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가슴팍에 얼굴을 대면서 기대는 모습에 혜성은 손을 올려 그녀의 긴 뒷머리카락을 천천히 손으로 쓸어내렸다. 온천에 들어갔다가 나온 덕일까. 굉장히 머리카락이 부드럽다고 혜성은 생각했다. 온천 물이 좋긴 좋구나. 그렇게 생각하다 그는 그녀를 놓아주며 헛기침 소리를 연달아 냈다.
하지만 자신에게서 떨어지고 싶지 않다는 듯이 허리를 감싸안고 가슴팍에 얼굴을 부비는 행동에 혜성은 결국 또 아람을 꼬옥 안아주면서 가만히 등을 토닥였다. 딱히 달랠 필요는 없지만 뭔가 지금 이 자세를 취해서 그런지, 자신도 모르게 나온 행동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잠이 온다고 한다면 남자친구로서는 눈물 제대로 나올지도 몰라."
그래도 키스까지 했는데, 그것도 제법 진하게 했는데 잠이 온다고 한다면 자신으로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물론 잠이 온다고 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미 아람은 잠들 시간이었으니까.
"그, 그럼 말이야. 숙소 근처 한바퀴만 돌까? ...잠이 지금 당장 안 온다면 말이야."
잠이 다 달아났다고 한다면 조금 더 걸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하며 혜성은 아람에게 그렇게 제안했다. 마침 하늘에서 눈도 내리고 있겠다. 역시 바로 들어가긴 조금 많이 아쉬운 탓이었다.
"...뭐, 그러니까... 첫 눈이 오는데 바로 돌아가기도 좀 그렇잖아. ...그.. 키스하는 타이밍은 키스하는 타이밍이고... 난 첫눈이 내릴 때 같이 걸어가는 연인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ㅋㅋㅋㅋㅋㅋㅋ 아람이가 그렇게 말하는데 혜성이가 못해줄 이유가 뭐가 있겠어! 그래도 뭔가 무안해서 그렇게 핑계는 대겠지만 말이야! 그리고 아람이 역시 그에 못지 않게 상당히 귀여워! 지금만 해도 살짝 어리광 부리는 듯한 모습이 또 엄청 귀여워! ㅋㅋㅋㅋㅋ 그거야 나와 아람주는 같이 1:1을 하고 있잖아? 그리고 서로의 캐릭터가 얽혀서 서사가 진행되는 중이고! 그러니까 같이 키운거나 마찬가지 아닐까? ㅋㅋㅋㅋㅋ 그래도 놀다보면 어느 순간 훅 나오지 않을까 싶은걸? 봄부터 시작해서 지금 겨울까지 왔고 벌써 41번째 일상이니 말이야! 아앗.. 아직 할 일을 하는구나. 물론 개인적인 일도 집에서 할 수 있는 거니까! 나는 지금 티빙 보면서 시간 보내는 중이야! 그 와중에... 와.. 네카에 저런 게 있었구나! 난 네카는 중국어라서 그런지 조금 다루기 힘들던데... 아무튼 확실히 조선시대에는 저런 느낌도 날 것 같기도 해! 물론 저 네카이미지보다는 조금 더 조선풍이겠지만 말이야! ㅋㅋㅋㅋ 만든다고 수고했고 고마워!!
큐큐 그렇게 핑계대는 혜성이가 귀여운거니까! ㅋㅋㅋㅋ!!! 아람이를 귀여워해준다니~~! 이번 일상에서 혜성이 혼자 멋잇고 귀엽고 다하는 것 같은데>< 같이 키운다고 해주니 내가 혜성이의 지분을 어느정도 가져가도록 하겠어! 대신 아람이의 지분을 줄게 ㅋㅋㅋㅋ!!! 맞아 어느순간 겨울이 온 것처럼 어느순간 어른이 되 있겠지~ 오래오래 같이 재미있게 놀자~ 할일이라는게 픽크루 찾는 거라서. 근데 찾으라는 픽크루는 못찾고 계속 요즘 아람이 픽크루만 만들고 있네 문제야문제 ㅋㅋㅋ큐ㅠㅠ 나도 다른 사람이 좋다고 추천해준 네카 들어가본 거야~~ 장발 혜성이....... 혜성이는 어떤 머리 스타일을 해도 맛있는 것 같아 흑흑 맞아 저 이미지보다는 조선풍일 것 같지! 내가 그릴 수 있다면 좋을텐데!!!!(슬픔) 그럼 나는 이만 들어갈 볼 예정이라~~ 혜성주도 좋은 밤 보내구!!!
ㅋㅋㅋㅋㅋㅋ 아닛. 유혹하는 아람이 뭐야...ㅋㅋㅋㅋ 혜성이 얼굴 새빨개져서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겠는데. 괜히 헛기침을 내면서 시선을 살짝 다른 곳으로 회피하지 않을까 싶어지는걸. 혜성이가 멋있었던가? 정작 돌리는 나는 모르겠다! 물론 이러면 내가 혜성이를 돌리고 있어서 모른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아앗..좋아. 그럼 아람이의 질분의 어느 정도는 내가 가져갈게! 와! 역시 아람주는 좋은 파트너야!! (야광봉) 아앗...ㅋㅋㅋㅋㅋ 세상에. 그런 거였구나. 하지만 뭐 어때. 아람이 픽크루 만들면서 스스로 만족하면 되는거지! 원래 픽크루건 뭐건 자캐 관련은 자신이 만족하고 재밌으면 오케이라구! 그러니까 문제가 아니다!! 그래도 아람주가 인어공주 AU였던가 그때 그려준 그림이라던가 난 꽤 예쁘다고 생각하는걸. 난 아예 그림은 진짜 못 그려서..(눈물) 정작 머릿속으로 이미지는 있는데 그 이미지를 그림으로 그리려고 하면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 자체가 나오지 않아. 다른 이들이 잘 그리는 사람 그림도 난 잘 못 그리고..(주륵) 딱히 불만은 없지만 말이야. 그냥 나는 그림 그리는 것엔 소질이 없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어. 어쨌든 잘 자! 아람주!! 내일 하루도 화이팅!
아람은 혜성이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는 것도, 등을 토닥이는 행동도 너무 좋았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원래 이런 것일까? 옆에 있으면 좋고 더 알아가고 싶고 계속 닿고 싶은 마음.
"하긴 그렇긴 해."
아람은 혜성의 가슴팍에 뺨을 대고 키득거리며 웅얼웅얼 말했다. 그리고 혜성의 이어지는 제안에 아람은 작게 웃었다. 너도 나와 같은 마음인 걸까.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은 마음 말이야.
"좋아ㅡ. 조금만."
아람은 혜성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얼굴은 여전히 발그레한 채였지만. 혜성의 손을 맞잡으며 방금보다는 잠이 깬 얼굴로 걸었을 것이었고. 눈오는 풍경과 손에 맞잡은 온도를 느끼며 이런저런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었겠지. 아마 한 바퀴가 아니라 여러 바퀴를 돌다가 더이상 잠을 참지 못한 아람이로 인해 비실비실 숙소로 돌아갔을지도.
/막레! 큐큐 혜성이 아람이랑 사귀면서 헛기침만 는 거 아니야? 귀여워 ㅋㅋㅋ 혜성이 멋있는 면모 많은데! 혜성주만 모르는 것 뿐이야!(야광봉) 맞아 자캐 덕질이 최고다! 앤캐 덕질도 더해지면 금상첨화지!ㅋㅋㅋㅋㅋ 헉 전에 그림 진짜 너무 오랜만에 그려서 엉망진창이었는데 예쁘다고 해줘서 고맙다규~ 하지만 나도 그리고 싶은 것을 실력이 없어서 못그리는 건 매한가지라 ㅋㅋㅋㅋㅋ규ㅠㅠㅠㅠㅠ 엄청난 금손이 아닌 이상 다들 마찬가지가 아닐지. 혜성주도 오늘 하루 화이팅이야~!
