때로는 모임도 갖는 등 사회적 교류가 전혀 없진 않다거나 하는 내용)을 정리하고, 그에게 용의 생태에 대해 더 묻는 것이었다. 제일 손쉽겠지만 그대로는 한계가 명백하다. 어떤 일이든 단일 사례만으로 일반화하는 건 무리라, 연구를 제대로 하려면 교차 검증이 필수니까. 그런 이상 다른 용도 관찰하든 취재하든 해야 하는데.. 관찰은 훔쳐보는 게(흑룡에게 들키기 전엔 훔쳐보는 거라고 생각도 못 했지만) 께름칙한 건 둘째 치고 들키기 십상이겠고, 취재는 인간에게 우호적인 용을 찾는 게 난관이겠다. 이건 좀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할 일 같네. 그러면 요람의 용학 문헌(온갖 문헌이 다 있는 모양이니 아마 용학 문헌도 있겠지.)을 샅샅이 뒤져서 아이디어를 찾아보는 게 나을까? 선행 연구를 살피다 보면 미처 연구가 덜 된 부분이나 안 된 부분이 보일지도 모르는데. 궁리하다 보니 입맛이 쓰다. 마음 다잡아도 원점에서 시작하는 건 참 꿀꿀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레아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395 일하기 싫다고 남의 집에 가 놓고선 남의 일 도와주는 대빵님인가요? 어째 고생을 사서 하시는 타입 같군요😓 근데 레스 정주행 하다 보니까 >>157에서 대빵님이 리자드맨 코스프레 중이던데 그 와중에도 로드 일도 하고 블랑님 집에 책 빌리러도 오시는 건가요😮? 그러다 다른 리자드맨한테 들키기라도 하면 유희 중엔 드러내제 않아야 하는 정체가 노출되어 버리지 않을지..😐
현생은 힘들죠😥 안 그래도 새벽부터 일어나셨는데 고생이 많으십니다 체력적으로 무리가 가지는 않으셔야 할 텐데요😢
아 그 냥반 유희 끝냈어요. 리자드맨으로 노는건 재밌긴 했는데 얘들이 멍청해가지고(리자드맨들은 이종족 중에서 몬스터 분류로 취급돨 정도로 머리가 안좋습니다) 답답해서 더 못하겠다고 적당한 시체 끌어다가 자신 시체 마냥 위장시키고 부족 전투에서 사망한 걸로 처리한 다음 도망쳐서 지금 돌아왔습니다.
결국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데 성공하는 것으로 만족했다는 것일까. 그는 순순히 레아의 말에 물러나면서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보인다. 그녀의 말이 일리가 있는 것도 한몫 했으리라. 그녀는 아직 스스로의 가치를 다 보여주지 아니하였다. 물론 지금에서는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관계기에 이 곳에서 일하게 되었다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도 중요한 일일테니까. 그리고 그 또한 그녀가 내건 이야기를 받아들인 입장으로서, 그녀가 얼마나 발전할 수 있을지 기대를 거는 것도 사실이니까. 그렇게 어느샌가 공손히 시립한 리빙아머에게 시켜 차를 한잔 다시 받아낸 뒤, 차를 한모금 들이키면서 테이블을 가볍게 손가락으로 톡톡 친다. 확실히 길을 제대로 잡고 있기는 하지만 정답에 다가가려면 힘이 부칠수도 있다는 것일까, 아까전에 자신이 용은 언어가 필요성을 못 느끼기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였을때 분위기가 축 쳐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 거기서 봤을때 그것이 연구주제의 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는 그렇게 머릿속으로 가볍게 생각이 정리되자 아주 약간의 실마리를 주겠다는 듯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언어가, 말이 없다 해서 의사소통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 동물들이 으레 그렇듯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주고 받네. 우리 또한 생명체고 고등생물이라고 해서 다른 점은 크게 없겠지. 거기서 부터 생각을 시작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 모를 것이야."