막레 잘 받았어!! 이번 일상도 수고했어! 아마 혜성이는 이후에 한바퀴가 아니라 정말로 여러 바퀴를 돌다가 아람이가 너무 졸려하는 모습이 보이면 바로 숙소로 돌아가서 방까지 데려다준 후에 자신도 방으로 돌아갈 것 같아. 물론 바로 자진 않고 조금만 더 카메라 작업을 하고 그랬을 것 같지만 말이야! ㅋㅋㅋㅋㅋㅋㅋ 츤데레가 주제를 돌리기 위해서 가장 많이 쓰는 방식이 바로 헛기침이라지? 나름 클리셰다! 이것도! ㅋㅋㅋㅋ 아무튼 나만 모르는 멋짐이라니. 물론 자캐의 매력은 정작 오너는 잘 모른다고 하니까 말이야! ㅋㅋㅋㅋㅋ 맞아. 앤캐 덕질도 함께 하면 금상첨화지! 그래도 그때 그림 정말로 예뻤는걸! 아람주는 조금 더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고 생각해! ㅋㅋㅋㅋㅋ 그리고 꼭 그림 잘 그려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혜성주도 일상 수고했어!!! 혜성이 왤케 늦게 자! ㅋㅋㅋㅋㅋㅋ 그러니까 아침에 비몽사몽하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츤데레가 헛기침하는 이유를 알았다?! 그러고보니 진짜 그렇네ㅋㅋㅋㅋㅋㅋ 귀엽당ㅋㅋㅋㅋㅋㅋ 그 이후로 또 그림 안 그리지만...! 가끔 필받을때 그려! 칭찬 고마워어엉! 맞아 낮에는 넘 뜨겁더라구 일교차는 있으니까 조심해야해~!
사실 평소에는 그렇게 늦게 자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엔 학생회에게 사진 의뢰를 받았으니 말이야! ㅋㅋㅋㅋㅋ 그래서 아무래도 작업을 좀 하려면 약간 늦게 잘 수 밖에 없을 것 같아. 그리고 아침이 약한 것은... 그냥 혜성이의 성향 같은 거라서 빨리 자도 다를 것은 없는걸. 물론 어디까지나 혜성주피셜이라서 정말로 그런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본 츤데레는 대체로 그런 식으로 주제를 돌리는 경우가 많더라고. 혹은 잠깐 시간을 번다던가! ㅋㅋㅋㅋ 아무튼 가끔 필받을때라도 그리는 것이 어디야. 그림 못 그리는 사람의 눈에는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해!
맞아. 밤에는 시원한데 낮은 더워... 어후. 그래도 이러다가 갑자기 확 추워질 것을 생각하면..(덜덜) 올해 겨울은 또 엄청 추울 거라던데 작년보다 더 추우려나.. 작년에 진짜 춥다 못해 피부가 다 아프던데.
그렇구만~~ 아침에 약한 혜성이 귀엽다고 생각해~! 내가 생각해도 츤데레들이 헛기침 잘 하는 것 같아ㅋㅋㅋ 맞아 이러다가 갑자기 확 추워지겠지..... 으 올해 겨울 엄청 춥대? 와.... 상상도하기 싫다....... 나도 작년 힘들었어 읏....... 겨울.... 다음 거울 일상은? 두구두구
좋아~~~!!!! 맞아 시내 가면 겨울만되면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반짝반짝하지! 굳이 크리스마스에 안 나가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즐길 수 잇다구>< 그럼 주말에 공부할 겸 만나서 쇼핑도 하는 걸로 할까? 선레는 다이스 굴릴게!!!! .dice 1 2. = 1 1 나 2 혜성주!
내가 살던 지역에선 거의 한달전부터 막 준비를 하더라고. 물론 본격적으로 켜놓는 것은 당일이지만 말이야. 그래도 장식이나 그런 것은 막 12월 달 초부터 막 달아두고 그러지!! 올해도 그런 경치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볼 수 있겠지. 아마! 좋아! 그러면 그렇게 시작해보는 것으로 하자! 크리스마스 가까워지는 어떤 시기라고 하면 될테니까!
그리고 선레는 아람주로구나! 좋아. 선레는 자유롭게 작성해줘! 혜성이야 어떻게든 만나게 하면 되니까. 처음부터 만났다는 상황도 괜찮고! 느긋하게 기다릴게!
아람은 혜성을 만나기 위해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겨울이 지나면 고등학교 3학년이라니 감회가 새롭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한 상태였다. 오늘은 주말이고 학원에 가는 날이 아니었기 때문에 혜성과 간단히 만나 모자도 같이 사고 남는 시간에 공부도 하기로 했다.
혜성과 사귀고 난 뒤 눈에 띄는 변화는 데이트를 할 때 평소보다 더 신경을 쓰고 나온다는 점이려나. 오늘은 회색 빛이 도는 연갈색 머리카락을 옆머리를 땋아 내려 뒷머리와 함께 땋는 식으로 양갈래로 묶었다. 목도리를 하는 대신 낙낙하고 포근한 느낌의 목까지 올라오는 스웨터를 입고 짧은 치마에 두꺼운 스타킹을 신었다. 품 넓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연베이지 코트에 따뜻한 어그부츠까지 신은 아람은 예쁘면서도 단단히 추위에 무장한 모습이었고.
"저기 혹시... 눈에 띄어서 그런데 전화번호 좀 알 수 있을까요?"
번화가에서 서 있으니 한 남자가 와서 묻는다. 아람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거절했다.
"제가 남자친구가 있어서요."
"꼭 그렇지 않더라도 친구로 연락하고 지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남자친구가 싫어해요. 그리고 저 고등학생이고요."
그 말에 남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
"아, 대학생인 줄 알았어요. 미안합니다."
서글하게 웃으며 가는 이는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아람도 괜찮다며 웃었고. 뒤에 가방을 메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대학생으로 보였던 모양이었다. 문제는 그 모습을 혜성이 봤고 아람은 그 남자가 간 이후에야 혜성을 알아봤다는 것이려나?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겨울날이었다. 평소라면 붉은색 빵모자를 눌러썼겠지만 새 모자를 사기로 했으니 그는 오늘은 굳이 빵모자를 눌러쓰지 않았다. 물론 새로운 것을 산다고 해서 바로 새 모자로 바꾸진 않을 것 같았기에 그는 일단 늘 쓰는 빵모자를 늘 놓아두는 곳에 조심스럽게 놓아뒀다. 슬슬 날씨가 추워지고 있는만큼 그의 옷차림도 덩달아 두껍게 바뀌었다. 그가 이번에 입은 옷은 하얀색 폴라티와 푸른색 청바지, 그리고 그 위에 입은 검은색 코트였다. 역시 겨울은 어두운 색을 입어야 따뜻해진다고 하지 않던가.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조금이나마 따스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코트를 맨 위에 걸친 후 굳이 지퍼를 위로 올리진 않았다.
약속장소까지 가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는 일은 아니었다. 집밖으로 나오고 조금 걸어서 버스를 탄 후에 내리고 또 잠깐만 걸으면 될 일이었으니까.
번화가에 막 들어서서 아람과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할 무렵, 한 남성이 아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뭔가 싶어서 혜성은 바로 향하지 않고 잠시 그 자리에 멈춰서서 아람과 남성이 하는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흐응."
보아하니 번호를 따려고 하는 남성에게 아람은 철벽을 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것처럼 얼굴색을 보이려고 했으나 그 표정이 묘하게 시큰둥했다. 자신을 지나쳐서 가는 남성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작게 혀를 차긴 했으나 특별히 무슨 말을 하진 않았다. 만약 거기서 뭔가 더 행동을 하려고 했으면 그땐 뭐라고 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모습까지 뭐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렇게 막 다시 뒤로 돌아서 아람을 보려는 순간, 아람 쪽에서도 자신을 알아봤는지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혜성은 어깨를 으쓱하며 덩달아 손을 흔들면서 미소를 지었다.
"안녕. 내가 너무 늦었나보네. 보니까 번호 받으려는 이 같던데... 평소에도 이런 적이 많았어?"
딱히 질투심이나 그런 것을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단순히 궁금해서 물어보는 톤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금 걸리긴 했는지 그는 방금 남성이 가버린 그 방향으로 살며시 몸을 틀었다.
"나 참. 남자친구가 있다는데 뭘 번호를 따고 친구로 어쩌고 저쩌고야. 여차하면 뺏으려고 하는 거면서. 뺏길 생각도 없지만."
/ㅋㅋㅋㅋㅋㅋㅋ 확실히 저런 상황..충분히 있을 수 있지! 아니. 의외로 많지 않았을까 싶네! 사실 혜성이는 어느 정도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시도하는 이에게는 조금은 부정적인 시선을 보낼 것 같아. 아람에게는 뭐라고 하지 않겠지만 말이야. 아무튼 오늘은 일찍 퇴근했구나! 하루 수고했어! 나도 답레와 함께 갱신이야!
아무래도 제가 번호 따이는 모습을 혜성이 본 게 민망하기도 하고 그랬다. 물론 철벽치고 번호도 안 가르쳐줬지만! 다행히 제가 대학생이 아니라서 잘 넘어간 것 같았다. 대신 교복을 입고 있을 때는 다른 학교 학생들이 말을 건다는 게 문제이려나. 아람은 이어지는 혜성의 투덜거리는 말에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뭐어, 내가 줄 생각도 없었는 걸? 그나저나 얼른 가자. 춥다. 내가 모자만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가게 알아뒀거든."
아람은 혜성의 손을 잡으려고 하며 걸음을 옮기려고 했을 것이었다. 명백한 말돌리기였다.
/오늘 하루 고생 많았어! 아무래도 혜성이 입장에서는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지 않을까? 내 여자친구에게 수작 부리려는 놈들이라니 용서할 수 없잖아~! ㅋㅅㅋ
아람은 객관적으로 봐도 예쁘고 귀여운 편에 속했다. 당연히 친해지고자 하는 이는 많을테고 노리는 이도 많을테지. 사귀기 전에도 비슷한 말을 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혜성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정말로 가끔일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의 말을 믿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안심시키기 위해서 적당히 말을 둘러대는 경우도 있다고 하지 않던가.
일단 그 부분에 대해서는 깊게 파고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며 혜성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건 언제 알아봤어? ...뭐, 알아봤다면 가봐야지."
자신은 적당히 대형마트에 사서 샀었는데 그보다 좀 더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곳이라고 하니 조금 호기심이 생겼기에 혜성은 아람을 따라가기로 했다. 당연히 잡으려는 손에는 제 손을 내줬다. 손을 잡지 않고 걸어갈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참고로 묻는 건데, 내가 번호 따이는 일이 있으면 어쩔거야? ...아니. 뭐, 딱히 번호 따인 적은 한번도 없지만."
제 여자친구는 과연 어떻게 행동할까. 조금 궁금했는지 혜성은 괜히 그렇게 질문을 던졌다.
/아무래도 그렇지? 그렇기에 반대로 아람이는 어떻게 나올지 혜성이가 물어보기로 했다! (나쁨)
같은 반 친구들이나 필요에 따라서 번호를 교환한 적이야 여러 번 있긴 했지만, 갑자기 뜬금없이 모르는 사람이 와서 자신의 번호를 요구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자신이 생각해도 굳이 자신의 번호를 원하는 이는 없을 것 같았기에 혜성은 역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이어 아람이 혼자 수긍하자 혜성은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렇다기보다는... 딱히 내가 눈에 확 띌 정도로 잘 생기거나 그런 것은 아니니까. ...평균은 한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이 엄청 잘생긴 것은 아니라고는 해도 굳이 스스로를 비하할 생각은 없었기에 그는 피식 웃으면서 그렇게 답하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객관적으로 봤을때도 자신은 그래도 평균은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이어 제 물음에 대해서 아람이 번호를 달라고 하면 줄거냐고 질문을 하자 혜성은 입을 꾹 다물었다. 이어 작게 혀를 차고서 괜히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서 대답했다.
"...그렇게 묻는 거 반칙이잖아. 나 참. ...줄 리 없잖아. 모르는 사람에게 함부로 번호를 주는 이가 어디에 있어?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그러니까 그냥 방금 전처럼 내가 번호 따이는 모습을 네가 보면 어쩔거냐고 물은 것 뿐이야."
정말로 필요하다고 하면 줄지도 모르지만 그럴 일이 얼마나 이겠냐고 이야기를 하며 혜성은 다시 앞을 바라봤다.
자신이 잘생겼나? 그런 물음에는 역시 혜성은 바로 그렇다! 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괜히 핸드폰을 꺼낸 후에 셀카모드로 돌려서 자신의 얼굴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렇게 엄청 잘 생겼다는 말이 나올 정도인지는 혜성은 스스로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잘생겼다고 하니 기분은 좋아 그는 괜히 입꼬리를 꿈틀거렸다. 웃음을 애써 참으려는 특유의 표정이었다.
"머리채를 잡아당긴다니. 그런 일 없을거야. 애초에 나에게 그렇게 계속 치근덕거리는 이가 있을리도 없고 말이지."
세상에 잘생긴 이가 얼마나 많은데.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혜성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어디까지나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일일뿐. 실제로는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듯 그는 이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다가 그녀의 말에 그는 조용히 침묵을 지키면서 생각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가 이내 작게 숨을 내뱉으면서 그는 무심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런 인상인데도 불구하고 말을 건 이도 있으니까 상관없어."
설사 아람의 말대로라고 하더라도 아람은 자신에게 말을 걸지 않았던가. 사진을 가르쳐달라고 했었지. 아마. 그때의 일은 아직 그의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애초에 아직 1년도 지나지 않은 일이기도 하고. 이어 혜성은 아람을 바라보며 피식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너는 무섭지 않았어? 거절당하는 거 말이야. 일단은 나에게 사진 찍는 거 알려달라고 온 거잖아."
"객관적으로 잘 생겼어! ...라고 말하고 싶지만 내가 지금 사랑에 빠진 상태라 단언은 못하겠네."
하고 아람은 배시시 웃으며 솔직하게 말했다. 뭐 어때, 내 눈에만 잘생기면 됐지. 다른 사람 눈에 굳이 잘 생길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내껀데! 은근 기분이 좋았는지 입꼬리가 움찔거리는 것도 너무 귀여운데. 이것도 내가 여자친구라서 그런걸까?
"혹시 모르지. 진짜로 있을 수도 있잖아? 내 취향은 지극히 보편적이라고 생각하는데."