그렇게 한마디를 던지고서 이어지는 말은 그로 하여금 흡족한 미소를 짓게 하였다. 드디어 그녀가 자신에게 주어진 무기를 찾아낸 것이다. 사서로서의 업무 수행을 하며 이 곳에 있는 책들을 둘러보고 무엇을 취할지, 또 무엇을 걸러낼지. 더해서 그것이 자신의 생각과 비슷한지 다른지, 혹여 두가지 경우에 해당하는 순간에 왜 그런 이유가 되었는지 참으로 궁금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림으로서 당연히 그녀의 질문에 답변을 던져주었다.
"당연히 가능하지, 내가 왜 그대에게 사서 자리를 주었겠는가? 그 책들은 모두 그대가 읽고, 또 하나씩 소화해나가야 하는 이야기들일세. 천천히 시작하게나, 가장 가까운 길은 가장 멀리 돌아가는 길일세."
그 순간, 그의 머릿속으로 무언가가 울려퍼진다. 꽤 익숙한 파장이라는 것일까. 그러고보니 유희를 나갔던 양반인데 갑자기 이렇게 전음을 걸어온다고? 그렇게 잠시간 레아에게 티가 나지 않게, 천천히 차를 마시면서 전음을 이리저리 주고 받던 그에게 아주 가벼운, 하지만 마치 계략을 꾸미기라도 하는 듯한 미소가 스쳐지나간다. 일부러 전음에 드러나지 않게 감정 조절을 하는 것은 필수, 어쩌면 생각보다 레아에게 괜찮은 정보를 던져 줄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그였다."
"후후.... 오늘따라 차가 달군,"
레아에게 들릴 듯 말 듯, 블랑의 소감이 들려온다. 물론 달다는 의미는 차나 초콜렛이 달다는 것 이외에도 마음에 드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내 외모에 대한 토론? 레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난해한 문제를 접했을 때 으레 그렇듯 미간이 찌푸려지는 게 느껴졌다. 토론은 서로 다른 주장을 지녔을 경우에 상대측을 설득하고자 시도하는 대화이다. 누군가의 생김새에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가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나? 그건 전적으로 각자의 생각에 달린 영역인데. 더구나 토론이라고 하려면 서로 다른 주장을 펼쳤어야 하는데, 난 내 외모에 대해 무슨 주장을 한 게 아니다. 그 화제로 대화하고 싶지 않다고 피력했을 뿐. 그런데 토론이라니? 혹시 이 용, '토론'이라는 어휘의 의미를 잘못 알고 있는 걸까? (아무리 인간의 공용어를 익혔대도 모어(母語)가 아닌 이상 세세한 부분에서는 착오가 있을 수 있다. 용의 의사소통 수단은 인간의 언어와 전혀 다르기도 하고) 의외네, 나보다도 인간 사회에 대해 잘 아는 눈치였는데. 하긴 인간 사회에 대해서도 다 아는 거 같진 않다. 적어도 대학이나 연구소가 남의 외모 평가를 면전에서 하는 걸 무례한 짓으로 여기는 분위기임은 확실히 모르는 듯하다. 무리도 아니다. 인간이라고 곳곳의 인간 풍습을 다 아는 게 아닌데, 자기 종족도 아니고 타 종족의 풍습까지 세세하게 파악하고 있기는 힘들겠지. 그렇긴 해도 굳이 정정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 말을 꺼내도 내 외모를 도로 화제에 올리는 격 같고, 이유가 뭐든 내 외모에 관련된 얘기가 나오는 건 이젠 지긋지긋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용 입장에서 그딴 게 알 바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냉정히 따지면 용이 인간의 입장을 헤아려 줄 이유라곤 하나도 없으니까.