흐음...... 하고 생각하다가 이내 없으면 좋지 하고 빙긋 웃는다. 제 말에 답하는 혜성의 말에 아람은 작게 웃었다. 그 때의 작은 만남이 이렇게 커질 줄은 꿈에도 몰랐지.
"별로? 내가 좀 외향적이라서 그런가.......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 거는 거 그렇게 어려워 하지도 않고. 그리고 최악의 상황을 상상해보면 좋더라구. 네가 내 말에 거절했을 때의 최악의 상황 같은 거랄까? 상상해보면 생각보다 별 것 없거든. 어쨌든 그 날은 네가 나를 받아줬으니까! 이렇게 사귀기까지 한 것일지도 몰라?"
나비효과라고 아주 작은 시작이 이렇게 커지게 된 것일지도 몰랐다. 걷다보니 어느새 아람이 말한 가게가 보일 것이었다. 다양한 종류와 브랜드의 모자들이 한데 모여있는 느낌일까.
/푹 쉰다니 부러워~~~ 나는 내일 일하러 가는데 흑흑 혜성주가 내 몫까지 쉬어줘~~~!!
"아무렴 어때. ...너에게 잘 보이면 된거지 뭐. ...아니. 뭐. 그러니까 남자친구니까 못생겨보이면 좀 그렇잖아."
배시시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아람의 말에 혜성은 얼굴을 붉히며 괜히 고개를 살짝 아래로 숙이며 점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 톤을 냈다. 하지만 역시 기분은 좋았기에 그의 입꼬리는 좀처럼 가만히 있질 못하고 움찔거리면서 반응을 보였다. 애써 꾹 눌러서 겨우 가라앉히기는 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만난 적이 없으니까 나에겐 없는 거야."
물론 세상은 넓으니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지 만난 적이 없으니 결국 그에게 있어선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만난 적도 없는데 있다고 생각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이제는 없는 것이 좋았다. 솔로라면 모를까. 여자친구가 있는 지금이라면. 그런 생각을 하며 혜성은 괜히 그녀의 손을 잡은 자신의 손에 조금 더 힘을 줬다.
"아. 하기사 뭐 그때 최악의 상황이라고 해봐야 그냥 거절하고 내가 어디 가는 정도겠구나. ...딱히 너에게 저리 가라고 화를 내진 않았을 것 같고 말이지. 솔직히 그때의 내 입장에선 얘는 뭐지? 하는 생각이 강하긴 했지만... 그리고 그렇게 따지면... 네가 말을 걸었으니까 사귀기까지 한 거 아닐까? 애초에 먼저 시작을 한 것은 너잖아."
자신이 받아준 것이 시작이 아니라 말을 걸어온 그녀가 시작을 끊은 것이라고 혜성은 생각했다. 이어 그는 괜히 작게 고마워라는 인사를 슬며시 보냈다. 한편, 그러는 와중 가게가 보이자 혜성은 가만히 그 가게에 주목했다. 얼핏 봐도 제법 규모가 있었다. 저 곳이라면 확실히 비슷한 디자인의 빵모자를 사는 것은 어렵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그녀에게 말했다.
"저기 맞지? 딱 봐도 모자가게라는 느낌이네. 그건 그렇고... 저기 가격은 괜찮아?"
너무 비싼건 아니지?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그는 우선 대략적인 가격대라도 알아보려고 했다. 돈은 있긴 했지만, 그래도 일단 가격은 알아둬야 어느 정도 지출 계획을 세울 수 있을테니까.
아람은 혜성이 제 손을 꼭 잡자 아람도 혜성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곤 장난스럽게 웃는다.
"그런가? 누가 먼저인지 중요한 건 아닐지도 모르지. 그냥 어떤 우연들이 모여서 이런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구."
아람은 혜성이 작게 고맙다는 인사를 보내자 민망해졌는지 부끄러워졌는지 답지 않게 "...고맙기는." 하고 툴툴거렸다.
"종류가 많아서 오히려 가격이 괜찮더라구. 1,2층에는 저렴하거나 괜찮은 가격대이고 진짜 비싼 모자들은 3,4층에 있어."
전에 여기서 예쁘고 저렴한 캡모자 샀었다며, 위층에 올라갔을 때 엄청 비싼 모자가 있었는데 모자면서 왜 그렇게 비싼지 모르겠다며 종알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가게에 들어서면 캡모자, 벙거지, 비니, 등산모자, 빵모자, 밀집모자, 캐릭터 모자 등등 종류에 맞춰 없는 모자가 없을 것이었다. 모자 종류에 따라 섹션 별로 분류되어있을 것이었고. 시내에 있는 가게이다보니 많은 종류와 저렴한 가격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는 모양이었다. 모자 구경하다가 윗층까지 올라온 이들이 프리미엄급 모자도 사면 겸사겸사 이득이고.
/틈틈히 쉬면서 일하려고오..... 휴.... 그래도 일해야지.... 돈벌어야......()
다시 한 번 슬쩍 그 공을 아람에게 돌리면서 혜성은 대답을 마쳤다. 그 와중에 툴툴거리는 아람의 모습에 혜성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툴툴거리는 모습이 묘하게 귀엽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와 동시에 아람의 눈에는 자신이 이렇게 비칠까. 그렇게 생각하며 혜성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아람에게 조금 뜬금없을수도 있는 말을 던졌다.
"네 눈에는 내가 귀엽게 보여? ...아니 뭐, 그냥 어떻게 보이나 싶어서. 그런 거니까."
스스로 묻고도 조금 민망하긴 했는지 괜히 툴툴거리는 목소리를 내면서 그는 살며시 말을 돌렸다. 그러면서 재빠르게 그녀를 데리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가격이 괜찮다면 다행이네. 엄청 비싸기만 비싸고, 그다지 마음에 안드는 모자만 한가득인 곳도 많으니 말이야."
그런 곳은 아닌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이야기를 하며 혜성은 가게 안의 여러 모자를 바라봤다. 정말 모자들만 다 모아서 가게를 만든 것이 아닌가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그곳은 모자 천국이었다. 일단 오늘은 빵모자를 사러 온 거니까 그는 빵모자를 중점적으로 바라봤다. 진짜 비싼 것까지 굳이 살 필요는 없었기에 3~4층은 생각하지 않기로 하며 그는 1~2층의 모자들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러다가 저 편에 있는 정말로 깔끔한 색의 붉은색 빵모자를 시작으로 같은 디자인이지만 색만 다른 여러 빵모자가 진열된 것을 바라보며 혜성은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향했다.
"이 빵모자는 어때? 색도 예쁘고 디자인도 되게 말끔하고 좋은 것 같은데. 난 빨간거 살건데 너는 사고 싶은 색 있어?"
귀여운 건 너지. 그렇게 작게 중얼거리면서 혜성은 반대쪽으로 홱 고개를 돌렸다. 입술을 약하게 깨무는 것이 여간 부끄러운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물론 귀엽다고 해도 되냐는 물음에 혜성은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상태로 답을 하지 않을 생각은 아니었는지 이어 그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이 이야기했다.
"다, 다른 애가 하는 것이 아니라면야 뭐, 가끔은... 못 들을 것도 없긴 하니까."
결국 그것은 돌려서 말하는 긍정이었다. 아람이라면 상관없다는 내용을 담아 분명하게 이야기를 하며 혜성은 이내 고개를 다시 옆으로 홱 돌렸다. 하지만 가게에 들어가고 모자를 구경하면서 자연스럽게 다시 앞을 바라보면서 그는 앞으로 향했다.
"빨간색이 특별히 좋다기보다는 이전에 썼던 것이 빨간색이라서 그런지, 묘하게 눈이 많기 가긴 하네. 그래도 가장 무난한 색이긴 하니까."
파란색도 괜찮긴 하지만 역시 빨간색이 좀 더 눈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는 빨간 빵모자에게서 시선을 조금도 떨어뜨리지 못했다. 이어 혜성은 아람의 물음. 어떤 색이 어울릴 것 같냐는 그 말에 가만히 주변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근처에 있는 분홍색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 분홍색은 어때? ...뭔가 봄에 찍은 사진도 떠오르고 말이야. 그 벚꽃 떨어질때 찍었던 거."
그때의 아람은 상당히 아름다웠고 우아하면서도 눈을 떼어낼 수 없었다. 그때 찍었던 사진으로 상까지 타기도 했으니 그건 자신만의 생각이 아니라고 혜성은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분홍색이 보이자마자 그때의 광경이 떠올랐고 그는 그녀에게 분홍색 빵모자를 추천했다.
"거기다가 빨간색과 분홍색은 뭔가... 페어 느낌도 들잖아? 일단 같은 계열의 색이기도 하고 말이야."
/아앗...아아앗...왜 아직 퇴근하지 못한거야! 8ㅁ8 사장님..아람주를 퇴근시켜주세요!!
아람은 예상했던 대로 혜성이의 반응이 오자 작게 키득키득 웃었다. 하지만 제가 귀엽다거나 자신은 그렇게 말해도 괜찮다거나 하는 말이 이어지는 것은 정말 사귀기 초반을 생각해보면 엄청난 진일보에 가까웠기에 조금 신기하면서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도 귀엽다는 말은 가끔 해야지. 가끔 해야 뭔가 반응이 재미있을 것 같으니 말이다.
아람은 빨간색이 무난해서 좋다는 말에 아람은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혜성에게 씌워주려고 했을 것이었다. 혜성이 쓰든 쓰지 않든 "머리색이랑 반대라서 잘 어울리는 것 같아."라고 말할 것이었고.
아람은 혜성이 분홍색 모자를 추천하자 머리에 그 모자를 써 보았다. 거울을 보니 연분홍색 모자가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아람이 빨간색 빵모자를 자신에게 씌워주려고 하자 혜성은 피하지 않고 그 모자를 받아 자신의 머리에 썼다. 빵모자인만큼 사이즈는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근처에 있는 거울을 바라보며 그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고 이어지는 아람의 말에 그는 괜히 기분이 좋아 입꼬리가 꿈틀거리는 것을 꾹 이겨내면서 애써 평소의 톤으로 이야기했다.
"머리색? 확실히 대조되긴 하지만 그런 부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 ...역시 이런 것에 되게 민감하고 많이 아는구나. 너."
꾸미는 것을 좋아하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까. 그렇다면 역시 이 모자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며 혜성은 아람이 모자를 쓰는 것을 바라봤다. 분홍색 빵모자는 역시 아람의 느낌와 너무 잘 어울렸다. 무엇보다 봄의 일이 떠오르기도 했고. 자신을 돌아보면서 웃으면서 잘 어울리냐는 그 말에 혜성은 멍하니 아람을 바라보다가 헛기침 소리를 냈다.
"어흠. 쿨럭. 쿨럭. 잘 어울려. ...뭔가 되게 예쁘네. 모자 쓰니까 말이야. 모자 벗어도 마찬가지이긴 한데. 아, 아무튼 잘 어울린다는거야! 잘! 진짜 예뻐!"
그것만큼은 확실했기에 그는 괜히 그 부분을 강조하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자신이 쓴 모자를 벗고 그녀에게서 모자를 달라는 듯이 손을 내밀었다.
"그렇다면 이 두 개로 사자. 아마 겨울동안에는 모자..많이 쓸테니까 가급적이면 난 이것으로 쓸게. 너랑 만날 땐."
이전에 쓴 모자를 버릴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역시 아람과 만날 때는 지금 사는 이 모자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괜히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러다가 그는 얼굴을 잠시 붉히더니 다시 헛기침 소리를 내며 이야기했다.
"사실 널 만나고 연기를 배우기로 마음먹지 않았다면, 아마 경영학과로 진학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싶어." 아람은 배시시 웃었다. 사진 찍히는 것도 혜성으로 인해 좋은 기억으로 잔뜩 남았다. 어머니에게 제 욕심을 말할 용기도 생겼었다. 뭔가 혜성을 만나고 난 이후로 좋은 일만 잔뜩이었던 것 같아.
아람은 여전히 칭찬에 서툴으면서도 많이 늘은 혜성의 모습에 쿡쿡 웃었다. 귀여워.
"고마워."
아람은 혜성이 모자를 달라는 것에 모자를 벗어 주며 고개를 갸웃했다.
"네가 사주려구? 나도 아마 자주 쓸 테지만 코디에 따라 안 쓸수도 있어? 안 쓰고 왔다고 섭섭해하지 않기야?"
물론 혜성이 섭섭해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아니 섭섭해 할지도? 어쨌든 미리 선전포고를 해두며 말했다. 그리고 봄의 데이트 약속을 먼저 잡는 혜성을 보며 사르르 웃었다.
배시시 웃는 아람을 바라보며 혜성 역시 소리없는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귀엽다. 예쁘다. 볼 때마다 생각하지만 저 배시시 웃는 얼굴이 특히나 더 예쁘고 귀엽다고 혜성은 생각했다. 끌어안아주고 싶은 충동이 살짝 들었으나 이곳은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렇기에 그는 꾹 참기로 하며 괜히 다른 곳을 바라보며 손으로 제 얼굴을 부채질했다. 특별히 무슨 말을 하진 않으면서.
자신이 칭찬을 하자 아람이 쿡쿡 웃었고 혜성은 그 소리를 듣기 무섭게 괜히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뭔가 살짝 분한 탓이었다. 기분 좋아서 웃는다기보다는 조금 다른 의미로 웃는 것 같다고 느낀 탓이었다. 물론 기분이 좋아서 웃는 것도 있기야 있겠지만.
그러다 아람이 모자를 벗어주자 혜성은 그 모자를 챙겼다. 사줄 거냐는 그 말에 혜성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내가 사자고 한 거니까. 당연히 내가 사야지. 그리고 아무리 나라도 매번 쓰고 오라고 이야기를 하진 않을 거거든? 때로는 모자를 안 쓰고 올 수도 있는 거고, 모자도 원래 계속 쓰던 이나 계속 쓰는 거지. 안 쓰다가 계속 쓰라고 하면 안 쓰고 올 때도 많아. ...그러니까 그런 것으로 섭섭해하진 않아. 나 참. 무슨 어린애도 아니고."
아무리 그래도 그런 것으로 삐지진 않는다고 이야기를 하며 혜성은 계산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러는 와중 사르르 웃는 아람의 모습과 말에 혜성은 저도 모르게 싱긋 웃었다.
"...그럼 나도 그때는 이 모자를 꼭 쓰고 가야겠네. 이전에 쓰던 모자가 아니라."
같이 쓴 모자이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고, 같이 쓰면 더더욱 의미가 있는 법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혜성은 모자를 계산한 후에, 분홍색 모자를 아람에게 씌워주려고 했다. 그리고 이어 자신의 모자도 쓰려고 했다.
"가볼까? 기왕 나온 김에 조금 더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싶긴 한데... 혹시 가고 싶은 곳 있어?"
/돈은 꼬박꼬박 주니까...괜찮은 거 맞는거지? 아람주..(흐릿) 아무튼 돈은 준다고 하니 다행이지만! 그래도 언제나 화이팅이야!!