레아는 손끝을 찻잔에 대어 온도를 가늠해 보았다. 이제는 쥐고 있을 만해서 그대로 잔을 감싸쥐었다. 그 사이 마법 기사가 언제 왔는지 그에게 차를 따라 주고 있었다. 참 신출귀몰하네. 새삼 혀를 내두르는데, 차를 마시던 흑룡이 실마리를 주고 싶다는 듯 용도 여느 동물처럼 의사소통을 한다고 귀띔했다. 뭐라 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손끝으로 잔을 톡톡 건드렸다. 그걸 몰라서 맥이 빠졌던 게 아닌데.(앞서 그가 용은 전음으로 의사소통한다고 알려 주기도 했으니까) 유의미한 지식이 되려면 누구나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할 테지만, 전음이라는 방식은 그럴 방도가 안 보여서 난감했던 건데. (전음 사용법을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나아가 익힐 수도 있게 설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안 온다. 직접 써 봤더니 더 그렇다!)
"제가 고민하는 부분은 어느 지성체든 마음먹으면 전음을 익힐 수 있게끔 설명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점입니다. 전음을 익히는 게 불가능이 아니라 해도, 일부만 익힐 수 있다면 지식이 아니라 누군가의 특권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것 같아서요."
그러니 다른 주제를 찾을 밖에. 아, 생각하니 또 짜증나네. 레아는 떨떠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제 머리칼을 움켰다. 이제는 제법 말라 가는 게 곧 묶을 수 있을 것 같다. 얼른 말라라. 묶고 치우게. 그때 그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야말로 아연해지는 소리를 했다. 거기 책이 내가 다 읽어야 하는 거라고? 내가 100살까지 산다고 치고 하루 1권씩 매일같이 읽어도 3만 권도 못 읽는데? 그는 천천히 시작하라지만, 천천히고 빨리고 이건 물리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
기가 막힌 나머지 대꾸도 못하고 있는데, 그는 태연스레 차를 마시면서 차가 달다는 소감을 나지막이 덧붙였다. 레아는 얕은 한숨을 내쉬고는 미지근해진 차를 들이켰다. 향이 구수하고 향긋한 게 고급스러운 찻잎을 쓴 것 같긴 한데 맛까지는 잘 모르겠다. 차에 조예가 깊었다면 이런저런 분석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그가 단 맛을 감지한 건 초콜릿을 먹어서이려나?)
확실히 자신이 꽤 레아에게 무례를 범한 것도 있었다. 물론 자기 나름대로는 의견을 말한거긴 하지만, 인간들 사이에선 서로에게 터부시 되는 대화주제가 여러가지 있다고 들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쪽으로는 눈치가 둔하다고 이야기 하던 로드의 말도 떠오르는 그였다. 본인은 그를 인정하지 않는듯 싶지만, 글쎄.... 지금의 상황을 만든게 그라는걸 생각하면 더 빠르지 않을까. 그것은 어쩌면 종족의 한계일지도, 아니, 그의 한계일지도 몰랐다. 기본적인 태생으로 용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했고, 거기에 기와 체가 완벽한 종족이었다. 즉 그들은 자신들이 강하다고 생각하는 존재들이기에 그들은 거만해질 수 밖에 없었다. 블랑은 거만하지는 않았지만 사회적인 풍모가 너무나도 부족한데다가 많은 것을 책으로만 배운, 실전경험이 없는 애송이였으니까. 본인은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많은 것들이 덮혀질 것이다. 그러는 와중 표정이 모든것을 말해준다고 생각이 든 것인지 조금은 미안한 듯 뒷통수를 살짝 긁는다. 사실 레아는 자신이 을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떻게 보면 블랑쪽이 을일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극구 싫다는 것을 눌러앉힌 쪽은 바로 블랑 본인이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일지 몰라도, 그녀에게 만큼은 많이 약해질 수 밖에 없는게 그였다. 아이러니컬하였다. 자연계의 정점에 도달한 용족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쩔쩔매는 이 장면이 모든 것을 반영하고 있었다.
"그 방향이었나? 듣고보니 그렇군. 그렇다면 이런 방향성을 잡아보게. 내가 저번에 말에는 힘이 있다고 했지? 사실 이건 인간, 아니 전 생명체에게도 해당된다네."
이윽고 그의 설명이 천천히 이어진다. 어떠한 동물이건 생명체건 간에 결국 소리라는 매개체를 이용해 대화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소리라는 매개체 또한 미세하게나마 마나를 울리는 형태를 포함하는데 즉 이를 이용해 마나를 움직이고, 또 의지를 발현시키는 것이 마법의 실현 과정인 셈이다. 즉 지금 그가 말하는 것은 용이 사용하는 전음 또한 파장의 일종인 셈이니 이를 이용한다면 파장에 맞춰서 그 의미를 해독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통신용 마도구를 사용할때의 원리를 떠올리면 되는 셈이지. 통신용 마도구도 결국 정해진 주파수를 지정햐 상대방을 호출하고, 또 상대방이 받아들이면 서로 주고받을 수 있지만, 결국 사용되는 파형은 공통되는 셈이니까 말일세. 그대가 생각하는 갈래하고는 달라질 수 있겠으나, 역으로 동물이나 여타 다른 방향으로 응용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 와중에 심각해지는 레아의 표정을 읽은 것인지, 그는 황급히 손사래를 치면서 사죄를 덧붙이며 자신의 말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요람 총류의 책은 여지껏 그녀가 본 어떠한 도서관의 장서량보다도 많은 양의 그것이었다. 인간의 수명으로는 전부 읽어낸다는건 절대 불가능에 가까운 영역이겠지.
"내 미안하네. 실언을 했군, 전부 다읽을 필요는 없네. 내가 의미한 전부 다 읽는다는 뜻은 [필요한 정보에 대해 꼭 읽어한다 생각한 책을 전부 다 읽어봐도 좋다는] 뜻이었는데 내가 표현을 함부로 했네."
그러고서 멋쩍은지 헛기침을 하다가 이내 남아있던 레아가 가져온 초콜렛을 입에 집어넣으며 허당끼를 애써 지워내는 블랑이었다.
>>403 레아가 찰떡같이 알아먹게 하려면 레아주가 잘 이해를 해야 할 텐데, 그러질 못하고 있어서 질문 남깁니다..😥
블랑님과 레아가 전음으로 대화할 때 처음엔 블랑님의 정신 주파수(??)에 레아가 접근하는 방식이었고, 그 다음엔 블랑님이 레아의 정신 주파수에 접근하는 방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출입증에 블랑님의 마력이 담긴 걸 고려하면 정신 주파수를 맞추는 데에는 마력이 소모된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당시 저는 전음이 육성은 사용하지 않는 방식이라고 이해했었습니다.(최근 레스에서 블랑님이 대빵님과 전음을 주고받는 듯했는데, 역시 무음이다 싶었고요.) 이 점 때문에 레아가 전음은 다른 종족에게 알리기 어려운 의사소통 방식이라고 서술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블랑님이 대안을 제시해 주고자 한 것 같은데요😅, 그게 용들의 정신 주파수에 접근하기 쉽게 해 줄 방도(예를 들면 무전기처럼 주파수만 맞추면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게 해 주는 기기라든가?)를 마련할 수 있다는 의미인가요🤔? 아니면 인간을 비롯한 다른 종족이 청각으로 인지 가능한, 용의 울음소리(진동)에 깃든 진동 수, 진동 폭, 진동의 파형 등을 분석하면 무슨 의미인지 파악이 가능하다는 의미인가요😮?
>>404 😨;; 험악했군요 그러면 블랑님이 레어를 비우는 틈을 노려서 누님이 침입할 가능성은 없나요?
정답은 후자입니다!! 보통 언어들 사이에 있는 의성어들을 자세히 들어보면 각 국가 언어들이 표현한 형태가 다 비슷하잖아요! 그거랑 비슷하게 생각하시면 되요! 파장의 형태를 이해하기 전에 으르렁 거리는 것을 그냥 얘가 경계하는거구나, 라고 생각한다면 파장의 형태를 이해하고 난 뒤엔 아 애가 날 지금 경계중이구나! 이런 느낌인 셈이죠!! 이경우엔 소리가 아닌, 인간이나 이종족들이 인지 가능한 마나의 파장을 이해하는 방식이겠지만요!!