아람은 혜성의 삐죽이는 표정을 보면서 아무래도 귀여워 한 것이 티가 났나 싶었다. 뭐어 티가 났더라도 어쩔 수 없는 걸.
"응. 고마워. 잘 쓸게."
아람은 히히 웃으면서 계산대로 향하는 혜성의 뒤를 따라갔다. 오늘 카페는 내가 계산해야지, 생각하면서. 아람은 혜성의 싱긋 웃는 표정에 기분이 좋아졌다. 혜성이 은근 웃음에 박하다니까. 웃고 싶을 때 참지 말고 웃으면 좋을텐데. 웃으니까 얼마나 좋아. 물론 말하면 더 신경써서 안 웃을 것 같으니 속으로만 생각했다.
"좋아. 그 땐 커플 사진도 찍자."
아람은 혜성이 모자를 씌워주는 것을 기다리며 작게 웃었다. 뭔가 이렇게 나눠 쓰니까 정말 커플 티가 확 나는 것 같아서 더 좋았다.
"벌써 나가려고? 아직 구경도 다 못했잖아!"
아람은 아쉽다며 혜성의 손을 잡으려하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둘러보더니 한 쪽으로 혜성을 이끌었을 것이었다.
"이거 유행이 지나긴 한 건데 있네!"
한 때 유행이었던 토끼귀 모자였다. 아람은 잠시 모자를 벗고 토끼귀 모자를 썼다. 밑으로 내려온 발바닥 같은 부분을 꾹 누르면 축 쳐져있던 토끼귀가 위로 바짝 올라갔다가 손을 떼면 축 쳐졌다. 아람은 웃으면서 귀를 쫑긋쫑긋 했다가 이내 혜성에게도 써보라는 듯 내밀었다. 기대 어린 눈빛을 보내면서.
모자를 샀으니 나갈까 싶었지만 아람의 생각은 아무래도 다른 모양이었다. 나가지 말고 구경을 좀 더 하자는 듯이 이야기를 하더니 제 손을 잡고 자신을 이끄는 것에 혜성은 얼떨결에 그녀에게 끌려갔다. 물론 힘을 주면 역으로 끌고 갈 수도 있겠지만, 확실히 이곳을 조금 더 구경한다고 해도 나쁠 것은 없었다.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는데 딱 그 말대로네. 남자는 쇼핑이 끝나면 바로 나가려고 하지만, 여자는 그때부터 시작이라고 말이야. 뭐, 네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고 그냥 갑자기 떠올라서."
자신은 모자를 다 샀으니 이제 용건이 끝났으니 퇴장하나, 아람은 오히려 구경을 하겠다면서 자신을 이끌고 있으니 딱 그 모습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며 혜성은 일단 근처를 두리번두리번 바라봤다. 그러다 아람이 어느 모자를 가리키자 혜성은 그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 저게 아직 있긴 있구나."
토끼귀 모자. 밑으로 내려온 부분을 누르면 토끼귀가 위로 바짝 올라가는 귀여움 덕분에 한때 엄청나게 유행했던 그 모자였다. 꽤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 혜성은 괜히 반가움이 들어 가만히 그 모자를 바라봤다. 그 와중에 아람이 그 모자를 쓰고 귀를 쫑긋쫑긋 세우는 모습이 귀여워서 혜성은 괜히 얼굴을 붉히면서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그러는 와중 자신에게 모자를 내미는 모습이 그의 눈에 살짝 들어왔다. 그리고 기대가 어린 눈빛을 보내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혜성은 툴툴거리는 목소리를 냈다.
"뭐, 뭐, 뭐. 어떻게 해달라고? 나에게. 설마 그거 나보고 쓰라고? 내가 써봐야 하나도 안 귀엽거든?!"
하지만 저렇게 기대 어린 눈빛을 보이는데 어떻게 그가 거절할 수 있겠는가. 그는 빵모자를 벗은 후에 그 토끼 귀 모자를 썼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아래로 내려오는 부분을 꾹 잡아당기면서 박자를 맞춰 귀를 움직였다. 너무 빠르지도 않고, 너무 느리지도 않게. 어느 정도 몇 번 그렇게 쫑긋쫑긋 귀를 세우다가 그는 얼굴을 붉히면서 모자를 벗었다.
"나 참. 돼, 됐지?"
/으앗... 아람주 어서 와라! 나도 갱신할게! 그리고 일 고생했어! 이제 푹 쉬어!! 8ㅁ8
아람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리고 혜성이 자신이 보여준 것을 이해하자 활짝 웃었다. 이렇게 구경하는 것도 충분히 재미있으니까. 그리고 혜성이 마지못해 모자를 써주자 아람은 크게 기뻐했다.
“ㅡ!”
귀여워! 아람은 말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양 손바닥을 뺨에 대고 혜성을 반짝반짝 바라보는 눈빛에 아마 그 의미는 충분히 전달되었을 것이었다. 혜성의 머리 위에서 귀가 쫑긋쫑긋 하는 게 왜 이렇게 귀여운지. 혜성이 모자를 벗자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고 더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아람은 이번에는 혜성을 끌고 이동해 이번에는 검정 중절모를 써 보았다. 손으로 총모양을 만들어 보이며 “마피아 같지 않아?” 하며 장난을 친다. 총을 혜성에게 겨누며 “빵!” 하고 쏘고는 장난스럽게 웃기까지 한다.
“빵모자 말고 다른 좋아하는 모자 있어?”
주변에는 다양한 모자들이 있으니 충분히 구경할 수 있을 만했다.
/밀린 집안일도 하구 맛있는 저녁도 먹고 왔다!! 곧 운동하러 끌려갈 것 같지만.........(살려줘)
아람의 눈빛을 혜성은 애써 회피하며 입을 꾹 다물었다. 얼굴이 붉어진 것도 모자라서 괜히 오른발을 땅에 콕콕 찌르는 등, 살짝 초조해하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물론 기분이 안 좋거나 짜증이 나거나 급한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부끄러움이 상당수치 올라올 때 나타나는 버릇이자 습관이었다. 애써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히기 위해 혜성은 헛기침만 여러 번 할 뿐이었다.
"...뭐, 뭘 그렇게 보고 그래? 말해두는데 귀여운 것은 너였거든?!"
괜히 그렇게 툴툴거리면서 다른 것을 보러 가자는 듯, 앞장서서 가려다가 이내 아람에게 또 손이 잡혀 끌려가기 시작했고 혜성은 순순히 아람에게 천천히 끌려갔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아람이 검정 중절모를 썼고 자신을 향해 총 모양을 만든 후에 빵 쏘자 혜성은 두 눈을 깜빡였다. 그러다가 자신의 심장 부분을 잡고 "으윽" 소리를 내다가 털썩 쓰러지는, 나름의 연기를 선보였다. 물론 조금 어색했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털썩 쓰러지는 모습을 보이면서 혜성은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3분도 지나지 않아 그는 벌떡 일어섰고, 고개를 옆으로 홱 돌렸다.
"...그, 그렇게 귀여운 마피아가 어딨냐. 마피아는... 뭔가 더 살벌하고 무서운 이들이라고. ...그러니까 마피아 같은 거 하지 마."
괜히 투덜투덜거리면서도 결국 귀엽다는 표현만큼은 확실하게 하면서 혜성은 이내 들려오는 물음에 가만히 생각했다. 빵모자 말고 다른 좋아하는 모자. 그다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바로 답은 하지 못하고 그는 잠시 눈길을 돌려 여러 모자를 바라봤다. 그러다가 근처에 있는 커다란 밀짚모자를 집어들고 자신의 머리에 썼다.