그리고 전자의 경우는 이미 가지고 있는 요람 출입증이 그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괜히 그 카드가 많이 쓰이는게 아니에요!! 아마 로드가 오게 된다면 레아의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기능도 추가될껍니다!
>>406 답변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용이 전음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대기 중의 마나가 진동하는데, 그걸 분석하면 용의 전음 내용을 해석 가능하다고 이해하면 될까요😮?
요람 출입증에 마력이 담긴 결과 용들의 정신 주파수에 접근하기 쉬워진다는 건 파악했습니다. 다만 그건 레아 전용이라, 용의 정신 주파수에 접근하는 방법을 대중적으로 알리기 위한 연구는 어렵겠네요😅 (용학자, 마공학자 등이 대거 연합해서 연구하면 인간의 음성을 용들의 전음 같은 마나 파장으로 변환하는 마도구도 개발이 되려나 싶긴 합니다만, 그건 레아 혼자서는 무리겠고요😓)
말의 힘? 일순 어리둥절했다가 차근차근 이어지는 설명에 레아는 도로 자리에 앉았다. 흑룡의 설명에 따르면 어느 생명체든 (인간이 들을 수 있든 그렇지 않든) 공기를 진동시키는 음파로 의사소통을 하고, 음파는 공기를 진동시키듯 자연 상태의 마나도 진동시킨단다. 이는 용도 마찬가지이므로, 용이 전음을 주고받는 순간 용 주변의 마나가 진동하는 양상을 분석해 놓으면 용의 전음 내용을 해독할 수 있으리라는 의미 같다. 확실히 솔깃한 이야기였다. 용인 그가 자신들의 의사소통 방식을 타 종족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해독할 방법을 모색했다는 점이 경이롭기도 했다.(나더러 인간의 언어를 다른 동물이 알아듣게 할 방도를 찾으라면 절대 못 한다..) 게다가 그런 말을 해 주는 내내 선이 뚜렷하면서도 섬세하게 고운, 그의 눈은 생생하게 반짝였다. 고마웠다. 내 연구에 흥미를 갖고 진심으로 고민해 주고 있구나. 용 입장에선 아무래도 좋은, 대단찮은 일일 만한데도.
하지만 문제점도 몇 가지 떠올랐다. 일단 마나의 진동을 알아채려면 최소한 마나를 감지할 정도의 마법적인 소양이 있어야 한다. 그 문제야 마나 탐지기(마나가 풍부한 땅이 마법사, 왕족, 귀족 등 다양한 이들에게 인기가 좋다 보니 그런 도구도 개발되었다고 들었다.)로 어찌 무마한다 쳐도, 용이 전음을 주고받는 순간을 포착해서 용 주변에서 마나의 진동을 탐지하는 게 쉬울 리 만무하다. 또 마나의 진동 양상을 기록만 해 둬서는 안 되고 인간의 언어로 해석도 해 놓아야 할 텐데, 그러자면 용이 전음을 주고받는 동안 누군가는 정신 파장을 맞추어서 알아먹어야 하지 싶다. 아니지. 이거도 그가 준 출입증을 쓰면 어떻게든 해 볼 수 있으려나?(다른 용의 정신 파장에도 접근 가능한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그럼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용이 전음을 주고받는 순간을 포착하는 거겠다.
"말씀대로라면, 용끼리 전음을 주고받을 때 근처에서 마나의 진동을 탐지해 기록하는 동시에 용들의 정신 파장에도 접근함으로써 개별 진동이 인간의 언어로는 어떤 의미인지 정리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다만 용이 전음을 구사하는 순간에 접근하는 게 난관일 것 같습니다."
그래도 두근거렸다. 데이터를 충분히 축적하기만 하면 이건 획기적인 성과다. 게다가 잘하면 전음으로 인한 마나의 진동을 인간이 따라할 방도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아직은 가설일 뿐이지만, 인간의 육성도 마나를 진동시킨다니 가능성은 분명 있다.) 마법적인 소양이 없는 이는 마나 탐지기로 마나의 진동을 확인하지 않고는 전음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리라는 점이 아쉽지만, 아예 방도가 없는 것보다야 훨씬 낫다. 이번 연구가 주목받으면 언젠가 여러 분야의 연구자들이 합심해서 음성은 마나 진동으로, 마나 진동은 음성으로 변환해 주는 마도구의 개발에 착수할지도 모르고. 아무튼 마나 탐지기부터 구해 볼까?
그렇게 들떠 있는데, 흑룡이 전에 없이 정색하며 사과하더니 앞서 했던 말을 정정했다. 다 읽어야 한다가 아니라 다 읽어도 된다라고. 그런 의미였구나. 긴장이 풀려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얼떨떨했다. 사소한 오해라 이렇게까지 사과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러다 문득 그가 말의 힘에 대해 설명해 주기 전에 어쩐지 겸연쩍은 기색으로 뒷머리를 긁던 것이 떠올랐다. 설마 그때도 미안해했던 걸까? 그런데 말은 못 하고 담아 둔 탓에 지금 같은 (다소 엉뚱한) 사과가 나온 걸까?
쑥스러운 듯 헛기침을 하고 초콜릿을 먹는 그를 향해 실소인지 미소인지 모를 웃음이 지어졌다. 어지간한 건 다 알고 무엇에든 능숙한 줄만 알았는데, 의외로 서툰 면도 있었구나. 상사에게 업무 외적인 영역을 평가받은 거북함이 완전히 잊힌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이 좀은 누그러드는 기분이었다. 인간의 사정이나 풍습이 어떻든 헤아릴 필요 없는 용이면서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게 놀라웠으니까.(내가 느꼈던 곤혹스러움을 알아준 거라면, 앞으로 그 화제는 피해 줄 것 같다.) 그리고 누구든 어느 영역에서는 미숙하거나 무지할 수 있는 법이니까.(이제껏 내가 저질렀던 실례를 그가 무던히 넘겨 준 것도, 어쩌면 누구나 실수할 수 있음을 헤아려 줘서가 아닐까?)
아이고야 과찬이십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학부 샤대에 대학원도 샤대인 셈이라 컨셉에 맞는 캐로 연출해 보자고 아등바등한 것뿐인데요😓 생도 시절부터 하도 똑똑한 인간 천지라 레아 씨가 주눅 들었다는 과거 넣은 것도 그래서였고요 (샤대의 위엄..🙄?) 아무튼 레아가 똘똘해 보였다니 연구자 컨셉은 유지되고 있는 것 같아 마음 놓이지 말입니다🙂
What if라.. 당장 떠오르는 건 2가지 정도로군요 바엘 섬 갔더라면 뭘 했을까🤔랑 알라투 누님이 마법으로 레아랑 몸을 바꿔치기 하거나 레아의 몸을 지배해 버릴 경우🥶 블랑님이 어떻게 대처할지요 (후자는 저로선 공포물이기도 합니다만😑 궁금하긴 합니다😅)
흐미야😮 고평가 감사합니다! 거기 재학 중이었다면 좋았겠는데요😓 사실 구글링이 하드캐리 해 준 겁니다😅 제 머릿속엔 딱히 든 게 없어요🙄
역시나 험악해지는군요🥶 블랑님 유희 때 몸 바꾸는 마법도 언급하셨어서 알라투 씨가 문건 얻으려고 그런 식으로 블랑님을 협박할 가능성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몸 바꾸기면 레아가 너도 죽고 싶으면 해 보라는 자해 공갈로 응수할 수 있지 않을까 했지만 정신 지배면 답이 있나 싶어서 여쭤봤습지요🤔
저는 머리에 든 걸 끄집어내는 것 만큼 스스로 찾아내는 것도 능력이라 봐요!! 오픈북 테스트에 대해서 생각하면, 거기서 찾아내는 것도 능력이라 보니까요!!