"이런 모자도 나쁘지 않겠지만... 역시 뭔가 나보다는 너에게 잘 어울릴 것 같네. 이 모자는."
이어 그는 모자를 벗은 후에 아람의 머리 위에 조심스럽게 씌워줬다. 그리고 이내 피식 웃으면서 역시 모델이 좋으니 뭐든 다 잘 어울린다고 중얼거리면서 그는 작게 웃음소리를 냈다.
/아이고...운동까지 하러 가는구나. 나는 나대로 가족끼리 외식을 하고 왔다! 오리고기 맛있어!!
부끄러워하는 모습도 귀여워. 어쨌든 혜성은 아람을 따라 쫓아왔고 아람의 장난까지 받아주었다. 진짜로 쓰러지기까지 할줄은 몰랐기에 아람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이제 행동대장인 최혜성까지 쓰러뜨렸으니 이 조직을 무너뜨리는 건 순식간이겠군."하면서 손가락 총 끝을 후 불었다가 웃을 것이었다. 물론 쓰러진 혜성이 일어나는 것을 도와주었겠지만.
"마피아 같은 거 안 해~ 나도 안전한 게 좋아."
아람은 키득키득 웃었다. 혜성이 밀집모자를 가져와 머리에 쓰자 분위기가 갑자기 여름이 된 것 같았다. 혜성이 모자를 씌워주자 맑게 웃었다.
"여름 때 생각난다. 계곡 갔었던 거. 다음에 바다 갈 때 밀집모자 챙겨가야겠어."
반짝이는 바다 풍경과 휴양지에서 입을 법한 원피스, 그리고 밀집모자. 뭔가 엄청나게 좋을 것 같지.
아람이 연기를 하는 것에 맞춰 혜성은 좀 더 쓰러져있다가 아람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뒤늦은 부끄러움이 확 올라왔기에 혜성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꾹 입을 닫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투덜투덜거리는 목소리를 내고 그에 아람이 대답하자 혜성은 힐끗 눈동자를 돌려 아람을 바라봤다. 마피아 같은 것은 안한다는 말에 그는 괜히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참고로 행동대장 최혜성을 무너뜨린 것은 총알이 아니라 귀여움이야."
너도 좀 부끄러움을 느껴보라는 듯, 괜히 그렇게 말을 했지만 과연 아람에게 통할지는 혜성도 알 수 없었다. 그녀의 성향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뿌듯하게, 혹은 장난스럽게 웃을 것 같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소심한 복수였다.
한편 자신이 씌워준 밀짚모자가 마음에 들었는지 맑게 웃으면서 아람이 하는 말에 혜성은 절로 머릿속으로 그 모습을 그렸다. 아마 청순한 느낌이 강하지 않을까. 물론 지금이 청순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필시 그때의 그녀는 더욱 맑고 청순한 느낌이 강할 거라고 생각하며 혜성은 입을 열었다.
"...그러면 나는 카메라를 챙겨가야겠네. 이것저것 찍게."
이것저것이 정확히 뭔지는 말하지 않으면서 혜성은 밀짚모자를 다시 벗긴 후에 제 자리에 내려놓았다. 그러다가 저 편에 있는 캐릭터가 그려진 모자를 바라보면서 피식 웃었다.
"이런 모자도 있구나. 요즘은 애니메이션이나 그런 것을 잘 보진 않아서 뭐가 유명한진 잘 모르겠지만... 너는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라던가 있어?"
예전에는 어떤 어려진 탐정 만화를 많이 봤지만 요즘은 그것도 아니라고 하며 그는 괜히 어깨를 으쓱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TV에서 하는 것이었다. 극장에서 하는 애니메이션은 아주 가끔 끌리면 보러 가긴 하니까.
/안녕! 아람주!! 오늘 하루는 잘 보내고 있을까? 일단 답레를 남기고 나는 가벼운 운동을 하고 와야겠어! 체력 관리 해야한다! 흐읍!! 아무튼 하루 화이팅이야! 혹은 하루 수고했어!
혜성의 입장에서는 아람이 부끄럽기를 바라겠지만 아람은 이런 공격에 끄떡 없었다. 뻔뻔하기 때문일지 자신이 예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일지. 혜성과 사귀기 전에는 예쁘다는 말을 퍽 좋아하진 않았지만 혜성을 만나고 닌 뒤로는 그런 말도 꽤 좋아졌다. 자신의 모습도 혜성이 좋아하는 나의 모습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당연하지. 날씨가 좋았으면 좋겠다.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ㅡ."
아람은 혜성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꽤 귀여운 캐릭터들이 프린트 된 모자들이 잔뜩이었다.
"좋아하는 캐릭터? 유명한 건 몇 알지만 나도 잘은 몰라."
대중적으로 캐릭터 상품으로 쓰이는 캐릭터들을 몇 꼽아 이야기 할 뿐 딱히 관심있는 분야는 아닌 모양이었다.
아람은 혜성을 데리고 또 모자들을 구경하다가 이번에는 동물 얼굴 모양의 모자들이 잔뜩 나오는 곳에서 멈췄다. "이거 써 봐!" 하면서 내민 것은 귀엽지만 조금은 험상궂게 생긴 늑대 모자였을 것이었다. 쓰면 새빨간 입 안에 얼굴이 보이는. 혜성이 그것을 쓰면 아람은 그 사이에서 빨간 망토 모자를 찾아 썼을 것이었다.
/어제 열심히 일하고 친구랑 술한잔 하고 뻗었지~~~ 지금은 일하구 있다! 얼른 퇴근하고 싶어어어엉 혜성주 어제 운동했구나! 멋있어멋있어! 운동 중요하니까 꾸준히 해야햇! 오늘 하루도 힘내!
절대 그건 아니라는 듯이 혜성은 괜히 투덜거리면서 고개를 홱 돌렸다. 하지만 그대로 말을 끝낼 생각은 없었는지 작은 목소리로 "누구 아니면 어림도 없거든?" 그렇게 중얼거렸다. 물론 그 목소리가 아람에게 들렸을진 혜성도 알 길이 없었다. 딱히 반응을 보고자 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그는 일부러 작게 혀를 차면서 다른 모자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러게. 날씨가 맑으면 좋지. 배경도 좋고, 찍는 것도 예쁘겠고."
아람의 말에 혜성은 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했다. 확실히 사진을 찍자면, 그리고 즐겁게 놀려면, 거기다가 그곳에 바다라면 날씨가 좋고 파란 하늘이 좋은 법이었다. 날씨가 덥지 않으면 더 좋겠지만, 그것까지 기대하긴 어려웠다. 애초에 날씨가 덥지 않으면 어떻게 여름이겠는가. 그것은 감안하고, 벌레가 많지만 않길 바라며 그는 괜히 눈을 감고 그 풍경을 그리다가 다시 눈을 떴다.
캐릭터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았기에 혜성은 굳이 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허나 그러는 와중 자신에게 아람이 이걸 써보라고 모자를 내밀자 혜성은 그 모자가 뭔지 확인했다. 어딜 봐도 험상궂은 늑대 모자였다. 그리고 그 와중에 빨간 망토 모자를 찾아서 쓰는 아람의 모습을 바라보며 혜성은 자신이 쥐고 있는 모자와 아람이 쓴 모자를 번갈아 바라봤다.
"뭐야. 잡아먹어달라는거야? 너."