아니면 역으로 '왜, 네년이 그렇게 혐오하던 잡종놈이다. 그러니까 계속 버티고 있어봐라. 내 공간 활용법은 네가 잘 알테니 벗어나는건 불가능한건 알고 있겠지.' 하고는 레아에게 미안하다고 한마디 하고서 그대로 입술박치기로 멘탈 공격을 할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서로에게 혐오감을 가지고 있으니 효율적인 수단이라고 볼수도 있죠!(아님)
왜냐면 본인 왈 "니네 피서가냐? 나도 낀다?" ......
왜 이제야 왔느냐 하면.... 조금 현실적으로 일이 생겨서 잠깐 이야기 하느라 이제사 왔습니다!! 어느쪽이냐 하면 좋은 쪽이라 해두겠습니다!!
고평가가 아니라 진지한 평가입니다. 저도 눈치 채지못한 설정 붕괴가 될뻔한 오류를 몇번이고 잦아주셨능걸요
그 경우면 디스펠도 위험해요, 정신간섭이 여기서는 꽤 고수준의 마법인게 모든 생명체는 고유의 파형을 가진다 하잖아요? 이게 어느정도의 보안체계도 겸하기 때문에 그 보안을 뚫어야하는 작업이라서..... 유체 교환의 경우라면 >>415가 될것이고 정신지배라면 아마 묶어두고 2~3일에 걸쳐서 천천히 해주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최대거리는 마나가 닿는데까지, 다만 최대출력으로 하게 된다면 드래곤들도 한호흡정도는 쉬어야 해요. 블랑의 경우는 그냥 스윽-하면 끝나는 수준인게 문제지만.... 그래서 로드도 블랑이랑 같이 움직일땐 "야 십 니가 해, 내 짬밥에 그런거 하게 되어있냐."를 시전합니다
>>418 아이고야 도움이 됐다면 다행입니다🙂 세계 설정이 방대해져서 혼자 너무 부담 지시는 건 아닌가 조금 염려되기도 했거든요😅
그 경우 알라투 누님이 정신지배를 재시도하지 못 하게끔 막는 것도 일이겠군요😢 블랑님이 레아한테 9중 결계 문건 보는 방법은 알려 주지 않는 게 좋겠다 싶어졌습니다😐 레아가 용의 정신간섭을 당해내기는 사실상 어려울 테니, 알려 줬다간 그 문건을 레아 손으로 누님한테 넘겨 버리는 끔찍한 사태가 터질지도..😬 사실 몸 바꿔치기는 레아 역시 누님의 몸을 갖게 되는지라 드래곤 하트 꺼내 가면서(블랑님이 꺼내는 걸 봤으니 시도는 해 볼 만하지 싶어요) 역으로 협박이 가능할 거 같다 보니😅, 누님도 머리란 게 있다면 자기 목숨도 위험해질 수 있는 방식은 굳이 택하지 않겠구나 싶어서😐, 저 개인적으로는 누님이 레아를 도구 삼아 협박한다면 정신 지배 쪽이 더 가능성 높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누님 if에서 블랑님이 자길 가리켜 잡종이라고 하던데 >>332에서 말씀하신 걸 생각하면 같이 태어난 [스포일러]는 용이 아니지 않을까 싶어지는군요
블랑님이 훨씬 빠르고 쾌적하면서도 간편하게 이동 가능한 거군요😀 다른 용들이 KTX라면 블랑님은 비행기? (??)
아 또 궁금해진 게 블랑님이 지금 기억 그대로 예전 유희할 때로 돌아가게 된다면 가족 같던 5명을 구하기 위해 어떤 시도를 할까요🤔?
눈을 떴을 때는, 자기도 믿기지 않을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하나같이 검은 정장, 마치 자신들의 수의이자 상복을 챙겨입은 것 마냥 4명의 남자들과 1명의 여성이 둘러앉아 있었다. 마치 그때 그 시절과 같은 시선으로, 그 광경을 재회하고 있었다. 꿈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볼에서 느껴지는 가벼운 통증과 더불어 남색 머리카락의 남성이 자신의 뒤통수를 한대 때리면서 그는 자신이 그 시절로 돌아 왔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 통증과 더불어 자신의 귓가로 들려온 그 목소리에 그가 정신을 바짝 차림과 동시에 그것이 현실로 돌아온다.
"정신 안차리나? 블랑?" "헤, 헬리오트....?" "지금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다들 심각한 고민을 하는 중인데, 이렇게 얼이빠져서야 되겠어?"
자신을 위해 끝까지 희생한 팀장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당시 보스와 마주하고 겨우겨우 도망친 탓에 지병까지 제대로 도진 나머지 겨우 몸을 추스린 직후였던 그는, 결국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몸을 내던져 보스의 공격을 대신 맞아주고 자신에게 미래를 맡긴채 그 숨을 거두었다.
"블랑이라도 많이 긴장했겠죠. 아무래도 지금 상황을 받아들이기엔...." "쯧, 이해는 못하는건 아니다만...."
보스의 간계에 빠져서, 팀장과 자신이 못본 사이 목에 칼을 박고 자살해버린 루드베키아의 모습이 들어온다. 끝끝내 유언을 듣지 못한채 자신들이 발견했을 땐 차가운 시체로 허망하게, 눈도 감지 못한채 죽어 있었다.
"솔직히 팀장의 말에 놀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어요? 보스가 우리를 버렸다는데!" "맞는말이오. 팀장이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 믿지 못하였겠지."
곧이어 팀에서 가장 맏어른이자 듬직했던 큰형 같은 존재, 말로우와 팀에서 유일한 여자였으며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말로우와 약혼까지 갔던 여인, 프렌치메리의 목소리까지.... 너무나도 듣고 싶었던 목소리였다. 너무나도 기쁜순간이었지만 그들의 미래를 알고 있는 지금 막을 수 있는 순간은 지금뿐이었다. 그 순간 블랑이 앞으로 나서려던 그때, 무언가를 눈치챈 팀의 막내, 벨가모트가 그의 손을 잡고 말한다.
"블랑 형, 혹시 쫄?" "벨가모트....!!"
그 순간 모두의 눈이 천천히 그의 시선으로 잡힌다. 아, 자신이 지금 여기서 나서더라도 운명을 바꿀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은 이미 각오가 되어 있으니까. 자신을 운명을 바꾸려고 하더라도 그들은 이미 죽음을 각오했기에 지금 이 자리에 서있는 것이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가장 몸을 일으킨 블랑을 보며 헬리오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난 너희에게 따라오라고 명령한 적 없다." "저희가 저희 스스로에게 명령한 겁니다." "함께 가달라고 부탁한 적 없다." "헹, 그렇다고 저희를 버리고 가는건 저희가 부탁한적 없는데요!" "내가 멋대로 저지른 일인 만큼.... 그러니 내게 의리 따위 느낄 필요도 없다." "거 되게 머리 아프게 가시는구료..... 그냥 같이 가자고 하시는게 저희 입장에선 생각하기 편합니다." "나는 지금 여기 옳다고 생각한 길에, 내 자신에게 거짓말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나아가려는 것이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요!! 아니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동감하는거 아닙니까!!"
그 누구보다 무서울 나이다. 가장 쫄아있어야 할 막내의 한마디에 다들 결연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블랑의 두 손이 꽉 쥐어진다. 이번엔 모두를 살려갈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의 각오이다. 누군가 말했다. 각오가 되어있는 자는 행복하다고, 지금의 자신은 백에 발을 들이믿었다고 느낀다. 지금의 자신은 그 무엇도 두렵지 않을 정도로 각오가 되어 있다. 양손에 들어있는 그 강인한 힘이 자신을 이끌고 있다고, 1천년 평생 들어 처음 느끼는 벅차오름이었다.
"각오는 되어 있나." "저희 모두 되어 있습니다."
그 한마디에, 모두가 일어난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그 순간 알고 있었다. 더이상 그들의 미래 앞으로는 죽음의 그림자가 아닌, 반짝이는 굳은 의지가 함께 하고 있음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