이거 아무리 봐도 늑대와 빨간 모자 이야기가 아닌가. 연기를 좀 해야하나? 그렇게 고민을 하던 혜성은 일단 모자를 썼다. 그리고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아람에게 이야기했다.
"빨간 모자는 늑대가 잡아먹을테다!! 우와아앙!"
동화 속에서도 그런 내용이지 않던가. 그런 의미에서 나름대로 목소리를 내긴 했지만, 아람처럼 연기에 익숙한 것도 아니고 무대 체질도 아니었기에 그의 연기는 꽤 어설펐고 이내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이어 그는 툴툴거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하, 하지만 귀여우니 봐준다. 할머니 집에나 가. 훠이. 훠이."
/어제는 나름대로 알차게 보냈구나! 친구들과 술 한잔 하는것도 중요한 법이지! 난 주말에 친구들과 1박 2일로 놀러갈 예정이지만 말이야! ㅋㅋㅋㅋㅋ 그래서 주말은.. 아마 못 올 것 같네. 아람주도 주말은 푹 쉬길 바라! 아무튼 난 오늘 하루도 힘냈너! 아람주도 하루 화이팅이야!
장난기 어린 지르는 비명에 다는 아니더라도 일부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시선을 돌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혜성은 눈동자를 빠르게 옆으로 굴렸다. 당연히 이곳을 보는 이들이 있었다. 물론 크게 관심을 가지기보단 아. 커플인가보다. 식으로 가볍게 넘기는 모양새였지만 그럼에도 부끄러운 것은 사실이었는지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나마 정면에서 보는, 이를테면 아람이 서 있는 곳이 아니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혜성에게는 다행이라면 정말로 다행이었다.
그러다가 할머니 댁까지 데려다달라면서 손을 잡는 그녀의 행동에 그는 입술을 삐쭉 내밀었지만 그럼에도 손은 놓기 싫다는 듯이 손을 꼬옥 잡았다.
"늑대에게 데려다달라고 하다니. 진짜 큰일나고 싶은가보네."
오늘은 사냥꾼이 없을 수도 있는 거 알아?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은 역시나 동화내용을 떠올리면서 하는 말이었다. 동화에 따르면 늑대에게 잡아먹힌 할머니와 빨간 모자를 구해주는 것은 사냥꾼이었으니까. 책에 따라서는 나무꾼이기도 했지만.
"할머니 집은 모르겠고, 나중에 늑대 굴은 데려가줄게."
언제 집으로 한번 초대하겠다는 듯이 이야기를 하면서 혜성은 쓰고 있던 모자를 살며시 벗었고 원래 자리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비어있는 손으로 제 뺨을 긁적이면서 아람에게 이야기했다.
"정말 연기하는 이들은 대단하긴 하구나. ...난 잠깐 쏠리는 지금 이 시선도 은근히 신경쓰이는데 말이야."
/앗...일요일 당직근무라니...8ㅁ8 안돼! 사장님!! 이게 무슨 짓이에요!! 그래도 월요일에는 쉬는거지? (주륵) 아무튼 오늘 하루 정말로 수고 많았다!! 답레를...너무 늦게봤어..(털썩)
"...뭐, 그렇긴 한데 전에도 말했지만 네가 부담스럽다면 데려가거나 할 생각은 없어. 그냥 사진만 보여줘도 되니까."
애인의 부모님을 만난다는 것은 절대로 가벼운 것은 아니었다. 물론 자신이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뭔가 되게 부끄럽기도 하고 기분이 묘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겠는가. 자신의 부모님은 확실히 아람을 보고 싶어하지만 그 정도는 자신이 잘 커버할 수 있었기에 혜성은 무리할 것 없다는 듯이 그렇게 이야기했다.
애초에 아람을 찍은 사진은 많았으니 그 사진 중 몇 장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겠는가. 사실 그것도 있었지만 부모님과, 특히 자신의 어머니와 아람이 만났을 때 무슨 이야기를 하게 될지가 불안한 탓이 컸다.
한편 자신의 손을 흔들면서 아람이 자신에게도 익숙해져야할 거라고 말하자 혜성은 한숨을 약하게 내쉬었다. 너무 많은 이들의 시선을 받는 것은 영 익숙치 않고 내키지도 않았지만 결국 자신이 익숙해질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반대편 손으로 제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야 할 것 같긴 한데... 아. 몰라.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겠지! 애초에 올해 초만 해도 여자애와 이렇게 있는 것이 자연스러울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으니까."
그때에 비해서 지금 자신이 변한 것처럼, 자신도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변하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가만히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이번에는 자신이 아람을 천천히 끌었다. 그러다가 귀를 가릴 수 있는 검은색 모자를 발견하고 거기서 멈춰섰다. 그러다가 아람을 바라보며 그 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하나 살래? 나야 상관없긴 한데, 겨울에 이런 거 쓰면 꽤나 따뜻하거든. 특히 귀가 시리지 않아."
/비상...안된다. 비상은!! 절대로 안된다! (도리도리) 아람주의 월요일이..아무런 일도 없고 편히 쉴 수 있는 날이 될 수 있길 바라겠어!
"물론 알고 있어. 네 얼굴. 그러니까 널 데리고 오라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거야. 나 참."
사람 속도 모르고 말이야. 그렇게 혜성은 작게 투덜투덜거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싫은 것은 아니었는지 진심으로 짜증내거나 싫어하는 모습은 그에게선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선택은 아람이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천천히 생각하고 괜찮으면 얘기해주고, 영 부담스러우면 얼마든지 거절해도 된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혜성은 답을 끝냈다.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아람이 가고 싶어해야한다는 것은 필수적인 조건인 모양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기 때문에 더 좋지만 말이야. 일단 나는 그래."
사귀는 것을 미리 예상했다면 두근거림이나 설레는 마음이 지금보다는 덜하지 않았을까.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드라마틱했고, 극적이고 지금 이 순간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혜성은 생각했다. 괜히 잡고 있는 손에 더욱 힘을 주면서 혜성은 놓지 않겠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그녀의 손으로 보냈다.
아람이 모자를 쓰자 혜성은 아람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귀가 적절하게 덮이는 모습도 그렇고, 모자의 재질도 그렇고 상당히 따뜻할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물론 자신은 그다지 필요는 없긴 했지만 역시 아람에게는 하나 정도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잘 어울려.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뭔가 귀 부분이 살며시 내려와서 가려지는 것이 괜히 더 귀엽기도 하고. 그리고 엄청 따뜻할걸? 그 모자 쓰는 이들도 은근히 많다고 하잖아?"
올해 겨울은 특히나 춥다고도 하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혜성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 와중에 추운 것이 너무 싫다고 투덜거리는 아람을 바라보며 혜성은 작게 웃음을 터트리다가 빠르게 표정을 관리했다.
"추우면 얼마든지 얘기해. ...뭐, 내 품에서 따뜻하게 데워주지 못할 것도 없긴 하니까..."
자유로운 손으로 자신의 품을 톡톡 손으로 가리키던 그는 얼굴을 붉히면서 빠르게 얼굴을 옆으로 홱 돌렸다. 그러면서 작게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누구 씨의 전용석이래. 여기. 누구 씨인지는... 비밀이지만."
/군밤 아저씨가 쓰고 다니는 디자인을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 은근히 작년 겨울에 그런 모자 쓰고 다니는 사람이 많더라구! 실제로 나도 쓴 적이 있는데 귀가 굉장히 따뜻해서 좋았어! 물론 그렇다고 추위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흑흑... 그럼 나도 같이 기도해줄게! 정말로 별일 없을거야!